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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다. 집 앞 돌담길을 따라 난 개울 물소리가 얼음장을 뚫고 나왔다. 개울 건너 둔덕 응달은 설날 아침에 내린 눈으로 덮였지만, 안산을 넘어온 햇볕이 대들보 아래 벽 귀퉁이에 진을 쳤다. 마루 옹이구멍 아래에도 볕이 들었다.
<구글링>
[국민일보선정 아름다운 교회길] (11) 양평 상심리교회
2011. 3. 9. — 1903년 박응용 권서(勸書·성서공회 소속으로 성경을 팔며 전도하던 사람)가 서울 성서보급소에서 성경을 한 짐 지고 양평 일대를 방문했다.
2019. 9. 28. — 안국동교회 박응용이라는 권서인(勸書人)에 의해서 성경을 전해 받은 청지기들에 의해 자발적인 예배 모임과 사랑방교회가 형성된 것이다.
이에 앞서 서울 박응용의 전도로 본동 서재에서 40여명이 예배드리더니 ... 이에 앞서 선교사 맹호은의 전도와 권서인 오형선의 전도로 믿는 자가 많아 설립하니라
http://geochang.grandculture.net › geochang › toc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장기리에 있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 고신 총회 소속의 교회. 1908년에 고제면 개명리에서 온 권사 권응서가 전도하여 유응춘이 종교를 믿게 되었다.
https://books.google.co.kr › books
1903년 박응용 권서勸書(성서공회 소속으로 성경을 팔며 전도하던 사람)가 서울 성서보급소에서 성경을 한 짐 지고 양평 일대를 방문했다. 191 1년 1월호 전도 보고서 ...
http://www.youngahm.kr › 교회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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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지팡이를 움켜잡고 마루 앞 축담에 앉아 햇볕 사이로 골목 밖을 흘깃흘깃 바라봤다. 설을 며칠 앞두고 소 외양간을 지쳐 나온 볏짚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쇠똥, 거름이 골목 아래 뒷산 중턱의 문중 묘 같이 쌓였다. 거름더미 속에서 하얀 김과 쿵쿰한 냄새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거름 자리를 옮겨라!”
노인의 말이 떨어지자, 아이가 거름더미에 올라 쇠똥을 두 발 쇠스랑으로 찍어 더미 아래로 끌고 내려와 두어 발치쯤에 옮겨 쌓기 시작했다. 발이 네 개 달린 쇠스랑으로 거름을 쳐들어 던지려면 키가 더 커야 했다. 외양간에서 나온 거친 거름은 겨우내 두세 번의 뒤집기 끝에 몽글게 삭아 이른 봄부터 바지게에 업혀 감자밭으로 갔었다.
“입춘, 대길!”
“입춘”에 맞추어 허공을 높이 날은 쇠스랑이 “대길”에 쇠똥 더미를 내리찍었다.
“감자밭에는 몽근 거름을 골고루 뿌려야 한다. 성긴 거름을 내면 똥이 삭으면서 나오는 열에 씨앗도 함께 썩는 법이다.”
아이는 그냥 흘러들었다. 다만 온 힘을 다해 도끼로 장작을 패듯 쇠스랑을 허공에 번쩍 들어 쇠똥 무더기를 찍어 뒤집었다.
아이의 땅딸막한 키보다 긴 쇠스랑 자루가 햇살을 받아 반들반들 빛났다. 쇠스랑이 하늘을 휘돌아 거름을 내리찍을 때마다 쇠똥 더미 속에서 굴뚝 연기같이 끈적거리는 뜨거운 김이 뭉텅뭉텅 치솟았다. 쇠스랑이 하늘을 나를 때 쇠스랑 끝의 뾰족한 두 발이 햇살에 부딪혔다. 아이는 한동안 코를 막고 입으로 들이쉰 숨이 차면 이번에는 입을 다물고 코로 한 번에 훅 내뿜었다.
노인은 왼손으로 지팡이를 잡고 오른손으로는 턱수염을 어루만지며 아이를 돋보기 너머로 바라봤다. 뽀족뽀족 싹이 막 틔는 모판같이 흰 머리카락은 짧았지만, 턱수염을 손바닥으로 감싸 잡으면 흰 수염이 새끼손가락 밖으로 비집어 나왔다. 도보기안경이 흘러내리다 콧등에 가까스로 걸쳤다. 지팡이를 움켜잡고 댓돌에 앉은 노인의 풍채를 알아본 집 앞 개울 외나무다리를 건너오던 나뭇짐이 꾸벅거렸다.
쇠스랑질에 아이의 엄지손가락 안쪽과 손바닥에 물집이 잡혔다. 이마에도 땀이 송골송골, 뺨을 타고 눈물같이 흘러 턱밑으로 뚝뚝 떨어졌다. 검정 고무신이 미끌미끌, 발에서 자꾸만 벗겨졌다.
노인은 끝내 지팡이를 두 손으로 움켜잡아 턱을 고이고 입춘대길 리듬에 맞춰 꾸벅꾸벅, 곧장 꿈속으로 떨어졌다. 연어가 산란을 위하여 푸른 물살을 거슬러 태어난 곳을 찾아 오르듯, 지난 삶의 소용돌이 여울 여울목마다 덤벙덤벙 빠져 맴돌다 다시 죽을힘을 다해 시간의 물살을 꼭 꿈만 같이 거슬러 올랐다.
한 날 예수쟁이 잡는다는 일본 순사에 쫓겨 도망치다 엉겁결에 두엄자리를 파고들어 숨었는데, 두엄더미를 찌른 대꼬챙이가 오른쪽 귀를 스쳐지나 용케도 살아남은 젊은 날의 한순간에 오랫동안 멈췄다.
외양간에 누운 소가 낮에 뜯은 풀을 밤새 되새김질 하여 소화하듯 노인은 오래전 삶의 생채기를 새김질 했다. 노인은 다시 시간을 거슬러 송진을 뺀 삶의 옹이들 저편으로 오르고 또 올랐다. 이미 어제오늘의 가까운 시간 속 일상의 일은 곧장 잊어버려도 한참을 지나온 삶의 매듭, 헤진 짚신을 신고 크고 작은 강을 건넜던 순간들이 감은 눈앞에서 되살아 펼쳐졌다.
