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08. 15.
- 8·2 대책으로 주택 거래 '뚝'… 장기화하면 서민층도 피해
- 한 채 한해 양도세 일시 감면, 高價주택 임대 등 출구 마련을
"부동산, 죄송합니다. 너무 미안합니다. 올라서 미안하고,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고, 한 번에 잡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1월 신년 연설에서 이렇게 머리를 조아렸다. 부동산 문제는 참여정부 정책 당국자들에겐 악몽 그 자체였다. 무수한 대책을 쏟아내고도 시장에 완패했다. 실패를 반복할 수 없다는 오기가 '8·2 부동산 대책'을 낳았다.
8·2 부동산 대책의 요체는 강력한 수요 억제다. 집값 급등 원인을 투기 수요라고 보고 다주택자를 표적으로 삼았다. 정책 설계자인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은 "강남권 포함한 일부 지역 부동산 가격 반등은 수요-공급 문제만이 아닌 머니 게임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사는 집이 아니면 파시라"고 압박하고 있고, 국세청은 세무조사 칼을 빼들었다. 180만명에 이르는 다주택자들을 '공공의 적'으로 간주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진짜 투기꾼이라면 모를까 다주택자 대부분을 차지하는 2주택자들(148만명)은 억울할 수 있다.
우리 국민 절반은 남의 집에 세들어 산다. 공공임대 주택은 13%에 불과하고, 87%는 다주택자들이 빌려준 집에서 살고 있다. 정부가 책임져야 할 주거권을 다주택자들이 보장해 주고 있는 셈이다. 유럽 선진국에선 공공임대 주택이 전체 주택의 40%가량을 차지한다.
다주택자들이 임대소득으로 '떼돈'을 버는 것도 아니다. 임대주택 수익률은 연 2% 수준밖에 안 된다. 이들이 주거비가 월세보다 훨씬 싼 '전셋집'을 대량 공급한 덕분에 주거비 부담이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다. 우리 국민의 가처분소득 대비 주거비 부담은 16% 정도로 OECD 평균치(21%)보다 낮다.
▲ 2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김현미(가운데) 국토교통부 장관과 고형권(오른쪽) 기획재정부 1차관,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부동산 대책 발표를 마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물론 다주택자들이 사회 공헌 차원에서 주택을 세 놓는 건 아니다. 이들이 노리는 건 시세 차익이다. 이 같은 한국형 부동산 투자 모델이 자리 잡게 된 것은 집값이 계속 상승해 왔고, 주택 보유세 부담은 적었기 때문이다. 과거 정부에서 경기 부양 수단으로 주택 투자를 조장하고, 임대소득 과세망을 헐겁게 운영한 점은 다주택 투자를 유인한 또 다른 요인이다. 문재인 정부는 반세기 이상 지속된 이 모델을 혁파하고, 부동산에 대한 국민의 가치관까지 바꾸겠다고 벼르고 있다.
규제 백화점 같은 8·2 대책으로 다주택자들은 진퇴양난에 빠졌다. 정부는 집을 팔거나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라고 윽박지르는데, 매수자가 사라진 상황에서 집을 팔기도 어렵고, 6억원 초과 아파트는 임대아파트로 등록할 수도 없다.
시장에선 이미 거래 절벽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거래 절벽이 장기화되면 임대주택 공급이 줄고 전세난이 심해지면서 그 피해가 무주택자와 서민층에 돌아갈 수 있다. 집을 팔고 싶어하는 다주택자를 위해 한 채에 한해 일시적으로 양도세 감면 혜택을 주거나 6억원 초과 아파트도 임대주택으로 등록할 수 있게 하는 등 다주택자들의 퇴로(退路)를 더 열어 줄 필요가 있다. 주택 임대사업자 등록을 꺼리게 만드는 '건강보험료 폭탄'에 대한 손질도 있어야 하겠다.
대다수 전문가는 부동산 투기를 잡는 정공법은 보유세를 올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실 우리나라 주택 관련 세제는 기형적이다. 집값 대비 보유세율은 0.2% 정도로 1% 안팎인 선진국의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반면 취득세가 집값의 3.5%에 달하고, 양도 차익 절반가량을 세금으로 내야 하는 등 거래세 부담은 선진국보다 훨씬 과중하다. 부동산 투자 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꾸려면 '보유세 인상, 거래세 인하' 방향으로 주택 관련 세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소수 특정 계층을 겨냥하는 정책은 과감하게 내지르면서 국민 다수를 설득해야 하는 개혁 과제는 뒤로 미루는 행태를 보여 왔다. 부동산 시장의 혼란을 줄이고, 다주택자의 선택을 촉진하기 위해선 정부가 중장기 주택 공급 확대 계획과 더불어 주택 세제 개혁 로드맵을 하루빨리 제시해야 한다.
김홍수 기자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