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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5. 19
朴槿惠가 黨에서 손 떼야 새누리당이 산다
⊙ 새누리당, 정당 지지도는 상대적으로 높지만 지지기반 불안
⊙ 安哲秀·朴元淳 모두 부산 출신으로 수도권 지지 강해,
⊙ 2002년 盧武鉉과 흡사
⊙ 내년 지방선거부터 전면적 오픈 프라이머리 도입 등 과감한 정치실험 나서지 않으면 2017년 必敗
⊙ 黨靑간 ‘긴장적 협력관계’ 早期 구축 필요
이변(異變)은 없었다. 지난 4·24 재·보선(再補選)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치 거물(巨物)들이 압승했다. 서울 노원병(丙) 안철수(安哲秀), 부산 영도 김무성(金武星), 충남 부여·청양 이완구(李完九) 후보가 경쟁 후보들을 큰 표 차이로 따돌리고 승리했다.
선거 결과는 박근혜(朴槿惠) 정부 초기 민심(民心)의 흐름이 그리 나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박근혜 정부 출범 2개월 만에 치러진 재·보선은 정부 심판보다는 지역의 특성이 크게 반영된 것이었지만 ‘재·보선=여당의 무덤’이라는 공식이 깨졌다. 재·보선 지역구 3곳 가운데 2곳에서 승리한 새누리당은 국회 의석수를 154석으로 늘렸다. 새누리당 이상일 대변인은 “박근혜 정부와 여당에 성공적 국정 운영을 위해 적극적으로 힘을 실어준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밝힌 데서 보듯 선거 결과에 크게 만족하고 있다.
▲ 지난 3월 15일 청와대에서 새누리당 대표단과 만나 정부조직법 개정협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박근혜 대통령. 새누리당은 대통령으로부터 독립해야 미래가 있다.
하지만 지난 재·보선 결과는 향후 여야(與野) 정치 지형을 뒤흔들 기폭제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특히, 한때 친박계(親朴系) 좌장(座長)이었고 지난 대선(大選)에서 박근혜 캠프를 사실상 이끈 총괄선대본부장이었던 ‘무대’(김무성 대장의 줄임말)의 귀환은 새누리당 권력 지형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집권당이 대통령의 눈치만 보면서 청와대에 질질 끌려다니는 무기력한 존재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마련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희망 섞인 기대까지 나온다.
그렇지만 김무성 의원은 자신의 언행이 자칫 당내 역학 구도나 당·청(黨靑)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철저히 중립 행보를 이어 가고 있다. 국회 입성(入城) 후 각종 인터뷰에서 정치 현안에는 관여하지 않고 ‘낮은 행보’를 하겠다는 뜻을 수차례 밝혔다. 그러나 김 의원이 당장 전면에 나서지는 않겠지만 박 대통령과 일종의 허니문 기간이 지나면 자신의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한 적극적인 행보를 할 것으로 보인다.
그 시험대가 올 10월 재·보선 전후가 될 것이다. 현재 선거법이나 정치자금법, 기타 다른 법 위반 혐의로 1심이나 2심에서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받아 항소심이나 최종심을 기다리는 지역구 의원은 13명이다. 이 가운데 새누리당 의원 지역구가 수도권·충청권·영남권에서 모두 9곳이다. 반면 민주당은 2곳, 통합진보당과 무소속이 각각 1곳에 불과하다. 따라서 10월 재·보선은 황우여(黃祐呂) 대표 체제가 유지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시금석(試金石)이 될 것이다. 만약 선거 패배로 새누리당이 국회 의석 과반(過半)을 지켜 내지 못하면 지도체제 개편이 불가피하다.
민주당은 3不정당
▲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 / 뉴데일리.
지난 5·4 전당대회를 통해 민주당 새 대표로 선출된 김한길 대표 체제의 롱런 여부도 영향을 받게 된다. 최근 민주당은 ‘3불(不)정당’이란 비판을 받아 왔다. 중산층과 서민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불감(不感)정당’, 정권을 다시 찾을 의지도 능력도 없는 ‘불임(不姙)정당’, 국민에게 버림받기 직전의 ‘불신(不信)정당’이라는 꼬리표가 늘 붙어 있었다.
