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여러분.
설날을 전후하여 한 5일 동안,
어떤 친구는 일주일 동안의 휴가를 마치고
이제 다시 일터로 돌아가야 하는 때이다.
이제 우리 나이 50,
꿈을 펼치던 40대는 훌딱 지나가 버리고
새로운 10대가 시작되고 있다.
40대가 되었을 때,
불혹의 나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며
희망과 환희로 가득찼던 10년 전의 추억이 생각난다.
이제 공자님 말씀에 지천명의 나이,
말이 좋아 지천명이지,
새로운 일 벌이지 말고,
하던 일을 뒷마무리 하라는 뜻이다.
동기 여러분,
이제 건강도 예전 같지 않으니, 폭음에 간장 고생 시키지 말고
술집 아닌 이야기 카페 방문하여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이 여러모로 몸에 이롭다.
그런데, 장항덕은 오랜 외국생활과 무역업무에 일화도 많을 테고,
최종국은 선생님에서 엘지 전자로 전직하여 느낌이 어때?
김병순은 전자과 교수, 남병식은 전자공고 선생님, 김은현은 미국 실리콘 밸리에서 생활이 어떠냐.
모두 컴퓨터라면 날고 기는 선수들이지 싶은데,
통 소식이 없다.
남병식 같은 친구는 20년 전부터 컴퓨터 조립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는데,
아직까지 우리 회원으로 가입도 안했다.
전화하면, 가입한다고 말만하고 마네 그려.
연락할 일이 있어 이메일 주소 알려 달라고 하니, 그런거 없다고 하는 거 있지.
나참 기가 막힌다.
요즈음 초등 아이들 서너개의 메일 주소는 다 가지고 있는데, 그런 것 없이 어떻게 수업이 되냐.
이재국, 김동기, 피재만은 요즈음 잘나가는 삼성전자에서 재미가 어때?
교사에서 교감 선생님으로 승진한 수많은 동기들의 근황도 듣고 싶고...
해외에 거주하는 동기들, 그곳 생활의 애환도 듣고 싶다.
그 외에도 이름을 부르자면 여럿이 있다.
김동규는 뒤늦게 컴맹 탈출하여 보챌 수 없고,
전반적으로 안동 친구들의 활동이 저조한 것 같으네.
안동엔 선생님들이 많으니까, 충분히 활동이 가능하다.
좀더 활성화 시켜보자.
난 안고 23 동기들이 좀더 쉽게 만날 공간을 만들어 주는
카페지기이니까, 이야기는 여러분이 좀 해 봐여.
요즈음 우리 친구들은 아이들이 고등학교 이상 거의 다니니까. 집에 초고속 통신망이 깔려 있을 꺼야.
그거 없이는 초등학교 아이들 숙제도 불가능하고,
스타크레프트, 리니지 게임도 못하고, 왕따당한다.
본인이 무관심해서 그렇지...
모르면 아이들 한테 배워보자.
우선 타자부터... 요즈음 타자연습 프로그램이 얼아냐 많냐.
집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어.
우리 가페에 문을 두드리고 처음에 욱일 승천의 기세로
대드던 친구들은 전부 어디로 갔는지...
아무런 이야기도 좋으니, 한번 올려 봐.
몇몇은 열심히 활동하여 반갑기 그지없지만, 나머지 동기들도 한번 방문하여 이야기를 한번 해 주기를...
포항에 달포, 서울에 김종, 박영구 등 친구들 활발한 활동에 감사하고, 그 외 한번이라도 얼굴을 내민 친구들은 반갑고, 새로운 동기들도 한번 올라와 봐요.
전화를 하면 열심히 방문은 한다고 하는데 통 보따리를 풀어놓을 생각은 않네그려.
요즈음 카페가 너무 뜸하여 오래전에 쓴 원고인데, 본인의 이야기 하나를 올리려고 한다.
소생이 미국이라는 나라에게 가서 뒤늦게 공부했던 일화를 소개할 까하는데, 수근거리는 친구들이 있을까 두렵다.
지가 뭐 잘났느냐....
여러분은 이런 말 안할 거죠...
이것 저것 가리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그냥 한번 올려본다.
복잡한 이야기는 여러분이 새겨 들으리라 믿고 그냥 올려본다.
이 여행기 겸 연수기는 "시민과 변호사"라는 잡지 1997년 5월호에 124면에 게재된 것임.
지금 마누라는 내가 안고23 카페니 뭐니 하면서 운영한다고 밤잠을 설치니
그만 집어치우고 가만 있으라고 난리지만,
그래도 그렇게 할 수야 있냐.
마냥 술먹고, 만나자는 이야기만 할 수 없어
그 때의 원고를 리바이블하여 올린다.
새해 복많이 받으시유.
"미국버클리 대학 연수를 마치고..."
황 현 호
1. 글머리
필자는 1996. 7. 9.부터 1996. 8. 11.까지 5주 동안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인 데이비스(Davis) 대학과 버클리(Berkeley) 대학에서 실시된 미국법 연수를 다녀왔다. 그 때의 미국 대학에서의 연수생활이 감회가 깊었고, 연수가 끝난지 8개월이 지난 지금도 학교당국에서 연하엽서라든지 학교행사 안내문 등을 보내 오고 있으며, 그 연수과정에서 만난 세계 각국의 사람들과 서신과 전화로 가끔씩 연락을 하는 등 유용한 만남을 계속하고 있다. 그리하여 다른 분에게 연수과정을 소개하는 것도 약간의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짧은 영어 실력으로 불과 1달여간 미국 대학에서 생활한 것을 가지고 연수생활을 소개하는 것이 무리인 줄 알지만 필자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느낀 바를 써 보기로 한다.
2. 준비과정
필자가 미국법 연수를 가게 된 것은 특별히 미국법에 관하여 연구의욕이 있어서 간 것은 물론 아니었다. 명색이 十數年 경력의 판사이지만 실무를 해결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판례와 약간의 법률분야 공부를 하였을 뿐 하루하루 배당된 사건을 처리하는 데 급급하였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자화상일 것이다. 어쩌다가 국내에서 연수의 기회가 있으면 잠시나마 재판업무가 정지될 뿐, 되돌아오면 밀린 일을 처리해야 하는 중압감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연수라는 것 자체가 일종의 노동으로 생각되게 되었다. 대학생활과 연수원 생활을 마친지 오래되어서 그런지, 일방적으로 재판을 主宰하는 일을 하여서 그런지 모르지만, 장시간 강의실에 앉아 수동적으로 강의를 받는 것이 고되게 느껴졌다.
그러던 중 1996. 봄쯤 법원행정처에서 海外短期硏修 대상자에 본인이 포함되어 있다는 통보를 받게 되었다. 법조경력과 신청에 의하여 대상자를 선발하므로, 어느 정도 예상은 하였다. 처음으로 海外旅行을 한다는 점에서 반가운 면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5주동안 미국대학에서 잘 알아듣지 못하는 강의를 듣는 것이 어려울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출석점검을 엄격히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되었으나, 그것은 杞憂였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自律社會이고 競爭社會이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강요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 때부터 시간이 있으면 도서관이나, 서점에 나가 영미법에 관한 서적을 살펴보았으나 영미법강의 형식의 두세권 정도밖에 없었다. 국내법의 법률 교과서들은 엄청나게 부피가 늘어나고 종류도 다양해졌으나 영미법에 관한 한 20년 전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지금은 國際化時代이므로, 오랫동안 미국에서 유학한 분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분들이 영미법에 관한 최신의 자료들을 정리하여 책으로 펴 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다. 그런데, 미국법 연수를 마치고 돌아와서 법원 도서관에 가보니 1996. 7. 30. 초판 발행의 영미법(박영사 刊)이라는 책이 나와 있었는데, 영미법의 이해에 상당히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영어공부도 문제였다. 사법시험 1차시험으로 영어공부를 한 이후 십수년간 거의 손을 놓다시피 하였다. 미국법 강의를 듣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異域萬里 땅에서 衣食住를 해결해야 하는 수단으로서 기본적인 영어는 필요한 것이므로,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이 내가 알고 있는 영어는 대부분 읽기 위주일 뿐 아니라 듣기나 말하기는 아주 부정확한 발음투성이이다. 가령 쇼핑(Shopping), 맥도날드(McDonald), 밧테리(Battery), 필름(Film) 등 일상화된 용어의 발음은 현지에서 잘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이다. 필자가 듣기로는 샤핑, 맥-도널, 배러리, 피음 등으로 발음되었다. 한국어로 옮길 때의 표기도 발음대로 했으면 싶다. 우리는 외국어 표기법이 있으므로 어쩔 수 없다고 할 지 모르지만, 왜 우리는 한국식 영어를 배워야 하는지 지금도 모를 일이다.
