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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강의: 마리아의 동정성
1. 교리의 중요성
처음부터 마리아의 신적 모성은 동정적 모성으로 받아들여졌다: 예수님의 인간적 기원은 인간 아버지의 개입없이 실현되었다. 이러한 기원에서 하느님의 무상의 선물과 첫 번째 창조에 견줄 수 있는 구원의 역사 안에서의 새로운 시작이 드러난다.
다른 한 편, 동정성은 하느님을 향한 마리아의 개방의 육체적인 표현이다. 교회는 마리아를 분만 이전에, 분만 중에 그리고 분만 후에 동정녀인 “평생 동정녀”로 고백한다. 조직신학적인 설명은 이러한 스케마를 따를 것이다.
마리아의 동정성에 대한 교회의 신앙은 신적 모성의 명확한 정식보다 더 오래된 것이다. 테오토코스 용어가 4세기에 놓여지는 데 반해, “동정녀”라는 이름은 이미 2세기에 마리아에게서 발견된다.
고대 교회에서 마리아의 동정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신성의 표식이었다.
2. 분만 이전의 동정성
2.1. 성경의 언급들
우리는 예수님의 유년시절의 이야기에서 예수님의 동정적 기원에 관한 성경의 직접적인 언급을 만난다 (마태 1, 루카 1). 이 두 가지 경우는 이사 7,14의 예언에로 돌아간다: 동정녀가 잉태하고 낳으리라 (마태오에서는 문자적으로, 루카에서는 암시적으로). 논쟁을 불러일으킨 증언은 요한 1,13의 것이다: 그리스도론적인 번역은 예수님의 동정적 탄생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서 요한은 사람들이 요셉의 부성에 대해 말할 때 신중하게 이러한 견해를 수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요한 1,45.49-51; 6,42-47). 바오로 사도는 유일하게 어머니에 대해서 말한다 (“여인으로부터 난”: 갈라 4,4).
마르코는 예수님을 “마리아의 아들”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특별한 표식은 주님의 동정적 기원에 대한 암시로 볼 수 있다.
2.2. 고대의 반대 (히브리인들, 이교인들)
성경의 증언은 처음부터 히브리적 그리고 이교적 반대와 만나게 된다.
1) 히브리인 트리폰 (성 유스티노와 토론하는)에 따르면, 한 신이 한 인간 여인과 함께 한 아들을 낳는 몇몇 이교 신화에 대한 의존이 그 안에 있을 것이라는 사실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동정적 기원에 관한 교리를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다.
트리폰이 생각하기를 «너희에게 있어서는 예수님에 대해 사람들로부터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언급하는 것이 그리고 율법에 따른 그의 완전한 처신으로 그리스도로 불렸다고 선언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히브리인들은 이사 7,14이 예수님의 동정적 기원과 관계있는 것이라는 것을 부정한다. 2세기에 판테라라는 이름의 한 군인에 의해 아들을 잉태했을 것이기 때문에 마리아는 요셉으로부터 내쫓김을 당했을 것이라는 히브리적 견해가 퍼져 있었다 (판테라 Pántera는 파르테노스 parthénos (동정녀)라는 용어를 잘못 발음한 것으로 보인다).
2) 마리아의 동정성은 이교 세계로부터도 조롱을 받았다. 철학자 첼소 (180년경)는 기꺼이 히브리인들의 중상을 받아들였고, 포르피리오 (3세기)는 태어나기 위하여, 포대기에 놓여지기 위하여 그리고 더럽혀지기 위하여 한 동정녀의 태 안에 들어가는 것은 하느님께 부당하다고 간주했다. 첼소는 그리스 신화들과 예수님의 동정적 탄생을 비교하는 히브리적 견해도 받아들였다.
2.3. 현대의 비판
고대의 반대들은 현대의 비판 안에서도 재발견된다.
(1) 동정적 탄생의 부정은 슈트라우스 David Friedrich Strauß로부터 시작해서 자유주의적 프로테스탄티즘에서 익숙하게 되었다. 성경의 이야기들은 생각을, 즉 역사적 사실에 반대되는 예수님의 초자연적인 기원을 역사화한 것일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건은 기적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로부터 이미 불가능할 것이다. 더 나아가 예수님의 신성을 설명하기 위하여 동정적 탄생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마르코, 바오로 그리고 요한은 동정적 탄생에 대해 침묵한다. 동정적 탄생의 사고는 헬레니즘으로부터 그리고 이사 7,14의 영향으로부터 올 것이다.
