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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1장
제 11 장 이스라엘
(대 지)
一.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음(1-6)
二. 이스라엘이 불순종하므로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나감(7-12)
三. 이방 신자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자랑하지 못함(13-24)
四. 이방인의 수가 차면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음(25-32)
五.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을 측량할 자 없음(33-36)
(본문강해)
一.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음(1-6)
. 1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앞장 19-20에 이스라엘이 순종치 않으므로 구원이 이방으로 나갔다고 하였으므로, "그러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버리신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이 생기게 되었다. 거기에 대하여 "그럴 수 없느니라"고 답변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그 증거는 바울이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이라고 하셨다. 바울은 이스라엘 사람이요,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베냐민 지파인데 하나님께서 바울을 버리지 않고 택하신 것을 보아서 이스라엘을 다 버리지 아니하신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 11:2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저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송사하되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은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킨다. "미리 아셨다"는 것은 "사랑했다"는 뜻이다. 아모스 3:2에 "내가 땅의 모든 족속 중에 너희만 알았나니"라고 했다. 이것은 "모든 족속 중에 이스라엘만 사랑했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사랑한 이스라엘 백성을 버리지 않으셨다는 뜻이다. 그것은 엘리야가 하나님께 송사 할 때에 하나님이 답변하신 내용이 증거하고 있다. 엘리야가 하나님께 송사한 것과 하나님의 답변은 다음 두에 나타났다(3-4절 참조).
. 11:3 주여 저희가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아합 왕의 핍박 때, 모든 선지자가 다 죽임을 당하고 엘리야 혼자만 남은 줄 알고 하나님께 호소하기를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라고 하셨다. 아합 왕도 이스라엘의 모든 선자자를 다 죽인 줄 알고 하나 남은 엘리야를 죽이려고 사방으로 찾은 것이다. 그 때에 하나님의 답변이 나타났는데 그 내용은 다음에 있다(4절 참조).
. 11:4-5 저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뇨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 천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하나님께서 엘리야의 호소(3절)에 대하여 답변하시기를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 천을 남겨두었다"고 하셨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는 증거이다. 핍박과 환난이 극심하여 모든 선지자가 죽임을 당하고, 모든 백성이 믿음에서 떠난 시대에도 하나님께서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믿음을 지킨 칠 천인을 남겨두신 것이다. 사람 보기에는 하나님이 버린 것 같고, 다 죽은 것 같으나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고 믿음을 지키는 참 성도와 선지자들을 숨겨두고 보호하여 두신 것이다. 이와 같이 어느 시대나 하나님이 택한 백성을 남겨두시는 것이다. 기독교를 박해하는 국가나 악한 왕이 일어나서 교회를 핍박하고 성도를 잡아죽일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지킨 자기 성도를 남겨두시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들이 세속화되어 가고 신신학과 신비주의로 기울어져서 진리의 빛이 가리워지고 진리의 기근이 심한 시대이지만 하나님은 성경대로 믿고 말씀대로 신앙의 길을 걸어나가는 자들을 많이 숨겨두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믿고 말씀대로 지키며 바른 말씀을 세워나가려고 힘쓰는 사람을 계속하여 일어나도록 해 주실 것이다. 이세벨과 같이 종교적인 탄압을 하고 선지자들을 다 잡아죽이고 믿음에서 떠나게 하는 시대에도 엘리야는 믿음에서 떠나지 않았고 또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칠 천명이 남아 있었다. 바른 신앙을 지키려는 자를 그 신앙대로 나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능력의 팔로 보호하셔서 믿음을 지키도록 인도하여 주시는 것이다. 사람의 생각에는 안될 것 같아도 하나님은 실패가 없으시고, 그 계획하신 바를 반드시 이루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자가 이기게 되고 진리가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엘리야 당시에는 네 종류의 성도가 나타났다.
① 적극적으로 나서서 거짓 선지자와 싸우고 하나님의 진리를 밝히고 백성을 바른 대로 인도한 엘리야가 있었다.
