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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니팬킥님 '
이거 직접 쓰신 글씨맞죠ㅠㅠㅠㅠㅠ 와 진짜 무슨 원래 있던 글씨체인줄알았어요ㅠㅠㅠㅠㅠㅠ 색감도 너무 예쁘고...분위기도 좋고ㅠㅠㅠㅠ 아련아련....진짜 예쁘다ㅠㅠㅠㅠㅠㅠㅠㅠ 제가 하늘색을 좋아해서 너무 마음에 드는 색깔이예요ㅠㅠㅠㅠ 정말 예쁜 표지 감사합니다 정말정말!
' 개썅마이웨이님 '
헐 이런 고퀄표지가.....꼭 정말 출판사에서 나온 책같지않아요? 끝에 깨알같이 열대야카페 도장도 찍혀있곸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짝조가 이렇게 책으로 나오면 정말 행복하겠네요...ㅎㅎ 미리 행복한 기분 느끼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샤이니 - stand by me
짝사랑을 끊기 힘든 이유에는 대체로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건 착각이다, 착각. 나를 착각하게 만드는 그 사람의 행동들. 그 사소한 행동이 지울 수 없는 생채기로도, 끊을 수 없는 짝사랑으로도 이뤄지곤 한다. 아이들의 웅성거림이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는 건 곧 김종인에게 손목을 잡힌지도 꽤 오래 지났다는 말과 같았다. 놈은 날 목말라 죽일 셈인지 어떠한 대꾸 하나 없이 앞으로 걸어가기만 했다. 착각할 수밖에 없었다. 어제 김종인은 울고 있었고, 김효정은 심드렁한 얼굴로 자리를 빠져나갔고, 오늘 둘이 머리채를 잡고 싸우고 있던 상황에서 날 끌고 나온 것까지……누가 착각을 안 하냐 이 말이었다.
여자라면 누구나 그랬다. 아니, 모두가 그랬다. 내 편을 들어준다는 것, 이게 얼마나 큰 의미냐. 콩콩 작게 조잘대던 심장이 야속하게도 소리를 키워갔다. 그와 동시에 신발 밑창 마찰음이 기분 나쁘게 귓가에 꽂혔다. 사람 하나 없는 미술실 앞에서 우두커니 서서 나만 내려다보고 있는 김종인이 보였다. 아, 착각의 연속이었다. 혹시 김종인이 나를 좋아해서 이러는 거 아닐까 하는.
" 미안, "
" ……. "
" 갑자기 끌고와서. "
" 아……아니. "
" 김효정이랑은 왜 싸운 거야? 막 사과하라고 그러던데. "
" 아, 그게……서로 오해가 생겨서. "
" 김효정 성격 알아, 별거 아닌 일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도 알고. 이해해. "
" ……. "
" 누구보다 잘 알거든. "
바람이 불었다. 속눈썹 위를 찌르르 찌르는 칼바람에 애연한 인상이 쓰여졌다. 목울대가 찌릿하게 욱신거렸다. 다시금 변백현의 말이 허공 위로 윙윙 맴돌았다. 김종인도 나처럼 짝사랑을 하는 사람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는 사실에 미치도록 고통스러웠다. 꼭 나 혼자만 막장드라마 초라한 여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그냥 내 생각이 그랬다. 사실 물어보고 싶었다. 왜 내 편을 들어준 거냐고. 왜 날 끌고 나와준 거냐고. 그럼 내가 얼마나 힘든지 모르냐고, 비참한 걸 알면서 또 좋아하는 걸 모르냐고. 그럼에도 난 침묵으로 일관했다. 물어볼 수 없는 게 당연하다. 혹시나 아니라는 말이 튀어나올까 봐. 더 이상 쿠크가 깨지긴 싫다. 이미 혼자 몇 번이고 착각하고, 또 몇 번이고 후회하면서 울었기 때문에.
" 아, 그……혹시 오해할까 봐 말하는 거야. "
" 응? "
" 잘못하다가 상황 커질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그리고 아까 분위기 보니까 어떻게든 떨어뜨려놓아야 할 거 같아서. "
" ……. "
" 어, 그래서……. "
말끝이 희미하게 같은 곳에 맴돌았다. 좀처럼 매듭을 짓지 못하고 눈알만 굴리고 있는 답답한 김종인의 모습이 두 눈에 가득 찼다. 내가 착각이라도 할까 해명을 하는 꼴이 미치도록 미웠다. 그래, 맞는 말이다. 오해라도 할까는 맞는 말이다. 잠깐이지만 기뻤다. 놈이 내 냉담한 현실을 일깨워주기 전까지는 기뻤다. 혹시나 김종인이 나를 좋아하지는 않을까, 혹시나 김종인이 그래서 날 도와준 거는 아닐까, 하는 자질구레한 생각들. 누군가 정신을 차리라며 이리저리 어깨를 흔들어대는 느낌이었다. 묘하게 잔미소를 띠우며 웃었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난 너한테 관심 같은 거 없는데, 절대 오해할 일 없는데? 그런 진실 아닌 가짜 표정들.
그러니 난 절대 착각할 리 없는데. 할 수 있는 건 이런 발연기일 뿐이었다. 내 표정에 그제야 안심이 된다는 듯 바람 빠진 미소를 뱉어내는 김종인이 있었다. 결국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었다. 놈이 나를 도와줬던 건 정말 나와 김효정을 떨어뜨려놓아야 할 것 같아서 였고, 이곳까지 끌고 온 건 그걸 해명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결국은 나 혼자 착각이다. 나 혼자만, 나 혼자만 등신이다.