일본어 같으면 가나의 표기방법이 한정되어 있어서 어쩔 수 없다. 가령, Mcdonald를 일본어로 표기하면 마쿠도나루도(マクドナルド)가 되는데, 이는 받침이 거의 없는 가나의 구조상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맥-도널이라고 우수한 한국어로 충분히 原發音에 가깝게 표기할 수 있는 것이다.
어쨌든, 시간은 늦었지만 그 때부터 영어회화 테이프나 케이블 TV.의 영어교육방송을 하루에 한 두 시간씩 시청하면서 미국행 날짜가 오기를 기다렸다.
3. 출국
연수장소인 데이비스 대학과 버클리 대학은 샌프란시스코 근교에 있었다. 우리 나라 법원은 미국법 단기연수에 모두 5명을 파견하였는데, 그 중 2명을 산타 크라라(Santa Clara) 대학(역시 샌프란시스코 근교에 있음)에, 3명을 데이비스 대학과 버클리 대학에 파견하였다. 대구고등법원과 대구지방법원 등 같은 지역에 근무하고 있던 허명 판사님, 김득환 판사님, 필자 등 3명은 後者의 대학에 파견되었다.
연수기간을 전후하여 1주일간 출입국에 관계된 개인적인 시간이 있었으므로, 우리는 하와이에서 2박을 한 뒤 샌프란시스코로 갔다. 비행기는 1996. 7. 10. 19:30경 김포공항을 출발, 기내에서 밤을 세우는 등 9시간을 비행하여 호놀룰루 국제공항에 7. 9. 09:30경 정시에 착륙하였다.
未知의 땅에 대한 여행은 항상 새롭다. 하와이하면 열대의 나라로서 땅에는 樹林이 울창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비행기가 고도를 낮추면서 군데군데 보이는 하와이의 섬은 나무가 생각보다 적었고, 키가 낮은 풀이 많았다. 나중에 가이드에게 그 원인을 물어 보니 이 곳의 땅이 화산섬으로서 토질이 척박하기 때문이란다. 오히려 우리 나라의 여름 산 보다 수목이 적은 것 같았다
호눌눌루시는 하와이 제도 중 오아후(Oahu) 섬에 위치하고 있는데 그 섬의 크기가 우리 제주도 보다 적다는 사실도 새삼 알았다. 그 작은 섬에 하와이 전체 인구 120만명 중 75% 정도가 몰려 산다고 한다. 하와이관광은 호눌눌루 市內觀光, 오아후 섬 一走觀光, 나머지 섬 航空觀光 등으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우리는 일정상 마지막 관광은 하지 못하였다.
첫날 시내관광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입국이 3시간 지연되어 오후에 3시간 정도만 와이키키 해변 주위의 관광을 하고 다음날 섬 일주관광을 하였다. 하와이, 통가, 사모아, 피지, 타히티, 뉴질랜드 등 폴리네시아 6개국의 민속을 구경하는 폴리네시아 민속촌(Polynesian Cultural Center) 관광이 하와이 여행 중 가장 재미있었다.
와이키키 해변은 일년 내내 해수욕이 가능하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해수욕장임에도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 수가 매우 매우 적었던 점, 해변 주위에 고층의 호텔 객실 수가 엄청나다는 점, 작은 섬임에도 공항의 비행기가 3 내지 4분만에 1대씩 연이어 착륙하는 모습, 금방 비가 오고 금방 개는 날씨의 변화, 일본상점 및 일본호텔이 많은 점 등이 이채로웠다.
4. 샌프란시스코 도착
하와이에서는 여행사를 통한 여행이었으므로, 여행일정에 관하여는 걱정이 되지 않았으나, 샌프란시스코에서부터는 개별여행이므로 모든 것을 개인이 알아서 하여야 하였다. 일본 대사관에 근무하시는 형님을 통하여 샌프란시스코 영사관의 兪일한 참사관님을 소개받아 그분에게 마중을 부탁하였다. 우리는 그 분에게 예약된 숙소인 미야코 호텔까지 안내만 부탁했는데도 우리를 자택으로 안내하여 저녁까지 융숭하게 대접해 주셨고, 밤에는 시내야경까지 시켜 주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우리는 2박을 하면서 시내구경을 하고 자유시간을 보냈다.
1996. 7. 14.부터 데이비스 시에서 본격적으로 연수가 시작된 후에도 샌프란시스코에는 자주 나왔으므로 샌프란시스코 시내 구경은 많이 하였다. 길이 8km, 폭 1.5km의 직사각형 형태의 人工公園인 골든게이트 파크, 샌프란시스코灣 海上觀光 중심지인 39부두(pier 39)와 피셔맨스 워프, 미국 최대라고 하는 차이나 타운, 동성연애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카스트로 거리, 유니온 스퀘어를 중심으로 한 고층빌딩군, 왕복 5차로(옆에 人道도 있음) 다리를 불과 두개의 교각이 떠 받히고 있는 金門橋(Golden Gate Bridge) 등이 볼만했다.
특히 금문교는 외관이 장엄한데, 길이가 2,789m이고, 중간에 해수면 224m 높이의 거대한 강철기둥 2개가 있으며 그 사이의 간격이 1,280m인 현수교이다. 다리중앙의 높이는 66m로서 현재까지 이 다리 밑을 통과하지 못한 배가 없었다고 한다. 서울에서 비교한다면, 용산 역에서 노량진 역까지 길이(2.6km)의 다리인데 한강 남단에 있는 63빌딩을 대칭으로 한강 북단에도 그것을 세우고 이를 교각으로 하여 20층 높이에서 다리상판을 서로 연결한 형태라고 보면 좋을 것이다.
여름인데도 산에는 풀들이 거의 말라 있었다. 거기는 地中海性 氣候라서 5월 내지 11월의 乾期에는 기온만 높을 뿐 비가 오지 않아서 풀이 자라지 못하고, 11월 하순부터 雨期가 시작되면서 기온이 약간 내려감과 동시에 비가 오면서 풀이 나고 이듬해 4월까지 자란다고 한다. 우리 나라와 위도는 거의 비슷한 위치에 있는 도시이지만 기후는 매우 달랐다.
5. 데이비스市 도착
샌프란시스코에서 2박을 한 후 1996. 7. 14.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연수를 위하여 약 120km 떨어진 데이비스 대학으로 갔다. 그 대학까지는 산호세 실리콘 밸리 컴퓨터 소프트웨어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고등학교 동기가 길 안내를 해 주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22년이 되었는데 그 동안 한번도 만나지 못하여 얼굴도 잘 기억되지 않는 터에, 이역만리 미국 땅에서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살아가면서 그런 극적인 만남도 드물 것이라 생각했다. 그 친구 이름은 김은현인데, 미국인이 발음하기 힘들어 유진 김(Eugene Kim)이라는 별도의 이름을 지었다고 하였다.
어쨌든 그 친구는 운전을 하고 그 친구 부인은 조수석에 앉아 지도와 도로표지판을 번갈아 보면서 부지런히 길 안내를 한 덕택에 우리는 2시간 정도 지나 데이비스 시에 도착하였다. 미국 全圖상에는 샌프란시스코와 거의 붙어 있는 것 같아 처음에는 아주 가까운 거리라고 생각하였는데 실지로는 멀었다. 미국이 큰 나라라는 것을 새삼 실감하였다.
미국에 이민 온지 십여 년이 경과된 그 친구도 지도를 보지 않고는 여행을 할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우리는 국토도 좁고 단일민족이므로, 길을 모르면 물어 물어 찾아갈 수 있는데, 미국에서는 아주 익숙한 길이 아니고는 지도 없이 여행을 하기가 어려웠다. 지도가 그만큼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고, 도로표지가 잘되어 있기 때문에 지도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고 빠르다고 한다.
데이비스 시에 가까워 오니 날씨가 점점 더워지기 시작하였다. 샌프란시스코의 시원한 날씨와는 대조적으로 기온은 높으면서 습기가 적은 沙漠氣候로 바뀌었다. 한달 동안 여기서 지내야 되다니 고생길로 접어들었다고 생각했으나 며칠 지나고 보니 한낮이라도 그늘에 들어가면 더위를 못 느끼고, 밤이 되면 시원한 날씨라 그런 대로 지낼 만했다.
