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발트블루
양상태
녹색을 숨기고 있는 짙은 파란색. 목포항에서 제주도를 가는 여객선을 타고 가다 보면, 추자도 근처에 다다라 볼 수 있는 바다 내음이면서 색깔이다.
에메랄드빛도 아니고 암청색도 아닌 통영에 가면 볼 수 있는, 색상의 깊이가 풍부한 색깔이다.
통영이라는 곳은 ‘동양의 나폴리’라 불리리만큼 미려한 항구도시이다. 작곡가 윤이상, 시인 유치환, 김춘수. 소설가 박경리, 김용익 등 수많은 예술인을 배출한 문화 예술의 도시다.
숙소 14층에서 내려다보이는 항구는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어머니의 자궁임이 틀림이 없다. 옴폭 이 안아주는 항구와 앞으로 전개되는 공주섬, 한산도를 비롯한 수많은 섬은 사물을 헤아릴 줄 아는 혜안과 사람의 성품을 예술로 승화시키도록 자극을 주었겠다고 생각해 본다.
그곳에는 한국 화가 전혁림이 있다. 눈만 뜨면 그림을 그리는 바지런함이 남달랐다 한다. 머릿속은 새로운 생각과 시도로 아이디어 발상이 넘쳤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의 작품에는 무엇인가 시작이 될 듯한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 정적이기도 하며 사물을 입체적으로 바라보고 평면으로 옮기는 입체파다.
바다, 통영, 청색은 그의 생명과도 같았을 것이다.
미술관 1층만을 감상하고도 추상이라는 개념이 머릿속에 스며들어 3층을 나올 때는 이미 젖어 가고 있었다.
청색은 그를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산화된 녹색을 머금은 코발트블루와 풍부한 색감은 그를 더욱 돋보이게 해준다. 그를 ‘바다의 화가’로 부르는 이유는 비록 항구와 바다뿐이 아니었으리라.
한국미술사에서 비구상 회화의 시원이라 할 만큼 구상과 비구상을 넘나드는 조형 의식을 통하여 작가만의 독창적인 영역을 개척하였음은 물론이다.
또한 원형의 구도를 탈피하고 사각 함지박의‘ 만다라’는 한국 전통 문양인 단청을 기초로 한 나무 함지박 유화로 사각형 중심에 원으로 우주 마음의 평화를 표현하였겠다고 생각해 본다. 원을 네모로 가둔, 즉 사각형 중심에 원으로 우주를 싸고도는 온갖 덕을 표현한 작품은 수행자만큼이나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고 쏟았으리라, 현재 미술관은 아들인 전영근 화백이 유지 관리하고 있다.
내가 글을 쓰는 일은 구멍 난 양말을 깁는 것처럼 한 땀 한 땀 인생의 구멍 난 공간을 채워 나가는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언어의 숲에서 필요한 목재를 찾아, 내 것으로 만들어 가는 제재製材의 과정이리라. 더디게 가더라도 가끔은, 보이는 것도 보는 시야를 다른 방향에서 관조하는 연습의 과정이라 하겠다.
다시 통영을 찾은 것은 지난 4월에 와서 미처 보지 못한 작가들의 흔적을 따라 잠시라도 같이 걸어 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오죽하면 시인 백석은 ‘통영’이라는 제목으로 세 편의 시를 썼겠는가?
한 번쯤은 어느 색깔에 매료魅了되어 봄 직도 하다.
평소 좋아하던 에메랄드보다 마음속을 새로이 휘저어 놓는 색깔. 지금이라도 만날 수 있어 다행이고 다시금 나를 깨워준 코발트블루.
전혁림과 통영.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첫댓글 '코발트블루'참 매력적인 색상입니다.
제주도 밤바다에서 보았던 그 색의 마성을 다시 한 번 기억하게 하는 시간여행이 되었습니다.
뚱글마치님의 글의 영역이 확장되어 만들어지는 작품마다 무한한 예술적 혼이 깃드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