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읽고
김견남
‘당신과 함게 보낼 수 없는 시간의 통곡 소리가 내 머릿속 깊은 곳으로 흘러들고 있소. 당신을 사랑하오. 깊이, 완벽하게 그리고 언제나 그럴 것이오.’
시골 농장에서 농사를 지으며 평범하게 살고 있던 가정주부 프란체스카가 우연히 길을 묻던 사진작가 로버트를 만나 4일간 짧고 격렬한 중년의 사랑을 나눈 불륜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사랑 이야기다.
한적한 시골 농장에 허름한 파란색 트럭 한 대가 먼지를 풀풀 날리며 들어선다.
사진작가 로버트 킨케이드는 메디슨 카운티라는 마을에 있는 지붕이 덮인 로즈먼 다리를 촬영하기 위해 그곳을 찾아왔는데 길을 잃은 것 같다며 프란체스카에게 다가와 길을 묻는다.
그때 맨발에 카펫 먼지를 털며 혼자서 집안 청소를 하고 있어 프란체스카는 그곳의 지리를 간단하게 설명하기가 너무 복잡했는지 몇 번을 고쳐 말해주곤 하다가 차라리 자신이 그곳까지 길 안내를 하겠다고 하며 따라나선다.
마침 남편과 두 자녀가 박람회 때문에 도시로 떠나 4일 후에나 돌아올 예정이었기에 시간 여유가 있어 가능했었던 것 같다.
항상 혼자 다녔던 로버트는 옆자리에 누군가 앉게 될 줄 몰랐다며 정신없이 어지럽혀져 있는 트럭의 옆자리를 치운다.
지붕이 덮인 로즈먼 다리에 도착한 로버트는 길 안내를 해주어 고맙다며 보랏빛 들꽃을 한 줌 꺾어서 프란체스카에게 내민다.
프란체스카는 일순 긴장한 얼굴로 “그건 독풀인데요.” 하고 말했고 그 말에 놀란 로버트는 순식간에 손을 펴 꽂을 놓는다. 프란체스카의 농담이었다는 말에 둘은 너무나 환하게 웃었고 내 느낌으로는 그때부터 서로 친하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일정을 마치고 집 앞까지 태워다 준 로버트에게 프란체스카는 차 한잔하시고 가라며 집안으로 초대한다.
둘은 어릴 때의 꿈 이야기, 여행 이야기 등을 하면서 한동안 즐거운 대화를 했는데 대화 중에 문득 로버트가 남편을 떠나고 싶냐고 물었고 그 말에 발끈 한 프란체스카에게 로버트는 미안하다며 여러 번을 사과하고 어색한 분위기로 헤어진다.
로버트가 떠난 뒤 잠 못 이루던 프란체스카는 ‘흰 나방이 날갯짓할 때 다시 저녁 식사를 하고 싶으시면 오늘 밤 일이 끝난 후 들르세요 언제라도 좋아요’라는 메시지를 써서 그 밤 로버트가 사진 찍게 될 로즈먼 다리에 붙여놓고 온다.
다음날 사진을 찍으려던 로버트는 다리 위에 붙여진 메시지를 보고 프란체스카에게 전화를 해 늦은 저녁에 찾아가겠다고 한다.
새 옷을 언제 사봤는지 모르겠다는 프란체스카는 급하게 옷 가게에 가서 화려한 원피스를 산다.
그날 밤 둘은 차를 마시고 샤워를 하고 누가 먼저라고 할 수 없는 사랑을 나눈다.
둘째 날도, 셋째 날도....
그리고 마지막 날은 프란체스카의 가족이 돌아오는 날이고, 누가 말하지 않아도 이별의 날이라는 것을 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진심으로 로버트를 사랑하게 된 프란체스카는 한순간이지만 자신의 사랑이 농락당한 건 아닌가 하는 불안함으로 마음에 없는 말들을 쏟아내며 로버트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하지만 또다시 상처 될 말들만 한다.
고통스러워하는 표정의 로버트는 차분히 그리고 간절하게
“당신이 필요한 게 싫어요”라고 말하고
“왜요?”라고 묻는 그녀에게
“당신을 데려올 수 없으니까 당신은 가정을 포기하지도 않을 거고 내게로 오지도 않을 거니까....” 하면서
“내가 당신에게 우리의 사랑이 아무것도 아니게 느끼도록 했다면 그건 내 잘못이오, 내가 사진을 찍어온 것, 그 많은 곳을 다녀 본 것은 바로 당신을 만나고 사랑하기 위해서였고, 이렇게 확신에 찬 감정을 느껴 본 것은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오”라고 말하면서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다.
둘은 뜨거운 포옹을 하고 로버트는 프란체스카에게 함께 떠나자고 말한다.