데이비스 시에 도착하였지만 우리 나라와 같이 대학이 담으로 구획된 것이 아니어서 어디까지가 대학 구내인지 알 수가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산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광활한 대지에 건물도 4층 내외의 낮은 건물이라서 찾기가 더욱 어려웠다. 우리는 연수등록장소가 데이비스 대학에 있는 에머슨 홀이라는 것을 알고 왔으나, 간혹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 보아도 장소를 몰랐다. 대학 구내의 식당에 들러, 캠퍼스 지도를 구한 후에야 겨우 목적지를 찾을 수가 있었다.
6. 연수생활의 시작
1996. 7. 14. 일요일 16:00경 에머슨 홀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아 우리가 잘못 찾아온 것이나 아닌지 의심되었으나, 약 1시간 뒤에 피부색이 각각인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은 캘리포니아 주의 首都인 새크라멘토 공항에 집결하여 학교측이 제공한 버스를 타고 단체로 온 모양이었다. 그들이라고 미국에 아는 사람이 없으리요만, 그들은 개인적인 일로 다른 사람에게 신세를 지려고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에머슨 홀은 우리가 3주동안 머물 기숙사였는데, 거기서 간단한 등록을 받고 기숙사 방 배정을 받았다. 외부적인 시설은 낡았으나 각자 1개의 방을 배정하여 주고 욕실 등이 딸려 있어 편리하였고, 소규모의 풀장도 갖추어져 있었다. 해는 地平線으로 떨어지고 긴 旅程에 피로하여 숙소에서 잠시 쉴까 생각하였는데, 갑자기 기숙사 라운지에 모이라고 하였다.
연수과정의 실무책임자(Director) 베스 그린우드(Beth Greenwood)가 간단한 인사말을 한 다음 칵테일 파티를 열어 주었다. 미국을 제외한 세계 각국에서 온 111명의 연수 참가자들에게 일일이 악수를 하면서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없애려고 노력하였다. 칵테일과 다과를 들면서 참가자들과 서로 인사나 말을 하고는 싶었지만 말이 잘 통하지 않아 답답하기가 그지없었다.
약 1시간 가량 파티가 진행되었는데, 영어를 못하기로는 일본인도 마찬가지라 우리는 주로 일본인과 어울려 대화를 하게 되었다. 이왕이면 歐美의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싶지만 미국에서만큼은 일본인에게 친근감이 가는 것 같았다. 발음과 어순이 조금만 틀리면 구미 사람들은 못 알아듣지만 일본인들은 대충 이야기를 하여도 알아들었다.
파티가 끝나고 식사시간이 되었는데도 우리는 식사시간을 잘못 알아 저녁을 굶을 처지에 있었다. 거기는 한적한 시골 도시라 식당을 찾기도 힘들었다. 우리 일행 중에서 천안에서 개업하고 계신 이재호 변호사 님이 영어 솜씨를 발휘하여 학교당국에 “식사가 형편없어서 저녁을 먹지 못했다, 식사를 하러 가려니 교통이 불편하다.” 이런 취지로 컴프레인(Complain, 불편을 호소하는 것, 적당한 우리말이 생각나지 않음)한 결과 학교에서 수잔 굿나잇(Susan Goodnight)이라는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상냥한 여직원이 미니 밴을 직접 운전을 하여 3km 정도 떨어진 시내의 식당으로 안내를 하여 주었고, 저녁식사가 끝난 다음 기숙사로 친절하게 태워 주었다. 이렇게 하여 미국대학에서의 첫날 연수생활이 시작되었다.
7. 연수과정의 일반적인 소개
가. 참가자의 구성
미국법 단기연수과정에 참가한 사람은 모두 111명이었는데 그 인적 구성을 보면, 일본인이 48명으로서 가장 많았고, 우리 나라에서도 처음에는 법원에서 파견한 3명뿐인 것으로 알았으나 현지에 가서 보니 변호사 2분과 삼성그룹에 근무하는 2분도 오셔서 모두 7명이 연수를 받아 상당히 많은 수를 차지하였고, 그 외 스위스 14명, 독일 8명, 브라질 7명, 이태리 5명, 프랑스 3명 정도이고, 그 외 사우디 아라비아, 오스트리아, 칠레, 벨지움, 태국, 콜롬비아, 타이완, 노르웨이, 덴마크, 호주, 베네주엘라, 스웨덴, 네덜란드, 파나마,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중국에서 1 내지 2명의 참가자를 보내었다. 주로 비영어권 국가에서 참가하였다.
그리고 참가자들의 직업관계를 보면, 변호사가 가장 많았고, 법관(Judge), 검사(Prosecutor), 정부부처 근무자(Government officer), 은행원(Banker), 교수(Professor), 대기업 법률분야 근무자(Law department employees of big companies), 법원 및 법률사무소 직원(Court and Law Firm clerks) 등이 참가하였으며, 연령관계를 보면, 24세 정도의 사회 초년생으로부터 50세가 훨씬 넘어 보이는 은퇴를 바라보는 사람도 있었다.
제일 고령자는 세르지오 살비오니(Sergio Salvioni)라는 스위스 분이었는데, 우리는 나중에 강의실에서 그분을 만나면 우리끼리 실례를 무릅쓰고 ‘스위스 할배’라고 불렀다. 그러나 역시 제일 많은 연령층은 30대 초반으로서 사회생활을 힘차게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남녀의 비율은 3대 1 정도로 남자가 많았다.
그리고 참가자들의 교육과정을 보면, 우리같이 4주간의 단기 미국법연수만을 마치고 귀국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1 내지 2년간 미국의 로스쿨(J.D.과정, 또는, LL.M.과정)에 수학하기 위한 전 단계로 연수를 받는 사람들도 있었다. 특히 일본인 가운데에는 단기연수만 마치고 귀국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연수가 끝난 후 대부분이 미국 각지의 로스쿨에서 계속하여 공부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또한 로스쿨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복습을 하는 의미에서 연수를 받는 것 같기도 하였다.
미국 동부지역의 로스쿨에 수학하기 위하여 온 사람들도 미국법 단기연수과정은 서부지역에 있는 데이비스 대학에 온 사람들이 많아 그 까닭을 물어 보니, 동부지역에서도 몇몇 대학에 그런 강좌를 설치한 대학이 있으나, 분위기가 너무 딱딱하여 데이비스 대학을 택하였다고 하였다.
여기서 로스쿨에 대하여 설명하기로 한다. 주지하다시피 미국의 로스쿨은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입학할 수 있는데, 3년간 수학을 하며, 졸업을 하게 되면 J.D.(Juris Doctor)의 학위를 받게 되나, 특별히 학위논문을 제출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이 학위를 받으면, 변호사 시험(Bar Exam.)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된다.
그 후 전문분야에 대한 공부를 하려면 다시 LL.M.(Master of Law) 과정에 들어가야 하는데, 이 과정은 보통 1년이며 졸업 시에 졸업논문(Report)을 제출하여야 한다고 한다. 그 후에 다시 학문적 연구를 하려면 J.S.D.(Doctor of Judicial Science)과정에 들어가야 하는데 이 경우에는 엄격한 논문심사를 거쳐야 한다고 한다.
위와 같은 모든 과정이 로스쿨에 설치되어 있는데, J.D.과정을 Undergraduate School이라고 하고, LL.M. 및 J.S.D.과정을 graduate School이라고 하나, 우리와는 학제가 전혀 다르므로 우리말로 번역하기는 힘들다. 외국인으로서 LL.M.과정에 들어가려면 J.D.수준의 학위를 요구하는데, 외국의 법과대학을 졸업하여 법학학사 학위를 취득하면 그 요건을 충족하는 것으로 본다고 한다. 그러나 외국 법학학사 학위만으로 바로 LL.M.과정에 들어가는 것은 무리이므로, 별도로 J.D.과정을 1 내지 2년 거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참가자는 배우자 등 가족의 동반이 허용되었다. 수업을 제외한 나머지 행사에는 거의 동반이 허용되었다. 학교측에서 이런 동반자를 위하여 호텔이나, 아파트를 저렴한 비용으로 알선하여 주었다. 참가자 중 약 20명 가량이 가족을 동반한 것으로 알고 있다.
