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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이기는 힘을 얻다
이기는 길
도구주의
인간은 심리로 흥하고 물리로 망한다. 거짓은 사람을 모아 권력을 만든다. 각종 음모론, 초능력, 종교, 주술, 사이비가 그러하다. 그게 사람을 무너뜨리는 심리공격이다. 성찰, 진정성, 유기농, 생태주의, 정치적 올바름 공격도 마찬가지다.
처음은 좋은 의도로 시작하지만 사람을 모아 사설권력을 만들려는 의도를 들키면서 맛이 가기 시작한다. 사람을 모은 다음에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심리공격으로 잠시 주목받을 수는 있지만 사람을 계속 붙잡아놓을 수는 없다.
진짜는 물리로 이긴다. 확실한 힘의 우위를 보여줘야 한다. 힘을 쓰려면 도구가 필요하다. 지식도 도구다. 막연히 내가 옳으니까 따르라고 사람을 윽박지르지 말고 물리적으로 이겨보여야 한다. 효율을 보여주면 사람은 따르기 마련이다.
도덕에서 힘이 나오는게 아니라 힘을 조절하는 힘이 도덕이다. 작은 일에 힘을 쓰면 폭력이고 큰 싸움을 앞두고 힘을 비축하면 도덕이다. 큰 일을 하는 것은 지식의 힘, 장기전을 하는 것은 신뢰의 힘, 동료를 지키는 것은 의리의 힘이다.
도구의 관점에는 세 가지 원칙이 필요하다. 길, 힘, 법이다. 길을 찾고, 힘을 얻고, 법을 지킨다. 북한은 길이 막혔는데 억압적인 법만 가지고 나라가 돌아가지 않는다. 정의당은 길만 찾고 정작 그 길을 장악하지 않아서 남 좋은 일 시킨다.
연결하고, 장악하고, 복제한다. 무엇을 하든 그렇다. 도구를 알고, 도구를 쥐고, 도구로 복제한다. 총을 알고, 총을 쥐고, 총을 갈긴다. 신대륙을 발견하고, 신대륙을 장악하고, 동료를 부른다. 기술을 배우고, 공장을 세우고, 대량생산 한다.
창작자가 뼈를 깎는 노력으로 성공하기는 개뿔 포드시스템으로 대량생산한다. 원리를 알고 핵심을 거머쥐기가 어렵지 일정한 경지에 오르면 만화공장 차려놓고 자기표절을 반복한다. 스타일만 완성하면 그 다음은 일사천리로 가는 거다.
도구의 관점을 얻어야 한다. 사람을 갈아넣지 말고 도구를 갈아야 한다. 처세술 코너에 유행하는 노력타령도 사람을 압박하는 삽질이다. 도구가 없는 자가 사람을 쥐어짜서 무슨 수를 내보려고 한다. 아기가 급하면 엄마를 찾는 행동이다.
- 이기는 길을 알다. 답은 내부에 있다.
- 이기는 힘을 얻다. 유체의 자발성이 이긴다.
- 이기는 법을 낳다. 마이너스로 복제한다.
이기는 길은 닫힌계 안을 본다. 원인은 안에 있는데 인간은 밖에서 겉돈다. 환자의 배를 째지 않고 밖에서 부적을 쓴다. 이기는 힘은 유체의 자발성이다. 유체는 강체에 없는 하나가 더 있다. 이기는 법은 마이너스를 행하여 대량생산한다.
낳는 것은 마이너스다. 마이너스는 몸에서 빠져나간다. 플러스는 배우는 단계다. 어린이는 어른에게 받는 플러스다. 성인이 여전히 플러스에 잡혀 있다면 사육되고 있다. 노예가 되어 있다. 주는 것은 마이너스다. 권력을 거머쥔 자가 준다.
마이너스는 복제되므로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다. 플러스는 받으려고 해도 주머니가 없다. 감당할 실력이 되지 않으면 줘도 받지 못한다. 효율적으로 줄 수는 있는데 효율적으로 받을 수는 없다. 받은 것이 쌓여 공간을 잡아먹기 때문이다.
포드시스템은 동력을 확보하고 효율적으로 나눠준다. 이는 천재들이 쓰는 방법이다. 핵심을 장악한 다음 모든 것에 적용한다. 스티브 잡스는 스마트폰을 만들고 앱을 무한복제한다. 휴대폰 하나로 시계, 달력, 카메라, 손전등을 대신한다.
좁쌀을 효율적으로 뿌리기는 쉬운데 밭에 뿌려진 좁쌀을 효율적으로 회수하기는 어렵다. 탱크에 물을 채운 다음 노즐을 조절하여 효율적으로 뿌릴 수 있다. 엎어진 물을 주워담을 수 없고 복제할 수도 없다. 복제는 마이너스만 가능하다.
비가역성
우리는 대칭 위주로 사유하지만 세상은 비대칭이다. 돈을 벌기는 어렵고 쓰기는 쉽다. 골을 넣기는 어렵고 먹기는 쉽다. 사귀기는 어렵고 헤어지기는 쉽다. 우주는 마이너스다. 플러스는 인간이 만들었거나 아니면 마이너스가 깔때기에 모인 것이다.
설악산에서 굴러온 돌이 모여서 양양해변에 몽돌해변을 이루었다. 누가 돌을 해변에 모았지? 아니다. 설악산이 돌을 굴린 것이다. 결과적으로 모인 셈이지만 돌이 양양 앞바다를 사모하여 제 발로 찾아온 것은 아니다. 돌은 설악산에서 미끄러졌다.