짝사랑의 조건 여섯 번째 : 좋아하는 그가 날 싫어하게 될까 두렵다. 그래서 난 또 바보같이 연기를 한다.
' 땅과 하늘 사이에 솟아 있는 산의 형상을 바라보며 화자는 자신이 삶이 아무리 적막하고 고단하더라도 항상 굳은 의지를 지니고 좌절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거야. '
나른함에 쭉 쳐진 어깨와 눈꺼풀에 두어 번 고개를 젓기만 반복했다. 운동장에선 체육복을 입은 남자아이들이 청춘 드라마를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저가 먼저 골을 넣겠다며 서로 으르렁거리는 모습이 참 의미 없어 보였다. 반쯤 감긴 눈과 함께 무거워진 턱을 괴고 낮은 숨을 토해냈다. 아, 이 지루한 수업. 언제 끝나냐. 다시금 반사적으로 고개가 창가 쪽으로 돌아갔다. 가장 가운데 자리에서 제 앞머리를 쓸어 넘기고 있는 김종인에게로 온 정신이 꽂혔다. 그런 쓴 말을 듣고도, 가슴에 생채기가 나도 놈을 쫓고 있는 내 자신이 참 병신 같았다.
변백현이 새삼스레 놀라웠다. 김효정을 나쁘게 말한 것도, 나를 투병신이라고 칭한 이유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꼭 미래를 내다보기라도 한 사람 같았다. 희미하게 들어오는 실바람이 뺨 부분을 자꾸만 찌릿하게 건드렸다. 옆에선 볼펜 대신 휴대폰을 잡으며 남자친구와 카톡을 하고 있는 혜미가 보였다. 참, 다 의미 없는 짓이다. 수업을 안 듣고 휴대폰에만 몰두하는 표혜미도 그렇고, 나쁜 말을 들으면서도 김종인이 좋다고 헤벌레하는 나도 의미 없는 짓이다.
" 야, 너 볼 왜이래? 아까 김효정그 년이 긁은 거 아니야? "
" 왜? 나 거울 없는데, 거울 있어? "
" 아, 나 진짜 짜증나서. 지금이라도 가서 뭐라고 확 할까? "
" 아, 됐어 무슨. "
" 보건실이라도 가야하는 거 아니냐? 아, 존나 아프겠다 진짜……. "
" 나 보건실 다녀올 거니까 괜히 윤보미한테 나 싸운 거 말하지 마라? "
" 아, 절대 안 말해! 너 근데 진짜 볼 흉지면 어떡해? "
" 그러니까 진짜, 아……. "
" 내가 가서 뭐라고 할까? "
수지는 입만 산 친구였다. 정작 앞에선 아무것도 못하면서 앞에선 입만 산 친구. 괜히 일 크게 만들지 말자며 짧게 고개만 젓고 엉덩이를 뗐다. 의자와 바닥 사이의 마찰음이 웅장하게 들려왔다. 가벼운 상처면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이건 꽤나 흉이 질 것 같은 상처라 보건실이라도 다녀올 생각이었다. 아마 아까 정신없이 머리채를 잡고 있다 저도 모르게 긁힌 모양이었다. 울상을 지으며 같이 간다며 온갖 악를 다 쓰는 배수지를 억지로 떼어내고 걸음을 옮겼다. 꼭 수목드라마에 나오는 나 좋다는 여자를 내팽개치고 제 갈 길 가기에 바쁜 나쁜 남자라도 된 것 같았다.
속이 타들어갈 것 같았다. 그냥 정신이 멍한 거였다. 김종인한테 엄청나게 강한 뒤통수라도 맞은 것 같았다. 가망 없는 짝사랑이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아예 대놓고 그런 말을 들으니 모든 빛을 잃어가는 느낌이었다. 어김없이 그 순간이 찾아왔다. 내 시간, 마음, 고통을 다 줘야 했던 그 더러운 짝사랑을 포기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이런 기분이라면 정말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더럽고 치사해서 못 해 먹겠다 이 말이었다. 내가 왜 김효정한테 무시를 당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김종인한테 그런 말을 들어야 할지도 몰랐다. 내가 뭐 진짜 오해라도 한대? 아니, 그래. 속으로는 하겠지만 그걸 그렇게 대놓고 말하는 심보는 뭐야? 사람 민망하게 하려고 작정했나.
모든 상황이 내 멋대로 안되니 괜히 죄 없는 김종인을 탓했다. 이것도 자기 위안이었다. 그러니 쪽팔려 하지 말자는 혼자만의 위로. 머릿속에선 온갖 포기와 관련된 단어가 자잘하게 나열됐다. 꼭 포기를 하라는 말 같았다. 8개월간의 더러웠던 짝사랑을 끝내라는 말. 그래, 솔직히 좋아하게 만든 건 자기면서 또 이렇게 상처 주고 희망 주는 건 무슨 못된 생각이냐. 다 김종인 잘못이다. 김종인 그 새끼가 나쁜 남자다, 난 나쁜 남자한테 제대로 걸린 거다. 질질 끌던 발걸음을 조금 더 가볍게 띄었다. 결심이었다. 진짜 끝내기로. 개같아서 못 하겠다 이거야. 심오한 표정으로 보건실 문고리를 냅다 돌렸다. 김종인 개새끼, 진짜 빠이다 진짜.