나. 데이비스 대학의 소개
데이비스 대학은 인구 5만의 학원도시인 데이비스 市에 위치하고 있는데, 그 중 그 대학의 학생 수가 22,000명이다. 데이비스시는 80번 고속도로를 따라 샌프란시스코에서 동쪽으로 120Km, 캘리포니아 주의 首都인 새크라멘토에서 서쪽으로 24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캠퍼스의 넓이는 1400헥타아(420만평)에 달하고, 9개의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캠퍼스 중 가장 큰 넓이이다. 특히 킹 홀(King Hall)이라는 건물에 있는 로스쿨은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60개의 로스쿨 중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지속적으로 3위 이내에 드는 대학이다. 이상은 대학당국에서 나누어준 안내책자에 따라 데이비스 대학을 소개하였다.
여기서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에 관하여 설명을 하기로 한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University of California, 약칭 U.C.)이라 함은 단일한 대학이 아니고, 캘리포니아 주 내의 9개 도시에 캠퍼스가 있는데, 각자 독립된 대학으로 총장이 따로 있으며, 한 개의 캠퍼스 학생 수가 보통 2만 명이 되는 형태의 대학이다.
대학의 모든 건물은 고유한 이름이 있는데 무슨 무슨 홀(Hall)이라고 하였다. 건물은 대개 4 내지 5층의 낮은 건물로 되어 있고, 건물 사이가 넓고 散在하여 도보로 이동하기에는 먼 듯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 우리가 주로 연수를 받는 킹 홀(King Hall)과 기숙사인 에머슨 홀(Emerson Hall)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걸어다니기에는 불가능하였다.
대학 구내에는 주차장이 많았지만 입구와 출구에서 주차 미터기에 의하여 자동으로 주차요금을 정산하는 유료 주차장이었고, 보통의 대학생들은 자전거로 등교를 하는 것 같았으며, 대학구내에 자전거 대여소(Bike Barn)가 있었다. 우리도 하루에 3달러를 지불하고 20일 정도 자전거를 빌려 사용하였다. 50일 정도 사용하는 요금이 150달러인데 그 돈이면 자전거를 새것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 나라 같으면 헌 자전거는 거들떠보지도 않을 터인데, 용수철 모양의 쇠줄을 길게 달아 그 끝에 자물쇠를 붙여 놓았다. 그러나 그 줄이 아주 편리하였다. 데이비스 시내의 큰 건물에는 거의 대부분 건물 앞에 철봉 형태의 자전거 계류장을 만들어 놓아 철봉에 쇠줄을 걸고 자물쇠를 잠그도록 되어 되었다. 차를 타고 가면 먼 곳에 주차를 시키고 걸어가야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가면 건물 바로 앞에까지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으므로, 그 이용이 여러모로 편리하였다.
또한 걸어가거나 자전거를 타고 가면 교통신호를 무시하고 가더라도 자동차들이 모두 양보를 한다. 우리와 같은 위협운전은 보기 힘들다. 저렇게 걸어가는 사람이나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이 있어야 자동차의 이용도 편리하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롤러 스케이트를 타고 등교하는 사람들도 매우 많았다. 우리는 실내에서 오락으로 하는 롤러 스케이트가 그들에게는 교통수단으로도 활용되었다. 그 기술도 대단하여 자전거가 가는 길은 물론이고 웬만한 계단도 거침없이 타고 오르내린다. 자전거 대여소에 가면 롤러 스케이트도 빌릴 수 있다.
위와 같은 형태의 자전거 이용은 샌프란시스코 시내에도 많이 볼 수 있다. 골든 게이트 파크 같은 큰 공원에서는 자전거의 이용이 가장 편리하였다. 미국 하면 자동차의 천국인 것으로만 알고 있지만 자동차의 이용정도는 도시마다 다른 것 같았다. 우리도 좁은 국토에 대체 교통수단을 하루빨리 보급하여야 할 것이다.
다. 교수진
연수과정을 담당하는 분들은 크게 2분되어 있었다. 연수등록, 행사안내, 학사관리 등 행정적인 지원을 하는 行政職員(Staff)과 직접 강의를 담당하는 敎授團(Faculty)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행정직원은 책임자인 베스 그린우드 등 9명이었고, 교수단은 대학 전속교수 8명에다가 외부교수 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외부교수들은 변호사들이 가장 많았고, 州 대법원 판사, 연방 및 州 판사, 연방 및 州 검사, 州 상원의원, 전직 데이비스시 경찰서장, 신문사 편집국장, 중재 재판관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강의가 시작되면 보통 행정직원 중에 한사람이 나와 교수를 소개하고 난 다음 교수가 강의를 하고 강의 도중 질문을 하고 답변을 하는 형태로 수업이 진행되었다.
라. 연수일정
필자가 연수생활을 머리 속에 그리기로는 우리 나라의 일반적인 대학처럼, 오전에 2시간, 오후에 3시간 정도 강의를 받으며 그 나머지는 주최측에서 관여하지 않는 자유시간인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미국여행을 하면서 시종 느낀 것과 마찬가지로 연수생활도 머리 속에서 생각했던 것과 실제로 부딪치면서 겪었던 현실이 달랐다는 점이다.
연수는 1996. 7. 15. 월요일부터 4주동인 日課表(Daily Schedule)에 따라 진행되었는데, 일과표가 아주 자세하게 적혀 있었고, 일정은 전체적으로 타이트하였다. 1996. 7. 15. 월요일에는 학비납입 등 정식등록(Registration), 캠퍼스안내(Campus Tour), 신분증 및 졸업앨범 제작을 위한 사진촬영(Taking Photo), 도서관이용안내(Library Tour), 자전거 임차(Bike Rental) 등으로 거의 하루를 보내었고, 그 다음날부터 본격적인 연수가 시작되었다.
등록비용에는 학비(Tuition) 3,095弗, 기숙사비용(Housing) 중 데이비스대 체류시 900弗, 버클리대 체류시 500弗, 1달간의 의료보험(Medical insurance) 50弗, 왕복 공항마중비용(Airport transportation) 150弗 등이 포함되어 있는데, 학비 외에는 모두 임의적인 비용이었다.
연수는 매일 아침 8:30이면 어김없이 시작되었다. 학생이 덜 왔다고 늦게 하는 법도 없고, 예정된 강의시간을 일찍 끝내는 교수도 거의 없었다. 어떤 교수는 쉬는 시간을 주지도 않고 3시간 연달아 강의를 하는 분도 있었다.
대개 12:00이면 오전수업이 끝나는데 그 후 1시간 30분이 점심시간이다. 점심 중 主食은 그날 그날 마다 2 내지 3가지의 메뉴가 나왔으나 야채, 소스, 과일, 음료수, 빵 등은 뷔페 식으로 만들어 원하는 대로 먹을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그렇게 해 놓으니 적은 인력으로 대량의 연수생에게 식사를 제공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식사를 하는 도중, 우리의 일행은 분명히 아닌데, 한국말을 하는 사람이 많아 옆에 가서 물어 보니 우리 나라 전국 중고교 생물학 교사들이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39명이 단체로 교육부의 해외연수방침에 따라 데이비스 대학에 연수를 왔다는 것이다. 그 분들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교육과정(Botanical Teacher"s Course)으로서 한국인만의 연수이지만 그 분들을 합하면 에머슨 홀에서 한국사람들과 일본인이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많았다.
점심식사 시간 중 어떤 날은 런취 세미나(Lunch Seminar)라고 하여 식사 도중 연사가 연단에서 가벼운 이야기를 하면서 질의, 응답을 하는 때도 있었다. 식사 자체가 양식으로서 입에 잘 맞지 않는데다가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들으면서 식사를 해야 하니 고역이었다. 이렇게 하여 잠시라도 시간을 헛되게 보내지 않으려고 하였다.
오후 일과는 보통 13:30에 시작된다. 식당과 강의실이 2km 가량 떨어져 자전거로 이동을 해야 하므로, 서두르지 않으면 식사를 놓치거나 강의시간에 늦기가 일쑤였다. 오후 일과는 18:00경 되면 거의 끝나는데, 그 뒤로도 완전한 자유시간이 아니다. 저녁식사 후 리셉션, 모의재판, 바베큐 파티, 운동경기다 하여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물론 참석 여부는 자유이나 영어가 서툰 필자로서는 수업시간은 빠지더라도 그런 행사는 놓칠 수가 없었다. 일과시간 후에는 지원자에 한해 스터디 그룹(Study Group) 활동도 있었다. 특히 Pre-LL.M. 과정 참가자는 오후 9:30분까지 수업을 받는 날이 많았다.