② 순교자가 있었다. 많은 선지자와 성도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순교를 당했다.
③ 핍박이 두려워 바알에게 무릎을 꿇은 자도 많이 있었다.
④ 숨어서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개인 신앙을 지킨 성도와 선지자가 칠 천명이나 있었다(왕상 19:18). 이 네 종류 중에 어느 종류의 성도가 제일 많겠는가? 신앙을 양보하고 바알에게 무릎을 꿇은 사람이 제일 많았을 것 같다. 그 다음에는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숨어서 믿음 지킨 자인데 이런 성도는 칠 천명이었다. 그 다음으로는 순교 당한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끝까지 진리를 사수하며 왕과 이세벨과 거짓 선지자와 싸우며 진리를 모든 사람에게 증거한 엘리야는 한 사람뿐이었다. 이런 자의 수는 극소수이다. 일정 말기(日政末期)에 신사참배를 강요할 때에 한국에서 일본 정부와 싸우며 진리를 증거하다가 옥중에서 신앙으로 승리한 자가 소수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성도나 선지자를 가장 기뻐하신다. 그 다음으로는 순교자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 순교자는 하나님 나라에서 특별 반열에 참예한다. 셋째 번으로 하나님이 기뻐한 성도는 숨어서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자기 신앙이나 지키는 성도이다. 이런 성도는 진리를 밝히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파도 못하고 거짓 선지자를 드러내지도 못하고 백성을 바른 데로 인도하지도 못했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신앙 지킨 것은 잘했지만 소극적이고 자기 신앙이나 겨우 지키고 신앙의 빛을 비추어 내보내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엘리야는 적극적으로 마귀의 세력을 대항하여 싸우고 정복해 나가고 진리의 빛을 밝히고 어두운데 있는 백성에게 빛을 비취어 주고 하나님께로 인도하셨다. 엘리야의 한 일이 굉장히 크다. 하나님 앞에 가면 상급이 대단히 클 것이다. 또 순교 당한 사람은 하늘나라에 가면 순교자의 특별한 보좌에 앉게 되고 상급이 크다. 순교자는 죽어도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한다고 했다.
히브리서 11:4에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고 했다. 예수 믿는 사람의 대목장은 순교 당하는 날이다. 대목장이란 장사꾼이 연말에 물건을 제일 많이 팔아 이익을 많이 남기는 때이다. 일년 내내 장사가 잘 안되어도 대목장만 잘 보면 그 동안 손해를 보충하고도 남는다. 그와 같이 성도가 순교 당하는 것은 대목장을 잘 보는 것과 같다. 만일 스데반이 순교 당해야 할 때 죽음이 두려워 신앙을 양보하고 몇 십 년 더 살았다고 하면 순교 당함으로 받는 영광과 상급은 다 잃어버렸을 것이다.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인데 주를 위해 순교를 당하면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키워져서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므로 참으로 큰 영광과 면류관이 있다(고후 5:4 참조). 우리는 순교 당할 시기가 올 때에 기쁘고 즐거움으로 순교할 수 있도록 믿음을 잘 준비해야 한다. 육신의 생명을 좀 더 연장하려고 신앙을 양보한다면 그 삶이 욕된 생활이다. 일정시(日政時) 순교를 당한 박관준 장로는 時來 死不死면 生樂이 不如死라 花落에 結成實하고 人死에 人天國이라(죽을 때가 왔는데 죽지 아니하면 살아 즐거워하는 것이 죽는 것만 못하고 꽃은 떨어져야 열매를 맺고 사람은 죽어야 천국에 가느니라)는 시를 지어 읊었다고 한다. 신앙 지키다가 죽는 것은 도리어 그 영혼이 사는 것이요 죽어도 진리를 증거하고 있는 것이며 하늘나라에 가서 큰 영광과 상급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진리를 양보하고, 신앙을 지키지 못하며 사는 자는 신앙을 양보하는 그 시간부터 영적 생명의 역사가 중단되고 영적 흑암을 만나 마귀의 종이 되고 하나님의 저주 아래 들어간다. 그 사람은 다른 성도에게도 손해를 주고 자기 자손에게도 하나님의 축복이 떠나게 만든다. 오늘날에도 이스라엘이나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 그것은 자기가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택하셔서 그러한 은혜를 주셨기 때문이다.
