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개신교회, 사회가 요구하는 최소한의 상식과 규범조차 위반
적대와 혐오를 키우고 작동시키는 인큐베이터
저자가 한국 개신교에 대하여 통렬하게 한탄하는 지점은 그것이 적대와 혐오의 중심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기독교가 타인에 대한 ‘사랑’을 중시하는 종교임에도, 개신교는 한국 현대사를 통틀어 ‘타자’를 적대하고 혐오하는 이데올로기의 처소로 기능했다.
혐오와 적대라는 타자 배제 시스템은 한국 극우 개신교의 DNA가 되었는데, 저자는 한국 교회가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여성 혐오의 인큐베이터’(297~300쪽)였다고 진단한다(13장 여성 혐오, 그 중심에 교회가 있다). 남성과 여성 신도의 성 역할에 대한 고착, 여성에 대한 목사 안수 거부, 교회 당회의 남녀 성비 차이, 남성 우월의식 등이 보수 진보의 지향성을 떠나 한국 교회 전체에 퍼져 있다는 것이다. 2016년 5월에 일어난 ‘강남역 살인사건’의 범인은 목회를 꿈꾸던 신학생이었고 신학교를 그만두고도 교회에서 일했다고 한다. 이것이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2017년, 동성애를 옹호했다는 이유로 섬돌향린교회 임보라 목사에게 이단 혐의를 부여하여, 이를 둘러싼 첨예한 논쟁이 교회에서 일어났다. 서구 신학계에서는 퀴어신학과 페미니즘신학 등 사회 변화에 조응하여 새로운 흐름이 등장하는 데 비해, 한국 교회는 아직도 마녀사냥식 이단 판결이라는 배타적 대응에 머물고 있다. 동성애 결혼 합법화는 한 사회의 민주주의 수준의 지표로 기능하고 있으며, 동성애가 질병이 아닌 지향이라는 점은 이미 40여 년 전에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 한국 개신교가 사회의 진보와 공증된 과학의 사실에도 못 미치는 인지 수준을 보여주면서까지 동성애 혐오 기제를 작동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한국 개신교의 위기의식과 교회 스스로 갱신하지 못하는 무능력에서 근본적 원인을 찾는다. 자기의 허물과 죄악을 은폐하기 위해 동성애라는 오래되었지만 신선한 ‘적’을 다시 만들었다는 것이다.
■ 어떻게 신학적 상상력은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고 사유하는 데 영감을 제시하는가
현대 사상가들 가운데 기독교 신학에서 새로운 사유의 대안을 구하는 이들이 있다. 일찍이 발터 벤야민은 기독교 메시아주의와 역사적 유물론의 결합 가능성을 타진했다(「역사철학테제」). 혁명은 경제 구조의 변화만으로는 불가능하고 인간 정신의 영역에까지 미쳐야 한다는 벤야민의 제안은 역사의 진보(‘역사의 천사’)에 대한 유물론자의 ‘믿음’(파국의 자리에 도래하는 신)을 보여준 것이었다.
데리다의 후기 철학에서 ‘불가능의 가능성’ ‘무조건적 환대’ 등의 키워드는 그의 해체주의를 윤리의 영역에까지 밀어붙인 경우이다. 특히 ‘메시아주의 없는 메시아적인 것’(the messianic without messianism)은 메시아 대망의 광신성을 지양하면서 기존 체제를 탈구시키는 혁명 전략을 제시하는 개념이었다. 예수가 보여준 공생애와 유대 율법의 거부는 당시 유대 사회가 강요하는 규범을 전면적으로 거스르는 행동이었다. 저자 이상철에 따르면, 예수의 행위 자체가 불가능의 가능성을 시도한 것이며, 윤리란 왜 무조건적인 환대에 기초한 것이어야 하는지를 보여준 데리다식 해체주의 윤리이다.
■ 신학의 언어를 닮았지만 끝내 세상과 불화하는 인문정신,
인문학의 비판적 사유를 경유하는 신학의 변혁적 상상력
신이 사라진 시대, 신학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저자는 신학이 자족적이고 폐쇄적인 종교의 범주에 갇혀 있어서는 시대와 호흡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신학이 당대의 인문정신과 소통해야 한다는 그의 문제 제기는 인문학으로서의 신학, 신학으로서의 인문학이라는 ‘인문/신학’을 제안하는 데 이르는데, 인문정신이 당연시되는 세계를 회의하고 따라서 세상과 불화하는 윤리적 태도(파국의 윤리)를 전제한다면, 신학의 언어는 기존의 인간 언어와 경험 세계를 뚫고 나가는 사유와 행위로서 한계에 다다른 시스템과 도그마(catastrophe로서의 파국)를 무효화하는 파국(apocalypse로서의 파국)을 지향한다. 여기서 ‘파국’(破局)은 본래 신학의 수사이지만, 지금의 자본주의 세계와 한국 사회의 상황을 설명하는 개념이면서, 윤리가 작동하는(해야 할) 지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인문학과 신학(‘인문/신학’)은 공히 (깨뜨려야 할) 세계의 파국이라는 목적을 공유하며, 서로를 보완하고 비춰주는 거울(‘/’)인 것이다.
■ 민중신학을 계승하지만 그 한계를 초월하는 사회신학의 도전
1부 ‘파국의 윤리’가 이론적 방법론이라면, 이를 통해 3부 ‘비판과 성찰, 고백과 애도’에서는 한국 사회를 대상으로 한 시평(時評)이 실천되고 있다. 인문학 열풍이 혹시 체제와의 야합은 아닌지를 성찰하고(11장 인문학 열풍의 아이러니), 도시재개발과 젠트리피케이션 문제가 어떻게 인간성과 종교성의 파괴와 관련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비종교적 현상에서조차 ‘종교적인 것’의 의미가 자리하고 있음을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12장 옥바라지 골목 철거를 둘러싼 서사). 기독교의 자살 이해에 대한 전복적 재해석(神正論에서 人正論으로의 전회)은 그 자체로 신의 임재를 느낄 수 있을 만큼 따뜻한 위로를 전한다(14장 자살에 관하여). 그리고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우리 곁에 머무는 영혼이 어떻게 새 세상의 도래를 가능하게 했는지(할지) 되돌아보고 예시한다(15장 세월호, 바람 그리고 유령).
이 책 『죽은 신의 인문학』은 1970년대 등장한 독창적 신학이자 기독교 정신에 가장 접근한 한국의 민중신학을 계승하면서도 그 한계를 비판적으로 초월하고자 하는 사회신학의 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