우리는 동정적 탄생에 관한 마르코와 바오로의 “침묵”이라는 주제를 이미 숙고했다. 이들은 예수님의 공생활 (마르코)과 주님의 죽음과 부활 (바오로)을 소개하려는 그들의 의도를 벗어나기 때문에 동정적 탄생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요한 안에서처럼 그들 안에서도 동정적 잉태에 대한 암시들을 발견할 수 있다. 어쨌든 바오로와 마르코는 요셉의 생물학적인 부성을 명시하지 않고, 유일하게 마리아에 의한 예수님의 기원을 강조한다.
(2) 하르낙 Adolf von Harnack은 동정적 탄생에 대한 신앙의 기원이 70인역에 있는 이사 7,14의 그리스도교적 독서일 것이라고 간주했다. 슈트라우스와는 다르게 하르낙은 이교 신화로부터의 기원을 배제한다. 반면에 동시대의 헤브라이즘 안에서 이사 7,14의 해석 안에서 기원을 찾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한 적용은 마태오, 루카와 함께 발생할 것이다.
예수의 동정적 탄생에 관한 이미 존재하는 메시지를 받아들이기 위하여, 신약에서 일어나는 것을 준비하는 구약에로 거슬러 올라간다. 만일 역사적인 메시지가 없었다면, 예수의 신성 때문에 히브리인들 앞에 이미 존재했던 어려움을 증가시키는 것은 역효과였을 것이다.
(3) 예수님의 동정적 탄생에 관한 신약 성경의 메시지를 설명하기 위하여 자유주의 문학은 보다 다양한 가정들을 제안했다; 확실하게 배제된 유일한 “가정”은 역사적 진실의 가정이었다. 바오로 H.E.G. Paulus에 따르면, 누군가 마리아의 집에 들어왔을 것이고, 그녀를 어머니가 되게 했을 것이다; 마리아는 그를 가브리엘 대천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것은 다소 이상하다. 왜냐하면 고대 그리스도교 사상의 적대자들의 책망이 이렇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교 사상 자체 안에서도 진실하지 못하게 여겨진 신화를 채택한 것이다. 트리폰처럼 군켈 Herman Gunkel (1903)은 인간 여인과 신들의 육적인 결합에 관한 그리스 신화의 영향에 대해 생각했다.
마이어 Eduard Meyer는 복음들에 관한 주석에서, 마태오와 루카에 따르면 마리아가 임신하도록 신성 자체가 그녀와 함께 결합되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러한 이야기는 한 신과 한 인간 여인의 아들로 간주된 영웅들에 관한 이야기에서 그 예를 만날 것이다.
이러한 가정들은 자유주의적 환경 안에서도 충분한 반대를 만났다. 더 나아가서 성령은 예수의 아버지가 아니라, 창세 1,2 (루카 1,35)에 있는 세계의 창조와 비슷한 창조적 행위를 일으킨다. 신화가 결합에 대해 생각하는데 반해, 복음의 이야기는 성령의 창조적 행위를 가리킨다.
(4) 디벨리우스 Martin Dibelius에 의해 발전된 (1932) 이집트 신화의 이론은 보다 효력을 지녔다. 디벨리우스에 따르면, 필로네와 바오로는 신랑의 배제와 함께 한 아들의 탄생에 관한 성령의 영향을 알았을 것이다. 이것이 갈라티아서 (갈라 4,23-31)에 언급된 것일 것이다.
갈라티아서에서는 여종의 아들이 자유의 여인의 아들에 대립되고, 이것과 함께 아브라함의 육체적인 부성이 “거의” 부정될 것이다. 이 경우에는 “신화”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이 경우에는 육체적인 결합의 문제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론의 주요한 입증으로서 저자는 플루타르코 Plutarco (그리스 역사가, †120)의 본문을 언급했다: 이집트 교리에 따르면, «신의 영이 한 여인 안에서 많은 자식을 낳기 위하여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한 남자는 어떠한 육체적 결합도, 어떠한 교환도 여신과 가질 수 없다».