마이너스는 쉽기 때문에 누군가 그 지점을 장악하면 크게 성공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성공한 사람은 모두 마이너스법을 썼다. 마이너스를 하려면 닫힌계를 만들고 압력을 가하여 힘이 집단 전체에 전달되게 해야 한다. 로마군과 몽골군이 해냈다.
열은 뜨거운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 흐른다. 뜨거운 것으로 차가운 것을 설명할 수 있지만 차가운 것으로 뜨거운 것을 설명할 수 없다. 뜨거운 것은 대류, 복사, 전도로 설명할 수 있지만 차가운 것은 그것이 없으므로 반대편을 가리키기만 할 수 있다.
결정자 - 메커니즘이 있어 설명할 수 있다. 머리, 전체, 엔진, 안, 원인
전달자 - 메커니즘이 없어 설명할 수 없다. 꼬리, 부분, 바퀴, 밖, 결과
엔진으로 바퀴를 설명할 수 있지만 바퀴로 엔진을 설명할 수 없다. 눈을 뜬 사람은 장님의 세계를 알지만 장님은 눈 뜬 사람의 세계를 모른다. 강자는 약자의 심리를 알지만 약자는 강자의 심리를 모른다. 약자가 강자에 깨지는 이유다. 공평하지 않다.
원인 - 내부는 대칭의 공유를 지렛대 삼아 외부로 나가는 자발성이 있다.
결과 - 외부는 대칭의 지렛대가 없어 힘을 쓰지 못하므로 자발성이 없다.
우리는 원인과 결과를 대등하게 여기지만 다르다. 원인이 내부라면 결과는 외부다. 결정은 안에서 밖으로 방향을 튼다. 안에서 밖으로 나올 수는 있어도 밖에서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안에는 압력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원인 측에 결정권이 있다.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힘은 내부 자원의 공유로 조달된다. 외부는 대칭이 깨지고 공유가 풀렸으므로 들어갈 수 없다. 힘이 없다. 풍선의 공기가 빠져나갈 수는 있어도 들어올 수는 없다. 사람이 풍선을 부는 것은 허파가 더 강한 풍선이기 때문이다.
풍선만 풍선을 불 수 있다. 압력만 압력을 가할 수 있다. 척력만 힘이다. 마이너스만 존재한다. 움직임을 내부에 숨긴 것만 다른 것을 움직이게 할 수 있다. 돌고 있는 엔진만 바퀴를 돌릴 수 있다. 숨은 변화가 전시될 뿐 새로운 변화는 우주에 없다.
원자는 기능을 가질 수 없다. 물질에 성질을 부여할 수 없다. 장기는 기물과 행마법이 있지만 우주는 기물이 행마법이다. 스포츠는 경기장과 선수와 플레이가 있지만 자연은 경기장이 선수와 플레이를 겸한다. 공간의 장과 물질 입자와 파동은 같다.
국어사전
우리는 자동차와 비행기를 구분할 줄 안다. 자동차와 비행기가 있다면 손으로 가리켜 하나를 지목할 수 있다. 그 정도로 자동차를 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운전할 수 있어야 아는 것이다. 우리는 가리키기만 해도 설명이 된다고 믿는다. 한심한 일이다. 인류는 국어교육에서 막혔다.
원인 : 어떤 사물이나 상태를 변화시키거나 일으키게 하는 근본이 된 일이나 사건. [국어사전]
국어사전은 가리키기로 설명을 대신한다. 영어사전도 마찬가지다. 인류의 수준문제다. 국어가 가장 중요한데 이 모양이다. 국어사전이 원인의 설명으로 제시한 '상태의 변화'는 결과다. 결과를 일으키는 근본이 원인이라고? 그런데 그 근본이 뭐냐고? 그것은 설명하지 않고 뭉갠다.
생텍쥐뻬리의 어린왕자 한 장면이다. '네가 그려달라는 양은 상자 속에 있어.' 그는 양을 그리지 않고 단지 그림 속의 상자를 가리킬 뿐이었다. '악은 뭐지?' '선의 반대란다.' '그럼 선은 뭐지?' '악의 반대란다.' 이건 설명이 아니다. 그냥 가리킨 것이다. 그런데 국어사전이 이 모양이다.
큰 것으로 작은 것을 설명해야 한다. 나를 설명하려면 내가 포함된 나보다 큰 것을 들고 와야 한다. 내가 소속된 집단을 밝혀야 한다. 활은 화살에 종속된다. 활로 화살을 설명한다. 그러나 활은 화살에 소속되지 않는다. 화살로 활을 설명할 수 없다. 활은 전쟁으로 설명해야 바르다.
화살 - 활로 쏘아보내는 살대
활 - 휘어진 막대의 탄력으로 화살을 날려보내는 도구.
국어사전은 활을 '화살을 메겨 쏘는 기구'로 설명한다. 화살로 활을 설명하면 안 된다. 이런 식이라면 자동차는 '바퀴를 굴려서 가는 기구'라고 할 것이고 사람은 '두 발로 걸어다니는 동물'이라고 할 것이다. 곤란하다. 모든 존재는 탄생의 자궁이 있다. 아기는 자궁으로 설명해야 한다.
결정자 - 엔진은 결정한다
전달자 - 바퀴는 전달한다
머리는 결정하고 꼬리는 전달한다. 원인은 결정하고 바퀴는 전달한다. 활은 결정하고 화살은 전달한다. 엔트로피의 비가역성이 성립하므로 결과로 원인을 설명할 수는 없다. 결정자 위주로 설명해야 한다. 전달자는 결정자로 설명하고 결정자는 상부구조로 올라가서 설명해야 한다.