" ……. "
" ……. "
" 어……, "
" ……아, "
" ○○○! "
" ……. "
" 어, 너 볼 왜그래? 아까는 괜찮았는데 부어서 그런가? 볼 때문에 온 거야? "
" 어……그, 너는 왜. "
" 나? 아아……, "
" ……. "
" 축구하다가 존나 추하게 넘어졌어, 무릎 다 까지고……발목 조금 시큰거려가지고. "
" 아, 선생님은? "
" 식사하러 가셨나 봐, 금방 오니까 의자에 앉아있으라고 적혀있던데. "
하늘이 날 싫어하나 싶었다. 난 잘못한 게 없는데. 꼬박꼬박 기부도 자주 했고, 왕따 당하는 친구에게 먼저 손도 내밀어 줬었고, 하다못해 이유 없이 사람을 미워한 적 한 번이 없는데. 아, 전생에 죄가 많았나 보다. 그런 게 아니라면 이럴 수가 없지 않은가. 처음이었다. 머리에 털 나고, 아니 그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김종인을 좋아하고 나서 처음으로 놈을 같은 공간에서 우연히 만난 거였다. 놀란 두 눈에 세상모르고 해맑게 웃고 있는 김종인이 가득 들어왔다. 온몸에 못을 박아 놓은 로봇처럼 삐꺽거리며 몸이 움직였다. 병신같이 눈앞에 상황을 믿을 수 없어 두어 번이나 비벼도 보고 머리를 때려도 봤다. 그럴수록 나를 정말 병신같이 취급하고 있는 김종인이었지만.
아아, 띵하고 어지러움이 몰려왔다. 나 방금 전까지 포기한다고 했던 사람인데. 분명 김종인 욕하면서 그러겠다고 했는데, 내 이름을 불러주는 그 목소리 하나에 제정신 못 차리고 본능에만 충실하는 심장이 날뛰기에 여념이 없었다. 심장아 나대지마, 부여잡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이성과 다르게 본능이 그랬다 본능이. 암, 당연하지. 이성은 그러면 안 되는 거지. 김종인이 아까 나한테 얼마나 상처되는 말을 했어? 그럼 포기해야 하는 게 답이지. 당연하지, 그래야 하는 거지.
" 근데 아까 내가 했던 말때문에 기분 나쁘지는 않았지? "
" 응? 뭐? 아, 아까 오해하지 말라던 말? 아, 그거로 기분 나빠하는 사람도 있어? 걱정마, 걱정마! "
" 아, 그럼 다행이고……말하고 계속 걱정했거든, 나 좋아하지도 않는 애한테 쓸데없는 말한 거 같아서. "
" 걱정말라니까 진짜? 나 하나도 기분 안 나빠! "
시발,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날 비웃는 것 같았다.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잘도 거짓말을 하는 내 입을 어떻게든 비틀어버리고 싶었다. 포기한다며, 포기한다면서 왜 이 지랄인데. 아니, 그나저나 심장이 문제다 심장. 눈치 없이 소리를 키워가는 가슴께에 어이없는 참담함이 느꼈졌다. 꼭 한 대 엊어맞고 하나도 안 아프다며 허세를 떨어대는 중학생이라도 된 듯했다.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리곤 김종인 옆에 보이는 의자에 냅다 엉덩이를 붙였다. 아, 어떻게 말을 이어가야 할지 모든 게 캄캄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다른 남자가 아닌 내가 좋아하는 사람. 할 수 있는 건 딱 그뿐이었다. 너한테 관심 없는 척과, 아무렇지 않은 척. 어떻게든 내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내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다니……병신같은 일이 따로 없었다. 이건 마지막 희망이었다. 가망 없는 짝사랑은 힘들고 포기하고 싶지만, 그렇다고 내 마음을 들켜버려서 대놓고 거절을 당하는 쪽팔림을 면한다면 딱 참을 수 있었다. 자신감이 없었다. 내 모든 것에서 그랬다. 김종인이 미치지 않고서야 내 고백을 받아줄 리가 없을 것 같았다. 내가 김종인이랑 썸을 탔냐, 하다못해 친한 사이냐. 난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냥 어쩌다 한번 김종인이 호의를 베풀어주는데 그걸 저 혼자 좋다고 착각하는 애. 난 딱 그짝이었다.
" 진짜 김효정이랑 왜 싸운 거야? 아까 장난아니던데. "
" 아……어, 진짜 오해때문에. "
" 원래 같았으면 김효정을 말렸을텐데……. "
" ……. "
" 아아, 너 나쁘다는 게 아니야. 그냥……내가 김효정을 좋아했거든, 거의 1년 넘게 그랬어. "
" 아……. "
" 근데 오해가 생겨서 며칠 전에 조금 안 좋게 끝났……아, 끝났다는 표현은 좀 그런가? 사귀지도 않았으니까. 그냥 내가 걔 좋아했던 게 끝났어. "
" ……. "
" 암튼 그랬어, 진짜 오래 좋아했거든. 아, 그래서 변백현이 매일 병신이라고 놀렸다. 호구에다가 병신에다가. "
그렇구나, 하고 짧게 대답을 이어갔다. 길게 말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내 앞에서 다른 여자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현실에 어쩔 수 없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그것도 모르고 나쁜 새끼는 옅은 잔미소를 띠우며 묘하게 날 떨리게 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심장이 반응하다니, 진정한 호구는 나였다. 한참이나 날 생각 못하고 김효정의 이야기만 주구장창 꺼내놓는 김종인이었다. 자기가 좋아하게 된 계기라던지, 제일 바보 같았던 사건이라던지. 나로선 공감하면서도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그게 김종인의 짝사랑 일화라면 더욱 그랬다.