이렇게 며칠을 정신없이 끌려 다니다 보니 도저히 모든 과정에 다 참가할 수가 없었다. 연수를 주최하는 측에서도 모든 과정에 다 참석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프로그램을 짠 것 같지도 않았다. 그 뒤부터는 일과표를 미리 보고 관심이 없는 분야는 빠질 수밖에 없었다.
강의실은 칠판 외에 T.V.나 슬라이드를 설치해 놓아 보조수단으로 활용하였는데, 대체로 시설 면에서 우리 나라 대학 수준은 넘는 것 같았고, 사법연수원 수준은 되는 것 같았다. 쉬는 시간에 대학 곳곳을 다니면서 살펴보았는데, 화장실은 어디를 가나 깨끗하였다. 대학의 게시판을 유심히 살펴보니, 매우 흥미로웠다. 경비를 절약하기 위하여 숙소의 룸메이트를 찾는 것이 많이 보였고, 간혹 강제추행 범인의 몽타주를 그려 놓고 범죄에 대한 경고를 자체적으로 하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우리의 대학 같이 각종의 동아리에서 붙인 구호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또한 로스쿨 재학생의 사진과 이름을 각 과정별로 붙여 놓았다. 그것은 참으로 유용한 것 같았다. 우리는 대학과정이나 직장생활에서 자주 만나는 사람이라도 이름을 몰라 실수하는 수도 있는데, 이렇게 사진을 게시판 등에 붙여 놓으면 아주 편리할 것 같다. 수료 후에도 앨범이 필요하지만 그 전에 오히려 더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연수를 며칠 받고 나니 人種葛藤, 强力犯罪 등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확실히 저력이 있는 나라로서 아직까지는 세계의 中心國家로서 위치를 확고히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미국은 적당히 하는 사회가 아니었다.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을 주는 것 같았으며, 평균인에게 맞추어 획일화를 강요하지 않았고, 선택의 폭을 넓혀 주었다. 수업일정이 너무 많으니 줄여 달라, 수업을 일찍 끝내 달라는 등의 요구는 통하지 않는 것 같았다. 수업이 과중하거나 싫으면 자기 자신만 빠지면 된다.
그리하여 어떤 사람이 수업에 빠진다고 하여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출석하지 않으면 다른 바쁜 일이 있겠거니 하고 말지, 출석을 강요하지 않는다. 자동차가 과속을 하여도 마찬가지이다. 누가 좋은 차를 가지고 있던 어떤 옷을 입고 있던 모두가 관심 밖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신에게 편하고 만족하면 그만이다. 그리하여 奇想天外한 옷차림과 헤어스타일, 장신구 등이 많다. 우리 나라 속담에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말이 있지만, 미국에는 남녀를 불문하고 코걸이를 한 사람이 많다. 오히려 귀걸이는 소수인 것 같다. 그 뿐이 아니라 눈썹걸이, 입술걸이를 한 사람도 심심찮게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가. 진심으로 타인을 생각해 주지도 않으면서 수업이나 어떤 일에 빠진다고 하면 叱責하고, 자기에 비해 자동차가 과속을 하면 자존심이 상하고, 좋은 차, 좋은 옷을 가지면 부럽고, 이상한 생김새를 하면 버릇이 없거나 정신이 나간 사람이라고 수군거린다.
마. 일반적인 연수내용
대학에서의 연수는 어떤 주제를 놓고 교수가 강의하며 질의, 응답하는 형식이 대부분이었다. 연수내용을 이 자리에서 다 소개할 수는 없고, 필자 자신이 이해를 하지 못한 부분이 많아 나누어 준 교재를 중심으로 제목과 간단한 내용을 소개하기로 한다. 나누어 준 교재를 보고 예습을 하지 않으면, 강의를 알아듣기가 불가능하였다.
(1) 訴訟事件 摘要의 方法(How to Brief A Case)
변호인이 공판정에서 주장하려고 하는 辯論의 要旨書를 어떻게 작성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구체적 사건에 있어서 당사자(Parties), 사실관계(Facts), 쟁점(Key points of the case) 등을 파악하고 법률적 근거(Rationale), 법률적 평가(Evaluation) 등을 어떻게 할 것인가, 또는 그와 같은 요지의 서면을 어떻게 작성하는가 하는 내용이다.
(2) 美國法 紹介(Introduction to U.S.A. Law)
이 과목은 주로 불법행위(Tort)와 그 구제(Remedies)에 관한 설명이다. 불법행위에 대한 구제방법으로서는 補償的 救濟(Compensatory Remedies), 豫防的 救濟(Preventive Remedies, 또는 Coercive Remedies), 懲罰的 救濟(Punitive Remedies) 등이 있다. 보상적 구제는 원고가 입은 손해를 금전적으로 보상하는 補償的 損害賠償(Compensatory Damages)이 대표적인 것이고, 예방적 구제중 가장 중요한 것은 禁止命令(Injunction)이다.
금지명령은 회복할 수 없는 손해(Irreparable Injury)가 예상될 때 분쟁당사자에게 어떤 특수한 일을 하거나 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원의 명령이다. 금지명령은 과거의 불법행위에 대한 금전적 손해배상과 함께 병과될 수 있다. 금지명령은 우리 나라의 가처분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懲罰的 損害賠償(Punitive Damages)은 고의에 의한 불법행위가 있는 경우에 가해자에게 징벌의 수단으로서 부과하는 손해배상이다. 물론 보상적 손해배상과 병과될 수 있다.
그 외에 補助的 救濟(Ancillary Remedies)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독립된 구제수단이 아니고 다른 구제수단을 보조하는 것이다. 즉, 訴訟費用(Costs) 및 辯護士 費用(Attorney"s fee)을 보상받는다든지, 이미 제기된 소송에 관하여 강제집행의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채무자의 재산을 보전하는 것(Ancillary Attachment, 假押留) 등이 보조적인 구제에 해당한다.
(3) 民事訴訟節次(Civil Procedure)
구체적 사건에서 민사소송이 어떤 절차로 이루어지는지에 관한 설명이다.
먼저 소송전의 문제(Preliminary Matters)로서 管轄(Jurisdiction)과 裁判地(Venue)를 어떻게 결정하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訴答(Pleadings)이라 함은 소장(Complaints)과 답변서(Answers) 등 양 당사자의 주장 또는 그 서면을 의미하는데 소송은 이 절차로부터 시작된다.
다음으로 開示(Discovery)절차인데 이는 공판 전에 상대방에게 사실관계에 관한 질문을 하고, 문서나 증거의 제출을 요구하는 것을 말한다. 개시절차에는 證人審問(Depositions), 質疑要求(Interrogatories), 證據調査要請(Requests for Inspection), 身體 및 精神檢査(Physical and Mental Examinations), 自認要求(Requests for Admissions)등이 있다.
그 다음으로 公判前 節次(Pre-trial procedure)는 공판을 열 것인 지의 여부를 결정하는 것을 말하는데, 부적법한 소에 대하여는 공판을 열지 않고 却下(Dismissal)하고, 상대방이 결석하거나 답변서를 제출하지 않는 경우에는 缺席判決(Default judgement)을 내리며, 사실심리없이 법률판단만을 요하는 경우 등과 같이 배심에 의한 사실인정을 요하지 않는 경우에는 간략, 신속한 절차에 의하여 略式判決(Summary judgement)을 내린다. 또한 公判前 協議(Pre-trial conference)라고 하여 공판을 개시하기 전에 법원의 재량으로 당사자를 불러 재판절차를 논의하고, 쟁점을 명확히 하며, 화해를 유도하는 절차이다.
다음으로 公判(Trial)절차인데, 이는 陪審員에 의하여 재판을 하는 단계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공판심리는 開示陳述(Opening Remarks), 증인신문 및 기타 증거제출(Examination and evidence), 당사자의 배심원에 대한 說得(Argument to jury), 판사의 배심원에 대한 說示(Instruction), 배심원의 評決(Verdict), 판사의 判決(Judgement) 등의 순서로 이루어진다.
다음으로 公判後의 申請(Post-trial motions), 抗訴(Appeal), 强制執行(Enforcement of judgements) 등의 순서로 이루어진다.