밥으로 똥을 설명할 수 있으나 똥으로 밥을 설명할 수 없다. 밥이 소화되고 남은 것이 똥이다. 똥 만드는 것이 밥이라고 하면 제대로 된 설명인가? 똥으로 밥을 가리킬 수 있을 뿐 설명할 수 없다. 밥은 똥을 만들지만 똥은 밥을 만들지 않는다. 가리키기와 설명하기는 잘 구분해야 한다.
압박이론
에너지는 팽창한다. 팽창하지 않는 경우는 막힌 것이다. 에너지가 팽창하다가 서로 충돌하여 그 충돌하는 힘에 가둬져 있는 것이다. 중력은 에너지가 아니다. 팽창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한동력 아저씨가 실패하는 이유다. 중력을 힘으로 착각한다.
팽창의 압박 때문에 세상은 일방향이다. 빛에서 어둠으로 가고, 전체에서 부분으로 가고, 원인에서 결과로 가지만 그 반대는 없다. 진보는 팽창하고 보수는 팽창하지 않는다. 진보의 팽창으로 보수를 설명할 수 있으나 보수는 진보를 설명할 수 없다.
총 : 총알을 쏘는 것이라고 하면 틀린 설명이다.
총알 : 총을 쏘면 총구로 나오는 것이라고 하면 맞는 설명이다.
총은 화약의 폭발력으로 총알을 밀어낸다. 총을 설명하려면 보다 큰 개념인 화약을 들고 와야 한다. 동력원이 답이다. 내부 압력으로 설명해야 바르다. 국가는 집단을 위협하는 환경의 압박으로 설명해야 한다. 국민, 영토, 주권을 말하지만 한심하다.
구성소를 주워섬기는 것은 설명이 아니다. 인류를 설명하라면 남자와 여자라거나 혹은 산 자와 죽은 자라거나 혹은 황인, 백인, 흑인이라고 말할 것인가? 자동차는 버스와 승용차와 트럭이라고? 구슬을 열거하지 말고 구슬을 꿰는 실을 말해야 한다.
국가란 무엇인가? 환경의 압박에 맞서는 집단적 의사결정의 최대 단위다. 아기가 탄생하기 전에 자궁이 먼저 있었고 국가가 탄생하기 전에 환경의 압박이 먼저 있었다. 천재지변과 전쟁과 굶주림의 압박이 먼저 있었다. 그리고 인간이 맞대응 했다.
에너지 중심의 사고로 가야 한다. 압박하는 것이 원인이다. 실을 풀되 실마리를 잡고 한 방향으로 계속 풀듯이, 또 물탱크에 노즐을 두고 밸브를 조절하듯이 전체를 하나의 핵심에 꿴 다음 일관되게 설명해야 바르다. 무엇이든 내부에 압박이 걸려 있다.
거룻배는 노가 압박하고, 범선은 바람이 압박하고, 증기선은 터빈이 압박한다. 나무는 생장의 압박이 있고 종은 생태적 지위를 찾아가는 진화압이 걸려 있다. 시장은 금리의 압박이 있고 정치는 민심의 압박이 있다. 우주 안에 압박이 없는 것은 없다.
돌려막기 설명,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 설명 곤란하다. 결과로 원인을 설명한다면 순환의 오류다. 이는 모든 대칭되는 것에 해당된다. 어미로 자식을 설명할 뿐 자식으로 어미를 설명할 수 없다. 단 가리킬 수는 있다. 가리켜놓고 설명했다고 착각한다.
게임이론
세상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이 원인인데 인류 중에서 원인이 무엇인지 설명하려고 시도한 사람은 없다. 치명적이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게 다 원인을 배우는 것이다. 무엇을 질문하든 원인을 질문하는 것이다. 과학은 '왜?'라는 물음에 답하는 것이다. 그게 원인을 묻는 것이다.
원인이 뭐냐고? 원인에 대해서는 위키피디아에 항목조차 없다. 나무위키도 부실하다. 영어문서로 검색해도 인과율만 검색된다. 인류의 지식 중에 가장 중요한 지식이 원인에 대한 지식인데 인류는 도무지 원인을 사유하지 않는다. 원인은 결과를 가리키는 도구로만 사용한 것이다.
원인 : 내부 결정자
결과 : 외부 전달자
사건은 원인과 결과의 대칭이다. 문제는 대칭적 사고의 함정이다. 인간은 대칭에 속는다. 에너지가 비대칭이므로 에너지가 태워진 우주 안의 모든 것이 비대칭인데 말이다. 그냥 돌은 대칭이지만 중력이 작용하면? 관성력이 잠복하면? 우리는 내부에 숨은 에너지 압박을 무시한다.
원인이 사건의 엔진이다. 결과는 전시될 뿐이고 원인이 결정한다. 엔진 내부에 의사결정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 메커니즘을 설명해야 한다. 인과율이 아니라 원인율이다. 원인이 보이지 않으므로 눈에 보이는 결과로 돌려서 말할 뿐 원인이 우리가 알고자 하는 것의 백 퍼센트다.
감기의 원인이 되는 200가지 바이러스가 있다. 열이 나고 기침이 나는 것은 결과다. 바이러스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열과 기침으로 감기를 설명하지만 본질은 바이러스다. 열과 기침은 감기의 흔적이지 감기가 아니다. 자동차가 지나간 다음 남은 바퀴자국은 자동차가 아니다.