왜놈 시대엔 비행기 연료로 쓰이는 당산 아름드리 소나무에 상처를 줘 송진을 뽑아 공출했지만, 빨치산 공비를 잡는다며 양의 탈을 쓴 늑대 토벌군이 동네를 불 싸지르고 사람을 잡아다가 송진 뽑듯이 죽여 산골짝에 방치하여 날짐승 들짐승의 밥이 되어 십자가를 대신한 에서 그만 눈물을 왈칵 쏟았다.
*
“할배, 어딧노?”
입학 첫날 오리길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책보를 등에 지고 마당 골목을 들어서며 노인을 찾았다. 암탉이 여남은 마리의 병아리를 거느리고 소 외양간 옆의 감나무 아래서 두 발을 바꿔가며 부지런히 흙을 파 뒤집었다. 아이는 부엌에서 물을 바가지에 퍼 담아 들고 한 손으로 놋쇠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어둑한 방에서 눅눅한 바람이 뭉텅이로 훅 나왔다. 방문을 닫고 뒤돌아서며 바가지 속의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제야 책보를 어깨에서 풀어 마루에 던졌다. 그리고 골목을 나와 동네 뒤 너덜바윗길을 타고 올라 논들로 내쳤다.
“할배!”
산에서 메아리로 들려오는 곡괭이질 소리를 들은 아이가 논들이 시작되는 산모퉁이에서 불렀다. 노인이 잔돌을 망태에 주워 담던 손을 잠시 멈추고 고개를 들어 고욤나무 아래의 비탈진 오솔길을 훑었다. 언덕의 가시덤불이며 잔솔가지에 가려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아이는 이마에 땀을 뻘뻘 흘리며 엉덩이를 뒤로 내밀어 허리를 앞으로 굽혀 부지런히 오르막길을 차올랐다.
“그만해라. 물 떠 올까?”
“그래. 이제 이 돌 들 힘도… 들겠나?”
“어디 쌓을까?”
아이가 돌을 번쩍 들어 노인이 손으로 가리킨 곳에 쌓고 뒤돌아서며 다시 물었다.
“할배, 그런데 논물은 어떻게… 뭐할라꼬 힘들게 하노? 집에 가만히 앉아 있시면 될 긴데.”
“모를 내고 나락을 거둬들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만… 그때까지 살지도 모르겠다.”
“이러다 병이라도 나면 우짤기고. 괭이질 집어치우고 그만 집에 내려가자.”
“이놈아, 대대로 파 일군 땅에 농사 지 묵고 사는 게다. 나도 한 뼘 땅이나마 보태야 요단강 건너가 널 지켜볼 기다.”
노인은 들숨과 날숨 사이사이로 말을 내뱉었다. 임진왜란을 피해 산골로 숨어들어 산비탈을 사백여 년 동안 개간으로 늘려온 다랑이 논들이었다. 해발 오백 미터 산 중 산, 기먹지 들녘은 해방이 되자 일본인 사이또가 버리고 간 땅이었다.
“할배, 며얼치 동안이나 요강을 건넌다는 노래는 고만 불러라. 문지방 옆에 있는 요강을 며얼칠 걸려 건넌다고 웃집 아지매가 남세스럽게 웃는다 아이가. 며칠 전에 할배 오줌발에 요강이 깨졌다고도 하고….”
“이놈, 낫 놓고 기역자도 모리는 소리는 듣지 마라. 멸치고 요강이 다 뭤고. 산골에 살아도 이 논바닥 흙이 봄·여름·가을·겨울, 사시장철 돌아가는 이치를 깨우쳐야한다. ‘지은 죄도 없는데 설마…’, 빨치산 토벌대라는 놈들 말 고대로 믿고 따라간 등신은 원통하게 까마귀밥이 다 되었다.”
“……”
노인은 논들 가운데 섬 같이 우묵하니 솟은 돌밭을 곡괭이로 파 논을 일궜다. 앉은뱅이처럼 돌밭에 똬리를 틀고 앉아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를 부르고 또 부르며 곡괭이로 돌밭 흙을 골랐다. 마치 성경책을 담은 궤짝을 지고 나룻배를 타고 남한강을 건너듯 곡괭이질을 했다.
입춘도 지났지만, 돌밭 군데군데 하얀 눈이 쌓였다. 골 깊은 짚퐁골에서 내려와 논두렁을 타던 찬바람이 잠시 멈췄다. 무엇보다 돌부리를 파내고 흙을 평평하게 골라도 물이 자연스럽게 흘러들 수 없어 보였다. 돌밭은 옆 논보다 아이 키 한 질보다 높았다.
“저 위 병발이 논배미 물꼬에 대롱을 달아 공중에 띄우면 될 게다.”
아이는 노인이 말한 대롱을 중얼거리며 고욤나무가 언덕에 버티고 있는 다랑논 구석진 곳에 있는 샘을 향해 물꼬를 따라 난 논두렁을 타고 내려갔다. 양지바른 논두렁에서 벌써 쑥이 흙을 뒤집어쓰고 삐쭘 삣춤 돋았다. 아이는 먼저 샘물에 둥둥 떠다니는 개구리 알을 흙탕물이 일지 않도록, 양 손바닥을 모아 조심스럽게 걷어냈다. 그런 다음에는 세배하듯 양 무릎을 샘돌에 꿇고 엉덩이를 하늘로 뒤뚱하게 내밀어 머리를 샘물에 처박아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물새가 자맥질로 먹이를 잡듯 했다.
머리를 들고 일어나 하늘을 보자 뱃속에서 꾸르륵 소리가 났다. 그리고 샘물을 검정 고무신에 담아 논두렁을 타자마자 물이 뱃속에서 또 꿀렁거렸다. 돌담을 쌓아 만든 좁은, 지난해 가을 두더지가 땅굴을 파고 놀아 군데군데 무너진 논두렁길과 양손에 들은 고무신 속의 물을 번갈아 보며 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고무신 속의 물은 사정없이 출렁거렸고 그때마다 고무신 밖으로 물이 내뛰었다.