미국의 민사소송절차를 조금이나마 공부하고 보니, 우리 나라에서 지금 시범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集中審理制가 미국의 제도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판전 단계에서 쟁점정리를 하고, 간단한 증거조사까지 마치는 집중심리제는 공판심리의 효율을 위해서 바람직한 것이다.
(4) 憲法(Constitutional Law)
미국헌법은 前文, 총 7개조의 本文(Article), 26차에 걸쳐 개정된 26개의 改正條文(Amendment)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967년에 25차 개정, 1971년에 26차 개정이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
(5) 法律, 判例調査 技術(Research Techniques)
50개주의 미국에는 50개의 서로 다른 법체계가 있다고 보면 되는데, 그 많은 주와 연방의 判例, 成文法을 어떻게 찾는 것이냐 하는 분야이다.
(6) 立法過程(The Legislative Process)
주와 연방의 입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관한 내용이다. 上院議員 Dennis Carpenter가 강의를 담당하였다.
(7) 聯邦體系(The federal System)
연방국가인 미국의 법원체계 등에 관한 설명이다. 聯邦法院(Federal Courts)은 조약, 외교, 海事사건, 合衆國이 당사자인 사건, 서로 다른 州民간의 쟁송, 어떤 州民과 외국 또는 그 시민과의 분쟁에 관한 쟁송 등을 담당한다. 연방지방법원(U.S. District courts)은 각 州에 1 내지 4개가 설치되어 있으며, 항소심은 연방고등법원(U.S. Court of Appeals)이 담당하는데 각 주를 통폐합하여 전국에 13개의 고등법원이 있다. 이 법원은 전국을 순회구(Circuit)로 나눈다고 하여 순회항소법원(Circuit Courts of Appeals)이라고도 한다. 물론 聯邦大法院(U.S. Supreme Court)은 1개이며 워싱턴 D.C.에 자리잡고 있는데, 8명의 대법관이 있다.
각 州法院(State Courts)은 주마다 명칭이 다르고 체계도 다르기 때문에 설명을 생략하기로 한다. 미국은 연방국가이기 때문에 같은 州民間의 訴訟 등 순수한 州의 법률문제에 대하여는 연방법원이 관여하지 않는다.
(8) 契約(Contracts)
우리의 채권법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영미법에서 계약이 성립하기 위하여는 請約(Offer)과 承諾(Acceptance)에 의한 合意 외에도 Consideration(約因, 또는 對價交換이라고 번역된다)이라는 것이 있어야 한다. 이는 대륙법계에서는 생소한 개념인데, 계약상 채무의 대가로서 제공되는 작위, 또는 부작위를 말한다. 즉 당사자 상호간에 교환(give and take), 또는 거래(bargain)가 있어야 계약이 성립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증여자가 아무런 대가없이 일방적으로 수증자에게 재산을 증여하기로 약속하는 증여약속은 당사자간에 합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영미법상 유효한 계약이 아니다. 예를 들면, 어떤 篤志家가 아무런 조건없이 대학에 건물을 기증하기로 하는 합의는 당사자 사이에 約因이 없어서 무효이고, 만약에 기증을 하면서 건물의 이름을 자신의 雅號 등으로 하기로 한다면 그것은 約因이 있으므로 유효한 계약이다.
(9) 物的財産, 不動産(Real property) : 動産(Personal property)과 합하여 우리의 물권법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10) 會社法(Corporations) : 각종의 法人에 관한 설명이다.
(11) 法曹倫理(Legal Ethics) : 미국辯護士協會(A.B.A., American Bar Association)관한 소개인데, 연방법관의 선출 등 국가적인 관심사에 있어서 의견의 표명, 회원에 대한 지속적인 법교육과 로스쿨에 대한 지원, 법조윤리의 모델 등에 관한 설명이다.
(12) 有價證券法(Securities) : 公社債, 어음 등에 관한 설명이다.
(13) 製造物 責任(Products Liability) : 제조물에 관하여는 고의, 과실책임뿐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州에서 무과실 책임을 인정하고 있다.
(14) 獨占禁止(Antitrust),
(15) 著作權과 商標權(Copyrights and Trademarks),
(16) 稅法(Taxation),
(17) 知的 財産權(Intellectual Property) : 이는 特許權(Patent)에 관한 내용인데, 특허권에는 Utility Patents(發明特許權, 實用新案을 포함하는 개념임)과 意匠權(Design Patents)이 있다.
(18) 移民法(Immigration Law) : 각종 비자와 市民權(Citizenship)의 획득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다. 비자의 형태는 알파벳순으로 A부터 S까지 있는데, 그 내용이 모두 다르다.
(19) 破産法(Bankruptcy),
(20) 銀行法(Banking Law),
(21) 環境法(Environmental Law),
(22) 勞動法(Labor Law),
(23) 法律英語(Legal English) 등이 연수내용이었다.
바. 특수한 연수과정
위와 같은 일반적인 연수 외에 특별한 연수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었다. 7. 22. 19:00경에는 모의재판(Mock Trial)이 무트코트 홀(Moot Court Hall)에서 열렸다. 재판관과 변호사, 검사는 모두 現職에 있는 분들이 담당하였고, 배심원과 증인은 연수생들이 담당하였는데 필자는 구경만 하였다. 12명의 배심원석에 중국인과 일본인은 한사람씩이나마 용감하게 나가 앉아 있었다.
7. 24.경에는 하루 종일 야외 학습으로서 진행되어 캘리포니아 州都인 새크라멘토에 있는 법원 방문과 로펌 방문이 있었다. 여기서 미국의 변호사 제도에 관하여 알아보면, 개업변호사는 단독으로 개업하는 경우와 합동으로 법률회사(Law Firm)를 만들어 운영하는 경우가 있다. 로펌은 변호사들이 조직체를 결성하여 종합적인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므로, 구성하는 변호사마다 등급이 있다. 로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선임 조합원 변호사(Senior Partner), 조합원 변호사(Partner), 고용 변호사(Associate)로 나누어 볼 수 있다. Senior Partner는 로펌의 기본정책을 결정하며 고객유치 등 대외관계를 담당하고, Partner는 고객에게 법률서비스를 제공함과 동시에 회사에 이윤이 발생하면 이윤배당을 받으며, Associate는 이윤분배에는 참여하지 못하며 오직 자신이 제공한 법률서비스에 대하여 급료만을 받는다.
그리고 7. 29.오전에는 배카빌(Vacaville)에 있는 州 교도소에 견학을 갔는데, 카메라의 휴대가 금지되었고, 죄수와의 구별이 힘든다는 이유로 청바지 차림의 입장이 불허되었다.
사. 토요일의 관광일정
토요일은 수업을 하지는 않지만, 매주 토요일 날은 주최측에서 호의를 베푸는 차원에서 버스로 관광을 시켜 주었다. 일과표상으로 완전히 자유로운 날은 일요일뿐이었다.
1996. 7. 21. 토요일 날은 샌프란시스코 근교에 있는 나파밸리(Napa Valley)의 포도주 농장에 견학을 시켜 주었고, 그날 오후에는 새크라멘토 시내관광을 시켜 주었다. 그런 곳을 가게 되면 알게 모르게 외국인이 돈을 쓰게 되니까 미국의 입장에서는 달러를 버는 입장에 있으므로, 순수한 호의에서 그런 관광을 시켜주는지 정확한 속셈은 알 길이 없었다.
1996. 7. 27. 토요일 날은 대학에서 2시간 거리에 있는 레이크 타호관광을 시켜 주었다. 레이크 타호(Lake Tahoe)는 고지대에 위치한 호수인데 물이 맑았으며, 간혹 얕은 호수 변에서 湖水浴을 즐기는 사람도 있었으나 들어가기에는 너무 차가웠다. 3000m가 넘는 高峰에는 한여름인데도 음지쪽으로 눈이 남아 있었다. 호수 주위를 도는 데만 자동차로 2시간 정도 걸리는 큰 호수였다.
호수를 가로질러 캘리포니아주와 네바다주의 경계가 있는데, 라스베가스와 리노가 속하고 있는 네바다주 쪽에 이르면 풍경이 사뭇 다르다. 캘리포니아주는 도박과 매춘이 금지되어 카지노, 파친코 등 도박장이 전혀 없는가 하면, 길을 하나 사이에 두고 네바다주 쪽에 오면 도박장이나 매춘업소들이 손님을 유혹하고 있다. 거기는 흡연도 자유로웠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50개주가 있는데, 각 주마다 법이 다르다는 것을 실감하였다.
