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육의 붕괴를 우려한다.hwp
노무현 정부 시절, 본래 올해부터 실시되기로 되어있던 '7차 개정 교육 과정'에서는 역사가 종래의 사회 교과(교과는 여러 개의 과목을 포함하는 개념입니다)에서 독립되고, 중고등학교 사이의 연계성을 강화한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아울러 한국사와 세계사를 통합하여 '역사'라는 과목으로 결정되었고요.
무슨 말인가 하면, 특히 중학교 과정에서 비역사 전공자가 역사까지 가르치는 일이 많았다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중학교 역사 교육은 전문성이 결여된 채 사실 나열, 암기 위주로 흐를 가능성이 그만큼 높았다는 겁니다. 역사 과목의 독립은 일단 이러한 문제점을 바로잡는다는 데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또한 중학교는 전근대사 중심으로, 한국사와 세계사를 분리(한 책에 한국사 부분과 세계사 부분이 나뉘어 있습니다)를 중2과정에서 가르치고, 대신 중3 때에는 근현대사 부분을 개략적으로 가르치기로 하였고요. 고등학교에서는 역시 한국사와 세계사를 통합한 '역사' 과목을 편성하되, 중학교와는 달리 근현대사가 중심이 되고, 세계사와 한국사를 한 단원 속에 묶어서 통합적으로 서술하는 방식을 취했지요.
이러한 교육 과정의 편성에서 '역사' 과목이 필수 독립 교과로 선정되었던 것이죠.
그래서 고등 역사의 9개 단원 중, 1단원은 중학교 때 중점적으로 학습한 전근대사를 개관적으로 서술하고, 2~9까지 8개 단원은 조선 후기(왜란 이후)에서 현재에 이르는 시기의 근현대사를 중점적으로 서술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2008년 여름 교과서 집필을 시작할 때는 이러한 원칙에 따라 정말 기분좋게 신나게 교과서 집필에 매달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명박 정부가 이른바 미래형 교육 과정이란 것을 성급히 날조하면서 아직 시행도 되지 않은 '7차 개정 교육 과정'을 완전히 바꾸어 버렸다는 겁니다. 대충 아시겠지만, (1)국민 기본 공통 과정을 10학년(고1)에서 9학년(중3)까지로 낮추었고요, (2)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줄여준다는 명분(이거 제가 확신컨대 절대로 수업 부담 못줄여 줍니다) 한 학기에 이수하는 과목을 8개로 줄이고, 국, 영, 수, 역사를 포함한 모든 과목을 선택 과목으로 한다는 것이었죠. 물론 전체 교과(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기타등등)의 수가 줄었기 때문에 역사의 교과 독립도 물건너 갔죠. 다시 사회 교과 속으로 포함되었습니다.
세간에서는 역사가 선택인 것이 말이되느냐고 하지만 국어도 선택이다라는 반론만 있습니다. 역사의 위기였죠. 왜냐면 역사는 학생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과목인지라, 현장에서 선택되지 않을 경우가 많을 것이라는 예측 때문이었죠. 다만 서울대에서 자기 학교 지원 학생은 역사를 반드시 이수해야 된다는 조건을 걸고 나왔기 때문에 일단 역사가 고등학교 현장에서 거의 대부분 선택되리라는 것은 예상이 될 겁니다.
역사에만 국한시켜 말씀드리죠.
원래 사회 교과에서 독립된 역사 과목은 (1)한국사, 세계사가 통합된 '역사'-- 10학년 국민 공통 필수, (2)동아시아사, (3)세계사, (4)한국 문화사 --11~12학년 선택 --> 요렇게 4과목으로 선정되어 있었습니다. 지금7차에서 주로 2, 3학년에서 배우는 한국 근현대사는 (1)의 '역사'로 대체가 되는 것이죠.
그런데 미래형에서는 사회 교과 내에서 지리, 사회는 3과목인데 역사만 4과목일 수 없다는 반론이 제기되어 역사 과목을 한 과목 줄여야 한다고 얘기가 나온 겁니다. 그래서 동아시아사가 없어질 위기에 처했죠.
그런데 갑자기 일본이 과거 반성을 하느니 어쩌니 하면서, 동아시아 삼국의 미래 지향적 발전을 위해 동아시아사가 꼭 필요하다는 주장이 정부 쪽에서 나온 것 같습니다. 그래서 졸지에 없어지게 된 것이 한국 문화사입니다.
한국 문화사가 없어지자 역사학계에서 반발이 있었습니다. 도대체 '한국사'라는 이름이 들어간 과목이 고등학교 과목에 없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것이죠. 이것은 역사 4과목을 관철시키려는 의도였겠지요.
여기에 대한 교육부의 대응이 가관입 겁니다.
한국사와 세계사를 통합하여 서술한 '역사'라는 과목을 '한국사'로 바꾸라는 것이죠. 이 결정이 내려질 때는 '역사' 교과서가 집필 끝내고 검정에 제출된 상태였습니다.
졸지에 과목이 '한국사'로 바뀌다보니, 이거 이러다 전체를 다시 써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었는데,, 문제는 시간이 없었습니다. 꼭 40일 시간이 있었지요. 교육부의 무지막지함은 이 정부와 한치도 다르지 않습니다.
