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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과 반역에 이르는 길
사무엘상 13:1~15:35
기억절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 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 15:22).
요지
핑계는 반역과 파멸의 앞잡이이다. 반역에 이르는 길은 핑계와 합리화와 소위 “그럴듯한” 죄들로 포장되어 있다. 그러나 결국은 재난과 파멸이다. 우리는 이번 주 교과에서 비극의 길로 발길을 내딛는 사울을 보게 된다.
개요
사울의 최초의 실수(삼상 13:1~14)
교만이 앞설 때(삼상 13:15~14:46)
거짓 경건은 반역이 됨(삼상 14:47~15:35)
서론
지도력의 위기. 고대 이스라엘은 나라이면서 동시에 교회였다. 교회와 국가의 연합은 백성들이 하나님을 그들의 궁극적인 통치자로 인정하는 한 잘 운영되었다. 하나님의 계획은 이스라엘 중에 있는 인간 사사(士師)들과 선지자들이 당신께서 주시는 특별한 지시 하에 행정자의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구했을 때, 그와 같은 통치자는 절대 권력을 행사하고 하나님의 지배와 지도에 의존하는 일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경고를 받았다.
이번 주 교과는 왕이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는 행동을 하고자 선택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 준다. 교과를 연구할 때, 다음과 같이 자문해 보라. 왜 신정 정치(하나님에 의한 통치)는 절대 왕권의 개념과 조화되지 않는가? 하나님께서 사울을 택하셔서 왕이 되게 하시고 그가 당신의 지시를 따르는데 실패하였을 때는 제거하셨다. 그렇다면 그분께서 명백히 이스라엘을 위하여 염두에 두신 왕권은 무엇이었는가? 오늘날 교회의 전망에서 볼 때, 이번 주 교과에는 세계 도처에 있는 교회 지도자들을 위하여 어떤 기별이 포함되어 있는가? 대부분의 교인들을 위해서는 어떤 기별을 담고 있는가?
사울의 최초의 실수(삼상 13:1~14)
길르앗 야베스에서 거둔 사울의 승리는 이스라엘의 사기를 진작시켰으며 교활한 블레셋을 대적하기 위하여 백성들을 그의 주변으로 모을 수 있는 명성을 그에게 가져다주었다. 그들이 이스라엘을 보다 신속하게 공격하지 않았던 것이 기이하다. 왕을 선출하는 것은 정확히 말해서 굴복을 표하는 것이 아니다. 사울은 그의 부하들을 두 무리로 나누어 나머지는 집으로 돌려보냈다. “여기서 위험한 과오를 범하였다. 사울의 군대는 최근의 승리로 희망과 용기가 충만하였으므로 만일 사울이 곧 이스라엘의 다른 원수들을 대항하여 나아갔더라면 국가의 자유를 위해 호된 공격을 가할 수 있었을 것이다”(부조와 선지자 하권, 305).
어떤 사건이 길갈에 모이는 일을 촉진시켰는가?(삼상 13:2~4).
답:
여기서 사울의 용감무쌍한 아들 요나단이 처음으로 소개된다. 사울의 통치 2년에 요나단은 게바의 수비대를 공격하여 괴멸시켰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음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하였는가?(삼상 13:5~9).
블레셋 사람들(5절)
이스라엘 사람들(6,7절)
사울(8,9,12절)
이것은 뻔뻔스러운 이스라엘 백성들에 의해 도모된 반역이라는 “최후의 하찮은 일”이었다. 새 영어 성경은 “이스라엘의 이름이 냄새를 내었다”(삼상 13:4)고 말한다. 블레셋은 군대를 소집하여 공격할 준비를 갖추었다.
길갈에 모인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사울은 미리 무슨 지시를 하였는가?(삼상 13:8,9, 10:8).
답:
사울은 그의 부하들이 당황해 하는 모습을 보고 하나님의 축복과 인도하심의 필요를 절실히 느꼈다. 일찍이 사무엘은 한 주일을 기다려서 행동하라고 그에게 지시하였다. 그러나 사울은 그의 군대를 준비시키지 못했으므로, 그들은 이제 그를 떠나기 시작하였다.
