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안성맞춤인 안성安城!
서울과는 1시간 거리이면서 경기도 최남단에 위치한 안성. 경기도인지 충청도인지 그 어느 경계선에 위치하여 말솜씨를 만나보면 충청도와 경기도가 섞여 요상한 ~쪼를 만들어 냅니다. 과하지 않은 음율이 구수하여 친근한 말투라며 근사하게 포장도 됩니다. 타 지역에선 ‘안성에서 왔습니다.’라고 하면 ‘안산이요?’, ‘안양이요?’ 하며 큰 도시를 빗대어 두 세 차례 반문을 듣고서야 비로소 안성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안성은 지역을 수식하던 명칭이 어느덧 고유명사가 되어 더욱 유명해진 지역입니다. 전국 3대장에서 가장 인기 좋게 팔려 전국의 부자들이 선호했다는 ‘안성맞춤 유기’가 그것이고, 조선시대 전국 제일의 남사당패거리로 이름을 펼쳤던 신명 나는 공연 볼거리가 있었던 ‘예술문화의 도시! 안성’이 그러하고, ‘내 입에 안성맞춤’이라는 광고 카피로 유명한 안성탕면은 1983년 라면 최초 ‘탕’의 개념을 적용한 제품으로 오늘 38주년을 맞이하는 전 국민이 사랑하는 인기 제품이기도 합니다.
실례로 내륙 교통의 요충지였던 안성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상업 도시로 시장(장터)이 번성한 5대 상업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18세기 조선 영조 때, 실학자 이중환이 지은 ‘택리지(擇里志)’에 따르면 “안성은 경기와 호남 바닷가 사이에 위치해 화물이 쌓이고 공장과 장사꾼이 모여들어서 한양 남쪽의 한 도회가 됐다.”로 묘사했습니다. 즉, 안성은 전국을 무대로 하는 안성장을 품은 사통팔달 ‘요충지’였던 셈입니다. 각지에서 안성으로 운송된 물자는 대부분 육로로 수원을 거쳐 서울로 운반됐고, 일부는 서해안의 포구를 거쳐 인천으로 운반됐습니다. 중부내륙지방에서 소비되는 외부 물자 역시 안성을 거쳐 전국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각 지역의 유명하고 알법한 이야기는 넘쳐나는 온 오프라인 정보란 안에 담겨있습니다. 안성은 국내 몇 안되게 남아있는 2일과 7일에 열리는 5일장이 유명합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바우덕이 축제, 독립운동의 산실인 3․1운동 기념관, 전국에서 5번째로 크다는 고삼호수, 김대건신부님을 모시고 있는 미리내성지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안성마춤 브랜드로는 배, 한우, 인삼, 쌀, 포도가 유명합니다.
이 페이지에서는 안성의 유명한 8경, 8미 이야기 보다는 옛날부터 구수하게 전해 내려오는 두 마을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안성의 남동쪽 끝은 죽산면입니다. 일죽, 이죽, 삼죽면이 있었는데, 1992년 이죽면이 죽산면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죽산면에는 천년고찰 칠장사가 위치해 있습니다. 임꺽정이 스승인 병해대사를 만나 의형제를 맺었고, 이곳에 머물며 주민들에게 가죽신 깁는 법을 가르쳤다는 곳이기도 합니다.
조선중기에 천안에 박문수라는 선비가 과거시험을 보러 한양에 올라가는 길에 칠장사에서 하룻밤을 묵게 됩니다. 어머니의 말씀도 있고 해서 칠장사의 나한전에 유과를 올리고 나한님께 불공을 드린 후 잠을 청했는데 신기하게도 그날 밤 꿈에 나한님이 나타나서 과거시험의 시제를 알려주었습니다. 총 8줄의 답안 중 7줄을 가르쳐주었고 한 줄은 박문수 네가 알아서 써내라고 했습니다.
다음날 일어나 한양으로 올라가는 도중 내내 나한님이 가르쳐주신 글과 마지막 싯구를 생각하며 걸어 걸어 한양 과거시험장에 도착하여 시험을 보는데 과연 나한님이 가르쳐준 시제가 나와 깜짝 놀라고 맙니다. 이 답안으로 박문수는 장원급제를 하게 되었고, 이 전설이 흘러 흘러 지금도 입시철이 되면 수많은 학부모들이 영험하다는 이곳 칠장사의 나한전을 찾아 기도를 올리는 곳입니다.
