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운 영
5 일장.
울산의 태화동 5일장이다,장꾼들 사이를 지나가야 동생네 집이 나오는데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른다,죄짓다 말고 들킨 것처럼 돌아봤다,이 낯선 장터에서 누가 나를 부른다
말인가, 사람들이 박작거리는 틈서리로 작은 리어커에다 앞치마를 잔뜩 실은 장사꾼이
나를 보며 손사래 하고 있다, 서울사는 문학회 동인ㅅ시인이었다, 앞치마를 수북히 안고
이산가족 상봉한 것 처럼 우린 얼싸안았다,
우리 집 근처에도 5일장이 선다, 걸어서 10분거리니 잔걸음치듯 재미 삼아 즐긴다,
장날만 되면 지하철이고 버스고 간에 참으로 시끌벅적하다, 하기야 나도 덩달아 무슨
대단한 일이나 있는 것처럼 그 날의 약속은 대부분 거절한다, 아니면 장터에서 만나자고
하던가, 나에게 특별한 편한 장소이기도 하다,
장날이라 차안은 연산홍 꽃밭이다, 초봄에 꽃피울 연산홍을 5일장에서 산모양이다, 꽃망울
맺힌 여러 포기를 사들고 연신 싱글벙글하는 할머니들이 연산홍처럼 예쁘다, 어른을 보고
예쁘니 어쩌니 그런 말은 당치도 않지만 큼지막한 꽃 화분을 하나씩 앞에 놓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어린아이 같아서 하는 말이다,자식들에게 용돈타서 살 나이로 보였지만 어떠랴,
큰 돈 안들이고 꽃같은 마음을 나누는 것이야말로 금전으로 계산이 안되는 즐거움이다.
장 주경한것을 굴비 엮듯 역느라고 주위도 안중에 없이 수다스럽다,함께온 일행들에게 모두
선심으로 봄꽃 화분을 하나씩 안겨 주었노라면서 돈을 쓰고도 그 자신이 더 흐뭇해한다,
이런걸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님도 보고 뽕도 따고 도랑 치고 가제 잡고 일석삼조라고 한다,
받는 기쁨보다 주는 즐거움을 아는것이다, 봄나들이라 두런 수근 옆에서 들어도 절로 미소가
아지랑이 처럼 피어오른다, 그네들이 즐거워하니 지하철 안까지 봄볕이 노근하게 스며들어
욕심 없는 정겨움이 절로핀다,
장날은 생각만 해도 풍성하다, 요사이는 시골뿐만 아니라 도심의 한복판에서도 5일장서는
곳이 많다, 시골의 풍성한 장터 기분은 만끽할 수는 없지만 아쉬운 대로 예전의 시골을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눈감고 "아웅" 하는식의 장사꾼들이 도를 넘는 착각을 하지만 그것은
살림꾼이 아닌 나도 금방 알아차린다, 하지만 장날은 어쩐지 후한 인심 있을 것 같은 느낌
그 자체가 즐겁다,
옛날의 장날은 사고 싶은 물건을 유일하게 구할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엄마 따라 장 구경을 가는 날이면 그전날로부터 잠을 설치고 만다, 참으로 별난 외출이고
기대 부푼 동행이기도 했다,장에 따라 나서는 것은 뭔가를 사기 위함은 결코 아니었다,그냥
무작정 기대에 부풀기만 했었다, 별이 별것이 다 내 것 인양 뭐든지 귀하던 시절이라 눈요
기하는 것만으로도 5일장은 참으로 벅적대던 구경거리였다,
짚신도 짝이 있고 썩은 갈치라도 주인이 있다, 미로의 통로처럼 산더미를 이룬 구제품
옷가게를 지나다가 싸구려 바바리 하나 걸처 입어 본다, 습관처럼 옷이 다 마음에든 것은
아니었지만 호주머니에 손을 쓰윽 넣으니 뭔가 잡힌다, 꼬깃한 돈 만원이다,
