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죽청마을(上竹靑, 웃대포리)》
●지명유래
죽청리(竹靑里) 의 지명은 죽청(竹靑) 마을의 이름을 취하여 이름하였다. 죽청리는 하죽청마을, 상죽청마을 등 2개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죽청마을의 뜻은 예전에 마을 주위에 시누대가 많이 자라고 있어 이를 보고 대포리 마을이라 하였는데 이를 한자로 대죽자를 취하여 죽청리라 하였다고 전한다.
상죽청 마을이란 곧 대포리 마을이 커지자 대포리 마을중 윗쪽에 위치하므로 웃대포리 또는 상죽청이라 하였다.
1789년 호구총수에는 능주목(綾州牧) 북면(北面) 죽청리(竹靑里) 로 기록되어 있으며, 1912년 지방 행정구역 명칭 일람에는 능주군(綾州郡) 오도면(吾道面) 죽청리(竹靑里)로 기록되어 있고, 1913년에는 화순군(和順郡) 오도면 죽청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대곡면, 오도면, 화남면을 합하여 화순군 도곡면으로 개편하면서 화순군 도곡면 죽청리(竹靑里) (죽청리) 에 편입되었다.
현재 죽청2리이며 2개 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산물(쌀, 보리), 특산물(참외, 메론), 주 소득원(쌀, 보리, 참외, 메론)
●성씨 : 광산 李(26), 광산 金(1), 전주 李(1)
●마을형성
상죽청 마을은 동쪽으로는 안산, 자산들(잣들), 서쪽으로는 주내들, 웃대포리가 있으며 남쪽으로는 건넌들, 양연보가 있고 북쪽으로는 뒤까끔이 있다.
마을의 방향은 남동쪽을 향하고 있다.
고려말에 상곡 죽청제 저수지 자리에 양씨, 허씨, 김씨, 이씨가 거주하였다고 구전되고 있다.
1589년경 광산이씨 李大立(1579~1636) 이 기축사화를 피하여 남평에서 거주하다 입향하였다.
1650년경 국가의 명으로 여씨, 김씨, 이씨가 현재의 마을터로 이거 입향하였다고 전한다.
1970년경 전주이씨 이영춘(1934~ ) 이 영암에서 거주하다가 입향하였다.
이전에 광산김씨가 거주하다가 이거하였다.
동쪽으로는 능주면, 서쪽으로는 미곡리 구사마을, 남쪽으로는 하죽청 마을, 북쪽으로는 화순읍 주도리가 있다.
●유물. 유적
죽산사(竹山祠, 1946년 건립, 李先齊, 李亨元, 李達善, 李公仁, 李伯虎 등 음 9. 20 향사), 죽산강당(竹山講堂), 봉명재(鳳鳴齋)
●민속놀이 . 전설. 민담
⊙원래 마을터는 죽청제 저수지 자리에 있었는데 1650년경에 지금의 마을터로 이거하였다.
⊙예로부터 시누대가 주변에 자라고 있어 이를 이용, 능주관아에 사용할 화살을 만들었다.
⊙일본인 자산이와 설정이가 자산보와 설정보를 막아 밭농사 위주의 생활을 논농사 위주로 전환시켰다고 한다.
⊙아홉바우 : 비봉포란 형국중 봉이 알을 품고 있는 형세라 말하는데 아홉개의 바위를 봉의 알이라 부른다. 전설에 의하면 언젠가는 이곳에서 고관 9명이 나올 것이라 하여 마을 주민간 교육열이 대단히 높다.
⊙농악 : 정월 대보름이면 시암굿, 마당볼비를 하였다. 상쇠로는 이천석이 잘 하였다.
⊙강강수월래 : 정월 대보름 또는 추석날 밤에 부녀자들이 하였다.
⊙줄다리기 : 정월 대보름이면 남여로 편을 나누어 줄다리기를 하였다.
⊙기우제 : 가뭄이 극심하면 용봉(구랭이산)에서 기우제를 지냈다.
●풍수지리 및 주요지명
⊙비봉포란 형국 : 봉황이 날으면서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라 한다.
⊙잠발치 : 누에의 발모습을 닮았다고 한다.
⊙화다실 : 꽃이 만발하여 이렇게 부른다고 전한다.
⊙잠두등 : 누에 머리를 닮았다고 이렇게 부른다.
⊙설정들 : 설정이라는 일본인에 의해 개간하였다고 하여 이렇게 부른다.
⊙자산들 : 자산이라는 일본인에 의해 개간하였다고 하여 이렇게 부른다.
⊙짐대터 : 마을입구에 있는데 예전에 긴 나무를 세우고 그위에 나무로 만든 오리를 올려 놓았다.
⊙둔전들 : 이전에 군사들이 주둔하면서 갈던 들이라 이렇게 부른다.
⊙종괘산 : 마을 북서쪽에 있는 산이다.
⊙산, 등 : 안산, 매봉산, 잠발치, 종괘산, 잠두봉, 산부레기산, 포밭등, 용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