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서울늑대 / 이실비
사랑을 믿는 개의 눈을 볼 때
내가 느끼는 건 공포야
이렇게 커다란 나를 어떻게 사랑할래?
침대를 집어 삼키는 몸으로 묻던 하얀 늑대
천사를 이겨 먹는 하얀 늑대
흰 늑대 백 늑대 북극늑대
시베리아 알래스카 캐나다 그린란드
매일 찾아가도 없잖아
서울에서 만나 서울에서 헤어진 하얀 늑대 이제 없잖아
우린 개가 아니니까 웃지 말자
대신에 달리자 아주 빠르게
두 덩이의 하얀 빛
우리는 우리만 아는 도로를 잔뜩 만들었다 한강 대교에서 대교까지 발 딛고 내려다보기도 했다 미워하기도 했다
도시를 강을 투명하지 않은 물속을
밤마다 내리는 눈
까만 담요에 쏟은 우유
천사를 부려먹던 하얀 늑대의 등
네 등이 보고 싶어 자고 있을 것 같아 숨 고르며 털 뿜으며
이불 바깥으로 새어나가는 영원
목만 빼꼼 내놓고 숨어 다니는 작은 동물들
나는 그런 걸 가져보려 한 적 없는데 하필 너를 데리고 집에 왔을까 내 몸도 감당 못하면서
우리는 같은 멸종을 소원하던 사이
꿇린 무릎부터 터진 입까지
하얀 늑대가 맛있게 먹어치우던
죄를 짓고 죄를 모르는 사람
혼자 먹어야 하는 일 앞에서
천사는
입을 벌려 개처럼 웃어본다
【심사평】 능숙하고 절묘한 이미지 배치와 전개가 압도적 작품
당선작으로 이실비의 ‘서울늑대’와 ‘조명실’을 선정했다. 능숙하고 절묘한 이미지 배치와 전개가 압도적인 작품이었다. 무엇보다 시란 세계를 재구성하는 일임을 이해하고 있었다. ‘서울늑대’는 늑대가 되어 서울을 달리는 “두 덩이의 하얀 빛”을 통해 가장 내밀한 공간에서부터 드넓은 도시의 이미지까지 아우르며 그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들어 냈으며, 식당에서의 대화가 극장 조명실의 독백으로 전환되는 ‘조명실’은 죽음과 사랑, 불안과 고독 등을 극장 뒤편의 그림자 이미지로 모아 그것을 묵시하는 우리 시대의 초상을 추출하는 데 성공해 냈다.
시인은 내밀한 고백을 통해 세계를 새롭게 정의하는 자다. 당선자는 그 일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앞으로도 자유롭게 이 세계를 유영하기를 바란다. 본심작을 포함해 뛰어난 투고작이 많았다. 머지않아 다른 지면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작품을 투고한 모든 분께 깊은 감사를 전한다. 시에 대한 우리의 열의가 있는 한 시는 끊임없이 우리 삶과 더불어 이 세계와 대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김소연·박연준·황인찬 시인
개인적 시 감상
서울늑대 / 이실비
사랑을 믿는 개의 눈을 볼 때
내가 느끼는 건 공포야
(야생성,공격성의 견지에서 보았을 때 개는 늑대보다 진화한 동물이다. 이 시에서는 늑대를 인간으로 은유하여 인간 본성의 포악성을 문제삼고 있다. 개는 유순하고 작은 방향으로 진화해왔다. 늑대의 기준에서 볼 때 선한 존재인 개가 이 험한 세상에 사랑을 믿다니 그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러므로 공포일 것이다)
이렇게 커다란 나를 어떻게 사랑할래?
(개여 너는 너보다 크고 야생적인 이 늑대를 어떻게 사랑할래? 그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뒤통수 맞기 십상이다)
(인간은 매우 비대해지고 자연은 작아지고 있다)
침대를 집어 삼키는 몸으로 묻던 하얀 늑대
(성적으로 매우 위험한 이 인간종이 개에게 묻는다. 개는 인간종보다 더 진화한 종의 상징이 된다. 늑대가 남자라고 한다면 개는 여성을 상징한다고 볼 수도 있다.)
(침대, 이불이라는 이미지를 끌어온 것은 프로이드의 성적 욕망설의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프로이드는 성적 욕망이 인간을 이끄는 기본 에너지라고 한다.)