인류의 수준은 자동차를 '바퀴 자국을 남기고 떠난 그것'으로 설명하는 정도다. 우리가 아는 원인은 '결과를 일으키는 작용'이다. 대개 결과를 먼저 확인한 다음 반대쪽에서 원인을 찾는다. 이상하다. 원인이 먼저 작용하는데 왜 원인을 먼저 찾지 않을까? 모든 원인의 원인이 먼저다.
하나의 사건이 다른 사건을 일으킬 때 둘의 관계가 인과관계다. 검색하면 이렇게 나온다. 그 일으키는게 뭐냐고? 기관차가 객차를 끌고간다면 기관차 내부에 동력이 있다. 원인이 결과를 일으키는 동력은? 모든 존재는 자궁이 있고 내부에는 압박이 있다. 자궁의 압박이 원인이다.
화살은 활이 밀어서 과녁까지 간다. 활은 사냥꾼이 압박한다. 사냥꾼은 배고픔이 압박한다. 배고픔은 인체의 생명활동이 압박한다. 생명활동은 미토콘드리아가 담당한다. 궁극적으로는 미토콘드리아 안에서 화학적 위치에너지가 압박하고 있다. 우주는 커다란 자궁이며 압박한다.
압박은 위치에너지다. 위치에너지는 이기는 힘이다. 상호의존성 게임이 걸려 있다. 감기에 걸린 이유는 바이러스가 이겼기 때문이다. 사람이 죽는 이유는 환경에 졌기 때문이다. 바람이 부는 이유는? 고기압이 이겼기 때문이다. 물이 흐르는 이유는 중력의 압박이 이겼기 때문이다.
우주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의 모든 원인은 그것이 게임에 이겼기 때문이다. 우주는 게임이다. 세상을 게임으로 보는 눈을 얻어야 한다. 게임에는 압박이 걸려 있다. 게임이론은 경찰의 압박이 죄수로 하여금 결정하게 한다. 관객의 압박, 시청자의 압박, 유권자의 압박이 있다.
이기는 힘
비용압박
우리가 실패하는 이유는 눈에 보이는 전달단위 중심의 사고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물질은 전달단위다. 형태가 보인다면 사건이 진행되어 중요한 의사결정이 일어난 다음이다. 암세포가 현미경에 보인다면 발병한 다음이다.
결정단위(원인) - 에너지
전달단위(결과) - 물질
사건은 닫힌계 안에서 일어난다. 계가 닫혀서 내부가 보이지 않는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다. 닫힌계 안에서 충돌한 두 방향의 힘은 파동의 간섭에 의해 통합된다. 충돌한 두 방향의 힘 중에 하나가 이기고 하나가 진다.
자연의 어떤 결정은 비용이 든다. 비용조달이 가능한 쪽으로 의사결정이 일어난다. 대칭된 두 파동이 통합되면 대칭의 코어가 이동한 만큼 의사결정비용으로 지불된다. 지는 쪽이 깨져서 위치에너지를 잃은 만큼이 비용이다.
큰 것이 유지되고 작은 것이 깨진다. 그것이 방향전환의 최소비용, 최소액션, 최단경로, 최고효율이다. 큰 것을 깨려면 비용이 조달되지 않아 의사결정에 실패한다. 내부의 파동이 합쳐지며 비용조달의 최적경로를 찾아낸다.
무엇이 원인인가는 무엇이 이겼는가와 같다. 화살이 날아간 이유는 활이 화살을 이겼기 때문이다. 야구공이 날아간 이유는 방망이가 공을 이겼기 때문이다. 효율이 비효율을 이긴다. 화살이 활을 날려버린다면 비효율이다.
귀족만 모아 군대를 만들면 비용이 지불되지 않는다. 누가 목숨을 지불하겠는가? 신분상승을 원하는 사병이 자신의 목숨을 지불한다. 서울대 출신만 모이면 의사결정에 실패한다. 권력과 이득 + 리스크의 교환이 필요하다.
권력을 쥔 자는 리스크를 떠넘긴다. 대장은 권력이 있으므로 안전하다. 죽는 것은 병사다. 승리하면 병사는 전리품의 이득을 얻지만 지면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리스크 부담이 있다. 권력과 이득을 동시에 추구하면 망한다.
보통은 개인을 지목하여 '이게 다 누구 때문이다' 하고 사람탓 하기 좋아하지만 개인은 전달자에 불과하다. 개인의 잘못된 행동은 대개 배후세력이 결정한 것이다. 히틀러 배후에 히틀러를 압박한 더 많은 히틀러들이 있다.
궤도이동
자연의 움직이는 것은 정해진 궤도를 타고 간다. 빛은 최단거리로 이동한다. 유체는 간섭하여 이기는 코스를 찾아낸다. 최소시간, 최단경로, 최소액션, 최소비용, 최대효율을 따른다. 거기서 궤도가 만들어진다.
변화 .. 유체의 내부 모순에 의한 자발적 의사결정 - 결정한다.
이동 .. 강체의 외부 작용에 의한 정해진 궤도운동 - 전달한다.
변화와 이동을 구분해야 한다. 닫힌계 내부 압박에 의한 자발적 변화가 진짜고 외부 작용에 의해 이동은 엄밀히 말하면 변화가 아니다. 굴러가는 당구공은 궤도가 있고 방향전환이 없으므로 의사결정이 아니다.
자연은 이기는 길을 간다. 최소시간, 최단경로, 최소액션, 최소비용, 최대효율이 이긴다. 과학자들은 우연으로 설명하기 좋아하지만 틀렸다. 이기는 길은 필연이다. 우연히 된게 아니고 될때까지 시도해서 된다.
