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여선/ '안녕 주정뱅이'를 읽고(독후감)
김견남
결과를 빠르게 알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자꾸 파헤쳐 보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게 하는 글이 단편소설인 것 같다.
제목만으로도 술꾼이 등장할 것 같았고 그는 단연 남자일 거라고 짐작했다.
시작부터 다짜고짜 내던지는 대화
"산다는 게 참 끔찍하지 않니?"다.
무엇이 그리도 그들을 끔찍한 삶이게 한 것일까.
호기심이 몰려와 엘리베이터에서부터 읽기 시작한 첫 장을 화장실 소파 식탁을 두루 거치며 마지막 장으로 닫았다.
누군가의 면회를 가는 중인 두 여인 영선과 영미의 대화가 영경의 이야기인 것을 보면 돌림자가 같으니
자매일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한다.
면회를 가는 곳이 교도소일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의외로 요양원이다.
그녀들 대화에 나오는 영경은 한때 중학교 교사였지만, 어떤 이유인지 이혼 후 백일 된 아들을 홀로 키우며 살다가
어느 날 시부모와 남편에게 아들을 빼앗기고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요양원에 입원 중인 동생이다.
아들을 찾아오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해외로 출국해 버린 아들을 끝내 찾지 못하고 실의에 찬 영경은 술로 위안을 삼는다.
두 언니들은 차라리 잘 됐다며 동생이 새 삶을 살기 바랐지만 동생은 그런 두 언니와 의절하고 혼자 지내다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심각한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다.
다시는 안 볼 것 같았던 언니들이지만 정작 그녀가 온전치 않을 때는 의무적일지라도 동생을 돌보고 있는 걸 알 수 있다.
위대한 핏줄의 힘일까?를 생각해 보게 하는 대목이다.
영경은 친구의 재혼식 피로연에서 수환이란 한 남자를 만난다. 둘이 사랑을 했는지는 서술되지 않았지만
수환은 허름한 자신의 집에서 영경의 아파트로 거처를 옮긴다.
함께 사는 동안 남자는 술에 취해 쓰러진 여자를 업고 집으로 가는 일이 유일하게 그녀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이었던 거 같다고 회상한다.
수환은 십 년 넘게 쇠를 다루는 기술을 배워 서른셋에 철공소를 차렸다가 거래처의 횡포로 부도를 맞고
아내와 위장 이혼을 했는데 아내는 기다렸다는 듯이 재산을 모조리 챙겨서 잠적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믿었던 배우자에게 철저하게 배신을 당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몸이 불치가 되어서야 요양원에 입원한다.
여자는 남자를 금전적으로 돕고 남자는 여자를 가슴 깊이 위한다.
여자는 남자에게 책을 읽어주고 책 내용으로 짧은 토론을 하기도 한다.
토론 내용 중 분모는 자만심이고 분자는 이지력이라며 분모가 분자를 넘어서면 안 된다는 이론 제기를 하기에,
나도 내 주변인들에 대해 분자(장점)와 분모(단점)에 대해 열 가지씩 적어봤다.
다행히 내 주변인의 장점은 열이 넘었지만 단점은 굳이 수를 세며 적을 정도도 아니었고 적는다고 해도
미미한 단점 한두 가지다.
다시 생각해 보면 열 가지 장점이 있어도 한 가지 단점을 받아주지 않는 것 같은 나의 인간관계를 보는 거 같았다.
여자는 외출해서 며칠씩 술을 마시다 쓰러지면 요양원에 실려 오기를 반복하고 남자는 그런 여자를 이해한다.
점점 더 심해지는 여자의 알코올 흡입과 남자의 몸 악화는 그들의 최후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예고한다.
남자는 자신을 돌봐주는 여자에게 유일하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눈치 안 보고 맘 편히 술을 마시러 나가게 하는 것이라고 안다.
그날도 남자는 진통제를 맞으며 술을 마시러 나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봤다.
남자의 장례가 끝난 후에야 술에 취해 의식을 잃은 여자는 다시 요양원에 실려 들어왔다.
남자를 기억하지 못하는 여자는 알코올성 치매로 인한 금치산자가 된다.
이미 온전치 못했던 여자의 정신이 남자가 떠날 때까지 죽을힘을 다해 견뎠었다는 것을 남은 자들이 안다.
방법은 다르지만 남자의 떠남과 여자의 정신 이탈은 비로소 하나가 된 듯한 묘한 일체감을 준다.
남자의 존재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가끔씩 그녀의 횅한 동공은 무의식으로 남자를 찾는 듯 서럽게 운다.
그녀의 메마른 말
‘나는 사람들이 내 병을 병으로 보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어. 의사들까지도 그런 것 같아. 그럴 때면 심하게 위축돼’
이 글을 읽고 알코올 중독자는 스스로 알코올 중독을 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줄 알았다.
그런데 병으로 알고 있었다.
그럼 스스로 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알코올 중독자가 아니라는 뜻일까? 의문이다.
2017년 어느 날 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