디벨리우스에 따르면, 우리는 여기서 한 신의 영 (pneûma)을 통한 영적인 탄생의 사고를 만날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헤브라이즘이 항상 아브라함을 이사악의 육체적인 아버지로 생각했다는 사실과 충돌한다.
(5) 캄펜하우젠 Hans Urs von Campenhausen은 극복의 이론을 제안한다: 구약의 여인들과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인 엘리사벳의 불임을 제거하기 위한 하느님의 행위를 보게 된다.
보다 더 예수님에게 속한다고 여길 수 있도록 구약의 예를 능가하는 동정적 탄생이 고안되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루카가 유년시절의 역사의 “재료”를 고안해 내지 않았고, 근본적인 언급들 자체는 마태오에 의해서도 보고되었다는 어려움에 도달한다.
(6) 에설버트 스타우퍼 Ethelbert Stauffer (1957)는 호교론적 이론을 제안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비합법적인 아들이라는 히브리적 고소로부터 예수님을 보호하기 위해 동정적 탄생을 만들었을 것이다.
(7) 동정적 탄생에 대해 반대하는 생물학적 논제는 많은 경우에 단성생식은 (일부 무척추 동물과 하등 식물에서 발생하는 것처럼) 마리아가 여인으로서 XX 성염색체를 놓기 때문에 (남성으로서 XY가 아닌) 딸을 낳아야만 했을 것이라는 사실에 의해 지지된다.
이러한 추정상의 학문적 논증은 예수님의 동정적 탄생이 생물학으로부터 연역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라, 하느님의 개입에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을 망각한다. 예수님의 동정적 탄생에 대한 신약성경의 메시지를 합리주의적인 방법으로 설명하기 위한 본문들은 서로 다르다.
교회의 가르침에 반대되는 많은 저자들은 복음에 현존하는 이 메시지의 기원을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60년대부터 시작해서 합리주의적인 이론들은 가톨릭 교회의 내부에서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1966년의 “네델란드 교리서”는 “동정녀”에 대해 말하는 것을 피하고, 이 책의 저자들 중의 한 명은 (Piet Schoonenberg) 마리아의 동정성이 (무염시태와 승천과는 다르게) 정의된 신앙에 대한 교의가 아닐 것이라고 간주한다. 이 경우에 분명하게 교의가 이미 일상적인 교도권과 함께, 특히 신경과 함께 선포되었다는 것이 망각된다.
2.4. 분만 이전의 동정성의 교의적 특징
탄생 이전의 동정성의 교의적 특징은 2세기부터 증언된 신경에 의해 이미 분명하다. 처음부터 «교회는 예수님이 성령의 힘만을 통해서 동정녀 마리아의 태중에 잉태되었다고 고백했고, 이 사건의 육체적인 측면도 언급했다: 예수님은 “성령을 통해서, 씨 없이” [DH 503, 649년의 라테란 공의회] 잉태되었다. 동정적 잉태 안에서 교부들은 우리와 같은 인간성 안으로 오신 정말로 하느님 아들의 문제라는 표징을 인지한다».
틀림없이 이 진리의 교의적 지위는 천상적 가톨릭 신앙 (=하느님의 계시와 교회 결정의 신조: de fide divina et catholica)에 관한 것이다. 이미 이레네오는 강조한다: 예수님을 요셉의 아들로 (그리고 동정적 잉태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고) 간주하는 이들은 하느님 나라로부터 스스로를 제외한다.
오늘날에도 교회는 예수님의 동정적 잉태의 진리를 옹호한다.
2.5. 예수님의 동정적 기원의 신학적 의미
바로 오늘날 동정적 탄생의 의미를 강조하는 것은 중요하다.
(1) «마리아의 동정성은 육화에서 하느님의 절대적인 주도권을 나타낸다».
(2) 더 나아가서 동정적 탄생은 구원의 역사에서 새로운 시작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새로운 창조를 시작하는 새 아담이기 때문에 동정녀 마리아의 태중에서 성령에 의하여 잉태되었다...».
(3) 새로운 탄생으로서의 예수님의 기원은 세례 안에서 하느님의 아들됨의 선물을 준비한다. «새 아담인 예수님은 자신의 동정적 잉태와 함께 신앙을 통해 성령 안에서 입양된 자녀들의 새로운 탄생을 시작한다».
