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예배시간에 목사님이 죽음에 대한 성경의 의미를 풀어주신 적이 있다. 우리는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라고 하지만, 성경에서는 죽음은 출발을 의미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 인생은 허무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향한 출발이라 고 생각하기 때문에 세계는 발전을 해오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논어에서는 “생을 다 알지도 못 하면서 어찌 죽음을 말하랴.(未知生 焉知死)”라고 하며 “지는 꽃잎 처럼 현자는 그렇게 가는구나.”라고 했다. 두보는 “관을 덮고서 일이 정해진다.”고 했는데, 이는 ‘죽어서 비로소 그 인물의 업적이 결정된다.'와 ‘죽으면 만사가 끝이므로 부지런히 일하라.’라는 두 개의 의미가 있다.(杜 甫/贈蘇隱詩) 여기에서 보면 동양에서는 죽음을 끝으로 보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20세기 타임지가 선정한 100대 사상가 중의 한 사람인 Elisabeth Kuebler Ross는 죽음을 배움의 길 그리 고 마지막 성장의 기회로 봤다. 이는 죽음을 출발을 의미한다는 성경의 입장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죽음을 모든 것의 끝이라고 보는 입장과는 전혀 다르다. 다음으로 졸업(卒業)에 대한 동·서양의 생각을 보자. 동양에서는 졸업을 “일정한 일을 마치는 것”이란 의미로 새겼다. 졸업에 대한 서양의 생각을 보자. 영어에 서는 졸업을 graduation이라고 하는데 이는 ‘점진적 성장’을 의미한다. 졸업식은 commencement인데 시 작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독일어에서는 졸업을 Abgang이라고 하는데 이 역시 출발한다는 의미를 지 닌다. 즉 서양에서는 졸업을 일을 마친다는 의미라기 보다는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즉 졸업이란 어떤 일을 끝낸다는 의미보다는 새로운 일을 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학생들도 졸업을 새로운 학업을 시작한다는 의미보다는 학업을 끝낸다는 의미로 새기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죽음과 졸업에 대한 생각의 차이는 동·서양의 발전의 틀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결정적 영향을 끼치지 않았 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M. Weber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원리와 자본주의 정신(Die protestantische Ethik und der Geist des Kapita- lismus)에서 서양에서는 자본주의가 발전하였으나 동양에서는 발전하지 못한 원인을 상세히 분석하였다. 그는 서양에서 자본주의가 발전한 원인을 기독교정신이라고 보았다.
신약성경 마태복음 6장 34절을 보면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일이요 한 날의 괴 로움은 그 날에 족하리라”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Weber는 거기에서 노동의 영속성을 끄집어 내었다. 우리 가 만약 내일 일을 염려하면서 살아간다면, 많은 돈을 부모로부터 상속받거나 복권에 당첨되어 엄청난 돈 을 받게 된다면 그 이후로는 굳이 일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미 평생 살아가기에 충분한 돈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일 일을 내일 염려한다면 오늘에 충실해야 하고 그러자면 오늘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 오늘은 오늘의 태양이 뜨는 것이므로 새로운 오늘을 위해 일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끊임없이 일을 계 속해야 한다는 노동의 영속성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 끊임없는 노동 속에서 창조의 정신, 과학정신이 싹 트게 되어 자본주의 발전의 원동력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죽음을 모든 것의 끝으로 본다거나, 졸업을 새로운 출발을 향한 과정으로 보지 않고 끝으로 본다면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사실 15세기까지만 하더라도 동양(주로 중국)은 서양에 비해 앞선 문명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콜럼버스 는 2차에 걸쳐 항해를 하였는데 1차는 88명이 250톤 3척의 배를 타고 하였고, 2차는 1,500명이 항해해서 1492년 신대륙을 발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항해의 목적은 황금을 발견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한편 명나라는 1405년에서 1433년까지 7차에 걸쳐 환관 출신 정화가 서방을 향해 인도, 아라비아를 거쳐 아프리카 희망봉까지 항해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화의 항해규모는 컬럼버스의 항해규모와는 비교 자체가 되지 않는다. 정화는 한 번의 항해에 배 200척(평균 배 크기는 길이 150m 폭 60m 이었고, 최대 선박은 길이 400m, 폭 160m에 달했다)에 선원이 27,800명에 이르렀다. 당시 명나라의 조선기술은 세계 최고였으며 350년 후 서방에 전파되었다. 정화의 활약을 그린 것이 ‘신밧 드의 모험“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명나라의 항해의 목적은 조카 건문제(建文帝)로부터 왕위를 찬탈한 영락제(永樂帝)가 왕위 경쟁자인 황태자를 색출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콜럼버스의 황금을 발견하기 위한 것과는 항해 목적부터가 달랐다. 콜럼버스는 황금을 발견하기 위한 항해를 했던 것에 비해 명나라의 경우 정화의 항해는 왕위경쟁자인 황태자를 색출하기 위한 것이라면 (영락제는 정화에게 지구 끝까지 가 서라도 황태자를 찾아 내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거기에서는 발전을 추구하는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1424년 영락제가 사망하자 정쟁(政爭)이 발생했고, 1477년에는 유교선비들이 환관인 정화가 무역 으로 돈을 벌자 무역금지령을 내리고 정화의 항해기록을 말살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배 3,500척을 보유한 해군을 해산한다. 1500년에는 민간에서의 배의 건조를 국법으로 금지했고, 1525년에는 모든 원양어선을 없앴다. 서양에 비 해 훨씬 앞선 기술을 보유한 명나라는 이 때부터 서서히 서구 열강에 쳐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폴 케 네디는 “강대국의 흥망”이란 책에서 명나라 정부가 행한 여러 가지 조치로 인해 중국은 개척정신을 잃어 버렸고, 중국문명을 핵으로 하는 동양이 쇠락하기 시작했다고 보고 있다.
15세기부터 서구열강이 지리상의 발견으로 세계를 뻗어갈 때 중국은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갔으며, 19세 기에 이르러서는 서세동점(西勢東漸)으로 중국은 열강의 각축장으로 변해서 서양으로부터 말할 수 없는 치욕을 당했던 것이다. 나는 19세기의 중국역사를 보면서 읽으며, 중국이 겪었던 고충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나는 죽음과 졸업에 대한 생각의 차이가 동·서양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생각한다. 죽음도 새로운 세계를 향한 출발점이고 졸업도 일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위한 출발점으로 생각할 때 즉 죽 음과 졸업을 결과가 아니라, 인생의 긴 여정의 한 과정으로 볼 때 인생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고 새로운 발 전을 위한 토대가 형성되는 것으로 본다. 이는 국가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며, 개인의 경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죽음이나 졸업 을 종착역으로 보지 않고 삶의 한 과정이요 새로운 세계를 향한 출발점으로 볼 때 그의 삶은 건강하고 허 무하지 않고 발전해 나갈 수가 있는 것이라고 본다. |
첫댓글 젊은이들 엔트로피를 생매장하여 아지랑이 모락모락 솟는 땅 아니고 금빛 은빛 엔트로피가 번쩍이는 새 세상 젊은 혈기 넘치는 한국 땅 기원합니다
회장님 말씀대로 되길 기원합니다.
동. 서양의 인식 차이가 많이 나는군요.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