검정 통과된 교과서 6종에 한하며 40일 동안 재집필하라는 것이죠. 다만 시간이 없으니 9개 단원 중 1개 단원이었던 전근대사를 3개 단원으로 늘여 1~3단원을 쓰고, 4~9까지 6개 단원을 근현대사로 쓰라는 것입니다. 말이 40일 이지 인쇄하고 교정보고 하는데 최소한 10일 이상 걸립니다. 개정 지침이 내려오는데도 며칠 걸렸습니다. 결과적으로 다시 집필한 기간은 꼭 20일 정도입니다. 이대로 가면 사실상 집필 포기해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국편에서 교육부 쪽에 제동을 걸었던 모양입니다. 니들 역사가지고 장난하냐? 이렇게 말입니다.
그래서 결정된 것이 전근대사 1개 단원을 2개 단원(1~2단원)으로 늘이고, 현대사 7~9 3개 단원 중 7단원은 건들이지 말고 4. 19혁명 이후의 현대사 8~9 두 단원을 1개 단원(9단원)으로 줄이자고 결정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1, 2, 9 등 3개 단원에 재집필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그때 한 일주일 동안 하루 2~3시간씩 자면서 작업했습니다.)
이번에 아예 역사는 동네북되었습니다. 현대사 완전 축소되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여기에 교과서 파일 올릴 때는 개정 전의 파일도 올리려고 합니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것은 현재의 이 교과서도 2014년 정도까지 밖에는 못쓴다는 것이죠. 전체적인 교육과정을 이 정부가 물러가지 전에 다시 손 볼 모양입니다.
교육과정이란 것이 뭐냐하면요. 교과서 쓸 때 집필의 기준이 됩니다. 뭐뭐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죠. 검정에서 떨어지는 것은 여러 이유가 있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교육 과정이 잘 반영되었는가 하는 것이죠.
그런데 현정부과 역사나 사회 교육과정을 손본다고 했을 때 한 번 상상해 보세요...
그 내용이 주로 어떤 방향으로 갈지 대충 짐작이 가지 않습니까? 현재의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6종들을 보면 7차 근현대사보다 오른쪽으로 많이 갔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지난 교과서(금성 교과서) 파동에 길들여진 결과라고 할 수 있죠.
제가 제일 걱정하는 점은 바로 이것입니다. 여지껏 교과서 쓰느라 고생하고 힘들고 한 것은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교육부가 엉뚱한 삽질을 해댔지만 그래도 나름 최선을 다해서 썼다는 것이죠. 물론 이번에도 교육과정 많이 뒤엉켜 놨습니다. 자율성을 제고한다는 명분 아래, 교육 과정을 구체화하지 않고, 대략적으로 제시한 것이죠. 그냥 보면 뭘쓰라는 건지 잘 모를 정도였고, 앞뒤 안맞는 내용도 있고, 계통성도 떨어지고 그랬습니다. 아마도 금성 교과서도 있었으니 알아서 기라는 뜻이었을 겁니다. 그래도 이것은 나은 편입니다. 왜냐면 나름 재해석해서 서술하는 것이 가능했으니까요.
그런데 다시 교육과정 바뀐다면,, 더우기 정권 바뀌기 전에 확 바꿔 놓고 간다면, 이것은 상황이 다를 수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 이른바 뉴라이트 사관이 대폭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죠. 능히 그러고도 남을만한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일본의 후소샤나 지유사 교과서가 군국주의 침략을 정당화했다고 비난할 자격이 없어질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안되길 바라고 있지만 ... 이 친구들은 누가 뭐라고 해도 말 안 듯고, 쥐새끼처럼 몰래 공작해 놓은 다음 불쑥 발표하여 밀어붙이는 친구들입니다.
이러니 걱정 안될 수 있겠습니까?
역사 왜곡보다 무서운 것은 없습니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수많은 사회적 갈등도 역사에 대한 왜곡과 편견에서 비롯되었음을 오늘날 우리가 직시하지 않는다면
우리 민족, 우리 사회의 밝은 미래는 보장할 수 없습니다.
힘없고 빽없는 사람들도 어깨 펴고 살 수 있는,,
올바른게 노력하는 자가 성공하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역사적 이상은
그냥 일장춘몽이 되어버릴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저를 감싸고 있습니다.
현정부는 적어도 교육 분야에서 명확히 파쇼적입니다.
현재 미디어를 통해 진행되고 있는 현실 왜곡에다가 교육을 통해 자행될 역사 왜곡까지 진행된다면
인간은 목적으로 존중받지 못하고, 한갖 자본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역사 교사로서
이를 막아야 한다는 무거운 사명감을 느끼는 한해가 또 시작되었습니다.
단숨에 쓰다보니 난필이 되었네요.
새해에는 늘 건강하고 행복 가득한 삶을 누리시길 기원합니다.
첫댓글 이랬던 거군요?
정말 가슴이 답답하네요.
아, 현장의 분위기를 알겠내요.
넘 고생 많으셨습니다.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일선 역사 선생님들이라도 이런 사실을 좀 알고 계셔야 하는데,, 제가 몇분들 얘기해 보면 모르기도 모르지만 관심도 별로 없으시더라고요. 이 카페가 다소나마 그런 역할을 해야 하는데...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런 얘기들 모르고 지나갈뻔했네요. 저 스스로 반성이 많이 됩니다.
정말이지 수고 많으셨습니다. 온갖 어려움속에서도 훌륭한 한국사 교과서를 쓰신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역사를 왜곡하는 집단은 어떤 형태로든 꼭 천벌을 받을 겁니다.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에게 우리 역사를 올바르게 가르치는데 더욱 힘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힘이 나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제가 보는 한국사가 이렇게 만들어 진거군요...
아~ 한국 문화사라는 과목이 없어진건 진짜 아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