“애매함으로 둘러싸인 이 우주에서 이런 확실한 감정은 단 한 번만 오는 거야. 몇 번을 다시 살더라도 다시는 오지 않을 거야” “우리의 사랑을 버리지 말아요”
그러나 가족들이 돌아왔고 평범한 일상은 다시 시작됐다.
비가 많이 내리는 날 남편과 함께 시장을 보러 갔던 프란체스카는 낯익은 트럭과 그 앞에서 비를 맞으며 그녀를 보고 서 있는 로버트를 보게 된다. 떠난 줄만 알고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프란체스카는 혼이 빠져나가는 듯한 애절함을 느낀다.
빗길 교차로 앞, 앞차에는 로버트가 탄 트럭이 있고 뒤 차에는 프란체스카와 남편이 탄 차가 있다.
로버트는 프란체스카가 준 목걸이를 룸미러에 건다.
‘빨리 내게로 오시오’ 하는 로버트의 간절한 바람이다. 프란체스카는 벅차오르는 그리움으로 차에서 내려 앞차에 올라탈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앞차로 가려고 결심하고 손잡이를 잡는 순간 신호등이 바뀌며 남편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참 오래된 트럭이야 차량 번호를 보니 이 지역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라고 말한다.
프란체스카는 힘없이 돌리려던 손잡이를 놓는다. 신호가 바뀌었음에도 출발하지 못하고 있던 로버트의 트럭은 서서히 왼쪽 길로 사라진다.
빗물보다 더 많은 물줄기가 그녀의 볼을 타고 떨어진다. 놀란 남편의 왜 우냐고 묻는 물음에 잠깐만 아무것도 묻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는 프란체스카다.
‘하루도 그의 생각을 안 하고 살아간 적이 없었단다.
만일 그가 아니었다면 나는 오랜 세월을 이곳에 머무를 수 있었을 것 같지가 않구나.
그는 내게 인생을, 우주를, 조각난 내 부분들을 온전한 하나로 만들어 주었어. 나는 한순간도 그에 대한 생각을 멈춘 적이 없단다.
그가 내 의식 속에 있지 않을 때도 나는 어디선가 그를 느낄 수 있었고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지. 그러나 로버트와 함께 떠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프란체스카는 유언장에 자신이 평생 남편이 아닌 또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왔음을 고백했다. 그녀는 살면서 자식과 남편 옆에 있었으므로 죽었을 때는 자신이 사랑한 로버트의 곁으로 가고 싶다는 글을 남겼다.
프란체스카의 유품에는 평생을 떠돌며 그녀를 그리워하고 사랑했던 로버트의 유품과 편지가 함께 들어있었다.
‘당신을 두고 그 집 앞길을 빠져나왔던 일이 내가 지금까지 한 일과 앞으로 할 일 중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는 점만은 분명히 알고 있소. 당신 전에도 여자들이 몇몇 있었지만 당신을 만난 이후로는 없었소. 빌어먹을 난 아이오와의 원터셋으로 가겠어. 그리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프란체스카를 데리고 와야겠어’라고 중얼거린 때가 여러 번 있었소.‘
이 가을의 쓸쓸함을 풍요롭게 해준 한 편의 영화가 제2의 사춘기라는 나의 사십 대에 아주 특별한 감동으로 남았다.
어느 순간 그 여주인공은 내가 되었고 어느 순간 남자 주인공은 나의 로망이 되었다.
만약 이런 사랑이 내게도 온다면 난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신호기에서 조금만 더 늦게 신호가 떨어졌다면 그녀가 차에서 내려 그 남자에게 갈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만으로 내 가슴이 한없이 두근거렸다.
그녀가 그때 좀 더 빨리 차에서 내렸어야 했다는 생각과 그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교차했다.
프란체스카의 마지막 유언에서 ‘그 남자가 아니었으면 그 농장에서 견디지 못했을 것 같다.’ 는 말은 그녀에게도 그 남자에게도 또 그녀의 남편에게도 그녀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로버트를 기다리며 그 집에서 가족과 한평생을 살았던 걸까.
로버트와 함께 떠났어도 그들의 감정은 변할 수 있고 남편과 남은 가족과의 관계도 지워지지 않았을 것이다.
빼앗는 사랑이 아닌 지켜주는 사랑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잠 못 든 어느 가을밤이었다.
-2010년 어느 날-
첫댓글 오래전에 쓴 글이네요? 다른 영화도 소개해 주세요 재미있어요
요즘에는 영화를 봐도 책을 봐도 큰 여운이 없는 거 같아요
왜 그럴까요?
그냥 새롭다는 느낌이 없어서 그런건가?
이영화를 보고나서 느낌을 원고로 썼는데 결국은 원고를 다시 찾아왔죠.
도저히 활자화 할 수없는 보령의 좁은 바닥이 주는 한계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