“할배, 빨리 여름이 와 감자를 묵을 수 있시면 좋겠다.”
“저 보리 싹이 파랗게 잘 자라니 올해는 풍년이 들게야. 배고파도, 니도 불알 까고 한양 간다는 소리 말거라이. 니 성도 열네 살에 책 보따리 집어 던지고 서울로 내뺐다만….”
노인은 아이가 내민 한 모금이나 될까 말까 한 물로 입을 축였다. 그리고 해가 지고 있는 먼 산 하늘을 바라봤다. 또다시 떠오르지 않을 것만 같은 서쪽 소룡산을 넘는 해를 보며 곡괭이를 두 손으로 움켜잡았다.
불꽃이 튀었다. 곡괭이가 돌에 부딪히면서 번쩍, 치는 번개… 우르르 쾅쾅… 우레가 하늘에서 일듯 노인이 내친 천둥소리가 논두렁을 타고 들판을 맴돌다 산속으로 고만고만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곡괭이가 뒤집은 돌과 함께 묻어나와 꿈틀거리던 개구리가 천둥소리에 놀라 필사적으로 흙을 파고들어 숨으려 했다. 어느덧 어둠이 슬쩍 내려와 산 아래 뽕밭 가장자리의 무덤을 뒤덮었다. 뱀이 개구리를 입에 넣어 삭이듯 산자락을 타고 내려온 어둠이 지렁이같이 꼬불꼬불한 논두렁을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
짙은 봄이다. 하늘도 맑다. 앞산, 뒷산 그리고 안산 공터를 치받치고 있는 돌담에도 연분홍 진달래꽃 천지다. 가시덤불 밑에도 다투어 푸른 새싹이 돋아났다. 산 아래 다랑논 사이의 냇가, 나뭇가지에서 떨어진 버들강아지가 물에 떠 빙글빙글 몇 바퀴 돌다 흐르는 물 따라 돌 틈 사이로 빨려들어 사라졌다. 돌에 부딪혀 흐르는, 점점 커진 물소리가 안산을 울렸다.
“이라, 자라… 워, 워~.”
쟁기질 소 모는 소리가 앞산 모퉁이를 돌아 뒷산에서 메아리쳤다. 들판에서는 다투어 물꼬를 치고, 못자리를 만들었다. 쑥범벅으로 끼니를 달래려 논두렁에 앉아 쑥을 캐기도 했다.
아이는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물오른 칡 대신 소나무 가지를 꺾어 껍질을 벗겨내고 속살을 하모니카 불듯 빨았다. 진달래 꽃잎과 통통한 찔레 순으로 물 대신 허기를 달랬다. 찔레 덤불 길옆의 언덕 너머 산에서 두견새가 모습을 감추고 울었다.
아이는 저녁 무렵에 소 풀을 베기 위해 망태를 메고 안산으로 올라갔다. 망초는 소가 봄에 가장 좋아하는 풀로, 또 봄에 가장 먼저 돋아나 빈집 마당이나 밭두렁을 빠르게 점령했다. 아이는 안산 공터에 난 망초를 배추포기 뽑듯 뿌리째 뽑았다. 망초를 낫으로 베면 뿌리가 잘려나가며 잎이 하나하나씩 낱 잎으로 흩어졌다. 달걀 꽃이 피기까지 소 풀로는 망초를 따라 갈만한 풀이 없었다. 개망초라고 하는 풀은 혼자 살던 절뚝절뚝 걷던 병발이가 떠난 빈집에 가장 먼저 찾아와 하얀 꽃을 피워 겨울이 오기까지 주인 대신 흔들거리며 마당을 지켰다.
안산 돌담 위의 펑퍼짐한 공터도 해마다 이른 여름부터 핀 망초꽃은 가을밤 달빛 아래 바람에 흔들리는 산자락 밭두렁에 핀 메밀꽃 같았다. 한일합방 한 해 앞서 자리를 틀어 일본군의 대동아전쟁의 송진 공출 속에서도 지킨 예배소, 국군이 빨치산을 소탕한다며 청야견벽(淸野堅壁) 작전이 펼쳐진 학살 사건 때 불탄 예배소 공터는 해마다 초여름부터 늦가을까지 하이얀 개망초 꽃이 바람이 불 때마다 달빛 아래 도깨비춤을 추었다.
아침에는 당산 솔밭에서 당차게 울던 뻐꾸기가 저녁이 되자 안산으로 옮겨 힘이 빠진 듯 시큰둥하게 울었다. 힘든 일을 마친 소가 외양간에 들자마자 망초를 긴 혀로 날름날름 집어 입에 넣었다. 송아지는 어미젖을 빨아 숨 가쁘게 삼켰다. 병아리를 챙겨 닭장에 들어앉은 암탉은 마당의 어슬렁거리는 개를 살폈다. 돼지는 소가 집에 드는 소리를 듣고부터 멈추지 않고 맹물이라도 달라며 꿀꿀거렸다.
노인은 다음날 이른 아침에 지팡이에 의지하여 논 옆에 있는 산소를 둘러봤다. 아이의 할머니와 고조할아버지 뫼 봉 사이에 앉은 노인은 한참 동안 서쪽 소룡산 넘어 지리산줄기를 더텄다. 노인은 아득히 먼 곳, 하늘과 맞닿는 지리산을 바라보며 발 치 앞의 땅을 지팡이로 더듬거리다 쿡 찔렀다. 돌이 지팡이를 보고 놀라 도망쳤듯 지팡이가 흙속으로 한 자쯤 넘게 푹 들어갔다.