(4) 동정적 잉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한다. 마리아의 동정성은 «예수님이 아버지로 하느님 외에는 가지지 않는다 (참조. 루카 2,48-49)»는 것을 나타낸다. 이러한 관계는 하느님 아버지의 품위가 요셉에게 건너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적합하다”.
(5) 앞에 지적된 네 가지 동기들이 신적인 부분에 의한 의미를 강조하는 데 반해, 마리아에 의한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필요하다. 마리아의 동정성은 육체적인 구성적 요소를 넘어서 하느님께의 완전한 증여를 함축한다.
«마리아의 동정성은 어떠한 의심으로도 변질되지 않았던 그녀의 신앙의 표징이고 하느님의 뜻에의 완전한 맡김의 표징이기 때문에 마리아는 동정녀이다».
이러한 전망 앞에서 마리아의 동정성은 결혼한 이들과 이미 교부들 시대에 “동정녀”로 묘사되는 온 교회를 위한 모범도 된다.
3. 분만 중의 동정성
3.1. 초기의 교부들의 언급
예수님의 탄생이 어머니의 동정성을 파괴하지 않는다. 이러한 확신은 2세기에 다양한 외경 작품들 안에서 드러난다 (야고보 원복음에서처럼). 첫 번째 죄의 결과로 보여진 분만의 고통들도 배제된다.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에 따르면, «마리아의 동정성과 그의 분만» (그리고 주님의 죽음)은 «하느님의 침묵 안에서 완성된 큰 소리로 부르짖는 세 가지 신비들»이다.
«마리아의 분만에 관해서 말하자면, 이냐시오가 세 가지 신비들에 대해 말하기 때문에 그것은 동정적 잉태 안에서 풀려 질 수 없다. 그것이 동정적이라고 명확하게 이야기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표현은 신비스런 사건의 문제이기 때문에 함축된다».
«고통을 야기하기 이전에 낳았다; 고통이 그녀에게 오기 이전에 사내아이를 낳았다» (이사 66,7). 이레네오가 이것을 주석하기를, «이 말씀들은 갑작스럽고 예견되지 못한 사건으로서 동정녀에 의한 분만을 가리킨다». 여기서도 분만 중의 동정성에로 거슬러 올라감이 암시된 것으로 보인다. 잉태든 분만이든 “동정녀”에게 부여되었다는 사실이 교부들에 의해서 종종 주목되었고 동정적 분만에 관한 믿음이 견지되었다.
창세 3,16과 이사 7,14을 넘어서 (그리고 이사 66,7의 적용을 넘어서) 루카 2,7도 주목할 수 있게 된다: 포대기에 아기 예수를 감싸고 있는 분은, 그리고 그를 구유에 눕힌 분은 마리아 자신이었다.
3.2. 성경의 언급들?
약 20년 전까지만 해도 분만 중의 동정성이 신약성경에서 직접적으로 증언되었다고 여겨지지 않았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전망이 가능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몇몇의 최근의 설명들이 존재한다.
1978년부터 이냐시오 드 라 포테리 Ignace de la Potterie는 요한 1,13의 단수로의 번역에서 그리고 루카 1,35에서 이미 동정적 분만을 규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피로부터» 난 것이 아니라는 표현 (요한 1,13)은 제의적 불결함의 원인으로 간주된 (레위 12,5.7; 에제 16,6.9) 피 흘림 없이 분만되었음을 의미할 것이다.
이어서 드 라 포테리 De la Potterie는 루카 1,35을 이렇게 읽는다: «거룩하게 나실 분은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이것은 교부들의 주석 안에 이미 존재한다. 예를 들면 예루살렘의 치릴로를 들 수 있다). 반면에 대개는 이렇게 번역한다. «그러므로 나실 분은 거룩할 것이며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3.3. 신앙 고백을 향한 여정
2세기 말에 마리아의 동정 분만에 관한 확신은 이미 충분히 퍼져 있었지만 아직 일반적으로 지지되지는 않았다.
