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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어져 가는 제자를 보면서 노인을 혀를 찼다.
"쯧쯧.. 저거 언제 사람되누.. 흐음.. 요즘에는 마계 놈들이 운이에게
접근하려 하지는 않는 것 같으니.. 괜찮겠지? 뭐.. 접근한다고 해도
운이 실력이라면 그깟 놈들 쯤은 별 문제가 되지는 않을테지만.. 헌데..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마계에서 어찌 운이 같은 아이를
노리는 건지.. 흠..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일이로구나.. 그건
그렇고… 흐흐.. 운이가 나간 틈에 백호랑 좀 놀아볼까나..
이노무 자식이 그동안 운이 믿구서 막 기어오르더니.. 백호야 어딨
니? 좋은 말 할 때 나와라! 안 나오믄 뒤지게 맞을 줄 알어. "
그날 그 산에는 하루 종일 호랑이의 어흥~ 거리는 소리가 끊이질 않고
들렸다.
자유의 몸이 되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 강운은 아무 생각 없이 뛰고
또 뛰었다. 강운이 날아간다면 좀더 빨리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냥 마음껏 가슴이 답답할 정도로 뛰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어디
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뛰고 또 뛰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 또 한 가지 문제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강운은 아무리
뛰어도 가슴이 답답해 질정도로 숨이 차지 않다는 것이다.
한 이틀정도를 계속 뛰어왔을까.. 이제는 뜀 박질 하는 것도 지겨워진
강운은 뛰는 것을 멈추고 천천히 걸어왔다. 이틀동안 잠도 안자고 뛰어온
사람의 얼굴이 마치 아침 운동을 마치고 상쾌한 기분으로 집으로 향하는
이들의 얼굴처럼 편안해 보이기만 했다.
'저 멀리 색목인들이 사는 어느 나라에서는 이렇게 뜀박질을 오랫동안
하는 대회가 있다고 사부가 말해줬었는데.. 나중에 기회 되면 한번
가봐야겠다. '
강운은 시간을 내서 그 나라에 들려서 대회에 참가할 생각인 모양이었다.
특별히 경신법을 배우지 않았지만 강운이 마음만 먹는다면 바람보다도
빠르게 달려갈 수 있었다. 강운은 이틀 동안 잠도 안자고 쉬지도 않고
바람보다 빠른 속도로 뛰어왔지만 아직 산자락이 끝나지 않았다.
"휘유~ 도대체 이 산은 왜 이렇게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거야? 아무튼 사부
는 왜 이렇게 깊고깊은 산골짜기에는 들어온 거야. 그냥 날아갈까나? "
날아갈지 걸어갈지 잠시동안 고민하던 강운은 어차피 힘들지도 않는데
그냥 느긋하게 걸어가기로 했다. 누가 뒤에서 쫓아오는 것도 아니고
쓸데없이 빨리 갈 필요가 없었다.
반나절 동안 산을 내려가던 강운은 시원하게 흐르는 계곡을 발견하고는
그대로 옷도 벗지 않고 계곡으로 뛰어들었다.
어려서 부터 물에서 노는 걸 좋아하던 강운이 이처럼 시원하게 흐르는
계곡을 그냥 지나칠리가 없었다.
급류가 흐르고 있어서 다소 물살이 거셌지만 그런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한참동안 물에서 자맥질을 하고 물장구를 치면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
고 있다가 문득 이대로 물살에 몸을 맡겨서 내려가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대로 물 위에 들어누워 버렸다.
강운은 물 침대위에 누워서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며 떠내려가고 있으니
저절로 기분이 좋아져서 깜빡 잠이 들어 버리고 말았다.
강운이 다시 눈을 떴을 때는 해가 서서히 저물어 가고 있었다. 몸은 아직
도 물 침대위에 누워 있었지만 아까처럼 속도가 빠르지는 않았다. 어느새
계곡이 끝나고 잔잔한 물살을 헤치며 자신의 몸이 물과 하나가 된듯 유유
히 떠내려 가고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물위에 이렇게 떠 내려가고 있으니 너무 포근하고 기분이 좋았다. 마치
어머니의 품속에 안겨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너무 따뜻하
고 편안했다.
강운은 어머니를 생각하자 괜시리 눈시울이 붉어졌다. 강운이 갓 태어나
걸어다니지도 못 할 때 아버지는 폐병에 걸리셔서 제대로 치료도 한번
못해보시고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리고 홀로 남은 어머니 혼자서 꿋꿋이 강운을 키워주셨다. 온갖 사랑과
정성을 쏟으면서 어머니는 강운을 돌봐주셨다.
