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의 종장 잘 쓰기 비결
박 헌 오
한국의 시조는 한글 시(詩)의 최종적 최상의 완성작품이며, 한국적 정서와 품격을 갖춘 운문(韻文)이다.
특히 음악성〔리듬과 형식〕과 함축성〔다양하고 무한한 의미〕과 세련미〔비유와 상징의 격조 있는 표현〕에 있어서 견줄 바가 못 된다.
파운드(E. Pound)는 시의 구성 3요소를 음악시(melopoeia)외 회화시(phanopoeia), 논리시(logepoeia)로 구분했다. 한 편의 함축적 시조는 그 음악성, 회화성, 의미성을 함께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천여 년의 전통적 민족문화사의 정서적 배경에서 형성된 시조는 그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시조는 특별한 경우 연역적 전개를 쓰는 경우 외에는 귀납적 전개로 쓴다. 시조의 3장은 기승전결(起承轉結)로 구성되는 것을 말한다.
종장은 바로 전(轉換), 결(結論)의 부분이므로 종장이 시조의 완성도를 좌우한다.
즉, 초장에서의 발상을 중장에서 발전시키고 종장에서 완결 짓는다.
계절로 보면 초장은 봄이요 중장은 여름이며 종장은 가을, 겨울이다.
즉, 종장은 결실을 거두고, 그 기쁨과 보람과 의미를 누리는 것이다.
산만한 시상을 정연하게 정리한 음악적 함축적 세련된 표현의 정수이기 때문에 시조를 명확히 아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일반적인 시는 특별히 시조의 흐름을 인용한 성공작이 아니면 흐름(流)과 엮음(曲), 맺힘(節)과 풀림(解), 전환(轉換)과 결구(結句)가 불명확하고 산만하며 멋도 맛도 부족한 운문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자유시를 쓸 때도 시조를 익숙하게 아는 사람이 쓰는 작품이 명시(名詩)가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따라서 한글로 한국의 정서에 맞는 시를 쓰는 모든 사람에게 시조를 기반으로 삼을 수 있도록 생활화 하라고 권하고 싶다.
그러면 시조의 기본적 형식이 3장, 6구, 12소절로 이루어진다.
음절수는 초장 3,4,,3,4 중장3,4,,3,4 종장 3,5,,4,3을 기본으로 하고 각 소절은 우리말이 교착어이기 때문에 1~2자의 가감을 허용할 수 있되 종장의 첫 소절은 반드시 3자이어야 하고 둘째 소절은 5자 이상 7자까지 가능하여 45자 내외가 된다. 이 같은 형식을 알고 있음을 전제로 종장을 좀 더 잘 쓰기위해서 구체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되는 중요한 부분을 비결삼아 적시해 보고자 한다.
종장은 초장과 중장을 아우르되 무릎을 탁 치는 절묘한 전환과 결실을 맺는 것이다. 산에 올라간 나무꾼이 온종일 나무를 하는 과정이 초장, 중장이라면 지게에 얹어 끈을 졸라매고 번쩍 일어서서 영(嶺)을 넘는 모습이 종장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장은 놀랍고 깔끔하면서 잊을 수 없는 의미를 던져주는 것이다.
연시조에 있어서도 각 연마다 모두 종장이 그렇게 완결성 있게 써져야 한다. 종장다운 결말이 나지 않는 연(聯)은 퇴고할 때 버려야 한다.
미국에서 미국인에게 시조를 가르치는 마크 피터슨 교수는 미국인 학생들에게 시조를 외우지 못하면 학점을 주지 않으면서 영어로도 시조를 쓰라고 가르쳤는데 영시(英詩)를 잘 공부하려 하지 않는 학생들도 매우 흥미 있게 시조를 공부하더라고 한다. 시조가 재미있는 것은 3장 6구 12소절을 반복해서 외우며 읽고 쓰는데 있으며 종장을 특히 절묘하게 반전시켜 써보는 것이더라고 얘기해 주었다.
그리고 시조를 영어나 스페인어나 독일어나 어떤 다른 언어들로도 재미있게 쓸 수 있으며, 한국의 시조를 영어로 번역할 때도 반드시 형식․에 맞게 번역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서 얘기해 주었다.