안성시 지도의 하부는 천안과 진천에 맞닿아 있으며, 북쪽으로는 용인시와 맞닿아 있습니다. 그곳이 당시 안성군 고삼면(현재는 안성시 고삼면) 입니다. 고삼면이 용인군 소속이던 1963년 이전에는 용인군 소속의 공무원들이 고삼면에 파견되었습니다. 그들에게 안성군 고삼면 발령은 영화 “선생 김봉두”의 김봉두처럼, 용인군에서 가장 멀고 낙후된 시골이어서 일하고 싶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용인군 공무원이 고삼면으로 넘어 오려면 큰 고개를 하나 넘어야 합니다. 도로가 없던 시절, 주변에 칠흑 같은 밤하늘에 반딧불만 반짝이던 고개, 밤에는 허허벌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정상에 올라가면 무서워서 총알보다 빠르게 뜀박질해서 내려오던 고개, 우리는 이 고개를 ‘밤고개’라고 불렀습니다. 고삼면으로 발령이 난 용인군 공무원은 비포장도로를 덜컹덜컹 밤고개를 넘으며 서러워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답니다.
‘이 고개를 넘어가면 언제 다시 용인군으로 돌아갈까 나.’
흐르는 눈물을 소매로 훔쳐가며 고개를 넘다 보면 고삼면 가유리 신가마을에 도착합니다.
신가마을에 위치한 고삼면사무소, 용인경찰서 고삼지소에서 업무를 시작합니다.
당시 고삼은 이웃 간 서로 정이 넘치는, 사람들이 북적대는 곳이었습니다. 어느 집 어르신 생신이나 환갑 때, 잔칫날이면 마을마다 음식을 나눠 먹었고 담당 마을 공무원을 제일 먼저 초대했습니다. 수확한 옥수수, 감자를 냄비에 한가득 쪄오는 마을주민들, 미꾸라지를 한 망태기 잡아 몸보신하라고 덥석 주시는 이장님, 추수 끝나면 가을 떡을 해먹었고, 온 마을주민들이 모이는 대동계,
정월대보름에는 달구지에 소한마리를 경품으로 걸어놓고 윷을 날렸던 윷놀이 등 마을잔치에는 담당마을 면 직원과 경찰서 직원들은 늘 함께하였습니다. 우리 지역에 부임했다고, 가족들과 떨어져 한지에 와서 고생을 많이 한다고, 자식처럼 대해주시는 마을분들이 있어 눈물을 훔치며 넘었던 ‘밤고개’의 첫 기억은 어느 새 저 멀리 사라져 버립니다.
이렇게 고삼면 사람들과 울고 웃었던 고삼에서의 공무원생활을 뒤로하고 다시 용인군으로 돌아갈 때는 그 어려웠던 시절에도 아쉬운 석별의 정을 담아 떡을 대접했다고 합니다. 그 정이 아쉬워 울면서 넘어온 밤고개를 넘으며 또 한번 울음바다가 됩니다.
‘이렇게 정이 많은 고삼면에 내 언제 또다시 올 수 있을까?’ 함께 울고 웃었던 고삼면의 생활이 기억나 또 한번 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용인군 공무원들은 “눈물의 밤고개”를 넘어갔다고 합니다.
이렇게 정이 많고 향기 나는 마을에 국내 최초로 장애학생에게 직업지도를 중점적으로 교육하기 위해 개교한 특수교육기관 ‘한길학교’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안성지역사회에서는 최초로 장애인 학교가 들어서면서 혹시 주민들이 반대하지 않을까 하는 이른바 님비현상을 걱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안성이 어떠한 고장입니까? 3월 개교를 향해 겨울 내내 시끄러운 공사현장이 계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민원 한 건 없이 주민 여러분들이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 주셨습니다. 심지어는 주민 여러분이 운동장에는 잔디를 깔아주셨고 경사면에는 각종 유실수를 구입하여 심어주는 등 튼튼한 학교 울타리를 만들어 주셨답니다. 개교당일에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한길학교 개교를 환영합니다’라는 축하 현수막을 곳곳에 게시하여서 개교기념식은 지역주민이 함께 음식을 만들어 나르고, 잔치를 벌인 화려한 ‘특수교육 축제’가 열린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이 바로 안성安城맞춤의 도시! 안성입니다.
안성 유기
남사당 축제
한길학교 전경
아마도 ‘눈물의 밤고개’부터 내려온 아름다운 마을의 정서와 공동체의식이 ‘장애 공감’이라는 꽃을 활짝 피우게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안성으로 한번 놀러 오십시오. 따뜻하게 안내하겠습니다.
한창섭/한길복지재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