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부지 104평 경험담>
아주미가 하라는 대로 따르겠소.
김세원 목사
필자는 동북 건재상 김세현 사장의 부인 이성숙의 외삼촌이다. 순복음교회 목사로 봉직하다가 개심하여 원동지회의 장학생으로 삼육대학에서 공부를 하였다. 그때 품성교육을 중시하는 조카사위 부부에게 서울삼육중고등학교를 소개하였다. 전인교육과 지덕체의 삼육교육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그는 학교를 친히 방문하고 학교장을 만난 후, 삼 남매를 서울삼육중고등학교에 전학을 시켰다. 그 후 두 부부가 재림 신앙을 받아들이고 교회에 출석하도록 부단히 노력하였다. 마침내 조카 이성숙이 산 아래 작은 안식일교회에 출석하였고, 안식일학교 순서도 하며 신앙생활을 하였다.
김세현 사장은 폐기종으로 건강이 좋지 않았다. 시멘트와 석회 등 건축자재에서 나오는 먼지 때문이었다. 조카 이성숙은 사무실에 나가며 분망한 사업 때문에 교회 출석을 잘 하지 않았다. 당시에 수원교회를 담임하고 있던 나는 조카사위를 수원교회로 모셔왔다. 바쁜 업무에서 쉬고 요양을 하며 건강을 되찾고, 확실한 재림 신앙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건강 식생활과 하나님을 의지하는 기도 생활을 같이하면서 예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실재(實在)를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예언 연구를 통하여 김 사장은 하나님의 약속을 유일한 소망으로 믿고, 건강도 상당히 회복되어 근처의 용인 자연농원과 용인교회와 민속촌을 관광하였다. 본래 일에만 열중하여 돈을 버는 대로 땅을 사며 축재하는 재미로 살던 그가 믿음의 생활의 한 단면을 보았고, 천연계를 돌아보며 새로운 생애의 한 면을 보게 되었다. 본래 강직하고 정직한 그는 앞으로 신앙생활을 할 것을 결심하였다. 떠나기 전에 전도서 12장 13절의 말씀을 들려주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그는 “나의 마음에 맞는 말이니 이 성경 구절을 나의 좌우명(座右銘)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집으로 돌아가 아내와 자녀들에게 “외삼촌 목사의 가정처럼 앞으로 우리들도 살자”하며, 신실한 신앙생활을 주장했다. 그런 중에 또다시 무리한 업무로 병이 악화되어 위생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게 되었다. 당시 삼육서울병원 원목 김봉호 목사의 성경 공부와 서중함합회장 김동준 목사의 권유로 1980년 1월 16일에 김 사장 부부와 장남 김창훈의 부부까지 모두 함께 삼육서울병원에서 침례를 받았다.
김 사장이 입원 중에 동북 건재상은 부인 이성숙과 직원들이 경영하였다. 간병을 위하여 나의 아내 박영애 사모가 병원 특실에서 김 사장을 돌봐 주었다. 나는 수원교회의 바쁜 목회활동으로 한 주일에 한 번씩 방문하여 말씀과 기도로 확고한 믿음과 하늘의 소망을 가지도록 권면하였다. 우리의 바람은 일가족이 진리 안에서 구원을 받는 것이었으며, 특히 박영애 사모의 간병은 건강 회복과 감화와 감동으로 심령에 변화를 일으키고 가족이 재림 신앙에 굳게 서게 하는 것이었다.
김 사장은 근면하고, 지적이나 성격적으로 분별력이 있고 강직하고 정직한 생활을 하였다. 퇴계원면 주민들은 그의 상도의(商道義⦁상행위를 할 때 지켜야 할 도의)를 확실하게 믿고 거래를 하는 신뢰받는 인물이었다. 재산이 있고 땅 부자임에도 검소하고 없는 사람을 동정할 줄 아는 양심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성경 말씀을 잘 깨닫고 긍정적인 마음이었다.