. 11:6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엘리야는 생명을 내놓고 거짓 선지자와 싸우면서 진리를 증거했고 숨어 있는 칠 천명도 많은 고난을 당하면서 바알 우상에게 무릎을 꿇지 않았는데 왜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은혜로 말미암았다고 했는가? 그 이유는 말씀을 지키기 위해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그 행위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다는 것이다. 말씀을 지킬 신앙을 하나님께서 주셨고(엡 2:8 참조), 생명을 내놓고 그 말씀을 지킬 힘도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이다. 승리적 신앙을 주신 이도 하나님이시요, 지킬 수 있는 힘을 주신 이도 하나님이시니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뿐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할 것 뿐이요.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만 자랑해야 한다.
二. 이스라엘이 불순종하므로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나감 (7-12)
. 11:7 그런즉 어떠하뇨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완악하여졌느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의 행위로 구원 얻기를 구하고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의 의를 얻지 못하고, 구원도 얻지 못했다. 그러나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다"고 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에 이르게 되었고 구원을 얻게 되었다. 누구나 다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이 택한 자만 믿을 수 있다(행 13:48).
남은 자들은 완악하여졌느니라 남은 자는 이스라엘 백성 중 택함을 받지 못한 자를 가리킨다. 그들은 완악하여졌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지 않고 자기의 힘으로 의와 구원을 얻으려고 힘썼기 때문이다. 인간의 무능을 깨닫고 자기가 깨어진 다음에야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자기의 노력으로 구원을 얻으려고 힘쓰면 하나님의 의에서 멀어지고 마음이 완악하여진다.
. 11:8 기록된바 하나님이 오늘날까지 저희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이 구절들은 이사야 29:10절, 신명기 29:4절의 뜻을 인용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신 것은 저들이 불택자인 까닭이요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신령한 은혜를 주시지 않은 까닭이다. 불택자는 구원받을 자가 아니고 하나님의 진로의 그릇이다(9:20-23). 그러므로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게 되었다.
. 11:9-10 또 다윗이 가로되 저희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옵시고 저희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저희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이 구절들은 시편 69:22-23절의 뜻을 따라 인용한 것이다. 그 내용은 다윗이 하나님의 심판을 대언(代言)한 것이다.
밥상은 성찬상과 같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삿상 즉 종교적 의식, 예배 의식, 종교 사업 등을 가리킨다. 교만한 자는 외부적인 제도와 종교의식으로 만족하기 때문에 영적 식탁 즉 신령한 양식은 찾지 않다. 그러므로 자기 밥상 즉 그들의 종교적 의식과 제도와 사업주의가 올무와 덫과 거리끼는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22-23에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라고 했다.
. 11: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저희가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 나게 함이니라
넘어짐은 엎드러진 것으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위치에서 떨어져 나감을 가리킨다. 이스라엘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으므로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졌으나 아주 타락하여 멸망하는 데까지 나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1-4절의 내용대로 부분적으로 버림받은 것이고 전체가 버림받은 것이 아니며 이스라엘이 일시적으로 넘어져서 구원이 이방에 나갔다가 나중에는 다시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을 받겠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에 나가게 되었다(행 13:4-6, 18:6, 28:25-28). 유대인이 그리스도를 배척한 것이 이방인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영접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방이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것을 보고 이스라엘이 시기가 나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된다는 것이다.