그러니까 몇 해 전에 남한강 건너 양주 덕정리 왕릉골에 있던 양아버지 묘를 파와 동네 뒤 논 가장자리 산 아래 할멈 옆, 동쪽으로 두어 걸음 위로 세 걸음 되는 양지바른 곳에 되묻었다. 가을이 채 끝나기 무섭게 집을 나간 지 달포쯤 지나 늦은 밤에 나타난 노인의 등에 업혀 온 메밀묵 함지만 한 궤짝은 다음 날 아침에 동네 뒷산으로 나갔다. 고자 대감이 선교사 아펜젤로의 낚싯밥을 물어 권서가 돼 성경책을 넣어 다녔다는 궤짝에 뼈 몇 조각으로 드러누워 청춘의 어느 봄날에 스스로 불알을 까고 이름을 바꿔 떠났던 땅으로 되돌아왔던 것이다. 황궁 내시질 십여 년 만에 성경과 찬송가책을 말에 싫고 나타나 안산에 회당을 짓고 다시 떠났던 고향에 백골이 되어 돌아왔다.
“할배, 뒷집 아지매가 그라는데 까끄쟁이 할배는 동네 노름방 구들을 사정없이 곡괭이질로 파버리는 예수쟁이라 아재들도 무섭다 카더라.”
“이 곡괭이로 어제 새벽에도 구들장을 파 뒤집었다. 젊은 놈들이 봄이 왔는데도 새벽까지 화투장이나 만지고….”
노인의 별호는 각거당으로 인근 동네 가운데서 상투를 가장 먼저 싹둑 잘랐다 하여 붙었는데, 까끄쟁이 또는 예수쟁이 할배로 불리며 동네 개도 노인 앞에서는 머리를 숙이고 지나갔다. 오로지 아이만이 노인의 장기판을 뒤집을 수 있었다.
“그만 집에 가자? 해가 졌다.”
아이가 집을 향해 앞장섰다. 노인이 지팡이로 길을 더듬자 아이가 노인을 뒤따랐다. 너덜바윗길을 타고 내려와 동네를 들어서도 밥 짓는 연기, 골목길 쇠똥 냄새도 나지 않았다.
‘요단강 건너기 전에 쌀을 묵을 수 있을랑가 모르겠다.’
노인은 혼잣말로 내뱉은 말과 달리, 오는 가을에 치고 있는 새 논에서 벼 이삭이 주렁주렁 달린 벼 포기를 한 줌씩 끌어 잡고 낫으로 베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며 방문을 열었다.
*
밭두렁 논두렁, 언덕과 산이 온통 푸르렀다. 진달래 나뭇가지마다 꽃이 지고 푸른 잎이 돋아났다. 감자밭 옆의 보리밭에서도 보리가 팼다. 봄갈이가 끝난 논에는 물이 찰랑찰랑, 바람이 불 때마다 잔물결이 일었다. 개구리 한 쌍이 논물 속을 헤엄치다 짝짓기를 했다.
아이가 풀을 등에 지고 논두렁을 탔다. 학교 갔다 온 오후에는 거름으로 나뭇잎과 풀을 한 짐 베어 무논에 넣었다. 모판의 모가 자라기 위해서는 흙, 물, 햇살 그리고 거름이 필요했다. 하얀 서캐 같은 요소비료가 막 나왔으나 사월의 쌀보다 귀하신 몸이었다. 노인은 여름이 시작돼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오로지 곡괭이질로 하루 한 뼘씩 땅을 넓혀갔다.
“할배, 그만하고 가자?”
“아직 해가 하늘에 걸려있다. 덤불에 가봐라.”
아이는 길옆 가시덤불로 달려갔다. 감꽃이 피고 질 때, 찔레꽃 덤불에는 어김없이 넝쿨딸기가 빨갛게 익는다는 것을 알았다. 양지바른 언덕의 하얀 꽃 무덤 사이사이로 푸른 잎들을 들추었다. 꽃잎은 다투어 지고 있었다. 꽃잎이 떨어진 자리마다 올챙이 알 같은 꿈이 알알이 영글었다. 넝쿨을 헤집자 넝쿨에 솜틀이 송송하게 달린 시푸렁한 딸이 손끝을 따라 나왔다. 개중에 가장 볼 붉게 익어가는 꿈, 하나를 따 입에 넣고 씹으며 눈을 찔끔찔끔 감았다. 마른 입속에서 침이 돌았다.
“할배, 입 벌려라. 침이 샘솟는다.”
노인도 아이와 같이 눈을 깜박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잠시 후 다시 곡괭이질이 바빠졌다. 해는 지고 있는데 무논에서 개구리 우는 소리가 점점 더 세졌다. 노인은 마지막 숨을 몰아쉬듯 하여 곡괭이를 번쩍 들어 내리쳤다.
양력으로 유월까지 모판에서 자라는 모를 논에 내야 가을에 한 줌의 나락을 추수할 수 있었다. 낮이 가장 긴 하지부터는 물이 없어 모를 내지 못한 논에는 메밀이나 콩을 심어야 했다. 산골의 봄은 늦고 겨울은 빨리 왔다. 때 지나 늦게 모를 내봐야 벼꽃도 피지 않았다. 해는 점점 길어졌지만, 노인의 하루는 더더욱 빠르게 짧아져만 갔다. 이른 새벽에 집을 나와 해가 져 곡괭이 끝의 돌과 흙을 분별할 수 없을 때 괭이질이 멈췄다.
“가자. 뭐든 때가 있는 법이다.”
노인은 혼잣말같이 내뱉었다. 앉은뱅이가 일어서려 용쓰듯 노인은 가까스로 지팡이를 앞으로 내밀었다. 오금이 저려 무릎을 곧바로 세우지 못했다. 첫돌 지난 아기가 혼자 발걸음을 옮기듯 지팡이를 따라 한 발짝씩 더디게 움직였다. 논에 가는 아침 오르막길보다 집으로 돌아오는 저녁의 내리막길이 갑절이나 힘들었다.
‘만세반석 열리니….’
노인은 동네가 저만치 내려다보이자 흥얼거렸다.
“할배, 엎어진다! 산에서 메르치 잡고 요강 깨는 노래는 고마 불러라.”
노인이 지팡이로 앞장선 아이의 엉덩이를 내리쳤다.
“지팡이에 허리 상하여 물과 피로… 내가 문 열고 가겠다.”