만약 김 대표가 10월 재·보선에서 승리해 새누리당의 원내 과반을 무너뜨린다면 내년 6월 지방선거까지 전권(全權)을 갖고 정국을 주도하면서 민주당을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10월 재·보선에서 또 다시 참패하면 김한길 대표 체제는 단명(短命)할지 모른다.
지난 4·24 재·보선의 최대 패배자는 민주통합당이었다. 민심은 집권당을 심판한 것이 아니라 민주당을 심판했다고 해도 과언(過言)이 아니다. 당초 쉽지 않은 경쟁이 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민주당은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기초의원을 포함해 단 한 곳에서도 당선자를 내지 못했다. 불임정당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다. 오죽하면 중앙당에 선거종합상황실조차 설치하지 못했겠는가. 민주당 박용진 대변인마저 재·보선 결과가 “민주당을 향한 차갑고 무거운 민심의 바닥을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민주당은 民心에 의해 他殺될 것인가
▲ 오는 10월 재·보선에서 패하면 김한길 민주당 대표체제는 단명으로 끝날지도 모른다.
김한길 새 지도체제가 출범했지만 현재 민주당이 처한 위기는 최악의 정당 지지도가 함축하듯 쉽게 극복하기 어려울 것 같다. 여론조사기관인 디오피니언이 민주당 전당대회 직후인 지난 5월 5일에 실시한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 결과, 민주당 지지율은 11.2%에 불과해 새누리당(29.6%)과 안철수 신당(新黨・27.4%)에 크게 뒤졌다. 안철수 신당 지지율은 지난 3월 31일에 비해 1.5%포인트 상승하면서 새누리당 지지율과 격차를 2.2%포인트로 좁혔다. 반면, 새누리당 지지율은 4.5%포인트, 민주당 지지율은 6.9%포인트 감소했다.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얻은 득표가 48.0%였던 것과 비교하면 현재 민주당 지지도는 그야말로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을 정도로 수직 하락하고 있다.
이런 암울한 사실들이 함축하는 것은 민주당 ‘김한길호’가 처한 상황이 결코 녹록지 않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뼈를 깎는 쇄신으로 이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면 민심에 의해 타살(他殺)돼 공중 분해될 수도 있다. 안철수 의원 측에 야권 재편 주도권을 넘겨줄 수도 있다.
지난 노원병 재·보선에서 새누리당 허준영 후보가 안철수 후보에게 큰 차이로 패했다는 것은 현 정권에 대한 수도권 민심이 여전히 유보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분명 안철수 의원의 국회 입성은 야권발(發) 정계개편의 서곡(序曲)이 될 수 있다. 당장 안 의원이 추진하려는 야권 재편이 어떤 식으로 이뤄질지 주목받고 있다.
지난 2012년 총선에서 수도권 112석 중 민주당은 서울 30석(62.5%), 인천 6석(50%), 경기 29석(55.8%) 등 총 65석(58.0%)을 차지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안철수 신당’이 뜨면 민주당 의원들의 ‘엑소더스(집단 탈당)’가 일어나거나 ‘안철수 교섭단체’가 생길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안철수가 수도권의 맹주(盟主)로 급부상해 그와 함께해야 다음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믿음이 강해지면 이런 전망은 현실이 될 것이다.
당장 10월 재·보선에서 안철수 의원과 민주당 간 대결이 분수령이 될 것이다. 첫 전장(戰場)은 호남이 될 수 있다. 안 의원은 최근 10월 재·보선을 목표로 정치를 함께할 사람들을 규합하는 일에 본격 착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7~8월에 인재를 영입해 재·보선에 출마시켜 독자 세력화를 도모하겠다는 생각을 밝힌 것이다.
그렇다면 새누리당은 야권발 정계개편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새누리당은 박근혜 정부의 실질적인 1차 중간평가 성격을 갖는 내년도 지방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2017년 대선에서 정권을 유지할 수 있을까? 새누리당이 이런 질문들에 대해 긍정적인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앞으로 자신들이 처할 현실적 정치 환경에 대해 깊이 통찰하고 국민들의 지지와 신뢰를 얻어 낼 수 있는 담대한 도전과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새로운 정치 실험을 단행해야 한다. 그 이유를 살펴보자.