" 아, 넌 좋아하는 사람 있냐? "
" 응? "
" 맞다, 변백현 좋아하지 너? "
" 아,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그거 아니라니까? "
" 아, 진짜? 그때 고백했잖아. "
" 뭐? "
" 그때 변백현한테 8개월 전부터 좋아했었다고 했잖아. "
" 아……. "
" 내가 잘못들은 거냐? "
능구렁이가 한 130마리쯤 들어가 있는 잔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내게 가까이 눈을 맞추는 김종인이었다. 반사적으로 진득한 침이 넘어갔다. 꼭 변태라도 된 것 같았다. 돌이 따로 없는 굳은 입꼬리에 미세한 경련이 일어났다. 허리가 둥글게 곡선을 이루고 뒤로 꺾였다. 점점 가까이 마주해 오는 앞사람 때문이었다. 등 받침이 있는 의자라면 모르겠는데 잡히지 않는 붕 뜬 공기만이 뒷면을 가득 채웠다. 목 부분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정착할 곳을 못 찾고 방황하기만 하는 바쁜 눈동자에 얼마나 초조한 상황이 일어난 건지 짐작할 수 있었다. 흉측한 신음이라도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미친 듯이 요동치고 있는 심장 소리가 꼭 제 앞에 있는 놈에게도 들릴 것 같았다. 날 목마르게 할 눈앞에 있는 놈을 다시 한번 확인하자 반사적으로 두 팔을 들고 앞사람을 밀쳐냈다.
" 아, 그거 그냥 쪽팔려에서 걸린 거였어! "
" ……쪽팔려? "
" 어, 어 그거 몰라? 쪽팔려, 쪽팔려! 해서 막 걸린 사람이 이상한 벌칙 수행하고……어, 그래서 윤보미가 나한테 고백을 하라고 하는 거야. 근데 그때 딱 변백현이 나온 거고. 그때 내가 다 해명했는데? 어, 변백현이 너한테 말 안……아, 그러니까. "
" 아, 존나 웃기네. 뭐라는 거야, "
" 아……쪽팔려라니까? "
" 요즘도 쪽팔려하는 애가 있냐? "
" ……. "
" 아, 그럼 진짜 변백현 안 좋아하는 거냐? 뭐야, 난 변백현 그새끼가 하도……아, 솔직히 멋있었는데. 난 1년 째 고백도 못 하고 있는데 여자애가 대놓고 그렇게 고백하니까 내가 병신 같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하고. "
" ……아. "
" 그럼 호감 가는 애도 없는 거? "
마치 여자들 무리에 둘러싸여 진실게임을 하는 기분이었다. 죽어도 좋아하는 애가 없다고 하니, 그럼 딱 한 번이라도 호감 갔던 애가 없냐고 물어보는 그 상황. 그럼 난 정말 딱 한 번이라고 대답해도 결국은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게 돼버리는 그 거지 같은 상황. 전혀 어울리지 않게 겹치는 장면에 살짝 어이없는 실소가 터졌다. 이런 이야기는 죽어도 싫어할 것 같았는데. 누가 누구를 좋아하는 이야기를 이렇게 흥미롭게 파고들 줄이야.
궁금해 미치겠다는 양쪽 두 눈에 다시금 고개가 정면으로 돌아갔다.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하는 건가에 대한 문제를 생각하기 위함이었다. 딱 눈 감고 티 내보자 생각했다. 정말 마지막일지도 모르지 않느냐. 오늘만 해도 김종인은 내게 있어 상처가 되는 말을 잘도 내뱉지 않았느냐. 끝은 당장 내일일 수도 있었다. 처음 냈던 용기처럼 간접적으로라도 용기를 내보자 이거였다.
" 호감가는 애는 있지, "
" 와, 우리 학교? "
" 어어……우리 학교. "
" 야, 김종인 우리 화장실 간다고하고 몰래……. "
" ……. "
" ○○○? "
아, 시발. 방해꾼이 나타났다. 한번 방해꾼은 영원히 방해꾼인 건지 김종인과 단둘이 있어야 할 고귀한 시간을 잘도 침범하는 변백현과 김종대였다. 두 방해꾼은 아주 기세 좋게 어깨까지 떡 벌리며 위험지점까지 다가왔다. 아,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하나 싶었다. 물론 나도 볼에 상처가 나서 온 건 맞지만, 변백현은 내 마음 모든 걸 알고 있는 놈이었다. 또 어떤 돌직구로 나를 비참하게 만들지가 문제였다. 우선 피해야 하는 게 정답이었다. 황급히 엉덩이를 떼고 냅다 교복 치마를 털었다. 옅은 실한숨을 뱉어내고 몸을 돌리니, 무자비하게 내 손목을 잡고 다시 의자로 앉히는 변백현 아니겠냐.
