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불법(佛法)을 설하고 듣는 방법(方法)
불법(佛法)을 듣고 설하는 데에 있어서, 듣는 방법, 설하는 규칙, 공동(共同)으로 행하는 규칙 등의 세 가지의 규범(規範)이 있다.
법을 듣고 신심(信心)이 생긴다면, 아주 즐겁고 굳건한 자체(自體)로 변할 것이다. 지혜가 생기면 어리석음이 사라지게 되니, 내 살을 주더라도 얻을 만하다. 법을 들음은 어리석음을 없애는 등불이요, 도적도 훔쳐가지 못하는 최상(最上)의 보물이기 때문이다.
미혹(迷惑)의 적을 물리치는 무기(武器)요, 방편(方便)과 교법(敎法)을 보여주는 최고의 친구요, 빈곤에 처할지라도 변함없는 친구와 같다. 해로움 없이 고통을 여의는 묘약(妙藥)이요, 죄악을 무찌르는 막강한 군대요. 명예와 번영의 훌륭한 곳 집이요, 고상한 이들에게 올리는 귀한 예물이니, 뭇 대중 속의 지혜로운 자를 만족하여 환희하게 한다.
불법을 듣고 근본을 수행하면 생사(生死)의 성(城)에서 어려움을 쉽게 벗어나게 된다. 불법을 듣고 모든 유익함에 진심으로 승해(勝解)를 일으켜야 한다.
부처님께서 출현(出現)하심은 극히 희유(稀有)하고 불법(佛法) 또한 그러하다. 희유하기 때문에 보배로 생각하여야 하고, 지혜는 크게 늘어나기에 높은 안목(眼目)으로 보아야 하고, 지혜(智慧)로 모든 것을 보아 광명(光明)으로 생각하여야 하고, 대열반(大涅槃)과 대각(大覺)의 과(果)를 주는 이익으로 생각하여야 하고, 지(智)와 관(觀)의 안락(安樂)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무죄상(無罪相)을 지어야 한다.
오로지 믿음과 공경과 존중으로 설법을 듣고, 법을 비방하거나 왜곡하지 말아야 한다. 설법하는 이에게 공양함은 스승을 부처님같이 생각하는 것이다. 부처님같이 보고 사자좌(獅子座) 등으로 존경하여 공손히 공양하여야 한다.
추호(秋毫)의 번뇌를 모두 없애고, 법사(法師)에 대한 작의(作意)를 내지 않고, 들어야 한다. 오만(傲慢)을 벗어난다는 것은 제 때에 듣고, 공경하며, 화내지 않고, 항상 수행하고, 흠을 찾지 않는 등의 여섯 가지로 듣는 것이다. 경멸과 번뇌와 망상(妄想)을 벗어난다는 것은 법(法)과 법사(法師)를 존경하고, 경시(輕視)하지 않는 것이다.
가장 낮은 자리에 앉아 공손한 태도를 취하고, 기쁜 눈으로 바라보고, 들음에 감로(甘露)를 마신 듯, 공경심을 일깨우며 오로지 한결같은 마음을 기울여야 한다. 순결하고 흠없는 마음을 지닌 병자(病者)가 의사(醫師)의 말을 경청하듯이 지극한 정성이 우러나오는 가운데 설법을 들어야 한다.
오랫동안 지병(持病)으로 고생하다가 고명(高名)한 의사를 만나, 의사가 귀한 약을 주었지만 환자가 약을 먹지 않는다면, 이는 병자의 잘못인 것이다. 이처럼 출가(出家)하여 모든 힘과 선정을 알고도 실제로 수행하기를 노력하지 않는다면 어찌 열반(涅槃)에 들 수 있을 것인가.
많이 들었을지라도 계율(戒律)을 잘 지키지 않는다면, 그 들음은 원만하지 못하게 된다. 들음이 비록 적더라도 계율(戒律)을 잘 지킨다면, 계율에 연유(緣由)하여 찬탄을 받을 것이니, 그 들음은 결국 원만하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이 많이 듣고, 계율을 잘 지켰다면, 그 두 가지에 연유하여 그의 계행은 원만하게 될 것이다.
여래를 최고의 성자(聖者)로 생각한다는 것은, 설법사(說法師)를 세존(世尊)의 후계자(後繼者)로 알고, 공경심을 일으키는 일이다. 정법의 이치(理致)를 항상 생각한다는 것은, 이런 정법을 들음에 근거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이 이 세상에 길이 남아 있다면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얼마나 좋을 것인가 하고 사유(思惟)하는 것을 말한다.
