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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밥
더운 여름날 찬물에 보리밥을 말아 고추장이나 된장에 풋고추를 찍어 먹는 맛은 그 자체가 별미다. 추운 겨울철 뜨거운 물에 찬밥을 말아 김장김치를 쭉쭉 찢어서 얹어 먹어도 맛이 남다르다. 혹은 물에 만 밥에 보리굴비를 가닥가닥 찢어 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이건 아예 밥도둑이다.
물만밥은 맛도 맛이지만 추억의 음식이다. 어릴 적 시골에서 먹던 고향의 맛이 떠오르기도 하고, 밥에 물을 부어 대충 끼니를 때우시던 어머니의 모습도 떠올라 여러 가지로 향수를 자극한다. 추억이 서려 있고 밥맛도 남다르지만 밥을 물에 말아 먹는 것이 점잖은 식사법은 아니다.
주로 급하게 밥을 먹어야 할 때, 제대로 반찬을 차려서 먹을 상황이 아닐 때, 대충 끼니를 때우기는 해야겠는데 찬거리가 마땅치 않을 때, 그럴 때 물에다 밥을 말아 반찬 하나 놓고 훌훌 떠먹는다. 그러니 남들과 함께 먹을 수 있는 밥은 아니고 더군다나 손님을 접대할 때 먹을 수 있는 식사는 더더욱 아니다.
그렇지만 옛날에는 손님이 왔을 때 물에다 밥을 말아 내놓아도 별 흉이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임금님을 비롯해 대갓집 양반들도 수시로 물에다 밥을 말아 먹었고, 손님이 왔을 때도 물만밥을 대접했다. 지금보다 훨씬 더 격식을 따졌을 것 같은 옛날 문헌에 물에 밥을 말아서 손님을 대접했다는 기록이 많이 보인다.
고려 말기의 대학자인 목은 이색이 젊었을 때의 일이다. 장래가 촉망 되는 젊은이였던 이색은 개각에 따라 새로운 인사들이 재상으로 임명되자 그들의 집을 찾아 인사를 다녔다.
이색은 문집에 “어제 광평시중은 만나 뵙지 못했고 철성시중 댁에서는 수반(水飯)을 먹었다. 박 사신의 집에서 또 수반을 먹었고 임 사재의 집에 가서 성찬을 대접받았다”고 적었다.
시중이면 장관급 벼슬인데 정승 집에 인사차 갔다가 수반, 그러니까 물만밥을 얻어먹고 돌아왔다는 것이니 지금 기준으로 보면 이런 문전박대가 또 없다. 하지만 예전에는 물에다 밥을 만 ‘수반’이 대충 끼니를 때우는 식사가 아니라 지체 높은 사람들이 평소 먹는 제대로 된 식사였고, 때문에 손님이 왔을 때 가볍게 내놓는 밥이었으며, 새참으로 부담 없이 먹는 별식이었다.
사실 조선시대에는 임금도 물에다 밥을 말아 들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성종 때 가뭄이 들어 백성들이 힘들어하니 수라상에 물만밥만 올리도록 했는데 무려 40일 이상을 점심 때 물만밥을 들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백성들에게 모범을 보이려는 성종의 의지가 대단했다.
계속해서 찬물에 말아 드시면 건강을 해칠 수 있으니 중지해야 한다고 신하들이 간청했지만 성종은 “세종 때는 비록 풍년이 들었어도 물에 만 밥을 수라상에 올렸는데 지금처럼 가뭄이 든 때에 물에 밥을 말아 먹는다고 무엇이 해롭겠냐”며 신하들의 간청을 물리쳤다.
성종 이외에도 조선의 임금들은 물만밥을 자주 들었다. 정조 역시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이 있는 화성을 다녀가면서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비석 뒤에서 물에다 밥을 말아 먹은 후 천천히 출발했다며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홍재전서》에 남겨놓았다.
사실 물에 만 밥은 종류도 여러 가지였다. 같은 물만밥이라도 이미 지어놓은 밥에 찬물이나 더운 물을 부어 먹는 밥은 수요반(水澆飯)이라고 했다. 물과 밥을 함께 먹는다는 의미에서 수화반(水和飯)이라고도 불렀다. 또 밥에다 물을 붓고 다시 끓인 밥은 수소반(水燒飯)이라고 했다. 쌀의 형체가 아예 보이지 않도록 끓인 미음이나, 쌀의 형태가 남아 있는 죽과는 또 다른 형태의 밥이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밥은 대개 찬이 없어도 물에 말아 먹으면 맛이 더해지는 법”이라며 “물에 만 밥을 먹는 것은 우리나라 풍속”이라고 했다. 물에다 누른 밥을 말아서 먹는 누룽지 문화가 여기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요즘 찻물에 밥을 말아 보리굴비와 함께 내오는 보리굴비 정식을 파는 식당이 늘어나고 있고, 그 가격 역시 만만치 않게 비싼 편이니 역사란 돌고 도는 것인가 보다.
#음식#역사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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