박영애 사모는 마지막까지 믿음을 지키도록 간병하였으며 수시로 기도를 하여주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물리치기 위해 믿음을 간직하도록 병상 곁에서 458장 찬미를 불러 주었다.
“고요한 바다로 저 천국 향할 때
주 내게 순풍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내 거정 근심을 쉬 없게 하시고
내 주여 잠든 내 영혼을 곧 깨게 합소서.
이 세상 고락 간 주 뜻을 본받고
내 몸이 의지 없을 때 큰 믿음 줍소서.“
김 사장은 고요히 부르는 찬미를 음미하며 눈을 뜨고 천정을 바라보았다. 마치 주님께서 천군 천사들과 공중에 임하는 광경을 바라보듯이 소망이 넘치는 기쁨 가운데 들었다. 찬미가 끝나자 “은배(현 삼육대학교 신학과 교수 김은배 목사) 엄마, 너무 좋은 찬송입니다. 다시 한 번 불러주세요.”라고 부탁하지 않는가? 그 찬미는 자신에게 모든 속세의 근심과 걱정 그리고 죽음의 두려움을 잊어버리게 한다고 하였다. 심령의 안위와 평화를 주는 찬송이라고 하였다.
김 사장은 이제 자신의 육신적 건강 회복은 체념한 채 오로지 영원한 하늘 천국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 가운데 있기를 소망하였다. 이 찬미는 자신의 현실에 알맞고 마음에 감화를 준다고 하면서 다른 찬미보다 이 찬미를 박영애 사모에게 불러주기를 요청하였다.
그는 박영애 사모에게 말하기를 “나는 생전에 하나님께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데 이래도 구원받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하면서 “무엇을 하면 좋겠습니까?” 라고 묻는 것이었다. 박영애 사모는 성경을 찾아 다음 말씀을 똑똑히 읽어주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 되는 자는 …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예물을 즐거이 드릴지니라”(에스라 1:3, 4). 조용히 듣고 있던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속에 무엇인가를 결심한 그에게 박영애 사모는 말하였다. “김 사장이 할 일은 퇴계원교회를 건축할 수 있도록 교회 건축 부지를 헌납하면 아니 되겠습니까?” “아 참, 은배 엄마가 말하는 대로 하면 하나님 앞에 뜻 있는 예물이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당시 퇴계원 역전에 700평의 땅 중에 가장 좋은 구역 104평을 하나님께 헌납하겠다고 약속하였다.
한편 건재상을 경영하고 있던 김 사장 부인 이성숙은 장로교회의 전도팀에 미혹되어, 당시 교세가 좋고 퇴계원에 잘 알려진 장로교회에 나가고 있었다. 김 사장은 한 주일에 한 번씩 찾아간 나를 반겨하면서, 말씀과 기도 속에서 진리에 대한 확신이 굳어지고 처음으로 헌신의 마음을 표명하였다. 주님을 위해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 자신의 처지를 회상하고 참회의 눈물을 흘리곤 하였다. 저 천성을 바라보는 소망 가운데 하나님께 헌신하고 헌납하고 거듭나게 된 것을 마음속으로 기뻐하였다.
다음 날 박영애 사모는 필요한 옷가지를 가지러 수원으로 갔다. 그 사이에 장로교회 목사와 장로들과 집사들이 김 사장 부인의 안내로 병실을 찾았다. 그들은 병상에 있는 김 사장의 손을 붙잡고 반가워하면서 말하였다. “김 사장님, 교회에 땅을 헌납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는 김 사장님의 가정을 충실한 믿음의 가족으로 환영하며, 당신을 영원히 교회의 공로자로 기억하겠습니다.”하고 목사님이 기도한 후에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하고 돌아갔다.