시기 이 시기는 악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구원에 대하여 나보다 부요(富饒)한 것을 보고 부러워하는 마음이다. 이스라엘이 복음을 믿지 않으므로 그 복음이 이방인에게로 나가게 되고 하나님을 모르던 이방인이 구원을 얻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볼 때 이스라엘 백성이 시기가 나서 하나님 앞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어린아이가 어머니를 떠나서 제 마음대로 행동하며 어머니가 불러도 오지 않을 때에 그 어머니가 남의 아이를 안아주면 그 아이가 시기가 나서 자기 어머니를 빨리 찾아와 안기우는 것과 같다.
. 11:12 저희의 넘어짐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며 저희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거든 하물며 저희의 충만함이리요
이스라엘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음으로 넘어지고 실패했으나 그로 인하여 이방인이 그리스도를 믿고 부요하게 되었다.
하물며 저희의 충만함이리요 이스라엘이 넘어졌기 때문에 구원이 이방인에게 나가서 부요함이 되었다고 하면 본래 이스라엘이 가지고 있던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은 얼마나 더 충만했겠느냐하는 의미이다. 넘어질 때에 쏟아져 흩어진 부스러기를 주워 가진 사람이 부요하게 되었다고 하면 그 본 그릇에 담겨 있는 것이야 얼마나 더 부요하겠는가?
三. 이방신자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자랑하지 못함(13-24)
. 11:13-14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이는 곧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케 하여 저희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이스라엘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복음이 이방으로 나가게 되었다(행 13:4-6, 18:6, 28:25-28).
바울이 이방의 사도가 된 것을 영광스럽게 여기면서 이방인들에게 열심히 복음을 전하셨다. 거기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첫째, 이방인을 구원하려는 것이다. 둘째, 이스라엘 백성을 시기 나게 해서 아무쪼록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하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젖 먹는 아이가 어머니를 떠나서 달아날 때에 그 어머니가 다른 아이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면 자기 아이가 시기가 나서 돌아오는 것과 같다.
내 골육은 바울의 골육 곧 이스라엘을 가리킨다.
. 11:15 저희를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사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이스라엘이 믿지 않았으므로 하나님께서 내버렸고 복음이 이방으로 가서 세상 사람들이 그 복음을 믿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 나중에 이스라엘이 시기가 나서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에는 이스라엘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아들과 같을 것이다. 하나님을 떠날 때 죽고 하나님을 찾아 하나님과 연합될 때 산다.
. 11:16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 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민수기 15:20에 보면 그 해의 처음 익은 곡식 가루로 만든 떡을 하나님께 바쳐서 그 해 모든 수확을 하나님께 다 바친 것으로 대표하게 했다. 본 절의 처음 익은 곡식 가루는 이스라엘의 족장들을 의미한다. 떡덩이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의미하고 뿌리는 이스라엘의 족장들을 의미하며 가지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아브라함, 이삭, 야곱 같은 이스라엘의 족장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받아 거룩하였으니 그 자손들인 이스라엘 백성도 거룩하다는 것이다. 그 족장들은 하나님 앞에 자신을 드렸는데 하나님 앞에 드려진 것은 다 거룩하다. 그러므로 그 뿌리에서 난 이스라엘 자손들도 당연히 거룩할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아도 거룩하다는 말이 아니고 그들이 마침내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룩하게 된다는 뜻이다. 조상들이 좋은 신앙을 가지면 그 자손들이 그 신앙을 본 받게 된다. 또 일시적으로 타락되어 불순종하는 자식들이 있을지라도 언젠가는 자기 조상의 신앙을 본 받아 잘 믿게 되는 사람이 많다. 야곱이 거짓말로 아버지를 속였고, 형의 배고픈 약점을 이용하여 장자 명분을 팥죽 한 그릇에 샀으며 그 결과 밧단아람으로 도망가서 20년간 타락생활을 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아브라함과 자기 아버지 이삭이 경외하는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계셔서 축복해준 줄 믿고(창 31:42), 그 하나님께로 돌아 왔다. 야곱이 자기 아버지 이삭이 하나님을 어떻게 섬긴 것을 보고 배웠기 때문이다.