" 너 얼굴 왜 그러냐, "
" 뭐가? "
" 아까 김효정한테 쳐발렸냐? "
" 아, 뭐가 발려. 내가 이겨. "
" 어, 대박 존나 허세 오지네. "
말을 좀 예쁘게 순화할 수는 없는 걸까. 아, 없는 거구나. 서로 번갈아가며 웃음을 터뜨리는 세 놈들의 얄궃은 면상이 그대로 두 눈에 들어왔다. 딱 위험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지, 날 놀리기에 바쁜 변백현이 있지, 아무것도 모른 채 생각나는 대로 내뱉는 김종대가 있지. 그럼 내 마음을 언제 들킬지도 모르는 거고, 언제 당할지 모르는 거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거 아니냐.
" 김효정이랑 왜 싸운 거냐? "
" 아, 아까 김종인도 물어봤다고. "
" 쟤가 뭐랬어? "
" 그냥 오해때문에 싸웠대. "
" 오해는 무슨 지랄, "
" ……. "
" 김……. "
" 아, 시발 볼따귀 존나 아파 진짜! 후시딘 없냐, 후시딘! 후시딘 존나 필요한데! "
" ……. "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느릿하게 눈만 깜빡여가며 나를 병신 보듯 쳐다보는 김종인의 안타까운 시선이 그대로 느껴졌다. 솟구치는 민망함에 저도 모르게 두 손을 들어 제 얼굴을 감쌌다. 아, 지금 이러는 것도 다 민망하다. 그냥 내가 여기 서 있는 자체가 다 민망하다. 그냥 죽어야겠다, 그게 답이지. 감춰진 손가락 사이로 희미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한 손으로 제 두 눈을 가리고 억지로 웃음을 참고 있는 김종인이었다. 거기서 가만히 있으면 반은 가는데 이미 혼미해진 정신은 날 머저리로 만들 작정인가 싶었다. 듣기 흉한 신음이 연속해서 터져 나왔다. 아, 진짜 쪽팔려. 분명했다. 오늘 집 가서 최소 삼십분 이상 혼자 이불을 발로 차면서 난리를 칠 거라고.
" 야, 누가 후시딘 좀 챙겨서 보내라. "
김종대는 나를 개그우먼으로 만들 셈인가 싶었다. 가뜩이나 가만히 있어도 웃기는 상황에 김종대의 말장난까지 추가되니 한층 업된 기분은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좋아하는 남자 앞에서 구경거리가 되는 기분이 참 묘하게 그랬다. 얼굴은 벌게졌는데도 애써 태연한 척 정색하고 탁자 위에 올려져 있는 휴대폰을 잡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휴대폰만 가지고 냅다 도망치자는 생각이었다. 한 손을 뻗었다. 쪽팔림에 미친 듯이 떨려오는 손가락들이 내 초라한 상황을 대변해주는 듯했다. 내 손바닥만 한 휴대폰을 쥐고 그제야 몸을 돌렸다.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거다, 딱 아무 렇지 않은…….
" 나 너 번호 좀 줘라. "
" 아, "
" 여기다 찍는다? "
변백현은 민첩성 하나는 빠른가 보다 했다.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을 잽싸게 낚아채곤 마치 제 휴대폰인 마냥 익숙하게 번호를 입력하기에 바쁜 얄미운 면상이 보였다. 속에서 끓고 있던 중2병 인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았다. 가만히 있어도 쪽팔려 뒤지겠는데 이게 무슨 망신이냐. 한참을 자판만 두드리다 냅다 내 눈앞으로 휴대폰을 들이미는 변백현이었다. 튀는 행동은 저 혼자 다 하는 게 분명했다. 관심을 받고 싶은 건가, 성격이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쓸데없는 생각은 집어치우고 놈이 내민 휴대폰 모니터를 가만히 응시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당황스러운 두 눈이 깜빡였다. 이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메시지였다.
[김종인 아까 너 왜 데려간거래?]
기막힌 실소가 터졌다. 둘 사이에도 합의 없이 생긴 일이었는지 휴대폰까지 뺏어들고 비밀 메시지를 입력한다는 그 기발한 생각에 새삼 감탄사가 나왔다. 표정 변화 없이 휴대폰을 받아들었다. 번호를 달라더니, 단지 궁금증을 해결할 수단이라 생각하니 두 눈이 게슴츠레 가늘어졌다. 무의식적으로 자판을 찍어갔다. 내가 알고 있는 그대로는 이뿐이었다.
[일 더 커질까 봐 그랬대]
딱딱하기 그지없는 내 문자에 변백현은 묘하게 인상을 찌푸리며 가는 손가락으로 여러 번 제 턱을 쓸었다. 내 명쾌한 해답이 저 딴에는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다며 어깨를 가볍게 으쓱거렸다. 한참이나 휴대폰 모니터를 응시하던 놈은 아무렇지 않게 다시 내 휴대폰을 잡아들어 또박또박 한 글자씩 입력해가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할 말이 남아있는 듯했다. 다시금 내 눈앞으로 모니터가 다가왔다. 혹시나 뒤에 있는 놈들이 볼세라 황급히 휴대폰을 뺏어 들고 제 허리춤에 감추는 나였다.