머리가 빠르게 회전한다, 오 천으로 옷값지불하고 나머지 거슬러 받아 챙기면,,, 장날의 큰
횡재수를 놓칠세라, 옷도사고 돈 오 천 원도 생기고 장날의 헌옷도 주인 만나기 나름이다,
사고 보니 옷도 마음에 든다,
대소쿠리에 또아리를 튼 퍼진 국수를 소고기국에 말아먹던 어린시절을 생각하면서 요즈음
도 잘 가는곳이 장터국밥 집이다,지금이야 금방 삶아 쫄깃하게 잘 삶은 국수를 장어국이나
선지국에 말아먹어 보지만 그 예날의 맛하고는 비교가 안 된다, 하기야 이 세상에서 가장
맛난 음식은 엄마가 해주는 것이라고 하더라만 한창 자랄 때야 입이달아 뭐든지 맛있게 잘
먹던 시절의 맛은 누구나 평생 잊어지지 않는 맛이다, 입안에 또 군침이 돈다. 장터에서
막걸리 한 사발 먹는 맛도 수월찮다,저녁노을이 푸근하게 다가 올 즈음 장사꾼 들의 떨이로
시끌벅적하다,아둥아둥 푸성귀 한 무더기에 애걸하는 노인네의 순수한 인심도 야박하고
믿음이 없는 약삭 빠른 세상도 깐깐한 인심마저 파장의 흥청거림에 실려 취기 오른 뜨뜻한
가슴처럼 정나누고 사는 세상인듯 푸근하다,
고무물통을 뒤쳐나온 힘 좋은 가물치가 오가는 남정네들의 정력을 부채질 하건만 그 앞에서
입에 거품을 문 만병통치 약장수는 효과 100%를 입으로 증명한다고 유명한 목사님인듯
설교를 해대고 박물장수의 좌판에서 요즈음 쉽게 구경하기 힘든 물건들이 즐비한 것을 보
면서 지나간 세월이 도래한 것처럼 편하고 좋다, 미래의 걱정도 과거의 추억도 잠시 머무는
마음의 정거장에 서성거려보는 이 묘한 맛은 따끈따끈한 국화빵 맛이다,
비 오는 날은 장사꾼들은 없고 주막에 객꾼들만 욱적거리면서 빈자리가 없다,
예전의 향수를 느껴 보자는 어른들의 나들이도 한갓지다,하지만 덜마른 장작에 불이 붙으면
더 오래타는 것처럼 인생선배들이 보고 느낀 세상을 맞은편에 앉아서 손 안대고 코푸는
담습 그 또한 장날의 참 재미다,
끼리끼리 부대끼고 스쳐가나 가다 입맛 다실 것이 있으면 편하게 요기하는 재미도
만만찮다,층층의 인간 냄새를 맡는것도 좋고 땅바닥도 좋고 널빤지 위에 만물장이 펼쳐지는
인간미를 맛본다,
장꾼들의 목쉰 호객 행위도 자그락그리는 싸움 소리도 여기서는 다 정겹다,촌부의 손길로
다듬어진 반지르한 채소들,손수 길럿다고 자랑하며 비싸게 받는 노인네들의 빤한 마음을
알면서도 안쓰러워 팔아 주는 인정도 세상 따라 순수하지 못한 안타까움이 인다, 미쳐 익지
도 않은 석류를 수북히 쌓아놓고 한 푼이라도 돈 만들라고 나온 중늙은이의 세상 욕심도
안타깝다,계절을 팔러 온건지 돈에 욕심을 낸 건지 모르지만 그저 풍성함으로
다가오는것만 즐긴다,
장터에서 막걸리 한 사발 앞에 놓고 머리 희끗한 노익장이 혼자 앉았어도 결코 외롭게
보이지 않는 유일한 곳 이기도 하다, 질펀한 마음들이 장바닥에 연기처럼 피어오르는데
어찌 5일 장을 모른 척 그냥 지나치겠는가, 왠지 인정이 넘쳐 보이면서 옛 추억들을 기억해
낼 수 있는 그런 장터에서 푹 젖어 보고 싶은 것이 어찌 나뿐이랴,
서울 동인은 옆지기 장꾼들에게 의기양양하게 자랑하는 폼이 자기 자랑을 더 하고 싶은
눈치다,"앞치마 장수를 해도 시인이라니,,," 서울 동인은 싱글벙글이다, 2년치 밀린
동인회비를 그 자리에서 침을 묻혀가며 쓱쓱 세어준다, 천 원 짜리 앞치마를 얼마나 팔아야
기십만원되겠냐만 얼떨결에 밀린 회비에다 앞치마까지 얻어서 등 떠밀려 돌아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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