. 11:17 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이것은 보통 접붙이는 원리와 반대이다. 세상 농부는 참감람나무 가지를 돌감람나무에 접붙여서 참감람나무 열매가 맺히게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돌감람나무 가지를 참감람나무에 접붙여서 참감람나무 열매를 맺히게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나쁜 가지에 좋은 열매를 맺게 하실 수 있고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실 수 있다(마 3:9). 참감람나무는 유대인을 가리키고 돌감람나무는 이방인을 가리킨다. 유대인이 믿지 않았으므로 하나님은 돌감람나무 같은 이방인을 불러서 그리스도를 믿게 하여 신앙의 열매를 맺게 하셨다. 참감람나무의 근본은 이스라엘에게 언약했던 그리스도이다. 유대인은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으므로 그 나무에서 꺾여져 나갔고 이방인은 믿음으로 그리스도에게 접붙임을 얻어 그리스도의 생명과 진액을 받아 신앙의 열매와 성령의 열매가 맺히게 된 것이다.
. 11:18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 자긍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유대인은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으므로 하나님의 은혜에서 끊어졌고, 이방인은 그리스도를 믿었으므로 그리스도께 접붙임을 받아 은혜와 구원을 받았다. 그러나 이방인이 유대인을 행하여 자랑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네가 뿌리를 보전하기 때문이 아니라"고 했다. 그 뜻은 그리스도의 언약은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가지고 있었고 그리스도의 구원운동은 유대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 11:19-21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이운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함이라 하리니 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이스라엘 백성이 복음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복음이 이방으로 나가게 되어 이방이 믿게 되었다는 뜻이다.
가지들이 꺾이운 것은 믿지 않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에서 떠난 것을 가리킨다.
나로 접붙임을 받게 이방인이 믿고 그리스도께 접붙임을 받아 구원받게 된 것을 가리킨다. 이에 대하여 이방인이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여야 한다(20절). 그 이유는 하나님이 원 가지(이스라엘 사람)도 아끼지 않고 꺾었은즉 이방인도 믿음을 지키지 않으면 아끼지 않고 꺾을 것이기 때문이다(21절). 그러므로 항상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구원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빌 2:12).
. 11:22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바 되리라
하나님은 인자와 엄위의 양면이 있다. 인자는 사랑과 친절한 행위이며 엄위는 공의대로 처벌하는 엄격한 성품이신다.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는 인자로 대하시고, 불순종하고 믿지 않는 자에게는 엄위로 대하신다.
넘어지는 자는 불신앙으로 넘어지는 자를 말한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공의대로 심판하여 엄위를 나타내신다.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가 있는 산 믿음에 거하는 것을 가리킨다. 산 믿음에 거하면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거하게 된다. 거기에도 하나님의 인자가 한량없이 임하여 있다.
베드로전서 2:3에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고 했다. 성도가 생명 있는 산 믿음에 거하면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과 위로와 평강과 권고와 안식과 즐거움과 보호와 능력을 맛보게 된다. 이것이 주의 인자하심을 맛본 것이다. 이것을 맛본 성도는 항상 그 산 믿음의 자리를 떠나지 않아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바 되리라 하나님의 처음 사랑에 거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촛대를 옮겨 버린다고 했다. 이 산 믿음에 거하지 않고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엄위가 나타나서 무서운 징계를 받게 될 것이다.
. 11:23 저희도 믿지 아니하는데 거하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얻으리니 이는 저희를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저희는 이스라엘 백성이다. 하나님께 꺾이운 바 된 이스라엘 백성도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으면 접붙임이 된다는 것이다. 버림받은 이스라엘을 다시 접붙일 능력이 하나님께 있다. 이스라엘의 소망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 11:24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스려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얻었은즉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얻으랴
돌감람나무인 이방인이 참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거든 하물며 원래 참감람나무 가지인 이스라엘이야 얼마나 잘 접붙임을 받겠는가?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돌아와 믿기만 하면 하나님은 더욱 잘 영접해 주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아흔 아홉 마리 양보다 잃었던 한 마리 양을 찾았을 때 더욱 즐거워하신다(눅15:3-6). 오늘날에도 타락한 신자가 돌아올 때에 하나님은 이렇게 기뻐하시며 더욱 친절하게 영접해주신다.