" 너네 뭐하냐? "
" 응? "
" 그냥 대놓고 귓속말을 하던가 사람 기분 나쁘게 휴대폰으로 뭔, "
" 아, 그게 아니라. "
" 뭔데? 아, 솔직히 내놔라. "
" 아, 그런 거 아니라고 미친놈아. "
" 왜 욕을 해? 야, 김종인 쟤 왜 욕 하냐? "
" 몰라? 찔리나보지? "
" 아니라면 그냥 아니구나라고 생각하라니까. "
" 아, ○○○ 좋은 말로 할 때 내놔라. "
" 응? 진짜 아무 말, 말도 안 했는데? "
" 아, 그러니까 그건 김종인이랑 내가 판단할 테니까 내놓으라고. "
" 아, 진……. "
" 아, 달라고 그냥! "
김종대의 요동 없던 목소리가 잔뜩 스파크를 내고 튀어 올랐다. 그와 함께 굽히고 있던 허리도 펴고 내가 들고 있는 휴대폰 쪽으로 손을 번쩍 내미는 거였다.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허리를 뒤로 굽히고 잔뜩 흥분해있는 놈을 피하기에 바빴다. 그 상황이 여간 재미있어 보였는지 저도 따라 웃으며 허공에 제 손바닥을 올리고 내놓으라는 자세를 취하는 김종인도 보이기 시작했다. 잘못한 건 없었다. 다만 너무 주변 사람을 의식 못했다는 게 문제였다. 변백현 이 새끼는 같이 저지른 일이면서 공범이 되기는 싫은지 가만히 자리에 앉아 험한 욕만 지껄이고 있을 뿐이었다. 양심이라도 있으면 일어나서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니냐. 내 휴대폰을 목표로 이리저리 팔을 움직여대는 김종대를 피하기 위해 1초에 한번 꼴로 다리을 움직이기에 정신이 없었다.
" 뭔데 그래, 진짜? "
" 아, 아무 것도 아니라니까? "
" 그러니까 달라니까? 괜히 사람 궁금증 키우지말고. "
변백현 개새끼는 끝까지 방관자로 남을 생각인가 보다. 배수지와 마찬가지로 입만 산 개새끼는 연신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쌍욕만 날리기에 바쁜 모양이었다. 나보다 머리 한 통은 큰 김종대가 이곳저곳 내 옆구리 주변으로 팔을 뻗어가며 휴대폰을 뺏어가기에 온 사력을 다했다. 마땅히 피할 곳도 없어 벌게진 얼굴에 당혹감이 한 움큼 차올랐다. 아예 내 눈앞으로 바짝 붙어버리는 김종대를 보자 반사적으로 몸이 뒤로 돌아가버리는 나였다. 등 뒤에 휴대폰을 감추고 개새끼에게 소용없는 도움이라도 청하기 위해 다급한 얼굴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꽉 찼던 두 손의 느낌이 어딘가 허전해지는 거였다. 두려운 마음에 빠르게 몸을 돌리고부터 봤다. 아, 시발. 저도 모르게 험한 욕이 입 밖으로 튀어 나올뻔한 순간이었다. 내가 등을 보인 사이에 휴대폰을 가로채고 제 품에 숨겨버린 김종인과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었다. 서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옆에 있던 김종대는 크게 오버를 하며 마음껏 웃어대기에 바빴다.
" 아, 뭔데 그래. "
" 야, 김종인 나도 보여줘 나도. "
" 나 먼저 보고. "
" 아, 달라고 진심. "
" ……. "
" 아무 말도 아니라니까? "
" 어어, 야 김종대 얼른 와. "
" 아, 미친 진짜, "
계속해서 자리에 앉아있다 처음으로 무릎을 펴는 변백현이었다. 내게 있어 영화에만 나올 법한 슬로우 모션 기법이 놀랍게도 눈앞에 일어나고 있었다. 김종인은 바쁘게 김종대를 불러대며 휴대폰을 제 얼굴 앞으로 올리고 있었고, 변백현은 오만상을 찌푸리며 다급하게 손을 뻗었으며, 옆에 있던 김종대는 신 나게 날 놀려대며 속도를 높이기에 바빴다. 그러자 느릿하게 움직이던 장면들이 엄청난 소리와 함께 빠르게 전환됐다. 그 장면을 목격한 순간 해야할 건 하나였다. 무조건 김종인이 저 메모를 보는 걸 막아야 한다. 반사적으로 발을 뗐다. 아, 진짜 되는 것 하나 없다. 김종인과 조금 설레는 날이 올 것 같으면, 방해꾼들이 나타나고. 무난한 상황이 지속되면 예기치 못한 변수가 발생하고.
목표물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동아줄이라도 잡는 심정으로 무작정 손을 뻗고 봤다. 해명은 나중에 하는 거다, 일단 상황이 해결되면 모든 건 다 나중에 하는…….
" 아……! "
" 야, 괜찮아? "
" ○○○ 괜찮냐? "
" 야, 다쳤어? 많이 다쳤어? "
신기한 현상이 일어났다. 보통 드라마에서 사람이 기절하거나 충격을 받으면 하늘 위로 별이 둥글게 돌아가곤 하는데 지금 난 땅바닥에서 별이 요란스럽게도 돌아가고 있었다. 의아한 마음에 고개를 갸우뚱 돌렸다. 그와 함께 시큰해지는 발목의 고통에 미간 사이를 찌푸리며 익숙하지 않은 느낌의 원인으로 고개를 돌렸다. 또 신기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곳에는 놀란 얼굴로 땅바닥에 손을 짚은 채 내 발목을 바라보고 있는 김종대도 있었고, 넘어지던 날 잡아주느라 자기도 같이 넘어진 건지 내 손목을 꼭 잡은 채로 이름을 불러대는 변백현도 보였으며, 마지막으론 나보다 더 놀란 얼굴로 휴대폰을 꼭 쥔 채, 퉁퉁 부어오른 내 발목을 지긋이 감싸 쥐여주고 있는 김종인이 있었다.