생물의 진화를 우연으로 설명하는 것은 생태적 지위와 진화압의 존재를 모르기 때문이다. 주사위의 어떤 눈은 우연이지만 그 눈이 나올때까지 던지는 것은 필연이다. 변화는 필연이고 장소와 타이밍만 우연이다.
사회에는 권력압이 걸려 있고, 시장에는 금리압이 걸려 있다. 다들 등을 떠밀고 있다. 싸움꾼은 벽을 등지고 선다. 벽은 사람을 압박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디든 압력이 걸려 있고 효율성의 궤도가 작동하고 있다.
자연의 어떤 경로가 결정되는 이유는 이겼기 때문이다. 승부는 비용조달 문제로 결정된다. 자연은 비용조달이 가능한 경로를 따라간다. 의사결정은 에너지 낙차를 따라간다. 에너지 낙차만큼 비용이 조달된다.
대칭의 축이 이동한 만큼 에너지 낙차가 발생한다. 상대적 효율성이 발생한다. 그 쪽으로 궤도가 만들어진다. 중력처럼 전체가 한 방향으로 쏠린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각종 중독자들은 심리적 궤도에 갇힌다.
관종짓과 같다. 액션의 연속성이 궤도를 만든다. 맞대응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댓글을 달다 보면 탈출할 수 없는 궤도가 만들어져 있다. 했던 짓을 계속 반복하며 갈데까지 간다. 자력탈출은 못 한다.
의사결정은 비용을 발생시킨다. 비용을 뒤집으면 효율이다. 효율을 따라가면 궤도에 갇힌다. 의사결정의 효율성을 추구하면 이전에 했던 결정을 반복하게 된다. 새로운 결정은 궤도를 갈아타므로 비효율이다.
이겨먹기
원인은 움직임이다. 모든 움직이는 것은 이미 움직이는 것에 의해 움직인다. 정지한 것이 갑자기 움직이는 일은 없다. 나란히 움직여서 정지한 것처럼 보일 뿐 소립자 단위로 들어가면 내부에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움직임은 동사로 설명되어야 한다. 자식이 태어난 것은 부모 때문이 아니고 부모의 어떤 행위 때문이다. 홈런이 된 것은 야구공과 방망이의 결합에서 방망이가 이겼기 때문이다. 작용의 힘이 반작용의 힘을 이긴 것이다.
자연은 효율성이 이긴다. 인간에게는 합리성이다. 그러나 인간의 의사결정은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효율을 추구하여 번거로움을 피하고 상황을 단순화 시키려다가 이찍된다.
이긴 결과가 인간에게 유익하다는 보장이 없다. 인간은 집단을 의식하고 스트레스를 받아 비합리적인 결정을 한다. 인간은 무리하게 상대를 이겨먹으려고 하다가 교도소에 갇힌다. 골목싸움에 이기고 인생승부에 진다.
결속된 집단이 느슨한 집단을 이긴다. 문제는 집단이 결속하는 과정에 개인이 희생된다는 점이다. 집단이 다른 집단을 이기는게 아니라 집단에 충성하는 개인을 이긴다. 조폭이 집단에 충성할수록 손해보는 것과 같다.
지구가 태양을 돌리는가, 태양이 지구를 돌리는가? 태양이 지구를 이긴다. 지구가 태양을 이기면 비효율이다. 최소시간, 최소액션, 최단경로가 아니면 계가 깨진다. 하극상을 일으키는 집단은 비효율로 인해 붕괴한다.
힘의 이해
과학은 힘을 운동의 원인으로 설명한다. 이상하다. 왜 입자의 결과로 설명하지 않는가? 힘은 사건을 이루는 질 ,입자, 힘, 운동, 량 중에서 세번째다. 두번째 입자로 세번째 힘을 설명해야 한다. 앞서는 것으로 뒤따르는 것을 설명해야 한다.
엔진을 '바퀴를 굴리는 것'이라고 설명하면 바보다. 엔진은 동력을 생산하고 바퀴는 전달한다. 입자를 구성하는 밸런스가 깨지는 것이 힘이다. 궁극적으로 힘은 위치에너지다. 밥을 먹어도 세포의 미토콘드리아 안에서 위치에너지를 만든다.
두 방향의 힘이 교착된 위치에너지의 밸런스가 깨지며 한 방향으로 통일되는 것이 힘이다. 힘은 방향전환이다. 운동에너지는 방향전환을 못하므로 에너지가 아니다. 운동을 차단해서 위치에너지로 바꿀 수 있지만 외부의 개입이 필요하다.
'변화를 일으키는 작용'으로 힘을 설명하는 것은 '나는 내 아들의 아버지'라고 자기소개하는 것과 같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바보짓이다. 원인은 크고 결과는 작다. 작은 그릇에 큰 그릇을 담을 수 없다. 부분으로 전체를 설명할 수 없다.
캘리포니아 주를 미국의 한 주로 설명할 수 있지만 반대로 미국을 캘리포니아 주가 속한 나라로 설명한다면 틀렸다. 힘을 설명하려면 힘보다 큰 것을 말해야 한다. 그것은 입자다. 입자는 질로 설명되고 질은 에너지 메커니즘으로 설명된다.
시작은 변화다. 우리가 변화를 인지하는 것은 량이다. 량을 매개하는 것은 운동이다. 운동을 격발하는 것이 힘, 힘을 담는 그릇은 입자, 입자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이 질이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하는 본질은 에너지의 성질이다.