즉, 시조의 형식을 지키지 않으면 시조로서의 특징이 없다는 것이다.
시조의 종장이 인상적인 경우는 초장과 중장을 아우르는 의미구조를 가지면서도‘기발하다 ․ 명쾌하다. ․ 절묘하다. ․ 신선하다. ․ 잘 여물었다. ․ 잊히지 않는다.’등의 깔끔한 완결미가 있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그로인한 정서적 충격, 인지적 충격, 기법상의 충격을 준다.
‘시조를 안다.’는 것과 ‘시조의 깊이 안다.’는 것과 ‘사랑하는 시조이다.’하는 것은 정도의 차이가 있으니 종장을 성공적으로 쓴 예문을 한마당 새겨보자. 구태여 설명을 붙이지 않아도 한 번 읽어보면 느낌이 오고, 두 번 읽어보면 의미가 상상되며, 세 번 읽어보면 가까워지고, 아주 외워보면 곱씹고 싶도록 시조의 첫인상 같은 멋과, 사귈수록 깊어지는 맛에 매료된다. 시조를 창(唱)으로 부르지 않아도 가만히 읽어보면 가락이 저절로 울려준다. 현대 시조는 창으로 부르는 시조가 아니라 눈으로 읽고 새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여기에 오해가 있어 보인다. 눈으로 본다는 것을 창을 부르지 않더라도 글로 쓰면 된다는 말이지 창(唱)과 관련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현대 시조도 얼마든지 창으로 부를 수 있고, 세계의 다양한 음악으로 표현될 수 있다.
<1>
가만히 오는 비가 낙수저서 소리하니
오마지 않는 이가 일도 없이 기다려져
열릴 듯 닫힌 문으로 눈이 자주 가더라.
-최남선, 「혼자 앉아서」전문.
<2>
동네서 젤 작은집 / 분이네 오막살이
동네서 젤 큰 나무 / 분이네 살구나무
밤사이 활짝 펴올라 / 대궐보다 덩그렇다.
-정완영, 「분이네 살구나무」
<3>
배앝아도 배앝아도 돌아드는 물결을 타고
어느새 가슴 깊이 자리 잡은 한 개 모래알
삭이려 감싸온 고혈(膏血)의 구슬토록 앓음이여
-이호우, 「진주」
<4>
투박한 나의 얼굴 / 두툼한 나의 입술
알알이 붉은 뜻을 / 내가 어이 이르리까
보소라 임아 보소라 / 빠개 젖힌 / 이 가슴.
-조운, 「석류」
<5>
소리를 짊어지고 / 누가 영을 넘는가
이쯤 해 혼을 축일 / 주막집도 있을법한데
목이 쉰 / 눈보라 소리가 / 산 같은 한을 옮긴다.
-이상범, 「남도창」
<6>
물총새 편히 살라 / 산(山) 채로 들여놓다
천창(天窓)을 내던 목수 / 하늘 채 열어놓다
꿈꾸는 봇짐을 안고 / 혼자 와서 문 여는 달.
-박헌오, 「호수」
원용우 교수의 저서에서 발췌해 보면 「시조를 기승전결의 구조로 본다면 종장은 전결 부위에 해당한다. 그래서 종장에는 주제나 결론이 배치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계절로 따지면 종장 전구는 9월, 10월에 해당한다. 오곡백과가 무르익고 수확을 하는 절정기이다. 사람으로 말하면 4,50대의 절정기다. 그래서 시조를 쓸 때는 종장 전구에서 확 돌려서 써야 한다. 국면전환을 가져와야 한다. 비틀기를 해야 한다.」고 종장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현대시조 창작』에서는 「초 ․ 중장의 전형적인 율격 先7 ․ 後8(또는 7․7)의 반복적 이완감에서 갑자기 종장에서 先8 ․ 後7로 변환된 것은 그렇게 함으로서 전환의 미적 쾌감과 강한 인상ㅇ을 주려는 뜻이 있다. 종장 제1소절은 3자 고정이나 제2소절은 이단성을 보이는 과음수로서 5자 이상 8자까지 융통성을 발휘할 수도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시조에 있어서 고시조 풍을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r고시조 풍의 특색이 가장 많이 나타나는 곳이 종장의 첫 소절과 끝 소절이다. 첫 소절은 감탄사나 허사를 관습적 용어로 사용하여 왔다. 예를 들면 엇더타. 어찌타, 어즈버, 아희야, 하물며, 그려도, 아마도, 아모리, 두어라 등과 같은 3자형이다. 현대 시조에서도 종장 첫 소절에서 허사를 쓰는 실수를 흔히 범할 수 있다. 3자의 글자 수를 맞추기가 편하기 때문이다. 독립적 언어를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종장의 끝 소절은 하노라. 하도다. 하리라. 하여라. 등과 같은 언사를 흔히 써 왔는데 시조창에서는 종장 끝 소절을 생략해 왔기 때문에 현대시조와는 그 용처가 확연히 다르다. 고시조에서는 그래서 3소절을 관습적으로 써 왔다. 현대시조에서는 3~4소절을 쓰는데 가능한 닫힌 마감을 권장하는 편이다. 도치법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다르고, 명사로 마감하는 경우도 현대시조에서는 흔히 있다.