우리로 봐서는 혼란스럽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그들의 입장에서는 아주 자연스러운 모양이다. 캘리포니아 같은 온화한 기후와 넓은 농토, 천혜의 바다를 끼고 있는 州는 도박 같은 것을 허용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州의 살림을 꾸려 갈 수 있다. 그러나 네바다 같은 사막지역은 도무지 도박 외에는 벌어들일 것이 없는 것 같았다.
연수과정과는 별도로 개인적으로 나중에 라스베가스와 그랜드 캐년을 여행한 적이 있는데, 뜨거운 사막 한가운데 서 있는 라스베가스는 不可思議한 도시였다. 거기는 미국인의 도전정신이 깃들이어 있는 것 같았다. 한여름 낮에는 보통 40도가 넘어가고 자연상태에서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하는 사막지역에 인공의 도시를 세웠다. 미국 땅 넓은 곳에 도박장을 세우려고 하면 더 좋은 기후와 입지를 가진 땅을 얼마든지 구할 수가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한 惡條件이 오히려 도박장으로는 적합하다고 사고의 전환을 한 것이다. 뉴욕이나, L.A.같은 대도시나 기타 경치가 좋은 곳에 도박장을 세우게 되면 아무래도 가족생각을 하게 되거나 주변의 경치에 신경을 쓰게 되므로 사람이 도박에 깊게 빠질 수가 없다. 더운 곳이고 가족들과 멀리 떨어진 곳이라야 바깥에 나갈 생각을 하지 않고 시원한 실내에서 도박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무리 더운 날씨라도 밤이 되면 시원하므로, 밤에는 각종의 네온사인으로 그야 말로 불야성을 이룬다. 밤이 낮이고 낮이 밤인 것이다. 대신에 숙박과 식사요금은 엄청나게 싸게 해 준다. 현재 우리 나라에서 강원도의 폐탄광지대에 카지노 도박장을 세우려는 발상도 비슷하다고 생각된다.
아. 파티의 소개
미국법연수를 하면서 가장 異彩롭게 느낀 것은 파티가 자주 있다는 것이다. 일주일에 2번 꼴로 주로 저녁시간에 파티가 열렸다. 파티라고 해야 우리와 같이 진수성찬을 기대하여서는 곤란하다. 캠퍼스의 屋內나 屋外에 음료수, 주류, 칵테일과 두 세 가지의 고기, 과일 등을 준비하여 놓고 원하는 대로 먹고, 마시며 어느 상대와도 이야기할 수 있다. 남녀불문, 직위의 상하불문, 연령의 상하불문이다. 영어회화를 좀더 공부했으면 참가자들과 많이 親交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미국인이 어찌나 파티를 좋아하는지 어떤 데이비스 대학 졸업생은 자원하여 자신의 집에 연수생을 모두 초청하여 가든 파티를 열어 주었다.
그러나 파티에서 流暢한 영어가 필요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어떤 미국인에게 영어를 잘못해서 미안하다고 하였더니 당신은 한국인이니까 한국말은 잘하고 나는 미국인이니까 영어를 잘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느냐고 반문하였다. 외국에서도 파티 상에서 명함(Name Card, 또는 Business Card라고 함)을 주고받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었다. 필자는 명함을 준비하지 않아 남의 명함만 수북히 가지고 와서 미안하기 그지없었다. 해외여행에서 현지인과 만남이 필요하다면 영어로 기재된 명함이 꼭 필요한 것 같았다.
우리 한국 일행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었던 참가자는 이태리 출신의 파올라 산지오바니(Paola Sangiovanny)라는 여자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강의실에 지정된 좌석도 같은 줄이어서 그런지 다른 여성들보다는 자주 대화를 한 것으로 기억된다. 나파밸리의 포도주 농장을 견학하는 날 필자가 직접 사온 포도주를 같이 마시면서 독일 변호사인 위고 폰 비터스하임(Viggo Von Wietersheim) 등 몇몇 유럽인과 함께 기숙사 풀장 옆에서 밤늦게 떠들며 논 것이 인상깊었다.
東, 西洋을 막론하고 술은 언어의 장벽을 뛰어 넘는 사교의 수단이 된다. 처음에는 대화가 어색하다가도 술이 어느 정도 오르면, 평소에는 안되던 영어도 자신감이 생긴다. 우리는 평소 폭탄주에 단련이 된 터라 그들과 음주에서는 자신이 있었다.
밤이 되면 유럽인과 南美人들은 기숙사 한가운데 있는 풀장 옆에서 밤늦게 까지 간단한 다과와 맥주를 들면서 떠드는 일이 많았는데, 우리도 그날만큼은 실컷 떠들었다. 우리 일행중 노래 솜씨가 수준 급인 분이 한 분 있는데, 산타루치아라는 노래를 불러 대단한 인기를 모았다.
그렇게 떠들고 노는 것이 처음에는 거슬렸으나, 서로가 異域萬里 먼길에서 만난 마당에 흥겹게 노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도 기숙사에서 떠드는 것에 대하여는 의외로 관대한 것 같았다.
파티 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1996. 7. 19. 19:00부터 21:30까지 캠퍼스 내 푸타 크리크 랏지(Putah Creek Lodge)에서 있었던 야외 바베큐 파티였다. 넓은 잔디밭 위에 의자와 탁자를 놓고 지는 해를 바라보면서 맥주를 마신 풍경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콜럼비아의 산티아고(Santiago Garces)라는 검사는 서글서글한 성격에 누구에게나 친절하게 대해주었는데, 술이 떨어지면 자신이 술이나 안주를 연신 받아왔다.
밴드도 동원하여 흥겨운 노래도 들려주었다. 분위기가 고조되니 밴드 연주자가 춤을 유도하였다. 춤에 자신이 있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나가서 춤을 추다가 나중에는 거의 모든 사람이 나가서 자기 멋대로의 춤을 추었다. 손을 잡고 빙빙 돌기도 하고 지치면 술자리로 돌아가 음료수나 술을 마셨다.
그렇게 自由奔放하지만 미국에서도 미성년자에 대하여는 절대로 술을 제공하여서는 안된다는 법이 우리 나라와 같이 있는 모양이었다. 어떤 파티에서 있었던 일이다. 술과 다과를 서빙받기 위하여 줄을 서 있는데, 내 앞에 서있는 나이가 어려 보이는 일본인 아추토 스즈키에게 여권을 보자고 한 다음 술을 주었다. 영문을 몰라 나도 여권을 준비하고 있는데, 나에게는 여권을 보자고 하지도 않고 칵테일을 주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연령을 확인하기 위하여 여권 등 신분증을 보자고 하였는데, 미성년자인 듯한 사람들만 골라서 신분증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참으로 철저한 국민이었다.
東, 西洋을 막론하고 술을 마시면 담배도 피우는 습관이 있는 것 같았다. 어떤 야외 파티 술자리에서 누가 담배를 꺼냈는데, 캘리포니아 州法에 의하면, 공공장소에서의 흡연은 금지된다고 하여 논쟁이 되었다. 실외 파티장소가 과연 공공장소인가 하는 점이다. 공공장소 금연은 연방법도 아닌 州法에 규정된 것에 불과하고 참가자들이 미국시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냥 피웠다.
나중에 알아보니 캘리포니아주에는 거의 모든 실내에는 금연이라고 한다. 만약 금연인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면 경보장치가 울리는 곳도 있다고 한다. 호텔도 흡연실, 비흡연실이 따로 있다. 실외라고 하더라도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공공장소는 금연이라고 하였다. 필자도 담배를 끊지 못하고 있다가 미국에서 1달 가량 거의 담배를 피우지 않은 덕택에 지금까지 8개월 가량 금연을 실천하고 있다.
자. 버클리 대학에서의 연수
1996. 8. 1. 목요일부터는 샌프란시스코에 바로 인접한 버클리 대학으로 옮겨 연수를 받게 되었다. 버클리 대학도 역시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인데 1960년대말 월남전참전반대 운동이 격렬하게 일어난 진원지라고 하였고, 자신들의 선전에 의하면, 버클리 대학 출신의 노벨상 수상자가 러시아 전체의 수상자보다도 많다고 하였다. 캠퍼스는 데이비스와 전혀 다른 분위기이다. 고풍스런 건물과 현대식 건물이 조화 있게 밀집하여 있으며 캠퍼스 면적도 크지 않아 도보로 10분 이내의 거리에 모든 건물이 위치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한낮의 날씨도 훨씬 시원하였다.