에너지는 빅뱅때부터 있었다. 빅뱅 이전은 모른다. 우주 탄생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문제다. 에너지 메커니즘이 인류가 도달할 수 있는 지적 한계다. 에너지는 내부에 운동을 감추고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공간 그 자체의 성질로 보인다.
인류는 힘이 무엇인지 모를 뿐만 아니라 설명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설명이 무엇인지 모르므로 힘을 설명하지 않고 대신 가리킨다. 변화나 운동으로 힘을 설명하는 것은 대칭을 세우고 반대편을 가리킨 것이다. 메커니즘을 설명해야 한다.
지렛대를 움직이면 힘이 작용한다. 힘은 작용점, 받침점, 힘점 셋에 물체와 사람까지 다섯 포지션이 필요하다. 모든 움직이는 것에 이러한 의사결정 구조가 숨어 있다. 에너지 안에 모두 갖추어져 있고 물질은 에너지를 복제하고 전달한다.
힘은 방향전환이다. 범선은 키를 이용하여 방향전환 한다. 바람과 돛은 마주보고 대칭을 이룬다. 축과 대칭의 밸런스가 위치에너지다. 키는 배가 가려는 방향의 힘이 이기도록 밀어준다. 추력이 항력을 이기도록 조정하면 배는 전진한다.
입자는 코어가 있다. 코어는 대칭되는 두 방향 힘을 붙잡는다. 도마가 생선을 붙잡으면 요리사가 칼로 자르듯이 붙잡는 것이 매개다. 입자가 붙잡은 것을 놓으면 힘이 작용한다. 작용 반작용 대칭의 코어 위치를 이동시키는 것이 힘이다.
아기는 힘
우리는 자연계의 4대 힘을 알고 있다. 중력, 강력, 약력, 전자기력이 그것이다. 최종보스는 이기는 힘이다. 모든 힘의 힘은 이기는 힘이다. 모든 이론의 이론은 의사결정이론이다. 이기는 힘은 파동의 간섭에 의해 유체가 균일화 되는 성질이다. 압박에 의해 계가 안정되는 성질이다.
중력은 물질을 지구 중심으로 가라앉히는 힘이다. 뒤집어 말하면 지구 중심으로 떠오르게 하는 힘이다. 부력과 같다. 물 속에서 가벼운 물체는 수압이 약한 쪽으로 떠밀린다. 수면의 약한 쪽이 당기는게 아니라 심해의 강한 수압이 수면으로 밀어낸다. 부력을 뒤집어보면 척력이다.
자연계의 보편원리는 안정되려는 성질이다. 자연은 원래 움직인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의해 움직이는 성질은 사라지지 않는다. 움직임이 나란하면 상대적으로 멈춘 것으로 보인다. 그 경우는 운동이 교착되어 계에 갇힌다. 상대적으로 안정된 것이다. 지구 중심이 가장 안정된다.
자연의 존재는 본래 움직이며 움직임은 보존되므로 절대적인 멈춤은 우주 안에 없고, 간섭에 따른 상대적인 멈춤은 있으며 멈출때까지 움직이므로 자연은 안정을 지향한다. 자연은 멈추려고 한다. 멈추지 못하므로 깨진다. 작아진다. 깨지면서 남는 힘을 이용하여 브레이크를 건다.
엔트로피 증가란 안정될때까지 자발적으로는 움직임을 멈추지 못하는 물질이 결국 자신을 잘게 깨뜨려서 부스러기의 힘으로 안정되므로 언젠가는 죄다 가루가 되는 현상이다. 만약 덩어리가 뭉쳐져서 멈추었다면 그것은 외부 간섭에 의한 것이다. 흔들리는 공간의 힘이 용의자다.
중심은 주변보다 적게 움직인다. 줄기는 가지보다 적게 흔들린다. 상대적으로 작은 것은 가장자리로 밀려나서 각운동량 보존을 얻고 상대적으로 무거운 것은 중심으로 가라앉아 안정된다. 무거운 것이 가벼운 것을 이기기 때문이다. 이긴 자가 아랫목을 차지하고 진 자는 밀려난다.
지구 중심에 가까운 것이 최소시간, 최단경로, 최소액션, 최소비용, 최대효율을 달성한다. 비대칭인 중심이 대칭인 주변을 이긴다. 계에 의해 압박되기 때문이다. 모든 존재는 계에 갇혀서 보이지 않게 압박을 받는다. 암흑에너지로 추정되는 공간 그 자체의 진동이 우주의 엔진이다.
이기는 법
권력과 선택
구조론은 일원론이다. 원인과 결과를 합쳐서 하나의 사건으로 이해해야 한다. 원인은 주고 결과는 받는다. 주기와 받기가 하나의 메커니즘을 이루되 엔진은 주는 쪽에 있다. 주는게 권력이다. 결과는 원인에 종속된다. 원인과 결과는 평등하지 않다.
원인과 결과가 평등한듯이 보이는 이유는 그래야 잘 전달되기 때문이다. 원인과 결과의 차이가 크면 에너지의 낭비로 수명이 짧아진다. 기관차는 많은 객차를 달고 가는 것이 좋다. 머리와 꼬리는 비슷하되 51 대 49로 머리가 조금 더 큰 것이 좋다.
어린이와 학생은 언제나 받기만 한다. 젊은이라면 평생 무엇을 줘 본 적이 없다. 우리는 주는 법을 배우지 않았다. 잘 줘야 한다. 주는 것은 크기와 타이밍이 필요한데 받는 것은 그냥 넙죽 받으면 된다. 주는게 권력인데 잘 주지 못해서 이 모양이다.