평균적이던 두 눈의 크기가 일시적으로 커졌다.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서 익숙하지 않은 대사를 들으니 놀란 가슴이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다. 반사적으로 발목을 뒤로 뺐다. 그러니 느껴지는 고통이 두 배인 거 아니겠냐. 짤막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세 놈들은 부어오른 내 발목만 보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 보건실 선생님 왜 안 와? 전화번호 몰라? 그럼 체육쌤이라도 데려올까? "
" 우리 화장실 간다고 하고 여기 온 건데 체육부르면 어떡하냐, 병신새끼야. "
' 집합! '
" 야, 백현아 체육이 애들 집합한다. "
" 어어, 갈 거야. "
알겠다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던 변백현이 다시 무릎을 굽히고 앉아 내 발목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남자의 낯 뜨거운 시선은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거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 했던 상대에게 훅하고 심장이 뛰었다. 암만 내가 김종인을 좋아한다고 해도 남사친한테 느끼는 설렘은 또 다른 것이었다.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괜찮다고 내 상태를 전했지만, 그런 내 말 따위는 귓구멍으로 쑤셔 박은 건지 여전히 묵직한 느낌이 보건실 주위를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으으, 진짜 미치겠네. 이번엔 아예 손까지 허공 위로 들고 나 괜찮아요를 어필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내 말은 묵사발 말듯 무시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목까지 흔들어대며 나 괜찮아요를 어필했다. 그제야 내 가상한 노력의 빛을 알아주기라도 하는 건지 먼저 보건실 밖으로 걸음을 옮기는 김종대가 보였다. 아, 그래 제발. 김종인이랑 단둘이 있고 싶어서도 아니고 그냥 내가 다 쪽팔리고 내가 다 민망해서 그러는 거니까 제발.
" 둘 다 똑같은곳 다치고 뭐냐, 진짜? "
" 아니, 미친놈아 집합이라며 일단 나가. "
" 아, 나가도 내가 나가지 남자새끼한테 나가라는 말 듣고는 안 나가 시발. "
" ……진짜 미친새끼, "
" 어, 병신새끼. "
딱 나도 바보가 되는 기분이었다. 바보들과 있으니 바보가 되는 기분. 그럼에도 예고 없이 새어 나오는 실소를 참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무장해제인 상태의 김종인을 보는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자그마치 8개월간의 노력 끝에 처음. 고생 끝에 낙이 온다더니, 지금이 딱 그짝이었다. 저도 모르게 괴상한 표정을 지으며 웃고 있으니 심각하게 대화를 주고받던 미친놈과 병신이 나란히 고개를 돌렸다. 아, 진짜 딱 기분 좋게 두근거렸다. 걱정되어서가 아닌, 불안해서가 아닌, 늘 조마조마해서가 아닌 정말 행복한 느낌의 두근거림이었다. 여전히 내 발목 주변을 꾹꾹 눌러주는 김종인의 간지러운 손길도 그대로 느껴졌다. 순간이었지만 김효정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했다. 놈은 이번에도 날 착각하게 만들었다. 저도 다리를 다쳤으면서 굳이 땅바닥에 내려와서까지 내 발목을 감싸 쥐고 있는 그 행동이 착각을 만들었다.
혹시 정말 김종인이 내게 호감이 생겨서 이러는 거 아닐까 하는, 정말 그런 게 아닐까 하는.
" 휴대폰 줘봐, "
" 응? "
" 진짜 내 번호 찍을테니까 달라고. "
아까와는 다른 표정으로 휴대폰을 낚아채는 변백현의 행동에 서늘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급기야 김종인의 눈치까지 보이는 거였다. 상황에 맞지 않게 왜 이렇게 심각하냐 이 말이었다. 내가 저 때문에 다친 거냐, 그냥 난 재수 없게도 김종대 발에 걸려 넘어진 것뿐이었다. 부르튼 목 울대에 진득하게 마른침이 넘어갔다. 그럼에도 우리 사이에 어느 한 단어도 오가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마침내 변백현은 내게 휴대폰을 건네고 느릿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놈이 보건실 밖으로 나갈 때까지도 김종인은 여전히 내 발목을 바라보고 있었다. 맞다, 김종인도 다리를 다쳤다고 했는데……,
" 변백현 진짜 안 좋아하냐? 쟤 나가니까 표정이 딱 바뀌는데? "
" 응? "
" 나랑 있을 땐 계속 정색하고 있다가 백현이 오면 또 웃더니 또 나랑 있을 땐 표정 그렇게 하는데 뭘 안 좋아해, "
" ……. "
" 야, 존나 티 나는 거짓말이다 진짜. "
