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반남박씨 문중의 박범진이라는 사람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귀 문중의 7세이신 오순공(순) 할아버지에 대한 기록을 찾고 싶어서 연락드리게 되었습니다.
오순공 할아버지는 저희 반남박씨 3세이신 박윤무 할아버지의 장인 되시는 분입니다. 혹시 화순오씨 족보에 박윤무 할아버지에 대한 기록이 있다면 보내주셨으면 합니다.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8.09.30 반남 박범진 드림.
세종대왕께서 지어주신 不遷之廟인 조선개국공신 8세 공희공 사당을 단종 복위운동에 연루되어 위폐만 챙겨 달아났던 조상들께서는 형편없는 움막 같은 사당에서 명맥만 유지해 왔으며 문답 경작자는 벌초는 해 줄 수 있지만 제수는 해 줄 수 없다했고 재원이 없어 변변찮은 제수도 마련하지 못한 체 제향을 올려야 했었답니다. 제원 마련을 위해 제 주택담보대출로 문답 3천평 매입 년세 받아 제향 올리는 난제는 해결 했으며 시원찮은 문답과 문산을 매도하고 십시일반 거둬 5년 걸려 내 빚은 갚았답니다.
8세 공희공 사당은 그런대로 복원하여 제향을 올렸지만 선대 7세까지는 나 몰라라 한 7백년. 공희공께서 제향 받을 때면 선대에 미안해 할 것 같았고 우리 또한 후손된 도리가 아니라서 화순오씨 시조 元 부터 일곱 분 모두 단비를 세워 제향 올리면서 나는 울먹였었답니다. 그리고 난 다음 사당에서 8세 공희공께 제향을 올리니 모두가 기쁜 일이지요.
이후 15세까지 사초 입비하며 성역화 했고 16세 이후는 사문중에서 모시지요.
따라서 첨 할아버지는 함양에 단이라도 세워 제향을 올릴 수 있었으면 하고 이어 24세 까지도 이름표는 달아드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제 의견이랍니다. 오씨 성을 가졌고 쓴다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