불법을 설할 때, 정법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법을 설한다면, 아무리 설해도 요점에 들어가지 못하게 될 것이니, 먼저 정법을 깊이 청문(聽聞)하여야 한다. 예를 들어, 자기 얼굴에 검댕이 등의 때가 있는지 없는지 알고자 하여 거울을 보고 나서, 때를 닦아내는 것과 같다.
법을 설하는 네 가지의 규칙이 있다. 1) 설법의 이점(利點)을 생각하는 것, 2) 법을 설하는 법사(法師)와 법(法)에 공경심을 일으키는 것, 3) 어떤 생각과 가행(加行)으로 설할 것인가. 4) 어떤 경우에 설하고, 어떤 경우에는 설하지 않아야 하는가를 구분하는 것이다.
공경(恭敬)을 구하거나, 재물(財物)이나 명예(名譽) 등을 기대(期待)하지 않고, 법을 원한다면 그 이로움이 아주 크다. 밝게 기억하게 되고, 총명한 지혜를 갖추게 되고,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게 되고, 견고하게 되고, 지혜가 있게 되고, 세간을 넘어선 지혜를 통달하게 되고, 탐욕이 적어지고, 화내는 것이 적게 되고, 어리석음이 적게 되고, 마군(魔軍)이 그를 따르지 못하게 된다.
모든 불세존(佛世尊)께서 그를 생각하게 되고, 비인(非人)들이 그를 지켜주게 되고, 제천(諸天)이 그에게 위덕(威德)을 일으키게 되고, 원적(恕敵)이 그를 따르지 못하게 하고, 친구와 갈라서지 않게 되고, 언사(言辭)가 고상하게 되고, 두려움이 없게 되고, 마음에 기쁨이 많게 되고, 지혜로운 이가 칭찬하게 되고, 그 법보시(法布施) 또한 맑게 기억되는 가치(價値)를 가지게 된다.
법보시(法布施)를 그대에게 청한다면, 처음에는 학문(學文)이 깊지 못하다고 겸양을 보여야 한다. 당신은 이미 알고 있고, 이름 또한 높으니, 큰 인자(仁者) 앞에서 제가 어찌 감히 강설(講說)할 수 있겠는가 하고, 이 말을 먼저 하여야 하고, 바로 강설하지 않아야 한다. 만약 상대방이 그대를 법기(法器)로 인정하고, 판단하였다면 청하지 않았어도 설하여야 한다.
앉아 있는 사람에게 서서 법을 설하지 말아야 하고, 누워있는 자에게 앉아서 설하지 말아야 한다. 높은 자리에 앉은 자에게 낮은 자리에서 설하지 말아야 한다. 앞에 가는 사람에게 뒤에서 걷는 이가 설하지 말아야 한다. 길 가는 이에게 길 가에 있는 자는 설하지 말아야 한다. 모자를 쓴 자, 관을 쓴 자에게는 설하지 말아야 한다. 말을 탄 자, 가마를 탄 자, 신을 신은 자에게는 설하지 말아야 한다. 손에 지팡이 우산 무기 병기를 든 자와 갑옷을 입은 자에게는 설하지 않아야 한다.
법을 설하고 들은 뒤에는 얻은 바 갖가지의 공덕을 현재와 구경(究竟)의 서원처(誓願處)에 강렬한 열망(熱望)으로 회향(廻向)하여야 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법을 설하고 법을 듣는다면, 불경에서 설한 모든 이익들을 빠짐없이 구족하게 된다.
이와 같이 하면, 법을 듣고 설함에 요점(要點)에 들어가지 못했던 까닭으로 법과 법사를 공경하지 않았던 것과, 과거에 쌓아온 업장(業障)들도 점차 청정하게 되고, 새로운 업장(業障)도 단제(斷除)하게 되고, 법을 설하고, 듣는 규칙이 요점에 들어간 까닭으로 강설(講說)한 교법 또한 상속(相續)에 유익함을 얻게 된다.
모든 성현(聖賢)들은 이런 것들을 신중(愼重)하게 실행하였다. 이는 극히 큰 가르침이지만, 깊고 광대한 정법을 아무리 설하여 주더라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마음을 바꾸지 못하여 마군(魔軍)으로 전락되고, 번뇌의 동반자(同伴者)가 되고 마는데, 이러한 현상을 많이 보게 된다.
지혜를 갖춘 이들이 정혜(正慧)에 드는 도리(道理)를 청문(聽聞) 청강(聽講)할 때마다 가장 먼저 애써 설명하는 것은 바른 가르침을 강설(講說)함이 첫째가는 초심자(初心者)의 예비수행(豫備修行)이 되기 때문이다. 이상은 중요한 것만을 간추려 설명한 것이다.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마하반야 바라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