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문단》 제40호(253~255쪽) , 제8회 경북작품상 작품
풀꽃 친구들
우동식
올해 봄에 새롭게 사귀게 된 벗들이 넷이다. 그들은 풀꽃 친구들이다. 작년 이맘때만 해도 모르는 친구들이었다. 숲 공부를 하면서 처음 맞이하는 봄에 만난 친구 넷을 소개하는 마음이 흐뭇하다. 최근 마을 산책은 온통 그들의 환영과 함께 하고 있다. 아니, 내가 그들을 환영하는지도 모른다.
올봄에 처음 만난 첫째 친구는 봄까치풀이다. 남녘의 봄소식을 전하는 신문 지면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원래 이름은, 콩팥처럼 가운데가 잘록한 열매가 개불알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큰개불알풀이다. 하지만 어감이 좋지 않고, 봄소식을 전해준다는 꽃의 의미를 더하여 지금의 이름으로 순화되었다. 마을 산책길에서 그의 실물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잎 모양은 양딸기와 유사해 보인다. 네 장의 흰빛이 감도는 청자주색 꽃잎에 줄무늬가 있으며, 그 안에 연녹색을 띤 하나의 암술과 두 개의 수술이 있다. 이름 그대로 흰색과 청자주색이 어우러져 작은 도라지꽃처럼 보이면서 까치의 이미지도 살리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면서 봄이 오는 길목에서 청사초롱을 켜고 있는 풀꽃이 아닐까 싶다. 꽃말도 ‘기쁜 소식’이라고 하니까 말이다.
둘째 친구는 꽃마리이다. 아침에 요가를 하러 가는 마을 길옆에서 아주 조그맣고 파르스름한 하늘색에 흰빛이 감도는 꽃을 보았다. 기특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핸드폰에 담아 곧 이름을 물어보았다. 다섯 개의 꽃잎 안에 노란색 돌기가 있다. 이름도 예쁜 ‘꽃마리’였다. 꽃줄기의 끝이 태엽처럼 말려 있다가 한족으로 풀리며 차례로 꽃을 피운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새로운 친구를 만나 기쁨을 아내에게 전했다. 잎은 작은 주걱처럼 귀여운데, 겨울 동안에는 로제트형을 취한다. 줄기와 잎자루는 약간 붉은 빛을 띠며 곧게 서거나 비스듬히 자라기도 한다.
셋째 친구는 봄맞이꽃이다. 애초에 마을 산책길의 논둑 아래에서 하얀 별처럼 앙증맞은, 5개의 꽃잎의 모습과 눈이 마주쳤다. 말 없는 대화 속에 우정이 오갔다. 작은 뽀리뱅이를 닮은 듯한 잎과 줄기는 땅에 낮게 드리워져 있다. 가느다란 꽃대만은 상대적으로 높이 솟아 있는 편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파트 앞뜰에도 이 꽃들이 소복하게 피어 있었다. 작년에도 여기서 꽃을 피웠을 텐데 이제야 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등잔 밑이 어두운 격이어서 겸연쩍었지만, 어쨌거나 반가웠다.
넷째 친구는 텃밭에서 만난 주름잎풀이다. 이름에 비해 잎에 주름이 확실하게 있는 것은 아니다. 네 개의 꽃잎이 입술 모양을 하고 있는데, 아랫입술은 세 갈래로 갈라지고 안쪽에 노란색 반점이 있다. 윗입술은 연보라색을 띠어 매력적으로 돋보인다. 꽃말이 ‘생명력, 희망’이어서, 투병으로 힘겨워하는 동기에게 사진에 담아 보내며 쾌유를 빌었다.
봄갈이를 위해 텃밭의 흙을 새로 뒤집으며 이 친구가 있는 곳을 피했다. 아는 친구가 되고 나니 내칠 수가 없었다. 예전에 이름을 몰랐을 때는 잡초라고 별로 거리낌 없이 뽑아내곤 했다. 다만 제법 망설인 경우도 있다.
퇴임하기 얼마 전의 일이다. 텃밭에서 풀을 뽑을 때마다 어느 학생의 일이 떠올랐다. 신입생인 그 학생은 학년 초부터 이른바 행동과잉장애로 다른 아이들을 다치게 했다. 그래서 다른 학부모들이 학급에서 그 학생을 분리해 달라는 항의를 해왔다. 처음에는 그 학급 아이들과 학부모님들께 행동장애 학생에 대해 이해와 관용을 부탁했으나 오래가지 못했다. 학교에서도 학급의 평화를 위해서 해당 학부모에게 특수반 편입을 권유했다. 그러나 그 학부모가 거부하는 바람에 학부모 상호간에도 갈등이 깊어져갔다.
외부 상담전문가와 상담을 하는 등 갖은 노력 끝에 여름 방학이 지난 후에야 그 학부모는 대안학교로 옮기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이었다. 어디서 왔는지도 모를 애석함이 내 가슴을 스쳐가는 가는 것이었다. 생명이 그 안에 지닌 결핍을 ‘타자(他者)에게서 채워 받는다.’고 일본의 시인 요시노 히로시는 읊었다. 그렇건만 서로 채우며 더불어 산다는 것이 간단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한동안 텃밭에서는 풀들을 뽑는 내 손이 많이 떨리곤 했다.
그랬던 만큼 이 봄에 이렇게 매력적인 친구, 주름잎풀꽃이라면 어찌 함께 두고 보지 않으랴. 그리고 다른 세 친구들도 내 텃밭에 태어났다면 마찬가지로 괄시하지 못할 것 같다. 이뿐만 아니라 이름과 색깔을 넘어 ‘모양까지 알게 되면 연인이 된다.’는, 나태주 시인의 「풀꽃2」에서 말한 ‘비밀’을 나도 풀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 이 풀꽃 친구들의 생태를 알아갈수록 그들이 더 사랑스러워질 것 같다. 바로 올봄에 처음 만나 이름을 알게 되면서부터 그들이 내게로 다가온 것이다. 「어린왕자」에서 왕자에게 특별한 의미가 된 장미처럼 말이다.
「어린왕자」에서 여우는 말했다. 사랑하며 산다는 것은 대상을 책임성 있게 길들이며 사는 것이라고. 길들인다는 것은 무엇인가? 상호간에 유의미한 관계를 맺는 것을 말한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가? 안도현의 동화 「관계」에서, 그것은 생명체들이 공동의 꿈을 함께 실현해 것을 뜻한다고 했다. 이 작품에서 낙엽들은, 도토리와의 대화 중에서 도토리가 자신들의 꿈뿐만 아니라 그들의 꿈까지도 함께 실현해야 할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알아주기를 바란다.
문득, ‘호모심비우스’라는 말이 떠오른다. ‘공생共生하는 인간’이란 뜻이다. 최재천 교수의 『생태적 전환, 현명한 지구 생활을 위하여』라는 책에서 제시한, 인류에 대한 새로운 명명命名이다.
이 봄에 나와 관계를 맺은 풀꽃 친구들을 통하여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어렴풋이 새겨본다. 생태평화를 배우는 나도 그들의 꿈까지 실현시킬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 《경북문단》 제40호(2022. 7), 253~25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