떼르뚤리아노는 마리아가 분만 중에 동정적 완전무결함을 잃었다고 생각한다: «남자에 대해서는 동정녀였다; 그러나 분만에 대해서는 아니다». 영지주의자들에 따르면, 예수님은 천상적 육체를 가졌을 것이고, 관을 통과하는 것처럼 마리아를 통하여 지나갔을 것이다. 떼르뚤리아노는 이 영지주의자들을 반대로 이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215년 이전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리아가 임산부였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일부는» (야고보 원복음처럼) 마리아가 분만 후에도 동정녀로 있었다고 언급한다는 것을 지지한다; 클레멘스 자신은 원복음의 소식을 받아들인다. 오리게네스도 외경 앞에서는 보다 더 회의적일지라도 분만 중의 동정성을 지지한다.
4세기에 우리는 온 교회 안에서 분만 동안에도 마리아의 동정성에 관한 믿음을 발견한다. 에피파니오와 아타나시오 안에서 처음으로 “평생 동정녀 (semper vergine) aei-parthénos” 라는 용어가 나타난다. 하지만 교회의 입장은 후에 분만 중의 동정성의 부정에 대한 결정적인 형식을 받아들였다. 환속한 수도사인 죠비니아노는 그러한 진리는 마니교의 교리라고 주장했고, 떼르뚤리아노에 의해 언급된 것 (남자에 대해서는 동정녀이지만, 분만에서는 동정녀가 아니다.)과 비슷한 하나의 정식을 재개했다.
(385년 쯤) 이러한 부정에 대한 반대로 당대의 위대한 신학자들이, 특히 암브로시오, 예로니모 그리고 아우구스티노가 토론했다. 성 암브로시오에 의해 준비되고 로마에서 열린 시노드에 의해 선행된 393년의 밀라노 시노드는 신경을 가리키면서 죠비니아노의 가르침을 거부했다: ex Maria Virgine (동정녀 마리아로부터) 라는 정식은 동정 분만도 포함한다; 이 해석은 후에 일반적이 된다. 성경의 언급들로서 이사 7,14 (동정녀가 분만한다)과 루카 2,7 (마리아 자신이 아기의 포대기를 준비한다)이 지적된다. 더 나아가서 동정 분만의 가능성을 설명하기 위하여 성경의 다른 유비들이 지적된다: 특히 닫힌 문으로 성전으로부터 나온 하느님의 영광 (에제 44,2: 암브로시오, 예로니모) 그리고 닫힌 문으로 사도들의 집에 부활한 예수님의 들어옴 (요한 20,26: 아우구스티노). 1년 전인 392년에 카푸아에서 열린 시노드는 이미 세르디카의 주교인 보노소를 반대로 향해졌다. 보노소는 분만 후에 마리아의 동정성을 부정했었다.
교도권의 이어지는 개입들 사이에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인 플라비아노에게 보낸 레오 대 교황의 편지를 명백하게 인식하는 칼체톤 공의회 (451)가 언급되어야 한다. 거기에서 교황은 명확하게 분만 중의 동정성도 고백한다.
우리는 교황 마르티노 1세에 의해 소집된 649년의 라테란 시노드에서 분만 중의 동정성에 대한 특별한 언급과 함께 마리아의 영원한 동정성의 장엄한 정의를 만난다: «마리아가 시간의 끝에 그리고 참으로 씨 없이 성령에 의해 잉태했고 부패없이 모든 시간 이전에 하느님 성부로부터 태어났던 말씀 자체이신 하느님을 낳았기 때문에, 누군가가 거룩한 교부들을 따라서 고유한 의미로 그리고 진리에 따라서 거룩한 평생 동정녀이시며, 흠 없으신 마리아를 하느님을 낳으신 분으로 고백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분만 후에도 그녀의 동정성을 유지했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는다면 단죄받는다» (DH 503).
마르티노 1세는 시노드의 훈화에서 파란의 테오도로 Teodoro di Pharan를 반대한다. 테오도로에 따르면, 주님은 어머니의 자궁으로부터 «비육체적인 방식으로» 나왔거나 또는 물 위를 겉꾸밈으로만 걸었을 것이다. 그래서 교황은 동정 탄생의 가현주의적 해석을 거부한다; 본성의 이해를 뛰어넘는 신비로운 방식으로 발생할지라도 참된 육체적 실재 (그러므로 참된 분만)이다. 649년의 교의적 정의는 주목할 만하다. 왜냐하면 예수의 인간성의 가현주의적 무가치화를 반대로 고유한 동정 탄생의 기적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3.4. 현대에서의 토의
1) 종교 개혁자들은 아직 마리아의 영원한 동정성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원칙들 때문에 (오직 그리스도만으로 solus Christus, 오직 성경만으로 sola Scriptura) 마리아의 모습은 중요성이 감소했다.