결정 - 내부원인 : 준다. 마이너스. decide
선택 - 외부결과 : 받는다. 플러스. choice
결정은 주고 선택은 받는다. 결정한다decide는 것은 뒤de를 잘라낸다cide는 것이다. 하나를 버리는 것이 결정이다. 카드 하나를 꺾는다. 내가 가진 자원의 일부를 포기하는 것이 결정이다. 선택choice은 반대로 제시된 둘 중에 하나를 찍는choice다.
선택이 플러스라면 결정은 마이너스다. 결정은 일정한 손실을 동반하지만 선택은 이득이다. 이상하다. 왜 이득이 발생하지? 그럴 리가 없다. 선택은 내 결정이 아니다. 부모가 물려주거나, 집단이 나눠주는 것이다. 선택은 타인의 결정을 수용한다.
인간은 주는 것만 스스로 결정할 수 있고 받는 것은 상대의 동의로 가능하다. 일단은 줘야 한다. 집단의 압박을 받기 때문이다.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 덜 중요한 것을 포기해야 한다. 일단 잘 버리고 다음 준 만큼 받아내는 것이 의사결정이론이다.
게임의 법칙
존 내시의 게임이론은 이름이 이상하다. 거기서 게임이 왜 나와? 비과학적인 표현이다. 아마 더 좋은 이름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의사결정이론이 진짜다. 의사결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 버릴 것을 잘 버리는 것이 의사결정이다.
게임이론은 차악의 선택이다. 선택이라는 말이 헷갈린다. 죄수가 무슨 선택을 해? 죄수는 선택권이 없다. 선택이 아니라 결정이다. 죄수는 무언가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잘라내야 한다. 무엇을 잘라낼 것인가? 경찰의 맞대응을 잘라야 한다.
공과 사가 충돌한다. 언제라도 개인의 이득을 포기하고 집단의 리스크를 줄이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죄수가 경찰을 이겨먹으려고 하면 경찰도 압박의 수위를 높이는 것으로 맞대응 하기 때문이다. 죄수와 경찰은 한 몸이 되어 있는 것이다.
죄수가 경찰의 압박을 받듯 인간은 집단 속에서 무형의 압박을 받고 있으며 그 상황에서 최악을 피하는 결정을 반복하면 외부 도움에 의해 유리해질 확률이 높다. 이득은 내 손으로 얻어내는게 아니라 부모와 이웃에서 내게로 넘치는 것이다.
인간은 집단과 상호작용한다. 그 과정에 많은 것이 나를 거쳐간다. 조금 더 내게 머물러 있어야 한다. 그것을 붙잡으려고 하면 안 된다. 그 경우 외부와 연결하는 라인이 단절되어 내게 들어오지 않는다. 친구가 떠나고 동료가 떠나서 고립된다.
우리는 손에 손 잡고 있다. 내가 스쳐가는 이득을 붙잡는 순간 동료를 잡은 손을 놓친다. 부부가 결혼하면 친구 2명이 떠난다는 말이 있다. 좋은 것은 반드시 주변의 단절로 이어진다. 이득을 붙잡는 결정은 집단에 리스크를 떠넘기는 것이다.
애덤 스미스가 놓친 부분이 있다. 개인의 합리적인 결정이 모여 집단의 공멸을 부르는게 지구 온난화다. 의사결정의 본질은 손에 쥔 카드 하나를 꺾는 것이다. 이득은 그 방법으로 이기는 팀을 만들었을 때 집단 전체의 성과로 얻어지는 것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했다." 애플에 복귀한 후의 스티브 잡스
"리더가 주의해야 할 것은 무엇을 버릴 것인가다." 알리바바의 마윈
"전략의 본질은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지를 선택하는 일이다." 전략가 마이클 포터
정치인은 '내가 무엇을 잘못했지?' 하고 반문한다. 반대로 그 사람이 무엇을 하지 않았는지를 봐야 한다. 정치인은 능동적으로 시고친게 아니라 동료를 도와야 할 때 수동적으로 그것을 하지 않은 부작위의 잘못이 있다. 포기를 잘 관리해야 한다.
상호의존성
인간이 오른쪽으로 가는 이유는 왼쪽이 막혔기 때문이다. 기차가 가는 것은 궤도 때문이다.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하는 이유는 게임에 갇혔기 때문이다. 상호의존성에 갇혀 선택을 강요당하기 때문이다. 게임은 유체다. 인간은 유체의 압박에 갇힌다.
유체는 수렁이다. 인간의 집단의 에너지 중심으로 끌린다. 소용돌이 중심으로 끌려간다. 불은 가운데로 모이는 성질이 있다. 모닥불을 피워보면 알 수 있다. 불의 세력을 키우려고 주변에 땔감을 투입하면 연기만 모이고 산소가 모자라 불이 꺼진다.
게임이론은 유체이론이다. 유체는 둘이 연결된 하나다. 의사결정은 하나를 버리는 것이다. 2를 1로 좁힌다. 보통은 선택권을 유지하다가 선택지를 잃어먹는다. 선택지의 감소로 운신의 폭이 좁아진 것이 기차의 궤도다. 그러다가 리스크에 멸망한다.
상호의존성은 공유다. 게임을 하는 두 팀은 그라운드를 공유한다. 공유에 갇혀 간섭받으면 유체가 된다. 간섭받지 않으려고 하면 선택지를 잃는다. 결국 아무 것도 선택할 수 없게 된다. 코너에 몰리고 수렁에 빠져도 상대가 더 나쁘면 이길 수 있다.