저녁에 박영애 사모가 병실에 들어서자, 김 사장 부인은 박영애 사모에게 말하기를 “아주미, 우리 땅 104평을 장로교회에 기증하기로 했소.”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박영애 사모는 기가 막혀서 “창훈이 아버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어제 퇴계원 안식일 교회 건축을 위해 헌납하기로 약속했지 않습니까? 하시려면 안식일 교회에 헌납해야지 어찌 장로교회입니까? 아이들이 다 삼육학교에서 공부하고 있고, 외삼촌이 안식일 교회 목사이고, 그분의 인도를 받아 창훈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 안식일 교회에서 침례를 받았는데 왜 장로교회입니까?” 강직한 김 사장은 난처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김 사장은 “은배 엄마,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박영애 사모는 “좋습니다. 이제 모든 일은 나에게 맡기싶쇼. 내일 장로교회 목사와 장로와 교인들이 오면 내가 말할 터이니 모든 것을 나에게 맡기싶시오.”하고 말했다. 간호를 하면서 다음 날을 기다렸다. 그날 밤 안식일 교회의 특성을 알려주고, “교단 본부의 재단 사무실에서 실장님이 오셔서 정식으로 헌납 증서를 작성할 것이다.”라고 말해주었다. 김 사장 부인 이성숙은 일시적인 충동에 큰 장로교회에 미혹되었지만, 다시 생각하니 아주미가 말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모르겠소. 아주미가 하라는 대로 따르겠소.”라고 말했다.
다음 날 약속한 시간에 목사와 장로와 집사들이 병실 안에 가득히 서서 땅 헌납 예배와 동시에 법적 조치를 위한 유언과 공증 서류를 가지고 왔다. 이때에 박영애 사모는 그들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고 말하였다. “저는 김세현 사장의 외숙모입니다.”라고 말하였다. 이어서 “저는 지금까지 환자의 간병을 맡아 수고 하였습니다. 특히 김세현 사장은 나와 외삼촌인 안식일교회의 김세원 목사에게 이미 땅을 안식일 교회에 헌납하기로 약속하고 오늘 오후에 본 교단 법인실에서 나와서 법적 인수 절차를 하기로 되었습니다. 그런데 김세현 사장님의 부인께서는 그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귀 교회에 헌납하겠다고 언질을 준 것은 실수요 대단히 미안한 일입니다.”라고 말하였다. “김 사장 가족들은 이미 안식일 교회에서 침례를 받은 교인으로 등록된 신자들이고, 이성숙 사모의 외삼촌은 현직 안식일 교회의 김세원 목사입니다. 이러한 관계로 오늘 본 교단 본부 재단실에서 인수 절차를 위하여 김세현 사장님을 만나기 위해 목사님과 직원들이 오실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그들은 유구무언으로 너무나 큰 실망 가운데 돌아갔다.
그 후 퇴계원교회는 기증 받은 땅에 대형 천막을 세우고, 고 김세현 사장의 큰 사위 도현석 목사가 부임하여 둘째 성전을 건축하였다. 이때에 부친의 사업을 계승한 김창훈 사장과 어머니 이성숙 집사는 김 사장의 유언대로 교회 건축을 위하여 많은 건축 자재를 기쁨으로 헌납하였다.
1996년 정양윤 목사는 셋째 성전의 건축을 위해 그 땅을 4억 2천만원에 팔아서 현재의 교회를 건축하였다. 현재 이성숙 집사와 아들 김창훈과 그의 부인 윤명순 집사 일가족은 청량리교회에 열심히 출석하며 믿음 생활을 충실히 하고 있다. 고 김세현 사장의 큰 사위 도현석 목사는 삼육대학교 신학과 교수로 사모 김명순과 함께 대학교회에서 충실한 믿음생활을 하고 있다. 둘째 딸 김명화도 미국에서 믿음 안에 행복하게 살고 있다.
나 원로목사 김세원과 사모 박영애는 그 당시의 복잡하고 어려웠던 이야기를 대강 간략하게 기록하여 퇴계원 교회사에 기록으로 남기려고 이 원고를 보냅니다. 현재 퇴계원교회 머릿돌에 고 김세현 사장의 기념비가 새겨져 있다. 고 김세현 사장이 병상에서 소망하던 믿음의 기도가 자녀 대에서 성취되었다. (사진 위탁기념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