감기 기운이라도 들어서 기침을 하고 있으면 어머니께서는 지레 겁을 집
어 먹으시고 밤새도록 간호해주셨다. 옛날에는 몸이 허약해서 한번
감기에 걸리면 며칠씩 방안에 누워서 꼼짝도 못할 정도로 심한 독감에
걸렸었는데 그럴 때면 어머니는 빚을 지면서 까지 돈을 빌려 약을 지어
주셨고 몇날 며칠이고 잠시도 쉬지 않으시고 돌봐주시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는 자신이 몸이 낫아서 움직일 수 있을 때쯤이면 그동안 쉬
지도 않고 병간호를 하느라 지치셔서 몸살에 곧 잘 걸리시곤 했다.
방안에서 흘러나오는 어머니의 신음소리에 강운은 눈물을 흘렸다.
아픈 어머니를 위해서 약을 지어올 돈이 없었고 어떻게 해야 될지
어린나이의 강운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냥 어머니가 알아 들을 수 없게 흐느껴 우는 수밖에 없었다.
자신과 어머니만 홀로 남겨놓고 먼저 가버린 아버지가 원망스러웠고
돈이 없다고 어머니를 치료해주지 않는 의원들도 원망스러웠고
어머니를 아프게 하는 자신이 너무도 미워서 견딜 수 없었다.
처음에는 그냥 몸살앓이로 시작했던 어머니의 병세가 갈수록 더 심해졌
지만 어머니는 그런 몸으로도 일을하러 나가셨다.
자신이 굶는건 아무 상관 없었지만 하나밖에 없는 가여운 아들이 배가 고
파하는 모습은 차마볼 수 없었기 때문에 아픈 몸을 이끌고 어디든 가서
일을 해주고 음식을 조금씩 얻어가지고 올 수밖에 없었다.
"운아.. 여기 엄마가 운이 줄려고 맛있는 음식 많이 싸왔으니까 많이 먹으
렴.. "
며칠 굶고 있었던지 게걸스럽게도 먹어대는 아들을 보는 어머니의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생겼다.
"운아.. 천천히 먹으렴.. 그러다가 체하면 어쩌려고. "
너무도 배가 고파서 아무 생각없이 음식만 먹고 있던 운은 그때서야 정신
을 차리고 남은 음식을 가지고 어머니 곁으로 갔다.
"엄마는 안 먹어? "
"엄마는 배부른단다.. 우리 착한 운이나 많이 먹으렴.. "
창백한 얼굴에 애써 미소를 지으며 음식을 다시 운에게 건네주는 어머니
의 손끝이 미미하게 떨렸다. 운이가 울고 있었다. 이 가련하고 불쌍한 아
이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운아 왜 우니? 무슨 일이야? "
"흑흑.. 엄마 내가 잘못했어. 엄마는 며칠 동안 입에 물 한모금도 못마시고
굶었는데 운이는 배고프다고 혼자 음식을 먹었어.. 운이는 정말 나쁜아이
야.. 운이는 정말.. "
운은 끝까지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의 창백하지만 따뜻한 손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없이 포근하기만 한 어머니의 품속으로 운을 끌어
안아 줬기 때문이다.
"운아.. 엄마는 정말 배가 하나도 고프지 않어. 오늘 잔칫집에 가서
배부르게 먹고 왔다고 아까 말해줬잖니? 운이 줄 맛있는 음식을
조금밖에 싸오지 못해서 이 엄마가 미안하구나.."
운은 어머니의 말을 믿지 않았다. 속으로 거짓말이라고 외치면서 더욱 더
어머니의 품으로 안겨 들었다.
한참을 흐느끼던 운은 어느새 어머니의 토닥거림에 곤히 잠이 들어버렸
고 어머니는 그런 운을 깨지않게 조심스레 눕혀주었다.
어머니는 쌔근쌔근 숨을 쉬며 잠들어 있는 아들의 머리 카락을 가볍게 쓸
어 넘겨주시고는 한없이 포근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하지만 그 미소 뒤에 숨은 검은 그림자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그 검은 그
림자는 죽음의 그림자였다. 애써 죽음의 그림자를 감추려고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그 모습이 더욱 더 슬프게 보였다.
어머니는 가슴이 찢어질듯 아팠다. 어쩌면 자신은 오늘을 넘길 수 없을지
도 모른다.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무리를 하면서까지 일을해서 운에게 줄
마지막 음식을 장만해온 건지도 몰랐다.
자신의 죽음은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홀로 남겨지게 될 운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듯 아파왔다. 차라리 운과 함께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함께 갈 생각도 했었지만 차마 그렇게까지 할 수는 없었기에 그날 밤새
도록 운을 품고서 흐느껴 울어야 했다.
새벽녁이 다가오고 있었고 좀 전까지만 해도 들리던 흐느낌마저 사라져
버린 방에는 너무도 무겁고 슬픈 침묵이 깔렸다.
그날 이후 강운은 아직도 너무도 포근한 어머니의 품을 잊지 못하고 있었
다. 아니 언제까지고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