四. 이방인의 수가 차면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음(25-32)
. 11:25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신자들이 스스로 지혜 있다고 생각하고 인간이 생각과 판단으로 무엇을 안다고 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를 들어서 말한 것이다. 그 오묘한 하나님의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구원의 자리에 들어오기 가지 이스라엘은 완악하여 그리스도를 믿지 않다가 이방인의 수가 찰 때에는 이스라엘이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생각으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 지식에 뛰어난 역사로 구원운동을 성공시켜 나가신다. 아브라함부터 예수까지 구약시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구원의 문이 열린 때이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구속을 이루신 후부터 오늘날까지 약 2천년동안 유대에는 구원의 문이 닫혀서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징계로 세계 각처로 흩어져 핍박을 받고 유리방황하며, 고아와 같이 외롭게 지내며, 세계 모든 민족에게 멸시와 천대를 당하며 많은 환난과 고난을 당하게 되었다. 그 동안에 이방에 복음의 문이 열려 본래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 말씀을 받아 믿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위로부터 내리시는 신령한 복을 받게 되었다. 그리하여 복음이 전 세계에 전파되었다. 말세에는 유대교회 말년같이 세계 기독교가 속화되고, 의식주의, 물질주의, 사업주의, 인본주의 세상주의로 기울어지므로 하나님이 적기독세력을 보내서 이방교회를 크게 핍박하여 복음의 문이 닫히게 할 것이다. 그때에는 이스라엘에 다시 복음의 문이 열리게 된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대비밀(一大秘密)이다.
. 11:26-27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내가 저희 죄를 없이 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바울은 전 이스라엘이 구원받을 것을 확신하고 그 증거로서 구약 이사야 59:20-21,27:9절을 인용했다. 그 성구에 야곱, 즉 이스라엘의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킬 것과 저의 죄를 제하여 주겠다고 했으니 마침내 그 언약이 이루어져 전 이스라엘이 구원받게 된다는 것이다.
시온은 예루살렘을 가리키고 야곱은 전 이스라엘을 가리킨다.
. 11:28 복음으로 하면 저희가 너희를 인하여 원수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을 인하여 사랑을 입은 자라
복음으로 하면 저희가 너희를 인하여 원수 된 자라는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원수가 되었으나 본래부터 사랑을 입을 자이다. 이스라엘은 복음을 거역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원수가 되었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이다.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을 인하여 사랑을 입은 자라는 것은 택하심으로 보면 이스라엘은 조상 적부터 택한 백성이다. 조상들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조상들에게 주신 언약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죄로 인하여 여러 번 멸망하게 되었으나 멸망치 않고 보존된 것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 언약 때문이었다. 이스라엘은 그 조상들에게 주신 언약 때문에 나중에 반드시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 11: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하나님께서 일단 택하시고 부르시고 은사를 주신 이상 사람이 잘못한다고 해서 후회하거나 취소하는 법이 절대로 없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택함 받은 자들은 최종에 반드시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 11:30-31 너희가 전에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에 순종치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치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저희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방인이 전에는 하나님을 순종치 않았으나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복음이 이방으로 나가게 되었고, 이방인이 그 복음을 믿고 순종하여 하나님의 긍휼을 입게 되었다. 지금 순종치 않는 이스라엘도 이것을 보고 때가 되면 하나님께로 돌아와 복음을 믿고 하나님의 긍휼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 11:32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여기 모든 사람은 이스라엘과 이방을 다 가리킨다. 처음엔 이방이 순종치 않았고 하나님 없이 살았고, 그 다음에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순종치 않고 복음을 거역했다. 