놈은 날 반대로 알고 있었다. 관심이 없어서 표정이 뭉게지고 굳어진 게 아니라 나름대로의 발연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말하지 않았느냐. 어떻게든 관심 없는 척, 그저 친구인 척 보여야 한다고. 그런 생각만 하다 보니 막상 그 사람의 앞에 서면, 하고 싶던 말도 사라지고 표정 자체가 어두워져 버리는 걸 어쩌냐 이 말이었다. 김종인은 날 몰라도 한참 몰랐다. 저도 짝사랑을 하던 사람이라고 했으면서 날 한참 몰랐다. 괘씸해진 마음에 고개부터 돌리고 봤다. 그게 아니라고, 변백현은 아무 감정이 없으니까 마음대로 웃을 수 있는 거고 넌 반대니까 그럴 수가 없는 거다. 그래서 자꾸만 표정이 굳어지는 거다. 내 진심을 다른 방향으로 착각하는 놈이 그렇게나 미울 수가 없었다. 아, 또 현타가 제대로 오기 시작했다. 턱부분이 자잘하게 흔들리는 게 금방이라도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 선생님 오면 각자 조퇴증 끊고 병원이나 가자, "
" ……. "
" 아, 사실 난 별로 그정도로 아픈 건 아닌데 다음 시간이 화학이거든? 솔직히 빠지라고 있는 과목 아니냐? "
" ……어어, 맞지! 그냥 자라고 있는 거지! "
" ……. "
" ……김종, "
" ……아, 너 행동하는 게 약간 똑같네. "
" 응, 뭐? "
" ……김효정 있잖아, "
" ……. "
" 하는 행동 진짜 똑같다, 걔랑. "
그와 함께 코끝이 시큰해졌다. 곧이어 또렷했던 앞사람도 마구잡이로 흩어졌다. 얼굴은 후끈거렸고, 제 가슴은 살려달라 아우성이었다. 딱 대체품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김효정의 대체품 나. 억지로 입꼬리를 당기고 미소를 띨 수밖에 없었다. 할 수 있는 건 이뿐이었다. 너한테 관심 없는 척과, 아무렇지 않은 척과, 그 말에도 상처받지 않은 척.
시큰거리던 발목을 쥐고만 있던 김종인이 살짝 손을 떼고 시니컬한 표정으로 가만히 날 응시했다. 날 일으킬 최선의 방법을 찾는 모양이었다. 놈은 결국 다시 주저앉아 한 손으로 내 허리춤을 감싸고, 내 손목을 들어 올려 제 목에 감싸 둘렀다. 평소 같았으면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해 야단일 심장이 지금만큼은 고통 속의 몸부림치기에 바빴다. 놈은 참 이상한 사람이었다. 한순간에 내 기분을 저 위로도, 또 저 아래로도 곤두박질치게 만드는 능력이 있었으니까.
" 뺨도 다 부어올랐네. "
" ……. "
" 말로는 이겼다면서 왜 쥐어터지고 왔냐, "
" ……. "
" 기다려 봐, 후시딘 찾아볼게. "
짝사랑하는 그 사람의 생각을 알 길이 없었다. 그가 지금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날 어떻게 보고 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나 혼자만 상처받기 급급하고 나 혼자 위로하기 급급하고 나 혼자 울기에 급급해서 그럴 시간이 없다. 누군가 그랬다. 짝사랑은 기다림의 미학이라고. 난 답했다, 짝사랑은 기다림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세상에서 가장 초라한 저주라고.
짝사랑의 조건 여섯 번째 : 관심 없는 척 하려다 나도 모르게 자꾸만 정색이 나온다, 그는 착각한다. 내가 자기를 싫어하는 거라고.
넌씨눈!!!!!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11.12 11:32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11.14 11:09
이씨싸우고싶냐종인아
김종인씨눈!완전씨눈!
넌씨눈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12.07 23:05
마지막 되게 서글프네요... 초라한 저주라... 걍 내가 확 다 말해주고 싶다...ㅠㅠ 진짜 자꾸 그러면...착각하게 되자너...ㅠㅠ
아 진짜 그게 아니고 반대라고!!!ㅠㅠ
눈치봨ㅋㅋㅌㅋ넌씨눈와....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12.30 18:15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12.31 01:36
여주가 너무 안타까워여ㅠㅠ
진짜 넌씨눈이다 넌씨눈이라는 단어밖에 생각이 안난다ㅠㅠㅠㅠㅠㅠ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1.17 17:36
종인아...너 혹시 넌씨눈..?
조니니 넌씨눈이네여!!흑 그냥 백현이랑 잘됐으면...ㅠㅠㅠ♡
ㅜㅜㅜ 진짜정색하게되는거같아요 ㅠㅠ웃음이안나와요ㅠㅠ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2.16 00:54
이 글 읽으면 내가 다 짝사랑 중인것 같이 느껴진다ㅠㅠㅠ안타깝고 막막 그래요ㅠㅠ
니니야 넌 그냥 씨눈이 아니라 씹씨눈이야
종인아 너도 해봐서 알잖아ㅠㅠㅠㅠㅠㅠㅠㅠ여주마음좀 알아줘ㅠㅠㅠㅠ진짜 짝사랑하면 그 사람앞에서 얼굴굳어지는거 느껴지는데 그 표정을 필수가 없어요..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2.25 21:14
종인아ㅠㅠ아니야ㅠㅠㅠ반대로ㅠㅠ
종인아 널 위해서 다 그런거야 ㅠㅠㅠㅠㅠㅠㅠㅠ
하 ... 종인이 눈치가 그냥 ㅎ
니니...그거아냐...니니...
종인이 눈치 누가 훔쳐갔어??누구야..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6.16 02:06
종인아ㅠㅠㅠㅠ눈치어딨니ㅠㅠㅠㅠ종인이 눈치야 내목소리들리니ㅠㅠㅠㅠㅠ
응아니야...종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