새누리당의 불편한 진실
첫째, 새누리당의 정당 지지도가 상대적으로 높지만 지지 기반이 안정적이지 않다.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새누리당의 지지율은 평균 약 35~40%에 이르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평균 15~20%이다. 하지만 정당 지지를 보다 심층적으로 분석해 보면, 새누리당이 다른 정당과 비교해서 월등한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지난 2012년 총선 직후 한국선거학회가 실시한 국민의식 조사 결과, “자신의 의견을 잘 대변해 주는 정당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30.3%만이 ‘있다’고 응답했다. ‘있다’고 응답한 사람에게 “그 정당이 어느 정당입니까”라고 묻자 새누리당 52.1%, 민주당 34.0%, 통합진보당 9.2%로 나타났다. 하지만 그냥 처음부터 ‘자신의 의견을 잘 대변해 주는 정당’으로 새누리당을 꼽은 사람은 전체 유권자 중 15.4%에 불과했다. 민주당 10.3%, 통합진보당 2.8%였다.
“자신의 의견을 잘 대변해 주는 정치지도자가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33.0%만이 ‘있다’고 응답했다. ‘있다’고 응답한 사람에게 “그 정치 지도자가 누구입니까”라고 묻자 박근혜 48.2%, 문재인 15.2%, 안철수 21.8%였다. 이 역시 처음부터 그냥 자신의 의견을 잘 대변해 주는 정치 지도자로 박근혜를 꼽은 사람은 전체 유권자 중 15.9%에 불과했다. 문재인은 5.0%, 안철수는 7.2%로 나타났다.
이런 조사 결과가 함축하는 것은 현재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정당 지지도에 상관없이 특정 정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심리가 지극히 유동적이고 불안정하다는 것이다. 예기치 않은 상황이 발생하면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 자체가 한 방에 출렁거릴 수 있다.
새누리당 호감도, 민주당과 별 차이 없어
정당과 정당을 대표하는 인물들의 호감도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새누리당의 우위가 확인되지 않았다. 세대별, 이념별, 지역별로 정당간의 선호도가 극명하게 차이가 있었다. <표1>에서 보듯이, 새누리당의 경우, 2012년 총선에서 과반수 획득에는 성공했지만, 2040세대, 수도권, 진보와 중도층에서 ‘싫어한다’는 비율이 ‘좋아한다’는 비율보다 훨씬 높았다.
특정 정당과 정당을 대표하는 인물들의 호감도를 분석한 결과, 새누리당의 우위가 확인되지 않았다. 특정 정당에 대한 호감도에서 0점은 ‘아주 싫어함’, 5점은 ‘보통’, 10점은 ‘아주 좋아함’으로 측정한 결과, 새누리당 호감도는 4.90점으로 나타났다. 민주당(4.97점)과 거의 차이가 없다. 정치인에 대한 호감도를 동일한 방식으로 측정한 결과 박근혜 호감도는 5.75점으로 조사되었다. 문재인 5.29점, 안철수 6.07점이었다.
<표2>에서 보듯이 정치인 호감도와 정당 호감도 간에는 정서적 일체감이 발견된다. 즉, 박근혜를 좋아하는 사람의 71.3%가 새누리당, 문재인을 좋아하는 사람의 61.8%가 민주당을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철수를 좋아하는 사람들 중 26.5%가 새누리당을 좋아하지만 민주당을 좋아하는 비율은 이보다 두 배 정도 높은 51.1%였다. 이런 정당 및 정치인 호감도 조사 결과, 새누리당이 과연 ‘포스트 박근혜’ 시대에도 야권을 제압하면서 안정적인 지지를 확보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새누리당의 이념적 한계
둘째, 새누리당은 지난 2012년 총선에서 복지 확대, 경제 민주화 등 ‘진보적 가치’를 적극 수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중도(中道) 정당으로 거듭날 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다.
새누리당의 전신(前身)인 한나라당은 2012년 총선에서 당명(黨名)과 로고, 상징색을 바꾸면서 보수적(保守的) 색채를 지우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표3>에서 보듯이 국민들은 새누리당을 여전히 보수색채가 강한 정당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정당 이념성향을 ‘아주 진보’는 0점, ‘중도’는 5점, ‘아주 보수’는 10점으로 측정한 결과, 새누리당은 7.65점으로 상당히 보수적인 정당으로 나타났다. 특히, 중도 유권자들의 60.7%가 새누리당을 ‘보수 정당’라고 평가했다. 민주당과 통합진보당 이념성향은 각각 3.74점과 3.05점으로 두 정당 간에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진보 색채가 강한 정당으로 나타났다. 민주당이 2012년 총선을 앞두고 혁신과 통합 세력과 합당하면서 중도 개혁 노선을 포기하고 광폭(廣幅)의 좌(左)클릭을 하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해석한다.