인간의 계획이 하나님의 계획을 대신함. “선지자가 정한 기간이 완전히 차기도 전에 그는 그 지체함에 참지 못하고 그를 두르고 있는 괴로운 환경에 스스로 낙담하였다. 사울은 사무엘이 와서 거행할 그 예배에 대하여 백성들이 준비하도록 충실히 노력하는 대신에 불신과 불길한 예감에 빠졌다. …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이 저희 마음을 살피고 죄를 회개하여 그 제물이 당신 앞에 가납되어 원수를 정복하려는 저들의 노력에 당신의 축복이 같이할 수 있게 되기를 요구하셨다. 그러나 사울은 참을 수 없이 되었고 백성들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하는 대신에 저희를 인도하고 지도하도록 선택한 왕만 바라보고 있었다.”(부조와 선지자 하권, 307).
길갈에 있는 사울의 군대와 만나기로 한 사무엘의 지체는 사울에게는 시험하는 시간이었다. 사무엘상 13장에 기록된 다음의 행동 또는 진술에는 어떤 부정적인 품성의 특성이 드러나고 있는가?
사울이 사무엘을 나가 맞으매(10절)
“당신은 정한 날에 오지 아니하고”(11절)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치 못하였다”(12절)
“부득이 하여”(12절)
내가 “번제를 드렸나이다.”(12절)
모든 죄 가운데 가장 심각한 죄 하나는 경건을 가장한 불순종이다. “사울은 참된 경건의 부족을 종교적 형식에 대한 열심으로 메우고자 하였다”(부조와 선지자 하권, 311). 낙담하는 부하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기 위하여 제사장의 역할을 찬탈하는 것, 곧 신성한 예배에 대한 하나님의 명백한 요구를 무시하는 것은 최고의 참람이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자격이 없음을 스스로 드러내었다.
환경에 상관없이 하나님을 순종하라.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순종하는 일 외에는 아무런 안전이 없다. 하나님의 모든 허락들은 믿음과 순종을 조건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명령에 순응하지 아니하면, 성경의 부요한 허락들은 우리에게 성취되지 아니한다. 우리는 일시적 감정을 따르지도, 사람들의 판단을 의지하지도 말고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고 우리 주위의 환경이 어떠하든 상관하지 말고 하나님의 명확한 계명을 따라 행할 것이다”(부조와 선지자 하권, 310).
이 때 사무엘은 어떤 엄숙한 기별을 사울에게 전했는가?(삼상 13:13,14).
답:
이스라엘은 그들의 군주정치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통치 하에 있음을 기억하여야 하였다. 그분의 뜻에 복종하는 한, 그들은 번영할 것이며 하나님은 그들의 방벽이 되실 것이었다. 사울이 겸손의 정신과 순종하고자 하는 열망을 나타냈더라면, 그의 나라는 영원히 섰을 것이다.
그대 자신에게 절대 정직하라. 그대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기 때문에 실망과 손실을 당한 적이 있는가?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사 53:6). 고백하고 회개할 때, 우리는 전적으로 용서받고 가납될 수 있다(사 55:7 참조).
교만이 앞설 때(삼상 13:15~14:46)
그들의 원수인 블레셋과의 관계에서 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분에 대한 묘사와 설명을 주목하라(삼상 13:19~21).
답:
예레미야 47장 4절과 아모스 9장 7절에 따르면, 블레셋 또는 “해양 족속”들은 갑돌(크레테)에서 왔다. 그들은 해안의 평야지대를 거침없이 지배하고, 전쟁술에 능하며 철 병기를 독점함으로써 이스라엘에게는 두려운 적이었다. 이 다소 우울한 상황은 사무엘 13장에 묘사된 요나단의 승리를 한층 빛나게 해준다. 사무엘상 13장 21절에 대한 모호한 해석(영어 번역본에 나타나있음-역자 주)은 많은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였다. 그러나 라기스와 다른 곳에서의 발굴 결과 핌(pim: 흠정역에서는 ‘file’로 번역됨)이라는 말은 정확하게 2/3세겔 무게에 해당함을 밝혀 주었다. 표준개역은 “보습이나 괭이를 벼리는 값은 1핌이며 도끼나 쇠스랑을 벼리는 값은 1/3세겔이었다”고 번역한다.
사무엘상 14장 1~14절에서 요나단의 대담무쌍함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라(가능하면 최신 번역서를 읽어라), 이 이야기는 다음 인물들에 관해 무엇을 암시해 주는가?