2) 교회헌장 Lumen gentium에 따르면, 신자들은 «“무엇보다도 우리의 하느님이시며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신 영광스럽고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의” 기념을 공경하도록 초대되었다» (LG 52). 예수님은 그의 탄생으로 «그녀의 (마리아의) 동정적 완전무결함을 감소시킨 것이 아니라 성별했다» (LG 57).
3) 가톨릭 교회 교리서도 명확하게 분만 중의 동정성을 지적한다: «동정적 모성에 관한 신앙의 심화는 교회로 하여금 인간이 되신 하느님의 아드님의 분만 중에도 마리아의 실질적이고 영원한 동정성을 고백하도록 이끌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499).
4) 교회 교도권의 분명한 언급들에도 불구하고 교의의 내용을 남몰래 부정하는 논쟁들과 해석들이 오늘날 없지 않다. 앨버트 미테레 Albert Mittere에 따르면, 분만 중의 동정성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나 이 진리는 처녀막의 지속과 또는 분만의 고통의 없음과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이다.
분만은 다른 모든 탄생들과 같았을 것이다. 분만 중의 동정성은 분만 이전의 동정성에로 축소되었다. 1960년에 성청은 미테레를 비난했다.
5) 1960년에 많은 신학자들이 이 주제에 관한 입장을 취했다. 이들 중에 칼 라너가 있다. 그는 분만 이전의 동정성으로부터 분만 중의 동정성을 구별하지 않는 미테레의 본문을 비판한다. 잉태뿐만 아니라 탄생까지도 마리아의 동정적 모성에 상응했다는 것을 지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처녀막 지속과 고통으로부터의 자유를 지지하는 것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탐욕으로부터 자유로운 마리아가 고통이 그의 삶의 일부를 이루었기에 분만의 고통을 긍정적으로 통합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6) 요한 바오로 2세는 1992년에 카푸아에서 행해진 훈화에서 상하지 않은 동정녀로부터 ex intacta Virgine 그리스도의 탄생을 상하지 않은 무덤으로부터의 ex intacto sepulcro 부활과 비유하면서 특별한 명확함을 지니고서 마리아의 동정적 순결함을 강하게 강조한다.
3.5. 마리아론 전체와의 관계
교의를 이해하기 위하여 그것을 마리아에 관한 근본적인 특성들과 연결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1) 마리아에 관한 근본적 특성들 중에 모성과 동정성은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 물리적 사건들의 문제가 아니라 영적 태도에 의해 견지된 육체적 실재의 문제이다: 마음 안에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 (모성)과 하느님의 창조적 주도권에 자신을 개방하는 것 (동정성).
동정녀라는 것은 마리아의 개인적인 특성을 이룬다. 마리아는 «교회가 그의 신앙 안에서 영적으로 실현하는 것, 즉 다산성 안에서의 동정성을 육체적으로 실현한다... 그의 물리적인 완전무결함을 부정하는 것은 그의 표징 안에서 교회의 신앙에 타격을 가하는 것이 될 것이고, ... 육의 실재 안에서 드러난 상징인 부패하지 않은 동정녀가 이콘인 부패하지 않은 이 신앙에 타격을 가하는 것이 될 것이다».
로랑탱 Laurentin은 예수님의 동정적 탄생이 성자의 영원한 기원과 그리고 믿는 이의 영혼 안에 성자의 시간적인 도착과 관계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말씀의 세 번의 탄생이» 서로 연결되었다: «영원으로부터 아버지로부터의 탄생, 시간 안에서 동정녀 마리아로부터의 탄생, 신앙과 세례를 통한 모든 그리스도인의 영혼 안에의 탄생». 더 나아가서
2) 동정적 탄생은 무염시태와의 관계를 나타낸다. 마리아를 원죄로부터 면제시킨 예방적인 은총은 마찬가지로 마리아를 그녀의 개인적인 주요한 결과들로부터 자유롭게 한다: 영혼 안에서만이 아니라 육체 안에서도.