정치인의 이념성향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정치인의 이념성향을 ‘아주 진보’는 0점, ‘중도’는 5점, ‘아주 보수’는 10점으로 측정한 결과, 박근혜는 7.44점으로 상당히 보수적인 인물로 나타났다(<표4> 참조). 중도 유권자들의 53.0%가 박근혜를 ‘보수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문재인(3.70점)은 다소 진보적인 인물로, 안철수(4.08점)는 중도에 가까운 진보 인물로 평가받았다. 중도층의 경우, 박근혜(24.8%)보다는 문재인(35.0%)과 안철수(37.4%)를 훨씬 중도적인 인물로 인식했다.
정당과 정치인의 이념성향은 급작스럽게 바뀌지 않는다.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새누리당은 복지 확대, 경제 민주화 등 진보 어젠다를 선점(先占)해서 중도 정당 이미지를 강화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이것이 과연 국민들의 인식 속에서 체화(體化)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무엇보다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 위협 속에서 안보 위기가 불거지면 새누리당은 확고한 보수 정당의 기치를 내걸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朴槿惠 집권공식은 다시 작동 못 해
▲ 새누리당의 잠재적 대권 주자들. 왼쪽부터 정몽준 전 대표, 김문수 경기도지사, 김태호 의원.
셋째, 새누리당은 차기 대권(大權) 경쟁에서 야권(野圈)의 박원순(朴元淳) 서울시장, 무소속 안철수 의원 등과 경쟁할 유력한 대권 후보들이 조기(早期)에 부상(浮上)할 수 없는 구조를 안고 있다.
지난 2012년 총선은 새누리당에 엄청난 변화를 초래했다. 무엇보다 완벽한 ‘박근혜 정당’으로 탈바꿈했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공천권을 완전히 장악해 친이계(親李系)를 배제하고 친박계를 대거 공천해서 과반수 정당을 만드는 데 성공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친박 세상’이 이루어졌다. 과거 3김(金) 못지않게 지역과 이념에서 막강한 파워까지 갖추게 되었다.
강력한 지역 기반(영남)과 보수세력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던 박근혜 대통령의 과거 대권 획득 과정을 도식화(圖式化)하면 다음과 같다. 친박 계파 결성→ MB 집권 직후부터 친이계와 친박계간 ‘파국적 균형’의 장기간 유지→ 대통령과 지속적이고 전략적인 대립과 갈등으로 박근혜의 정권 교체 이미지 강화→ MB 정권 말기 새누리당 비상대책위를 통해 공천권 완전 장악→ 박근혜 1인 정당 체제 구축→ 대선 승리이다.
그렇다면 새누리당에 포스트 박근혜를 이끌어 갈 차기 유력 대권후보가 박근혜와 같은 절대적인 카리스마를 토대로 위와 같은 정권 창출 프로그램을 가동할 수 있을까? 현 시점에서 그 대답은 회의적(懷疑的)이다. 무엇보다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이 2인자를 두지 않고 모든 것을 혼자서 친히 처리하는 ‘만기친람형(萬機親覽型)’의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차기 대권 후보가 그만큼 부상하기 어렵다. 한마디로 새누리당의 향후 대권 가도는 시계(視界)제로다. 그러면 새누리당은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
DJ, 2002년 민주당 競選 물꼬 터
첫째, 완전국민참여경선제(오픈 프라이머리)와 같은 혁명적 공천 제도를 도입해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
지난 2002년 대선에서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가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를 상대로 ‘이기려야 이길 수 없었던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밑거름은 누가 뭐래도 국민참여경선제였다. 2002년 1월 민주당은 1만명의 국민이 대선 후보 경선에 참여할 수 있는 사상(史上) 초유(初有)의 정치 실험을 단행했다.