그 외에 종장을 열린 채로 끝내면 글을 쓰다가 중지한 상태와 같아서 여운을 주거나 궁금증을 주기는커녕 미완성으로 보이기 쉽다.
각 장이 독립적인 문장 단위가 되고, 한 장 안에서도 전구와 후구는 각기 의미단위가 되므로 구분되어야 한다는 점은 명확한 일이다.
종장의 둘째 소절이 5자 이상의 과음절로 구성되지만 하나의 소절이므로 명확하게 두 개의 소절이 되면 과음절이 아니라 2소절이 되므로 종장이 5소절이 되므로 시조가 되지 못한다. 주의해야 할 조사의 사용에 대하여는 알기 쉽게 연구된 저서의 해당부분을 소개한다.
『현대시조 창작법』의 저자 김흥열을 고시조 5000여 편을 분석하면서 시조의 형식을 연구한 바 있다. 이 책에서 시조의 종장에 대한 어법상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종장의 첫 소절 3자는 글자 수 만 맞추기보다 의미의 생성단위로 보아야 한다고 규정짓고 있다 다음에 본문의 일부를 간추려 본다.
① 관형격 조사 “의”를 피해야 할 곳
초장, 중장 : ~의/ …의 …… 전구와 후구 말미.
종장 : ~의/ …의/ ………… 첫 소절과 둘째소절 말미.
② 접속 조사로 된 경우도 피한다.
~와(과) ~하고
③ 분리할 수 없는 말도 피해야 한다.
“가오리/연꼬리 흔들며 하늘로 날아간다”
“도깨비 방망이 들고 사람들을 웃긴다.”
“되돌아/보면서 자꾸 지난일이 생각났다.”
“꼿꼿이/서서 나는 증언한다.”
시는 문자로 그리는 그림이라고 한다.
묘사와 시적 진술에서 일반적으로 묘사는 상상의 그림이다.
상상의 그림이면서 추상적 그림이 아니고 구체화된 그림이며, 구체적 그림이면서 사실적 설명적 그림이라기보다는 암시적 숨은 그림이다. 어떤 면에서 실감할 수 있으면서도 거짓말 같고 거짓말 이면서도 마음과 의지로 믿어지는 실체 같은 그림일 것이다. 누구나 같은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전경(前景)이라기보다는 시인의 눈으로 해석할 수 있는 배경(背景)의 그림일 것이다.
그리고 시는 묘사와 시적 진술로 이루어진다. 시적 진술은 관찰에 의한 회화적 가시화라기보다는 관조를 필요로 하는 청각적 설득에 가깝다. 시적 진술은 독백적 진술, 권유적 진술, 해석적 진술로 구분하는데 종장은 일반적으로 시적 진술이 주조를 이룬다 할 것이다. 물론 한 줄의 시어 구성에서도 묘사와 진술이 조화롭게 섞이기도 하지만 장별 의미 단락에서 본다면 종장은 결구를 구성하기 때문에 시인의 의지가 담긴다. 일반적 시조의 전개방식인 선경후정(先景後情)의 형식적 배치 원리에 의해서 본다면 초장은 묘사, 중장은 묘사와 진술, 종장은 진술이 주도어를 이루는 방식이 효과적으로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