아이가 가던 길을 멈추고 뒤돌아 지팡이를 보며 응얼거렸다. 노인은 길바닥에 솟은 돌을 피해 발길을 옮기느라 허리가 더욱 앞으로 꼬부라졌다. 낭떠러지 돌계단을 내려올 때는 만세반석… 노래가 더는 들리지 않았다. 개울 물 흐르는 소리가 앞산에 부딪혀 되돌아와 돌계단에 누웠다. 아이와 노인은 카랑카랑한 개울 물소리를 밟으며 골목길을 들어섰다. 종일토록 누워있던 돼지가 인기척에 일어났다.
*
노인은 곡괭이 자루를 끌어안고 돌무더기에 기대어 졸았다. 손바닥이 매끈한 전도사의 젖과 꿀이 흐르는 골고다언덕…, 오뉴월 농번기 수요예배의 긴 설교시간에 피곤한 몸을 가누지 못한 채 꾸뻑꾸뻑 졸듯 산을 울리며 달려오는 소 모는 소리가 더욱더 빠르게 꿈의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들판 여기저기서 소는 입에 거품을 내며 거름으로 넣은 풀이 빨리 썩도록 무논을 갈아엎었다. 보리를 심지 않은, 일찍 모를 내려는 논에는 벌써 쓰레질이 한창이었다. 노인의 꿈길은 느리게… 한 고개를 넘어서는 다시 빠르게 산모퉁이 내리막길을 걸었다.
“참봉 어른, 저는 소야 사는 박수응입니더. 밀양 박가올시다.”
“내 인편에 이미 사정은 들었다만, 과연 그리할 수 있겠느냐?”
“하실 수만 있다면 저를 한양에 데려가 주십시요. 왕실 아무 데라도 좋으니 취직을 하고 싶소이다.”
“건장하게 잘 생겨… 여기서도 열심히 일만 하면 묵고 사는 데는… 필시 떠나는 이유를 다시 말해 보거라.”
“어르신. 이 골짝 밖의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꽃은 지고 떨어져야 열매를 매달아 키울 수 있는 이치가 아니겠습니까.”
“그러하면 정령 내시라도 좋겠느냐? 내시란 고자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예! 데려만 가신다면 무엇이라도 하겠나이다.”
“…….”
노인의 꿈은 육이오와 병자년 수해, 한일합방이라는 소용돌이 용소를 가까스로 빠져나와, 한참의 시간을 더 거슬러 올랐다. 그렇게 양아버지는 멀쩡한 고환을 스스로 까고 고자가 되어 이름을 응용으로 바꿔 고향을 떠나 왕실 내시가 되었고, 또 선교사 아펜젤러를 만나 함지에 성경책을 짊어지고 경기북부 양평 일대를 바람처럼 휘돌아다니는 권서…, 예수쟁이가 돼 성경책을 말에 싫고 고향에 돌아와 세워 병자년 수해도 견뎌낸 예배소(소야교회)가 빨치산 토벌대가 내지른 불에 탄 공터를 노인은 꿈속에서 다시 훨훨 날아 맴돌았다.
안산 공터 벼랑 끝에 발을 내디디면 한눈에 동네가 들어왔다. 동네 입구 정자나무를 지나 동네를 들어서는 왜놈 순사와 빨치산 토벌대의 총칼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예배소가 뒤로 깎아지른 절벽 산 아래에 있어 늘 동네 초입을 내려다볼 수 있었기 때문. 만주로 떠나는 광호 형을 따라 골목을 나섰다가 집으로 되돌아온 순간이 꿈만 같았다. 그때, 내시가 되지 않았다면 나비처럼 훌훌 날아 만주로 내치고….
“할배, 자나?”
아이가 꿈꾸는 노인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저기 봐라. 온다… 도망… 숨어… 안돼….”
노인이 잠꼬대를 멈추고 어깨를 떨며 눈을 뜨자 마른 수수깡이 서리가 내린 밭두렁에서 바람을 타며 내는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이가 땀을 뻘뻘 흘리며 말했다.
“경찰이 할배를 찾아 이리 논으로 올라오고 있습니더.”
“뭐라꼬?”
“총도 칼도 못 봤다.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애서 할배가 논 치고 있다고 했다 아이가. 저기 뽕나무 아래에 옵니더.”
“그래, 낯이 익다. 날 잡어로 오는 놈은 아니다!”
노인이 팔을 내밀어 아이의 등을 짚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부지, 잘 계셨습니꺼. 이번에 진주경찰서로 승진해 왔습니더. 가입시더. 진주로… 취임식도 있고….”
양복 입은 신사가 흙밭에 무릎을 꿇고 큰절을 했다. 그날 오후 노인은 하얀 두루마기를 걸쳐 입고 양아들이라는 그와 함께 지프차를 타고 휭하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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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사라지고, 아이는 모내기를 도왔다. 모판에서 찐 모를 한 손에 한 춤씩 잡고 논두렁을 타고 모를 심는 논으로 날랐다. 두렁에서 미끄러져 무논에 처박히기를 몇 번, 물에 빠졌다 나온 생쥐 같았다. 얼굴에는 흙이 희끗희끗 말라붙었다. 뻐꾸기가 산속에서 한가롭게 울었다.
아랫논에서 푸른 밀 이삭을 사루는 냄새가 희뿌연 연기에 실려 왔다. 아이는 감자밭으로 달려가 두 손으로 두더지같이 굴을 팠다. 굴에 손을 넣어 감자를 찾아 흙을 헤집자 흰 감자 꽃이 놀라 꽃잎 가운데서 샛노란 혀를 내두르며 파르르 떨었다. 손끝에 두더지 불알만 한 감자가 잡혔지만, 너무 작아 먹을 수 없었다. 아이는 감자 순 밑동에 판 굴을 두 손으로 흙을 끓여 모아 토닥토닥 다독였다. 그리고 손뼉을 쳐 손에 묻은 흙을 틀며 밭두렁으로 내려갔다. 그즈음 틈만 나면 가시덤불을 찾고 또 찾았다.
