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관찰기 3
꼬끼오! 소리도 못 내고 꼬오 꼬오 발성되다 말지만 일단 벼슬이 자라고 갈기털이 오르면 수탉들의 각축이 시작된다. 중닭일 때만 해도 한가롭고 그리 도란도란하던 닭장은 삽시에 투사들의 결투장으로 변한다. 동시다발로 일어나는 싸움은 그러나 투계처럼 피 흘리는 참혹지경까지는 아니다. 병아리 시절부터 아는 처지이니 대충 서열만 가리자는 정도이렷다. 일단은 높이 뛰는 게 유리하고 적시에 부리로 쪼는 기술이 주효하지만, 무엇보다 다부지게 밀어붙이는 쪽의 승률이 높다. 자칫 꽁무니를 보인 다음에는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예의주시하는 암탉들을 피하기는 어렵다.
약병아리 때부터 눈여겨 보아온 수탉이 있다. 열 댓 마리 중 꽁지털이 하나도 빠지지 않은 준수한 모양이니 당연히 자기방어가 된다는 뜻이다. 잔 시비에 휘말리지 않고 잔 싸움판을 훌쩍 벗어날 줄 알았다. 오로지 모이 먹는 데만 열중하다가 가끔 어느 경망스런 녀석의 호들갑으로 모든 닭이 푸드덕하고 날아오를 때면 기중 한 자 이상을 높이 뛰었다. 그 때 나는 허, 저 녀석 좀 보게, 하였던 것이다.
사실, 세상 어느 양계장 주인이 시끄럽고 쓸데없이 뻘건 벼슬로 쌈질만 해대는, 거기다가 날로 먹성만 늘어가는 수탉의 무리를 그대로 둘까? 흙 파서 사료 대지 않는 이상 수탉들의 운명은 암탉들이 계란을 낳을 때 쯤 심각하게 고려될 법이다. 이런 때 차쿠 신부인 나는 염라대왕이고 여회장은 저승사자가 된다. 신부가 살생부를 주면 여회장은 자는 닭을 움켜다가 성당 옆 5일장에 파는 형식이다. 그러나 살생부는커녕 방출부放出簿라 칭하기도 싫었던 나는 슬며시 위선의 말을 흘린다. 회장님, 내가 봐둔 닭은 두 마린데 나머지 한 마린 회장님 맘대로 남기고... 세 마리면 되겠지요? 딱 요정도만 말하면 내 손에 피 안 묻히고, 내 말에도 분명 피를 안 묻힌 거다. 그 살부殺簿 아닌 생부生簿 중 첫손으로 꼽은 닭이 점찍었던 수탉임은 무론이다.
그렇게 남게 된 세 마리, 본격적인 삼파전은 이튿날로 즉시 개전이다. 열 댓 마리가 각축할 때보다 훨씬 치열하다. 눈두덩에 선홍빛 피멍이 짙게 들고 다리를 절다말다 하였다. 그런데 막상 대장의 즉위식은 아주 싱겁게 이뤄지고 말았으니, 더 센 수탉이 약한 수탉을 공격할 때였다. 내가 여겨보았던 수탉이 쪼르르 달려가서 더 센 수탉의 꽁지를 콕하고 한 번 쪼아댄 것이다. 단지 약자의 편을 든 것 밖에는 없었는데 서열은 바로 정해져 버렸다. 왜냐면 약한 닭은 그 후 센 닭의 공격을 피해서 곧잘 대장의 뒤로 숨어들었던 것이다. 자연히 2대 1의 협공이 되었으니 결과는 뻔하다. 꼬끼오! 라는 포효로 등극을 공표한다. 대장은 꼴찌에게 언제든지 곁을 내준다. 같이 거닐고 함께 모이를 먹는다. 그러나 2등한테는 추호의 아량도 없다. 멀리서 2등이 꼴찌를 닦아세우기라도 하면 열일을 제쳐놓고 후다닥 2등을 쪼아댄다. 갈기를 세우며 오직 2등만 닦달한다. 어찌 보면, 대장은 꼴찌가 만들어 준 자리였다, 그런 후에도 꼴찌 수탉이 계속 유지시켜주는 자리였다.
첫댓글 중국닭은 어쩜 이리 이쁠까요?
예전에 민화 그리기에 빠져들던 때가있었는데 그때 우리나라 닭이 아름답다는걸 알았는데~
중국닭도 정말 예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