16개 시도(市道)를 돌며 현장에서 개표를 실시함으로써 국민의 관심을 끌었고 그야말로 바람을 일으켰다. 2001년 11월까지만 해도 지지도가 4%에 불과했던 노무현 후보가 예상을 깨고 2002년 3월 광주(光州) 경선에서 승리함으로써 노무현 바람(盧風)이 시작되었다. 국민참여경선 흥행의 기세를 몰아 노무현 후보는 이회창 후보를 단기간에 제압하는 데 성공했다. 김대중(金大中·DJ) 대통령의 카리스마와 위력에 눌려 민주당 대권후보들이 옴쭉달싹 못하고 있을 때 그 숨통을 터준 사람은 오히려 DJ 자신이었다. DJ가 2001년 11월 새천년민주당 총재직을 사퇴하고 중립을 선언함으로써 그동안 DJ 낙점(落點)만을 기다렸던 대권 후보들 간의 경쟁 구도에 큰 변화가 시작되었다.
한국 대선에서는 국민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초유의 정치실험을 하는 세력이 늘 승리했다. 아무리 새누리당이 박근혜당으로 탈바꿈했더라도 박근혜 대통령의 낙점을 받아야 새누리당 차기 대권 후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새누리당에는 여전히 정몽준(鄭夢準) 전(前) 대표, 김문수(金文洙) 경기지사, 김무성 의원, 김태호(金台鎬) 의원 등 잠재적 대권 주자들이 많다. 이들은 박 대통령과의 허니문 기간을 인식해 차기 대권 활동을 자제하고 민감한 정치 현안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침묵이 길어지면 국민들의 기대는 멀어지게 된다.
예비선거부터 바람 일으켜야
▲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청와대에 순응하는 순종형 리더십을 보여 왔다.
새누리당이 2017년 대선에서 재집권하려면 지금부터 차기 유력 대권 후보들이 인지도(認知度)를 높이고 치열하게 경쟁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참여를 원하는 국민이면 당 소속에 상관없이 새누리당 대선 경선 참여를 허용하는 오픈 프라이머리가 하나의 대안(代案)이 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현직 대통령이 차기 대선 경선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여야 정당의 예비 대선 후보들은 대선 2년 전부터 출마를 선언하고 언론으로부터 철저하게 검증을 받는다. 1976년 카터, 1980년 레이건, 1992년 클린턴, 2008년 오바마 등은 중앙정치 무대에서 무명(無名)에 가깝던 사람들이 예비경선을 통해 혜성같이 등장해 대선에서 승리했다.
따라서 새누리당 차기 대선 후보들의 인물 경쟁력 열세(劣勢)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같은 예비경선제를 채택할 필요가 있다. 야당의 동참 여부와 상관없이 새누리당이 초유의 오픈 프라이머리를 실천하면 흥행을 일으키면서 정치적 파장을 낳을 수 있다. 새누리당이 대선 후보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면 정치 개혁을 주도할 수 있는 계기도 만들어 낼 수 있다.
오픈 프라이머리를 실시할 경우, 2017년 대선에 임박해서 하기보다는 내년 지방선거부터 학습을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만약 새누리당이 내년 지방선거부터 과감하게 상향식(上向式) 공천의 씨앗을 뿌리면 그 열매를 2017년 대선에서 챙길 수 있을 것이다.
황우여 대표가 취임 1주년을 맞이해 사무총장과 대변인을 교체하기로 했고 공석(空席)이었던 지명직 최고위원 2명(한기호, 유수택)을 임명했다. 황 대표 체제 1년을 평가해 보면 무색무취(無色無臭)의 리더십으로 존재감이 없었다는 것이 중론(衆論)이다. 반면, 박근혜 대통령의 주문은 충실히 수행하는 순종형(順從型)의 극치를 보여 주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지난 정부조직 개편 과정에서도 확인되었듯이 야당은 이런 무기력한 집권당보다는 직접 청와대를 상대했다. 대통령 방미 중 발생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성(性)추행 의혹 사건에 대해 새누리당은 국민보다 대통령을 더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렇다 보니, 세간에서는 새누리당이 ‘청와대 여의도출장소’로 전락했다는 비아냥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김무성 의원은 지난 2011년 12월초 홍준표(洪準杓) 대표 체제가 대혼란에 휩싸였을 때 “한나라당 의원들은 실험실 개구리”라며 “점점 온도가 높아져 죽게 돼 있는데 자기만 그것을 모르는 개구리”라고 강도 높게 비난한 적이 있다.