게임의 전략은 손실을 줄이는 선택을 하며 상대가 먼저 나가떨어지게 하는 것이다. 닫힌계 안에서 이득이 생길 가능성은 없다. 손실을 줄이는 선택만 가능하다. 상대는 심리적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무리한 도박을 하다가 자멸한다. 버티면 이긴다.
내게 좋은 것은 상부구조인 집단의 결정이다. 아이에게 좋은 것은 부모의 결정이고 학생에게 좋은 것은 교사의 결정이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덜 나쁜 것 뿐이다. 한국이 할 수 있는 것은 뭔가 양보해서 국제사회가 한국을 돕게 하는 것이다.
수렁에 빠졌을 때는 도와주는 사람이 나타날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무엇을 결정하든 더 깊이 빠진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을수는 없다. 하는 방법을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흐름이 단절되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호흡을 유지하면서 확률을 믿어야 한다.
머피의 법칙
머피의 법칙 - 게임에 갇힌 사람이 탈출하려고 상대방을 지렛대로 사용하면 상대와 결속되어 더 깊이 수렁에 빠진다. 척력이 인력으로 변하는 유체의 성질이 강화된다. 불안요소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주변의 압박에 의해 반드시 문제가 터지고 만다.
우리는 농담으로 알지만 사실 간단히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머피 대위는 비행기를 설계했다. 비행기가 이륙하면 유체가 된다. 유체는 부분이 전체를 결정한다. 한 부분만 탈이 나도 전체가 망가진다. 공중에서 고장나면 수리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게임이 시작되면 열린계가 닫힌계로 변한다. 배가 항구를 떠나면, 차가 도로에 나오면, 비행기가 활주로를 떠나면 유체로 변한다. 기차는 궤도에 갇히고, 자동차는 트래픽에 갇히고, 배는 파도에 갇히고, 비행기는 날씨에 갇힌다.
왜 비행기가 문제인가 하면 비행기는 깨질때까지 혹독하게 다루기 때문이다. 문제가 없으면 문제가 생길때까지 더 가혹한 환경으로 테스트 한다. 더 높은 고도, 더 빠른 속도, 더 높은 압력으로 들어가서 기어코 탈을 낸다. 압박 수위를 높이면 터진다.
갇힌 상태에서 인간은 이겨먹으려고 한다. 공유하는 상대방을 지렛대로 삼으려고 한다. 남한은 북한을 지렛대로 쓰려고 하고 북한은 남한을 지렛대로 쓰려고 한다. 이겨먹기 행동을 한다. 그럴수록 상호의존성이 높아진다. 올 것이 오고야 마는 것이다.
일어날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일어날때까지 인간은 사고를 친다. 인간의 행동은 이겨먹으려고 지푸라기를 잡는 것이다. 상대방을 지렛대로 쓴다. 자동차는 도로가 지렛대고, 기차는 궤도가 지렛대고, 배는 바다가 지렛대다. 그럴수록 궤도에 붙잡힌다.
동기론은 거짓말이다. 인간은 특별한 동기가 없다. 무의식의 압박을 받아 수렁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것이 인간이다. 욕망, 의지, 탐욕, 사랑, 행복은 거짓말이고 인간은 그저 수렁에서 탈출하려고 한다. 그럴수록 상호의존성이 높아져서 궤도에 갇힌다.
이기적 인간
인간은 제 정신이 아니다. 합리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회전체로 보면 최악을 피하는 결과가 도출된다. 무의식의 힘이다. 개인의 합리적인 판단은 집단의 상호작용을 낮춰서 집단을 위험에 빠뜨린다. 애덤 스미스가 비판받는 이유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어차피 터질 일은 빨리 터져야 한다. 집단의 약점이 있다면 그것을 건드리는 자가 나타난다. 건드리지 않으면 리스크는 더 커진다. 집단의 급소를 보면 인간은 흥분한다. 결국 건드려서 범인은 처벌되고 사회는 안전해진다.
"PCL-R로 25~30점인 사람들은 위험하지만, 20점 언저리의 사람들은 사회에 필수적이다. 대담하고 활기차고 인류의 생동감과 적응력을 지켜주는, 나와 같은 사람들 말이다." [괴물의 심연을 쓴 사이코패스 연구 신경학자 제임스 팰런]
제임스 팰런은 경증 사이코패스가 사회에 필수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모든 인간이 과학에 근거하여 올바르게 행동한다면 인류는 위태롭다. 블랙스완이 출현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환경과의 싸움을 계속해야 한다. 사회가 무균실이 되면 안된다.
인간의 집단적 행동은 최악을 피하고 차악을 취한다. 그러므로 나빠지지만 상호작용이 증대한 결과로 발명, 발견, 혁신에 의하여 나아진다. 인간의 모든 결정은 나쁘다. 그래도 세상이 멀쩡히 돌아가는 이유는 생산력 증대라는 외부 요인 때문이다.
선택권과 선택지는 반비례한다. 합리적인 결정은 선택권을 행사하며 선택지를 줄이고 가능성을 버린다. 이제 수동기어를 선택할 수 없다. 자동차 핸들을 뽑고 배의 노를 부순다. 이미 인공지능은 자동차 핸들을 뽑았다. 위험은 도처에 잠복해 있다.
우리는 선택권을 가져야 하지만 그 행사를 최소화 해야 한다. 권력의 행사는 상대방의 더 큰 삽질을 유도하는데만 쓰여야 한다. 조선왕조는 불교, 도교, 무속, 유교 중에서 세 개의 카드를 꺾었다. 그 결과 선비들이 발호해서 왕실의 권위는 약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