사울(2절)
요나단(6,12,13절)
그의 병기 든 자(7,13절)
“요세푸스는 요나단과 그의 병기 든 자가 블레셋의 전초 부대로 접근해서 그 곳에 도달했을 때는 새벽이었으므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직도 자고 있었다고 생각한다(고대사 6장 2절). 14장의 이야기는 이른 아침이었다는 견해를 확증해 준다(15,16,20,23,24~28,30,31,45절 참조). 두 이스라엘 사람이 벼랑으로 올라가기 위해서 밤까지 기다렸는지 아니면 그곳을 오르는데 수분이 걸렸는지는 언급되고 있지 않다. 그들은 분명히 불시의 습격으로 그 요새를 완전히 점령하였다. 왜냐하면 블레셋의 수비대에 극도의 혼란이 있었기 때문이다”(본교 성경 주석 2권, 515).
사울은 다소 극단적인 어떤 조치를 내렸는가? 그리고 그 결과는 무엇이었는가?(삼상 14:24, 31~33).
답:
이처럼 경솔한 명령을 내린 사울의 동기는 기껏해야 하나님의 계속적인 은총을 보증하기 위한 그릇된 경건이었다. 그는 군대의 사령관이었기 때문에, 음식물과 보급품이 잘 공급되는지 살피는 것이 그의 의무였다. 그 대신 그가 발한 저주는 군사들에게 허약함과 혼란을 가져왔으며, 급기야는 하나님의 명백한 금령(레3:17 참조)중 하나를 무모하게 범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의 아버지의 조치에 대하여 나타낸 요나단의 반응을 묘사하라(삼상 14:29,30).
답:
“사울의 군사들이 성취해야 할 군사적 목표는 잘 먹은 군사들이 감당하기에도 벅찬 과업이었다. 그러므로 그가 이끌고 있는 것과 같은 그나마 잘 먹지도 못한 훈련되지 않은 민병대에게는 너무도 엄청난 일이었다. 이같은 경험은 사울에게 매우 큰 교훈이 될 수 있었으나, 그는 여전히 비난하는 데 재빨랐으며 자신의 평판을 유지하기에만 급급하였다. 그러나 일단 그가 교만의 유사(流砂)에 발을 내딛자, 거기서 벗어나려는 허약하고 우유부단한 시도는 그를 더욱 깊이 빠져들게 할 뿐이었다”(본교 성경 주석 2권, 517).
명백히 하나님께서는 사울의 맹세를 인정치 않으셨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그에게 대답하기를 거절하셨기 때문이다(삼상 14:37). 확실히 하나님께서는 요나단을 통하여 그처럼 기적적으로 원수들을 패주시킨 다음에 그를 죽이고자 하는 사울의 의도를 승인치 않으셨다.
사울과 요나단 사이의 대화와 요나단을 구원하기 위한 백성들의 중재를 복습하라(삼상 14:43~45). 이 사건은 요나단의 품성에 대해 무엇을 말해 주는가?
답:
거짓 경건은 반역이 됨(삼상 14:47~15:35)
사무엘상 14장의 마지막 부분은 사울의 업적과 그의 가족들의 이름과 그의 군대 장관을 언급한다. 이같은 사실들은 대개 언급되고 있는 왕에 대한 설명 끝에 나타난다. 그것은 마치 해설자가 사울에게 주어진 최후의 기대에 대한 슬픈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이것이 이스라엘 초대 왕의 통치의 마지막이라고 암시하는 것 같다. 다시 한 번 더 선지자 사무엘은 주께로부터 온 지시를 가지고 왕에게로 왔다. 다시 한 번 더 사울에게는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이스라엘을 인도할 수 있는 그의 능력을 증명할 기회가 주어졌다.
아말렉은 어떤 사람들인가? 왜 그들을 멸하라는 가혹한 명령이 주어졌는가?(삼상 15:1~3; 출 17:8~16; 신 25:17~19 비교).
답:
3절에 사용된 “진멸하다”는 말을 나타내는 히브리어는 실제로는 “금지하다”는 뜻이다. 즉 멸망시킴으로 신에게 성별하다는 뜻이다. 온 백성과 그들의 모든 소유를 근절시키라는 것은 신성한 명령이었다. 나중에 다른 나라들이 이스라엘에게 가혹한 심판을 베풀기 위해 하나님에 의해 사용되었던 것과 꼭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은 사악한 아말렉에게 심판을 베풀기 위한 하나님의 손에 들린 도구였다.