밭 아래 두렁 가시덤불에는 하얀 찔레꽃잎이 바람에 후드득 떨어졌다. 넝쿨딸기 꽃이 햇살을 찾아 줄지어 기어올랐다. 꽃잎마다 품은 꿈을 정성으로 키우는 가시투성이 넝쿨은 밭두렁을 부지런히 탔다. 꽃은 수줍어하면서도 해맑게 웃으며 햇살을 품었다. 꽃잎마다 매달은 좁쌀만 한 열매, 꿈을 꾸었다. 넝쿨을 당기자 지난번과 달리 꽃잎이 일찍 떨어진 자리에서 구슬만 한 검붉은 딸이 줄지어 여럿 나타났다.
아이의 이마에서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훈훈한 바람이 가시덤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멥새 떼가 건너편 덤불에 일제히 내려앉아 가시나무를 쫑쫑 뛰며 먹이를 찾았다. 간간히 멀리서 달려온 소 모는 소리가 밭두렁을 타고 올라 산을 울렸다.
둔덕 돌무더기가 풀숲 위로 솟아 노인을 기다리듯 길을 살폈다. 주먹만 한 잔돌을 담아 나르던 소쿠리와 망태가 돌무더기 사이에 한가롭게 앉아 하늘을 헤아렸다. 낡아 끊어진 새끼줄은 물뱀같이 늘어져 돌담을 타고 내렸다. 감자밭의 절반이 채 못 돼 보이는 흙 반 돌 반으로 물을 넣어 모를 심는 논바닥이 되려면 아직 남은 일이 많았다.
쌀이 나는 논이 되려면, 가장 먼저 돌밭을 곡괭이로 파헤쳐 돌을 들어내야 했다. 그런 다음은 큰 돌이 박혔던 움푹 내려앉은 곳은 먼저 작은 돌을 넣고 쌓아 올려 평평하게 골랐다. 그리고 부드러운 흙을 무릎 높이 이상으로 넣어 다져야 했다. 다음은 물을 끌어들이는 물꼬, 언제든지 물이 필요한 만큼 자연스럽게 흘러들 수 있게 물길을 터야 했다. 물론 물을 가두는 두렁과 물이 차면, 필요한 물은 남겨두고 남는 물은 스스로 흘러넘쳐 논둑 두렁이 터지는 불상사를 막아주는 무넘기도 두렁 한쪽에 만들어야 했다. 마지막으로 논에 물을 넣어 흙을 가라앉혀 논바닥으로 물 빠짐을 막는 일을 서너 번 반복해야 했다.
“논에 물 새는지 가봐라!”
밭두렁 가시덤불 밑을 끼웃거리고 있는 아이를 내쫓았다. 윗논이 과욕의 물 욕심과 두더지가 논두렁에 판 구멍 속으로 물이 빠지거나 넘치면 어김없이 논두렁이 무너져 터지고 아랫논 그리고 그 아랫논까지 논들이 내리 치달아 개판이 되기 때문에 논물 든 물꼬는 아침저녁으로 돌봐야 했다. 오뉴월 장작개비도 일어나 일을 한다는 모내기철에 아이도 밥값을 했다.
아이는 밭두렁을 내려와 오솔길에 들어섰다. 바지에 묻은 흙을 털었다. 호주머니를 홀라당 까뒤집어 주머니에 들어앉은 먼지를 탈탈 틀었다. 또랑물을 논에 먼저 대려고 실랑이를 벌이는 소리가 들판 멀리서 들려왔다. 물이 며칠 마른 논은 바닥이 턱턱 갈라지고 모가 불그스름하게 타들어 갔다. 물이 윗 논에 돌면 곧장 뒷집 논으로 흘려 물 구경을 못 해 타죽어 가는 모에 생기를 불어넣으려 애를 썼다. 벌써 장맛비가 내려야 모를 심을 수 있는 천수답에는 모내기를 포기하고 하나둘 콩을 심고 메밀 씨를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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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진주에서 아흐레 만에 돌아온 다음 날 이른 아침부터 곡괭이가 다시 번쩍였다. 괭이가 돌에 부딪혀 나는 소리가 또다시 무덤이 있는 산에서 반대편 뽕밭 뒷산으로 내쳤다. 괭이 소리는 논들을 좌우로 감싸고 있는 산과 산이 다투어 메아리쳤다. 여름 태풍 언저리 폭우에 불어난 개울물에 돌 굴러 떠내려가며 나는 소리 같았다.
하루해는 노인의 곡괭이질 속에 서산으로 성큼성큼 내달렸다. 붉게 타오르는 노을 진 하늘 아래 소룡산도 빠르게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 숨이 꼴깍 넘어가는 순간, 해는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황홀하게 춤추었다.
노인의 발길은 괭이질과 달리 점점 느려졌다. 거름을 한 짐 지고도 단숨에 올랐던 논에 오르는 시간이 점점 늘었다. 지팡이를 짚고 걷는 시간보다 돌계단에 앉아 숨 고르는 시간이 더 많았다. 아침에 집을 나가도 점심때쯤 되어야 논에 다다랐다. 논에 가기만 가면 두꺼비며 뱀이 똬릴 틀고 날름날름 파리 잡는 입질을 하듯 괭이질을 할 수 있지만, 다리 힘이 팔 힘을 따라가지 못했다. 그렇게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
“봄바람에 꽃잎 지듯, 사흘만 누웠다가 한 날 밤에 사르르 눈감고 요단강을 건너면 얼마나 좋겠느냐.”
“할배, 눈 뜨고 강 건너기도 어려운데 눈 감은 장님이 요단강 건너 만세반석을 열어요?”
“비렁박에 똥칠하기 전에 가야지.”
“아니 갈 때 가더라도 새 논에 모는 내고….”
“파리 목심과 고래심줄 목심, 그게 어디 말대로 쉽더냐.”
“파리는 알겠는데 고래는 또 뭐이고?”
“하여 요단강… 만세 반석을 부르고 또 부른다 아이가 이놈아.”
“할배는 맨날 요~강… 반으로 돌 깨고 들어가 만세 부르는 이유를 이제 알겠다.”