3) 마리아의 승천과의 관계에 대해 비오 12세는 지극히 관대하신 하느님 Munificentissimus Deus (1950) 안에서 다마스쿠스의 요한을 인용한다: «분만 중에 그녀의 동정성을 상처입히지 않고 보존했었던 분이 죽음 후에 어떠한 부패도 없이 그녀의 몸을 보존했으리라는 것이 필요했다».
4. 분만 후의 동정성
분만 후의 동정성은 신약성경에 직접적으로 없다. 오히려 성경의 일부의 징후들로부터 시작하는, 특히 구원 계획을 암시하는 전체적인 조망으로부터 시작하는 결과이다.
성경의 토의는,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단락에서 예수님의 “형제들”과 “자매들”이라고 여러 번 언급되었던 사실들로부터 출발한다: «그는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이고 그의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과 유다가 아닌가? 그리고 그의 누이들은 모두 우리 가운데 살지 않는가?» (마태 13,55).
예수님의 “형제들”을 확인하기 위해서 세 가지 해결책이 제시되었다:
1) 마리아의 다른 아들들의 문제이다;
2) 첫 번째 혼인에 의한 요셉의 아들들이다;
3) 예수의 사촌들이다.
오늘날 프로테스탄트 신학은 (종교개혁자들과는 다르게) 거의 항상 예수님의 “형제들”을 마리아의 다른 아들들로 해석한다. 이러한 설명은 고대에서는 떼르뚤리아노와 엘비디오 Elvidio (380)에 의해 제안되었다. “형제들”에 대한 언급을 이해하기 위하여, 히브리어 (그리고 아람어)는 “사촌들”을 나타내기 위한 특별한 단어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
가문의 모든 구성원들을 보다 폭넓게 나타내기 위하여 ah, “형제”라는 말이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아델포이 adelphoi라는 용어는 샘어로부터의 번역이다.
몇 개의 예로:
- «우리는 형제다», 아브라함이 그의 조카 롯에게 이야기한다 (창세 13,8; 참조. 창세 14,14.16).
야곱은 그의 삼촌 라반의 “형제”라고 이야기 된다 (창세 29,12). 1역대 23,21에서 키스의 아들들은 엘아자르의 딸들과 결혼하고, 키스의 아들들은 엘아자르의 딸들을 “형제들”이라고 불렀다; 여기서는 사촌의 문제이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의 “형제들”은 마리아의 아들이라고 (그리고 요셉의 아들이라고도) 전혀 불리지 않았다. 위에 인용된 마태오의 단락에서 «그의 모든 누이들» (마태 13,56)이 이야기된다. 이미 예로니모는 주목한다: «군중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모든 것은 이야기되지 않는다». 아마도 한 가족보다 더 많은 한 그룹의 문제이다. 반면에 마르 6,3에서 예수님은 한정적인 관사와 함께 마리아의 아들로 지시된다.
예수님이 “맏아들”이라는 지적이 있을 수도 있는 형제들에 관한 무엇을 함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반대로 마르 3,21.31-35과 요한 7,2-5에서 “형제들”은 지배적인 방식 안에서 처신했고, 그것은 고대 동방에서는 장자에 대한 작은 형제들에 의해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통해서 복음 안에서 마리아의 다른 아들들에 대해 이야기 된다는 이론들에 이의를 제기하기 위해 중요하다.
예수님이 참으로 자신의 형제들을 가졌었다면, 그가 왜 십자가 아래에 있는 그의 어머니를 사도 요한에게 맡겼는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요한 19,26). 네 형제들의 이름들이 지적된다: 야고보, 요세, 유다 그리고 시몬 (마르 6,3; 마태 13,55; 요세 대신에 “요셉”).
야고보는 부활한 그리스도와의 만남의 증인들의 목록에 나타나고 (1코린 15,7), 예루살렘 교회의 대표로서 보다 늦게 나타난다 (갈라 1,19; 2,9). 마르코에 따르면,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라는 이름의 여인은 십자가 아래에 있었다 (마르 15,40).
이 마리아가 예수의 어머니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자녀들을 통해서 구별된다: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 (마르 15,47) 또는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마르 16,1)라고도 불렸다. 마르코는 이 자녀들에 관한 독자의 앎을 전제하는 듯이 보이고, 사실 이미 마르 6,3에서는 같은 계열 안에서 같은 이름들이 지시된다: “야고보, 요세”. 이러한 경우에 예수의 어머니의 다른 아들들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분명하다.