하나님께서 처벌하시는 이유. “악인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사람들을 범죄 하기에 담대하게 만드나 그들의 형벌은 오래 참으셨기 때문에 확실성과 무서움이 감소되지는 않을 것이다. … 여호와께서는 복수하기를 기뻐하지 않으시는 반면에 당신의 율법을 범한 자들에게 형벌은 집행하실 것이다. 지상의 거민들을 완전한 타락과 파멸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여호와께서는 이 일을 할 수밖에 없으시다. 일부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여호와께서는 죄에 굳어진 자들을 끊어 버리셔야만 하였다” (부조와 선지자 하권, 318,319).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어떤 기별을 주셨는가? 그는 어떻게 반응했는가?(삼상 15:11).
답:
새 흠정역은 “내가 크게 후회하노니”라고 번역하며 오늘의 영어 성경은 “유감이다”라고 번역한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하는 그런 의미에서 후회를 하시지는 않는다. “하나님의 후회는 환경과 관계의 변화를 의미 한다”(부조와 선지자 하권, 321). 새 영어 성경은 “사무엘이 화가 났다”고 말하며 새 미국 표준역은 “사무엘이 괴로워하였다”고 말한다. 의심할 바 없이 그가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음에는 분노와 실망과 좌절과 슬픔이 교차되었을 것이다.
다음 성경절에서 그의 죄와 연약성을 드러내는 사울의 행동이나 진술을 찾아라(삼상 15:12,13,15, 20,21).
답:
사무엘상 15장 22,23절에서 사무엘이 사울에게 한, 자주 인용되는 기별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연구하라 그리고 다음 성경말씀과 비교하라.
사 1:11~17
미 6:6~8
사람들이 자신들의 선행 때문에 당신께서 누그러지실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형식과 의식(儀式)을 통해 경건한 채 할 때, 그리고 그러면서도 마음은 그분에게서 멀리 떠나 생애는 불순종과, 믿음 대신에 참람됨을 나타낼 때 하나님께서는 이를 불쾌히 여기신다. 고대의 희생 제도는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었지 그분과의 관계를 대신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와 같이 오늘날에도 단순한 신앙 고백. 곧 그리스도와의 구원의 관계를 맺음이 없이 종교를 흉내 내는 것은 하나님께 가납될 수 없다. 앤드류 블랙우드는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종교가 대용물이 되는 사람은 인생의 폭풍우를 만날 때 그 안에서 피난처를 찾지 못한다.”
사울은 즉시 그의 죄를 고백하였다. 그가 회개한 동기는 결과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무엇으로 알 수 있는가?(삼상 15:24~30).
답:
“사울은 우상승배와 사술을 진압하는 데 큰 열심을 나타내었으나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함으로 참으로 사단에게 감동되어 사술을 행하는 자와 같이 하나님을 반대하는 동일한 정신으로 행하였으며 책망을 받을 때에 더욱 완고하게 반역하였다. 만일 사울이 드러내 놓고 우상 숭배자들과 연합하였더라면 그는 하나님의 성령을 그처럼 크게 모독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부조와 선지자 하권, 329,330).
다음 진술에 동의하는가?
* 나는 다소 불순종한 일을 행할 때에라도 여전히 하나님께 가납될 수 있다.
* 그리스도께서 오직 은혜로 나를 구원하셨으므로, 그분의 율법에 엄격하게 일치 할 필요가 없다.
* 세상 지도자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항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는 표이다.
* 영적 원수들은 하나님의 뜻과 능력에 전적으로 의지함으로써만이 정복될 수 있다.
연구와 명상
부조와 선지자 하권, 305~331쪽에서 “사울의 외람됨”과 “사울이 버림을 받음” 장을 읽어라.
요약
반역에 이르는 길은 외관상 흉하지 않은 죄, 곧 우리의 방법을 하나님의 방법보다 우위에 두거나 우리가 좋아하는 죄는 그렇게 나쁜 것이 아니라고 합리화하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점차 모르는 사이에 참람은 불순종으로, 교만은 고집으로 굳어져서 결국은 반역과 파멸로 끝나게 된다. 이러한 경고들은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고전 10:11)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