“……”
노인과 아이가 마루에 앉아, 개울 건너 언덕 감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장디감을 바라보며, 나그네가 주막 술상을 마주 보고 앉아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듯 했다. 까마귀가 쪼아 때 이른 빨간 홍시가 감나무에서 밤하늘 유성같이 떨어져 언덕을 굴렀다. 곧이어 곪은 감이 떨어져 바위에 부딪히는 소리가 마당에 날아들었다.
“논두렁에 두더지가 판 구멍으로 물이 빠지는지 가봐라.”
아이가 노인을 빤히 쳐다봤다. 노인은 하루에도 몇 번씩 똑같은 말을 했다.
“할배, 점심은 우짜고 괭이질만 하요?”
“내려가는데 한나절, 다시 올라오는데 한나절… 저녁에 일찍 내려가서…”
“배고파서 우찌 하루 종일 괭이질만…”
혀를 끌끌 차며 바삐 동네로 내려갔다. 머리 위의 해가 한 자쯤 더 서쪽으로 기울었을 때 머리에 점심을 이고 논에 물주전자를 들고 다시 나타났다.
“밭일하는 인부 점심입니더. 한 그릇 더 가져왔습니더. 여기 물부터… 밥그릇은 진지 자시고 여기 두면 나중에 밭일 끝내고 내려오면서 가져가겠십니더.”
“오냐. 알았다.”
노인은 논두렁을 타고 길가로 나가는, 검은 머리위에 앉은 밥함지를 바라봤다.
“아야, 따바리가 여기 빠졌다.”
“밥이 식어서 빠진 줄도 모르고 그만… ”
“그놈은 이제 정신 차리고 화투장을 더 이상 만지지 않을 것이다.”
노인이 짚으로 만든 머리받침인 똬리를 밥함지와 머리 사이에 끼어 넣었다. 밥함지는 사뿐사뿐 오르막길을 차올라 재를 넘어 사라졌다.
노인은 종종 점심을 얻어먹었다. 논들을 오르내리는 이웃들이 밥을 가져다주곤 했다. 아침에 집을 나오면서 점심을 싸오기도 했지만, 점심을 건너뛰는 날이 점점 늘어갔다. 점심밥을 망태에 넣고 돌너덜길을 타는 게 점점 힘들어져갔다. 지팡이에 의지해 가까스로 논에 올랐다. 장맛비에 논두렁 물 차오르듯 오르막길에서는 숨이 빠르게 차올랐다.
*
내시 할배 묘는 - 족보에는 "경기 양주 덕정리 왕릉골 백호등좌"이지만, 경남 거창군 신원면 소야 짚퐁골(기퐁골-깊은 골) 가는 길 탑골 아래 기먹지 선산에 있다.
들판은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가을햇살에 하루가 다르게 여물어가는 벼 이삭은 점점 더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산에서 곧장 내려온 찬물이 곧바로 들어가는 물꼬 입구와 높은 돌담 두렁 아래, 아침에 잠깐 햇볕이 내리는 논 구석의 벼 이삭은 빳빳하게 목을 치켜세워 실바람에도 한들거렸다. 때 지나 늦게 모를 낸 논에서도 벼 이삭도 고개를 숙이지 못했다. 잘 여물어 속이 꽉 찬 벼 이삭과 달리 속 빈 쭉정이는 가을 햇볕이 따가울수록 목을 더욱 빳빳이 세우고 새하얗게 말라갔다.
돌을 볼가 내고 흙을 넣은 평평한, 마른 바랭이 풀 속에 누운 곡괭이 자루가 썩고 있었다. 노인의 곡괭이가 파다만 돌무덤 왼쪽에 억새꽃이 바람을 타고 춤췄다. 안산 넘어 골 깊은 짚퐁골 샘에 쌍무지개가 섰다.
바람이 불 때마다 당산 껍질이 붉은 소나무가 쉬~ 쉬~, 늘 푸른 소나무 가지에 바람 타는 소리가 개울을 건너와 거침없이 문풍지 사이를 비집고 방에 들었다. 여름 소낙비 내린 뒤의 호랑이 장가가는 날 같이 갑자기 하늘이 컴컴해지고 비가 한 장대 쏟더니 곧장 다시 햇살이 마당에 내렸다. 지붕 낙숫물을 피해 추녀 아래 둘러서 있던 이웃이 일제히 목을 길게 빼 하늘을 바라봤다. 아이가 물을 뜬 밥그릇을 두 손으로 들고 방문을 열며 “할배” 하고 불렀다.
노인은 어깨들 들썩이며 두어 번 깊은숨을 내쉬었다. 큰 파도가 밀려간 뒤의 잔물결이 스르르 밀려들고 쓸려나가기를 몇 번… 다시 앙상한 어깨를 한 번 들썩이자 당산 소나무 삭정이가 툭 하니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노인은 꼼짝도 하지 않고 짚퐁골 꿈길을 떠났다.♤
희뜬 두 눈, 쩍벌어진 콧구멍이 벌렁벌렁, 숨소리가 헉헉거렸다. 헤벌어진 입에서 흰 거품을 품었다. 맹돌이가 형편없는, 썩돌 열 개를 쌓은 듯한 돌탑 두상의 돌열이집 소가 좌우로 도리도리를 쳤다. 앞서가는 둘소 등에 올라타려 벼르다… 뚜벅, 땅을 헛짚은 두 앞다리가 동시에 후들거렸다. 엉덩이를 앞뒤로 씰룩씰룩 꾸벅꾸벅 흔드는 사이사이에 온몸을 두어 차례 부르르 떨었다. 둘소 줄리와의 생산성 없는 흥분이 사그라들자, 새끼를 콩밭에 밀어 넣고 악어의 눈물로 기운을 다 써버린 김골태 같이 골때리게 울었다.
외양간을 나와 산길에 들어선 고삐 풀린 돌열이집 수소가 아침부터 주책없이 막 용을 쓴 뒤끝이었다.