(늑대인데 하얀 형용사를 붙인 것은 시의 다의성을 확보하기 위해 신화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끌어온 것일 수도 있고 선과 악이 공존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즉 하얀은 선, 늑대는 악이다)
천사를 이겨 먹는 하얀 늑대
(선의 상징인 천사를 이겨 먹는 인간종. 이겨 먹는다는 것은 권모술수로 속인다는 것일 수도 있고 선에게 악을 행했다는 것일 수도 있다)
흰 늑대 백 늑대 북극늑대
시베리아 알래스카 캐나다 그린란드
매일 찾아가도 없잖아
서울에서 만나 서울에서 헤어진 하얀 늑대 이제 없잖아
(시베리아 알래스카 캐나다 그린란드에 서식하는 북극늑대는 서식지가 고립되어 별도의 늑대아종으로 분화하였다. 또한 추위에 살아남기 위해 북극곰이나 북극 여우처럼 털색이 하얀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북극늑대를 흰 늑대라고도 한다.
정도의 문제이지 어떤 생물이든 계속 진화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어제의 북극늑대는 오늘은 없는 것이다.
북극 지역에 고립되어 아종으로 진화한 북극늑대 뿐 만 아니라 자본주의의 끝단에 있으며 경쟁이 치열하고 그렇기에 매우 이기적인 서울이라는 지역에 고립되어 사는 혹은 인간들끼리 고립되어 사는 인간종도 마찬가지이다. 서울에 있는 하얀 늑대도 어제의 하얀 늑대가 아니다. 물론 선한 쪽으로 진화할 것인지 악한 쪽으로 진화할 것인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우린 개가 아니니까 웃지 말자
대신에 달리자 아주 빠르게
(우리 인간종 즉 우리 서울 늑대는 개처럼 아직은 진화가 덜되어 선하지 않으니까 웃지 말자)
(대신에 빨리 선한 쪽으로 진화하자 아주 빠르게)
두 덩이의 하얀 빛
(두 덩이의 선과 악)
(매우 중의적이고 모호하고 신화적, 철학적 표현이다)
(주자의 물의 비유:악은 선으로부터 나온다. 물이 탁해지듯 본성은 악으로 향하기 마련이지만 처음부터 맑지 않았던 것은 아니며, 비록 탁하더라도 맑게 할 수 있는 것은 물과 사람 모두 마찬가지라는 것. )
(어거스틴-어둠은 빛의 부재일 뿐이며 어둠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악은 본질적 선의 부재이며 죄는 자유 또는 자의적 행위에서 유래)
우리는 우리만 아는 도로를 잔뜩 만들었다 한강 대교에서 대교까지 발 딛고 내려다보기도 했다 미워하기도 했다
도시를 강을 투명하지 않은 물속을
(인간종은 인간종만을 위한 또는 더 좁게 들어가면 자신의 집단, 더 좁게 들어가면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제도를 만들고 행위를 했다. 인간들은 서로 미워하고 자연환경을 오염시키고 다른 동식물들에게 나쁜 일을 많이 했다.)
(내려다보며 성찰을 한다. 악은 어디서 오는가? 주자의 물의 비유처럼 물이 처음부터 탁한 것은 아니었다.)
밤마다 내리는 눈
(인간 세상을 하얗게 덮을 우주적 진리, 선의 법칙인 눈은 밤에 내린다. 인간이 이 세상을 밤으로 만들어놓았기 때문에 밤마다 눈이 내려도 인간들은 그 햐얀 눈을 볼 수가 없다. 인간의 마음이 어둠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선한 원리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까만 담요에 쏟은 우유
(까만 담요에 우유를 쏟으면 하얀 색의 우유는 까만 색에 스며들 뿐 하야지지 않는다. 역시 인간의 본성이 악하기 때문에 혹은 행위가 악하기 때문에 선한 것이 제대로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천사를 부려먹던 하얀 늑대의 등
(선의 결정체인 천사를 부려먹던 하얀 늑대의 등. 여기서 등은 매우 야생적이고 욕망적인 것을 상징한다)
네 등이 보고 싶어 자고 있을 것 같아 숨 고르며 털 뿜으며
(계속해서 성찰하며 인식의 전환이 일어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인간에게는 선과 악이 공존한다. 세상을 악하게 물들였지만 조금 진화한 개의 등이 보고 싶다. 숨 고르며 털 뿜으며 반성을 한다. 숨고르고 털을 뿜는 것은 조금 진화해가고 있는 것이다)
이불 바깥으로 새어나가는 영원
(순간적 일시적 욕망에 사로잡혀 사는 생이 아니라 보다 멀리 보는 삶을 살고 싶다. 자연환경을 파괴하면 결국 인간의 생존도 보장하기 어렵다. 더불어 살아야 한다.)