기숙사와 강의실은 바뀌었지만 行政職員은 데이비스 대학에서 그대로 따라와서 지원을 하여 주었다. 아마 主管은 끝까지 데이비스 대학에서 하고 버클리 대학은 장소와 교수진을 제공한 것 같았다. 같은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체제(U.C. System)라서 兩者의 학교간에 상당한 유대관계가 있는 것 같았다. 버클리 대학에 오고 나서부터는 가까운 거리에 볼거리가 많아서 그런지, 연수가 끝날 무렵이어서 그런지 분위기가 한층더 자유스러워 졌고, 강의도 느슨해졌다.
버클리 대학은 버클리 시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고, 약 8km 길이의 海上 다리(중앙에 인공 섬이 있음)인 베이 브릿지(Vay Bridge)를 건너면 샌프란시스코과 연결되었다. 베이 브릿지도 장엄하였으나 국제적으로 명성이 알려진 금문교에 가려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금문교(Golden Gate Bridge)는 1937년에, 베이 브릿지는 1935년에 준공되었다고 하는데, 미국은 지금부터 약 60년 전에 그렇게 큰 다리를 놓을 수 있는 기술이 있었다니 놀라웠다.
1989. 10. 17.경 북 캘리포니아 일대를 강타한 지진에 금문교는 전혀 피해가 없었고, 베이 브릿지는 다리 위에 설치된 강철 빔이 2개 떨어져 다리 위를 지나던 차량을 덮쳐 2명이 죽고 몇 명이 다치는 사고가 났다. 철저한 안전도 검사를 거친 다음 보강공사를 하여 현재는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성수대교 참사와 대비되었다.
1996. 8. 2. 금요일부터 이틀동안은 샌프란시스코 시내 팬 퍼시픽(Pan Pacific) 호텔에서는 국제 법의 주말(International Law Weekend)이라는 행사가 있었다. 캘리포니아주의 변호사 자격을 가진 사람들이 약 70명 세계각지에서 모여서 토론을 하는 행사인데, 우리가 그 행사에 초대되었다.
알고 보니, L.A. 로펌에 근무하는 교포인 신성호 미국변호사님도 참가하였고, 한국의 세종합동법률사무소에 근무하는 민유선 미국변호사 님도 참가하였다. 점심식사시간에 필자는 신 변호사와 함께 캘리포니아주 변호사협회장이 앉은 테이블에 자리를 배정 받았는데, 신 변호사님이 필자를 아너(Honor, 각하라는 뜻이나 미국에서는 재판관에 대한 존칭으로 쓰인다)라고 소개를 하여 송구스러웠다. 오후에도 세미나는 계속되었고, 저녁에는 호텔 스카이 라운지에서 리셉션이 있었다.
그 다음날인 토요일부터는 뒤늦게 미국에 합류한 필자의 가족과 함께 미국 각지에 여행을 다녔다. 1996. 8. 3. 토요일부터 같은 달 9. 금요일까지 옐로우 스톤, 라스베가스, 그랜드 캐년, 요세미티 국립공원 등지를 現地 旅行社에 의뢰하여 다녔다. 그 여행에서도 얻은 것이 많지만, 다른 해외여행 경험담과 별반 다른 것이 없는 것 같아 생략하기로 한다.
한가지 덧붙일 것은, 가족이 오고 나서부터는 모든 일정을 필자가 챙겨야 했으므로 신경 쓰이는 일이 많아졌고, 현지 한국인 여행사 직원들의 불친절, 옵션관광과 팁의 강요, 행선지 변경 등으로 이미지를 흐리게 되었다.
8. 수료식
1996. 8. 9. 금요일 18:30부터 1시간 동안 버클리 대학의 크라크 케어(Clark Kerr) 캠퍼스에서 리셉션과 기념사진촬영이 있었으며, 19:30부터 2시간 동안은 저녁식사를 겸한 수료식이 거행되었다. 수료식에는 가족들의 참여도 허용되었다. 그리하여 필자도 가족을 데리고 갔는데, 분위기에 익숙하지 않았던지 식사만 간단히 하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필자는 5주간의 짧은 연수일정이지만 감회가 깊어 끝까지 남아 수료식의 광경을 지켜보았다. 연수책임자인 베스 그린우드가 먼저 연단에 나와 이번 연수과정이 끝났더라도 서로 잊지 말고 전화나 포스트 카드, 사진, 편지 등으로 연수참가자 상호간, 또는 대학측과 계속 연락을 갖자는 취지의 작별인사말을 하였다. 이어 연수참가자들 3명이 연단에 나가 연수의 소감 등을 피력하였다. 독일인 교수, 태국인 변호사, 직업을 알 수 없는 일본여자 등 3명이 발언을 하였다. 그 중에는 우리가 미국법을 공부하는 것은 마치 아프리카 언어를 배우는 것 같이 어려웠다고 말한 태국 변호사 피라(Pheera)의 말이 인상깊었다. 이어 연수과정 부책임자가 일일이 연수참가자를 호명하면서 수료증을 나누어주었다.
집에 와서 내용물을 펼쳐 보니 수료증 외에도 수료앨범, 연수참가자들의 주소, 전화번호, 직업 등 인적사항이 기재된 서류(Roster), 1997학년도 연수희망자를 위한 학교안내서 등을 동봉하였다. 끝까지 용의주도하게 연수과정을 계획하였다. 4주간의 연수경비로 모두 4,000불 정도의 경비를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타서 미국 대학에 지불하였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수료식을 마치고 다음날인 1996. 8. 10. 11:00경 샌프란시스코 공항 발 서울 행 대한항공 편을 타고 귀국하여 미국법 연수를 마쳤다.
첫댓글설연휴 잘 보냈는가? 올해도 건강하고 가족 모두 행복하길 진심으로 기원하네.동기회 발전을 위해 노심초사하는 황판사의 모습이 너무 보기 좋고 감사하게 생각하네.미국 연수 시간내어서 더욱 자세히 읽어볼 계획이네. 누구라도 현생활에 안주하지말고 열심히 생활하는 모습이 아름답다는 것을 또 다시 느끼면서 잘읽었네
Hyon-ho, apologies for not writing more often but remember that I do visit OUR cafe daily to check what's going on. Silence does not mean no visit! Keep up the good work.
지난번 서울 회장님이 e-mail로 보내 주어서 읽었었지. 사전에 쓰기로 마음먹고 꼼꼼하게 기록한 흔적이 역역하더구만. 그런 자네의 삶에 대한 자세가 오늘을 있게 한 원동력이었음을 느끼네. 마치 그려질 것 같은 연수의 모습이었네. 친구들 이름까지 거명하며 힘쓰는데 우리 동기들 자주 방문하고 없는 보따리라도 풉세
첫댓글 설연휴 잘 보냈는가? 올해도 건강하고 가족 모두 행복하길 진심으로 기원하네.동기회 발전을 위해 노심초사하는 황판사의 모습이 너무 보기 좋고 감사하게 생각하네.미국 연수 시간내어서 더욱 자세히 읽어볼 계획이네. 누구라도 현생활에 안주하지말고 열심히 생활하는 모습이 아름답다는 것을 또 다시 느끼면서 잘읽었네
Hyon-ho, apologies for not writing more often but remember that I do visit OUR cafe daily to check what's going on. Silence does not mean no visit! Keep up the good work.
지난번 서울 회장님이 e-mail로 보내 주어서 읽었었지. 사전에 쓰기로 마음먹고 꼼꼼하게 기록한 흔적이 역역하더구만. 그런 자네의 삶에 대한 자세가 오늘을 있게 한 원동력이었음을 느끼네. 마치 그려질 것 같은 연수의 모습이었네. 친구들 이름까지 거명하며 힘쓰는데 우리 동기들 자주 방문하고 없는 보따리라도 풉세
현호영감님의 글 솜씨가 대단하네, 영감님의 글 보고나서 한국의 미래에 기대를 걸었다. 정말 인재로구나, 당신이 있기에 우리 한국은 선진문화 국민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한국의 인재로다, 나는 님이 친미나 숭미가 아닌 용미법조인이라고 믿는다.
황 회장, 글 잘 읽었고 늘 수고함을 알고있네, 갑자기 50대가 되고 보니 모두들 자기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다보니 바빠져서 글을 쓰지 않는다고 생각하게나, 은현이 처럼 모든 친구들이 카페에 가끔씩 들려보고 있음을 잊지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