親朴의 早期 分化
집권당의 정권 창출 세력은 필연적으로 분화된다. 새누리당의 원내대표 선거가 ‘친박’ 간 맞대결로 치열하게 전개됐다. ‘신박(新朴)’으로 분류되는 4선(選)의 이주영(李柱榮) 의원과 ‘원조 친박’으로 꼽히는 3선의 최경환(崔炅煥) 의원 간 정면 승부가 펼쳐졌다.
이번 원내대표 경선은 향후 당내 세력 구도의 재편으로 이어질 개연성이 크다. 실제로 친박 주류(主流), 친박 비주류(非主流) 및 쇄신파, 친이 등 새로운 삼각(三角) 구도가 형성될 것이다.
그런데 역대 정권과 비교해 볼 때 박근혜 정부의 주류 세력 분화(分化)가 지나치게 빠르다. MB 정부 집권 초기 원내대표 경선에서 친이계가 ‘홍준표 원내대표-임태희(任太熙) 정책위의장’을 합의 추대한 것과 사뭇 대조적이다.
여하튼 10월 재·보선과 내년 5월로 예정되어 있는 차기 당 대표 경선을 앞두고 친박 내부의 분화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 친위 친박 주류 세력과 김무성 의원을 중심으로 하는 친박 비주류 간에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가속화(加速化)할지도 모른다.
새누리당 지도부가 대통령과 청와대의 눈치만 보며 무기력함의 극치를 보인다면 새누리당은 서서히 죽어 갈 것이다. 대통령이 일체의 반대를 허용하지 않고 일사불란하게 당을 끌고 가려하고, 차기 대권 후보들이 침묵하는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새누리당은 서서히 생명력을 잃어 갈 수 있다. 지난 노무현 정부 때 열린우리당이 유력한 차기 대권후보를 만들어 내지도 못하고 붕괴되었던 전철(前轍)을 밟은 것이 그 예다.
둘째, 새누리당이 이런 내재적(內在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집권 여당과 청와대 간의 ‘긴장적 협력관계’를 만들 수 있는 지도체제 개편이 시급하다.
문제는 이런 당내 세력 구도 재편을 박근혜 대통령이 지지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새로운 지도체제 개편 시 박 대통령이 당내 힘 있는 곳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힘없는 세력에 미련을 가질 경우 집권당의 불행은 시작된다.
이런 상황이 초래되면 권력에서 소외된 힘을 가진 세력들이 청와대에 조직적으로 반기(叛旗)를 들게 되고, 정권을 창출했던 세력들의 분화가 시작되면서 집권당은 큰 위기를 맞게 된다. 더구나, 집권당이 재·보선과 중간 평가 성격의 전국 선거에서 참패하면 국민들은 야당에서 세상을 바꿀 메시아가 나오길 기대하게 된다. 새누리당은 이런 현상들이 정권을 빼앗긴 역대 정부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났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새누리당에 치명적이고 위협적인 야권발 정계개편은 반드시 도래한다. 한국 정당사에서 가장 극적이고 파괴력이 강했던 야권 정계개편은 1985년 제12대 총선 직후 일어났다. 김영삼(金泳三)과 김대중 두 정치 거목(巨木)이 만든 신한민주당(신민당)이 당시 제1야당이었던 민주한국당(민한당)을 흡수, 통합한 것이었다.
김한길의 정치적 상상력 주목해야
▲ 안철수 의원은 4·24 재·보궐선거에 앞서 박원순 서울시장과 만났다.
12대 총선을 목전에 두고 창당한 신민당은 선거에서 총 48석을 얻어 26석에 그친 민한당을 압도했다. 특히 수도권에서 신민당은 20석을 얻었지만 민한당은 4석을 얻는 데 그쳤다. 민한당이 1981년 제11대 총선에서 총 57석을 얻었고, 수도권에서 21석을 얻었던 것과 비교해 보면 민심이 민한당을 얼마나 가혹하게 버렸는지 잘 드러난다. 민주당이 분골쇄신하지 않고 기존의 무기력함을 떨쳐 버리지 못하면 안철수 신당에 과거 민한당처럼 흡수, 통합될 수도 있다.
정치적 상상력을 동원해 보면 야권 정계개편 시나리오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은 안철수 의원 외에 박원순 서울시장도 있다. 박 시장은 이미 내년 서울시장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만약 박 시장이 민주당을 탈당(脫黨)해서 안철수와 신당을 만들 경우, 기존 정당체제의 빅뱅이 올 수 있다. 현재로서는 실현 가능성이 그리 크지 않지만 정치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예술이기 때문에 상황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하다.