목만 빼꼼 내놓고 숨어 다니는 작은 동물들
(인간종의 잔인성 때문에 목만 빼꼼 내놓고 숨어다니는 작은 동물들)
나는 그런 걸 가져보려 한 적 없는데 하필 너를 데리고 집에 왔을까 내 몸도 감당 못하면서
(인간은 자신의 몽과 정심도 감당하지 못하면서 자연과 동식물을 지배하려고 하는가)
우리는 같은 멸종을 소원하던 사이
(우리 인간종은 이 악한 본성의 멸종을 소원한다)
꿇린 무릎부터 터진 입까지
하얀 늑대가 맛있게 먹어치우던
죄를 짓고 죄를 모르는 사람
(왜냐하면 자연과 동식물에게 굴종을 강요하고 착취하던 인간종은 죄를 짓고도 죄를 모른다. 자연 파괴를 개발이라고 합리화하고 당연한 권리인 것처럼 생각한다.)
혼자 먹어야 하는 일 앞에서
천사는
입을 벌려 개처럼 웃어본다
(인간종은 자신의 집단만 혹은 자신만 잘 살려고 하는데 선의 입장에서 볼 때는 참 가소로운 일이다)
(혹은 결자해지의 입장에서 악을 해소하는 것도 인간종 스스로 해야 하므로 이럴 경우 천사는 선한 개처럼 웃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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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메세지
주제 : 대한민국 서울로 상징되는 자본주의의 끝단에 있는 이기적이고 잔인하고 파괴적인 인간본성의 진화 필요성
북쪽에 사는 북극늑대들은 베르그만의 법칙에 의해 일반 육지의 늑대보다 몸집이 더 크다. 또한 추위를 나기 위해 털이 두꺼워 실제보다도 덩치가 매우 커 보인다.
북극늑대는 눈늑대, 흰색늑대로도 불리며 늑대의 아종 중 하나이다. 캐나다 북부, 알래스카주와 그린란드 북부에 서식한다.북극늑대는 빙하기를 견뎌낸 동물로 환경오염과 밀렵 등으로 인해 개체 수와 서식지가 줄어들고 있다. 2012년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멸종 위기종 레드리스트(Red List)에 등재됐다.(인간도 자연에 대해 고립을 자초하고 서로 혹은 어머니인 대자연을 파괴하다가는 멸종 위기종이 될 수 있다)
북극늑대는 늑대 중에서도 유일하게 흰 털을 가지고 있다.회색 늑대의 다른 아종들과는 짝짓기도 가능할 만큼 생물학적으로 아주 가깝지만,사는 곳은 완전히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아종으로 따로 분류되었다. 아종의 생물학적 정의는 "종이 같되 개체군의 고립 또는 성 선택의 이유로 자연 상태에서 자발적으로 생식하는 개체가 존재하지 않으며, 유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존재하는 서로 다른 두 개체군"이다.
늑대가 인류와 공생한 흔적은 무려 12만 년 전부터 발견되었으며, 2018년의 추정에 따르면 6만 8천 년 전에서 15만년전 사이에 개로의 유전적 변화가 나타났다고 한다.개와 동일한 종이라고 해도 늑대는 엄연히 야생 육식동물이기 때문에 돌연변이가 생기지 않는 한은 절대로 집에서 키울 수 없다. 새끼 때부터 기르면 얼마간 친하게 지낼 수는 있어도 성체가 되면 불가능하며 절대로 타고난 야생성을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한다.
개는 인간에 대한 신뢰가 강하다.개는 보다 온순한 성격과 작은 체격을 가진 동물로 개량되어 왔다. 개는 6번 염색체 변이에 의해 늑대에서 개로 진화하였고 성격도 매우 친밀하고 유순하게 되었다.
인간종은 틈만 나면 온갖 이유로 서로를 체계적으로 해치거나, 대상을 해치는 도구나 방법을 고안하고 사용하는 데에 무척 능하다고 하여 현존하는 최흉의 전투종족이다. 이런 식으로 개인과 집단의 이익을 위해 다른 생물을 해하고 이용하면서 혼자서 잘 살려고 하는 이기적인 존재, 다른 지구 생태계에 엄청난 파괴를 선사하는 괴물 종족이 되었다. 사람은 현재도 진화하고 있다. 유전 정보의 복제와 생식이 일어나는 한 모든 생물은 진화를 하고있는 상태이며, 생물이 진화를 멈추는 유일한 방법은 멸종뿐이다
2. 이미지의 연쇄와 교차 - 낮과 밤, 하얀색과 검은 색, 선과 악의 강렬한 대비
ㅇ 고립의 이미지 - 북극 늑대, 서울늑대
ㅇ 인간 본성의 어두움, 추위의 이미지 : 침대를 집어 삼키는 몸 , 천사를 이겨 먹는, 천사를 부려먹던 , 북극, 밤, 까만 담요, 꿇린 무릎, 먹어 치우다, 죄, 혼자 먹어야 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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