에우세비오의 “교회의 역사” 안에서 우리는 에제시뽀 Egesippo (2세기)에 의해 뽑힌 인용들을 만난다. 그는 야고보의 죽음 후에 «클로파 (의 아들) 시몬이 예루살렘의 주교로 임명되었고; 모든 이는 그에게 우선권을 바랬다. 왜냐하면 그는 주님의 두 번째 사촌이었기 때문이다» 라고 이야기한다.
클로파 (클레오파)는 마리아의 남편 요셉의 형제였다. 다른 한 편 시몬은 야고보의 형제인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아버지 클로파를 통해서 확인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야고보와 요세를 예수님의 어머니의 친척인 마리아의 자녀들로 생각하는 가정과 반면에 시몬 (그리고 유다)을 요셉의 형제인 클로파의 아들들로 보는 가정은 잘 세워졌다.
“클로파의 아내 마리아”와 함께 십자가 아래에 있는 마리아의 “누이”를 어떻게 집어넣어야 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요한 19,25).
역사적인 배치를 통해서 다음의 설명이 가능하게 된다: 유년기 이야기 후에 요셉의 활동하는 모습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요셉이 예수님의 공적 활동 이전에 죽었으리라는 것은 매우 그럴듯하게 보인다. 요셉의 죽음 이후에 마리아는 친척들에게 가까이 있게 된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람어로 “형제들” 그리고 “누이들” 이라고 불린 그의 사촌들과 함께 성장한다.
여인이기에 마리아가 남성의 동반 없이는 공적으로 나타날 수 없었기 때문에 마리아는 이러한 목적으로 보다 가까운 남자 친척들에게, 즉 예수님의 “형제들”에게로 향한다 (마르 3,21.31; 참조. 요한 2,12; 사도 1,14도).
그리스어로도 “사촌들”이 아니고 “형제들”이란 명명이 사용된다는 사실은 초기 공동체 안에서 주님의 사촌들의 중요한 위치에 의해서 설명된다. 주님 자신의 “형제”라는 것은 특별한 영예였다.
분만 후의 마리아의 동정성을 방어하기 위해서 야고보 원복음은 예수님의 “형제들”이 첫 번째 혼인에서 가졌던 요셉의 자녀들이라는 주장을 언급한다. 이 경우에 참 자녀들 (또는 더 나아가서: 이복형제들)의 문제일 것이다. 왜냐하면 요셉은 예수님의 법적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동방에서 주요한 해결책이다. 그러나 우리는 (에제시뽀와는 독립적으로) 주님의 사촌들에 대해 생각하고 이복형제들이라는 이론을 거부하는 테오도레토와 요한 크리소스토모의 견해를 만난다. 서방에서 주요한 주장을 준비했던 것은 예로니모이다. 그에 따르면, 이복 형제들의 문제가 아니라 예수의 사촌들의 문제이다. 이것이 더 나은 해결책이다.
어쨌든, 고대 교회는 마리아가 다른 자녀들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했다. 단지 떼르뚤리아노와 엘비디오 (그리고 동료들) 만이 예외이다. «마리아 위에 성령이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그녀를 감싼 후에 말씀에 봉사하기 위하여 선택된 저 몸이 남자와의 관계를 모르도록» 마리아의 존중을 유지하는 문제이다.
바실리오는 설명한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이들 (=신자들)은 하느님의 어머니 (테오토코스)가 어느 한 순간에 동정녀이기를 멈추었다는 것을 듣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마리아의 영원한 동정성의 교의에 도달하기 위한 주석적이고 역사적인 언급들은 충분하지 않다. 반면에 이 중요한 자료들은 동정녀이며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의 전체적인 모습을 보는 보다 넓은 시각 안에 통합된다. 마리아가 하느님의 말씀을 묵상했던 것처럼 (루카 2,19.51), 교회도 교리의 명료함에 이르기 위해 성령의 지지로 구원의 역사를 바라보았다.
※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한 것은 자기 일생을 결정짓는 행동이며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바치는 행위였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되신 하느님의 어머니로서의 품위와 하느님께 완전히 자신을 내맡기고 아드님이신 그리스도께로만 향한 삶이 진정 평생 동정의 의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