여기에 김한길 민주당 대표의 행보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과거 ‘정치적 상상력’을 가진 야당의 기획통이었다. 비록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2007년 열린우리당을 깬 것도 그였다. 그는 야권발 정계개편에서 수동적으로 끌려다니기보다는 필요하다면 ‘창조적 파괴’에 나설 수 있는 사람이다.
새누리당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이 정권을 뺏길 수 있는 가장 위협적인 시나리오이다. 새누리당이 야권발 정계개편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최대 전략은 우선 내년도 서울시장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새누리당이 깜짝 놀랄 만한 후보를 만들어 정면 승부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선 후보급 인물과 차세대 주자들을 포함해 서울시장 출마 예비 후보들의 인력 풀을 넓히고 단순한 추대가 아니라 오픈 프라이머리를 통해 치열하게 경쟁하도록 해야 한다.
박 대통령이 경계해야 할 키워드들
여권이 주도했던 TK 패권주의는 쇠퇴할 수밖에 없다. 지난 2008년 이명박(MB) 정부부터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TK 세력은 두 번 대권을 잡았다. 그런데 1987년 민주화 이후 대한민국의 정권 교체 주기는 10년이었다. 1988년부터 1998년 10년 동안은 보수, 1998년부터 2008년까지는 진보, 2008년부터 2018년까지는 다시 보수세력이 정권을 잡았다.
10년 시계추 이론‘(ten year's pen dulum)’에 따르면 특정 세력이 10년 정도 정권을 잡으면 일반 국민들은 피로감(fatigue)을 느끼면서 정권을 교체하려고 한다. 이런 이론이 현실화되면 2017년 대선에서 보수세력인 새누리당의 고전(苦戰)이 예상된다. 더구나 현재까지 새누리당의 지지기반인 영남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차기 대권 후보가 없는 실정이다.
2002년 대선에서 부산 출신 노무현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했을 때의 공식을 보면, 호남의 절대적 지지를 기반으로 한 수도권 승리와 PK 지역 잠식(약 30%)이 핵심이었다. 여기에 행정수도 이전과 같은 충청공략 정책이 한몫을 했다. 야권의 유력한 대권 후보로 거론되는 박원순 서울 시장과 안철수 의원 모두 공교롭게도 부산 출신이고 수도권에서 지지 기반이 강하다. 이와 같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정치 환경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새누리당의 미래는 어둡다.
박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고 새누리당이 재집권하려면 무엇보다 대통령 인식의 대변화와 새누리당의 담대한 도전 정신이 있어야 한다. 만약 대통령이 “나는 지난 대선에서 어느 누구에게도 빚진 적이 없다” “나는 역대 대통령과는 다르다” “나는 기획, 전략이라는 단어를 싫어한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역대 대통령들이 겪었던 어려움을 똑같이 겪을지도 모른다.
權不三年
5년 단임제 국가인 대한민국 정치에서 ‘권불삼년(權不三年)’이 정설(定說)이다. 우리 국민의 인내심은 그리 강하지 않다. 이런 피할 수 없는 정치 현실 속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한국 정치에서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정치 실험을 해야 한다.
김무성 의원은 “박 대통령이 당선됐으니 친박의 목적은 달성됐고 따라서 계파도 완전히 없어져야 한다”며 “다음 세대를 위한 새로운 질서가 형성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발언은 박 대통령이 진정 당에 자생력(自生力)을 불어넣고 국회를 존중하는 대통령이 되려면 당내 문제에 손을 떼라는 주문과 일맥상통한다.
새누리당이 살기 위해서는 역대 정부와 달리 집권 초기부터 대통령이 집권당 문제에 절대 중립을 지키도록 압박을 가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5월 14일 청와대에서 황우여 대표와 회동했다. 방미(訪美) 외교성과를 평가하고 국정운영 전반에 협조를 구하기 위한 것이지만 모양새는 그리 좋지 않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은 당정분리라는 원칙을 내세우며 집권당 대표를 청와대로 불러 회동한 적이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도 이와 같이 지금까지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새로운 당・청 관계를 만들 필요가 있다. 가령 대통령이 청와대가 아닌 국회에서 여당대표와 만난다면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여권 내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누가 이런 내용들을 과감하게 진언(進言)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김형준 /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월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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