이로써 모든 사람이 순종치 않게 된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 이스라엘이 교만하여 복음을 거역하므로 그 복음이 이방으로 나가 이방이 믿고 하나님의 긍휼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방이 믿음을 지켜 복 받는 것을 이스라엘이 보고 그들이 하나님께 돌아와 복음을 믿고 하나님의 긍휼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어느 시대나 오랫동안 하나님을 섬겨 복 받은 성도가 교만하여 믿음을 지키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면 하나님이 징계하여 많은 환난과 고통 중에 버려 둔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복음을 다른 사람 즉 가난하고 비천한 자에게 전하여 그들이 큰복을 받게 하신다. 비천한 자가 믿음을 지켜 복 받는 것을 보고 교만하여 징계 받던 성도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하나님의 긍휼을 받게 된다. 비천하던 자가 하나님께 복 받은 후에 다시 교만하여져서 불순종하면 하나님께서 그들도 역시 징계하고 내어 버려 많은 환난과 고통을 당하게 하신다. 그 때에 그들이 깨닫고 겸손히 회개하여 다시 믿음을 찾고 순종하면 마침내 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五.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을 측량할 자 없음(33-36)
. 11: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하나님께서 이방과 이스라엘의 구원계획에 대한 지혜와 지식이 너무 부요하여 측량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 내용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복음을 믿지 않고 불순종할 때에 내에 버려두고 복음을 이방인에게 전하여 이방인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것과 그것을 보고 이스라엘이 시기가 나서 하나님께로 돌아와 복음을 믿고 순종하여 긍휼을 입도록 하신 것이다. 이 하나님의 구원 설계는 너무 깊고 오묘하여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기 전에는 사람이 헤아릴 수도 없고 그 길을 찾을 수도 없다.
. 11:34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하나님의 오묘한 구원섭리에 대하여 미리 그 마음을 안 자도 없고 그의 모사(謀士)가 되어 같이 의논한 사람도 없다. 오직 하나님께서 단독적으로 설계하셨고 당신의 원하시는 대로만 하신 것이다.
. 11:35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사람이 하나님께 무엇을 먼저 드렸거나 무슨 공로를 세워서 거기에 대한 보수(報酬)나 보상으로 하나님께서 구원을 주시기로 설계하신 것이 아니다. 순전히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크신 긍휼을 베풀어서 구원설계를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 설계에 있어서는 인간의 공로나 인간의 의견이 털끝만큼도 참고되지 않은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물질을 바치는 것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가지고 바치는 것뿐이다(대상29:14). 우리가 먼저 하나님께 바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신다고 하면 안된다. 하나님께서 먼저 주셨으니 바치는 것뿐이다. 예를 들면 아버지가 어린 아들에게 엿을 사다 주었는데 그 아들이 엿을 먹다가 아버지를 사랑하여 아버지께 드릴 생각이 나서 침이 묻고 코가 묻은 엿을 조금 떼어 아버지에게 드리면 아버지가 기뻐서 그것을 받아먹는다. 우리가 하나님께 바치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 받은 것으로 하나님께 바치는 것인데(대상 29:14),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뻐하신다.
.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 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앞에서(30-35)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너무 깊어서 사람은 가히 측량할 수도 없고 주의 마음을 알 수도 없다고 했는데 본 절은 그 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셨고 모든 계획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는 것이다.
주로 말미암고 만물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지배와 섭리에 의하여 성취되어 나간다는 것이다.
만물의 원어 (타 판타)는 모든 것을 뜻한다.
주께로 돌아감이라 하나님께서는 만물과 모든 것의 결말을 지으시는 분이시고 당신을 위하여 사용하시는 분이신다. 이방인과 이스라엘의 구원도 하나님이 계획하셨고 하나님이 성취해 나가시고 하나님이 완성하셔서 당신의 영광을 세세에 나타내실 것이다. 피조물인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이 하시는 그 일을 측량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러므로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다른 것에게 빼앗기지 아니하신다(사 48:11). 마귀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다 이기시고 당신의 계획하신 대로 모든 것을 성취하셔서 반드시 영광을 받으시고야 말 것이다. 영광은 오직 그에게만 세세에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