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좌도시 원고
마음으로 읽는 시/신작시
2016-06-17 14:31:45
(테마 시)
풀 여치의 노래
달빛이 풀밭을 누를 때마다 풀 여치가 노래를 한다
저 작은 가슴에도 노래주머니가 있나보다
한세월 짜 넣었던 한을 풀어 올올이 비단자락을 짠다
구슬픔이 풀빛을 휘감아 풀빛 그늘 온통 근심투성이다
누구에게 전하려고
풀 여치는 긴긴 밤 설치며 베틀노래 부르는가
테마 산문)
유혹의 노래
풀 여치는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날개를 비벼 소리를 낸다고 한다. 날개가 없는 난 무엇으로 암컷들을 유혹할까. 아내여, 허구한 날 내 잔소리에 얼마나 가슴을 졸이며 살았던가. 알고 보니 난 풀 여치보다 못한 놈이다.
(동인 시)
홍시
감나무가 붉은 밥 한 덩이 매달았다
붉은 밥을 불빛으로 알고 날아온 직박구리
고개 까딱거리며 밥 콕콕 찍고 있다
허공이 받치고 있는 저 밥 누구를 위한 것이었나
까치 대신 직박구리 먼저 밥맛 보는 겨울에
하늘은 얼음장처럼 푸르렀다
그래도 직박구리는 행복한 줄 알아라
식은 밥조차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 땅에 널려 있다
직박구리는 제 혼자 찍어 먹기 미안했던지
부리 쓱 닦으며 옆 감나무로 옮겨 않는다
갈치
물속에서 유영할 때만이 검이 아니다
시장 좌판에 누워서도 검으로 반짝인다
햇살에 갈려 햇살만큼 예리해지는 칼날
양날이 허공을 벨 듯 두렵다
저 검을 피해 도망친 자들은 검의 무서움을 안다
휘두르지 않아도 도망부터 친다
도망치다 잡혀 결국은 검 옆에 영면해 있다
저 예리한 검 때문에
그나마 바다의 질서가 유지된다
채석강에서
깜박 잊고 책을 가져 오지 않아
물어물어 채석강에 온 것이 다행이었다
오래전부터 벼르던 여행이었는데
차라리 폭염에 책이나 읽자고 채석강으로 왔다
천길 벼랑에 고서처럼 쌓인 바위들
세찬 바닷바람에도 휘날리지 않았다
오래도록 소금기에 절어 책들은 바래지도 않았다
하루 종일 바위 책을 읽는 것들은
오복이 모여 앉은 물새들이다
뽁뽁 효로륵 삑 삐익삑
책 읽는 소리 낭랑하여
시샘 부린 파도가 철썩 물보라를 뿌려 책을 적신다
바다의 일생을 새긴 책들은
그렇게 물새들과 어울려 한 세월로 늙어간다
민들레꽃
가장의 보금자리는
보도블록의 좁은 틈새다
가녀린 다리가 푹 빠져
옴짝달싹 못하는 사이 집은 거덜났다.
아내는 집을 나갔다
가장이 닦고 문지르는 가구에
장미 딱지가 붙을 때
보도블록에 뿌린 내린 민들레가
황달 같은 꽃을 피웠다
가장의 얼굴에도 노란 민들레꽃 피었다
황간 장날
오일장 열리는 황간 시장 공터
살구꽃잎 분분히 흩날리는 봄날에
밀짚모자 웅크려 앉아 튀밥 기계를 돌린다
땡볕이 타들어가는 자리에
살구나무가 방석만한 그늘을 깔아 주고
아이들은 눈망울을 반짝이며 쳐다본다
아이들의 마음은 설렘으로 가득하다
밀짚모자는 온도계를 힐끔거리며
폭발할 시간을 재고 있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올라가는 온도
더 이상 뜨거움을 참을 수 없는지
밀짚모자는 귀 막으라는 손짓을 하고
기계의 뇌관을 건드린다
천둥이 치듯 공터를 흔드는 폭발 소리에
살구나무도 혼절하듯 꽃잎을 뿌려댄다
바닥엔 튀밥들이 눈발처럼 굴러다니고
꽃잎도 구수한 내음 따라 날아다닌다
물푸레나무의 사랑
물푸레하고 불러보면
여인이 안개에 머리칼을 풀어헤치는 냄새가 난다
저무는 강가, 물푸레 빛으로 흘러내리는 강물을 보며
물푸레나무는 연초록 머리칼 풀고 송아지와 놀고 있다
송아지의 등쌀에 물푸레 등짝이 흉하게 파였지만
송아지가 제 엄마를 부르는 소리에 머리칼은 더 짙어간다
물푸레하고 불러보면
물푸레나무가 소리 없이 물을 퍼 올리는 소리
제 엄마 뒤를 따라 집으로 돌아가는
송아지의 등 뒤로 내려앉은 산그늘처럼
내 마음은 하루 종일 물푸레의 머리칼에 젖어 있다
노변정담爐邊情談
식구들이 화로 곁으로 모여들었다
고구마 통가리처럼 오종종 둘러앉았다
처마 밑으로 고드름이 창끝을 늘여가고
뒷산 망개나무 숲에 부서지는 달빛이 차다
고구마 통가리는 윗목에 푹 주저앉아 있다
사랑방 노파처럼 퀴퀴한 냄새가 났다
통가리 속에 대가리 처박은 고구마들이
부스럼처럼 싹눈 틔우고 있다
넝쿨 같은 길 따라 흰나비 꿈결처럼 날아와
고구마꽃 활짝 피울 준비를 한다
방안에는 고구마 탄 냄새 흘러넘치고
딱총소리처럼 픽픽 고구마 껍질 터지는 소리가 났다
카페 게시글
좌도시
좌도시(2016년)
총알택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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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01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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