“문디 가시나야, 상내 낸 소를 집 밖에 내돌려서 우짜자는 말이고!”
“덜떨어진 놈. 니가 동네 씨받이 황소가? 우리 집 소가 니 보고 울더나?”
돌열이집 소가 살찐 송아지 엉덩이에 올라타듯, 박신자가 나를 거침없이 치받았다. 나는 곁눈질로 신자의 기색을 살피며
“봐라! 저어기 꼬리 밑, 샅이 부었다 아이가? 말만 한 년이 자기 집 소가 새끼 가지러 발정 난 것도 몰라보고. 니도 불기가?”
“니가 나를 두울소라 캤나?”
“그것, 새애빨간 마알이다.”
“……”
두 다리 틈새애 낀 새빨간 맛(?), 이라는 말에 나는 말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다시 신자가 동네에 내려오는 그 모든 멍에를 홀라당 벗어버리고 막무가내로 내게 들이댔다. 틈만나면 앞서 가는 수소 등에 올라타려 달려드는 코뚜레를 풀어버린 수송아지같이 더 깊이, 더더더… 점점 세게 시루었다. 아니, 머리에 난 뿔을 앞세워 들이미는 황소의 발길을 가로막은 암소 외양간 빗장 뽑듯 했다.
“씨·팔·놈! 확, 뽑아 뿌릴 기다. 기가?”
신자의 오른손에 들려있던 소 등짝을 때리던 싸리나무 회초리가 나의 허리 아래를 겨냥하며 고추밭 고춧대 말뚝 뽑는 시늉을 했다. 순간 차돌같이 단단하던 홍두깨가 사정없이 허물어지는 것 같았다. 마치 썩푸석푸석한 돌로 쌓은 듯 십층 돌탑이 흐물흐물 주저앉듯 했다. 나는 그만 신자의 빠루질에 고자가 된 듯이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어기정어거정 논과 논 사이에 난 논두렁 샛길을 탔다. 앞서가는 소가 길 위의 논두렁 콩잎을 보고 잽싸게 혀를 내둘렀지만, 콩잎을 핥지 못한 빈 혀를 날름 거둬들이며 침을 흘렸다.
그날 삽짝 골목을 빠져나와 짚퐁골 산으로 가는 뒷동산 돌너덜길을 들어서자마자 앞서가는 한 살 많은 신자에게 괜한 타박을 깍은 되로 주고 고봉 말로 받았다. 소 넓적다리 안팎에 누룽지같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마른 소똥, 오줌을 밤새도록 지리어 꼬리가 볼썽사나운 앞에 가는 소를 귀찮게 하는 수송아지를 보고 한마디 던졌는데 이는 곧 고추며 불알을 쪼는 장도리질로 되돌아왔다. 장도리 머리로 두들겨 패 겨우 밀어 넣은 말뚝을 이번에는 노루발로 뽑는, 넣고 빼다를 마당 샘의 물 펌프질 하듯 신나게 거듭했다. 신자가 마중물을 붓고 펌프질을 한 끝에 나는 그만 어금니를 꽉 다물고 꾹꾹 참아왔던 물을 세차게 내뿜고 말았다.
“기다! 지금 붙어볼래?”
그동안 꾹꾹 눌러 참아왔던 말을 일시에 뿜었다. 나는 기분이 좋았다. 몸도 훨훨 날 듯 가벼워졌다. 그러나 곧, 나의 머리가 멍멍해졌다. 신자가 그냥 넘어가지 않고 되받았다.
“… 냄새도 못 맞는 주제에 수놈이라고. 근데 코가 벌써 썩었나? 헛심 쓰지 마라. 그나저나 오늘 니 고생 꽃이 피었다.
혼자 산에 버부리로 있시면 생발광이 날기다. 소 새끼들과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하고 재미지게 놀다 보면 해가 빨리 갈 것 갔나?”
신자가 빙긋이 웃으며 또다시 물질했다. 소나 사람이나 수놈은 냄새로 알아채는 데 나를 눈치코치도 없는 수놈이라 약을 올렸다. 나는 성이 빳빳하게 나 건들면 댕강 끊어질 것 같았지만,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대꾸를 멈췄다. 신자가 눈치 못 채게 코로 바람을 들이켜 봤지만, 솔잎 냄새뿐 밤꽃 같은 알싸한 냄새는 나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불뚝 일어선 말뚝을 숨기며 참았다. 신자의 잇따른 물질에도 나는 물을 더는 뿜지 않았다.
사실, 방금 씨를 푸고 암소 등에서 내려온 황소같이 풀이 죽었다. 말이 앞으로 성큼성큼 더 뛰어나가다 끝내 머리끄덩이를 서로 붙잡고 엎치락뒤치락, 둘이 함께 뒹구는 싸움을 하고 말 것 같았다. 혹여나 논에 물꼬를 손질하다 이를 먼발치서 지켜본 창중이 형 입에서 시발한 소문이 나경언이 입으로 건너뛰어, 둘이 한패가 돼 나뒹굴었다는 이야기가 동네에 펴지기라도 하면 마른하늘서 천둥 치고 벼락이 떨어질 게 뻔했다.
“얼레리 꼴레리, 누구 누구는 개나 소나 돼지같이….”
다시 황고안 신도만의 입을 거쳐 재록이 입에 들어갔다 다시 나온 돌고 도는 소문이 골목길에 울려 퍼지는, 아이들 쌈질이 허구한 날 엉덩이 마주 붙들고 둘이 하나 돼 길에서 낑낑거리는 동네 똥개 연애질로 둔갑해 나돌면 남세스러워 낯 들고 집 밖에 나갈 수 없을 것 같았다.
“기가?”
“기다!”
선전포고와 동시에 주먹이 나가고 머리끄덩일 서로 잡아당기며 뒹구는 하나가 되어야 했지만, 다행히 배 뚫고 들어가지 못하는 욕만 한여름 밤 담벼락 밑 더위를 시키는 벌통같이 왕왕거렸다.
그러나 나는 그 날, 한 치 앞도 알 수 없었다. 다만 저녁때면, 둥지로 돌아가는 새들같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