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보물은 무엇인가? “마이 캡틴 김대출”(송창수 감독, 12세)
1883년에 출간된 후에(원래는 1881년 10월부터 ‘영 포크스’지에 연재했던 소설이다) 오늘날까지 사랑을 받고 있는 ‘보물섬’은 영국 작가 스티븐슨의 소설이다. 주인공 짐 호킨스가 해적이 감춰둔 보물의 소재를 알려주는 지도를 손에 넣은 후에 보물섬을 찾으러 떠나고, 해적들 역시 보물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서로 충돌하다가 마침내 짐 호킨스가 보물을 발견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인간심리에 대한 뛰어난 묘사는 소설의 재미를 한층 더해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의 진면목을 파악할 수 있게 해주어 고전으로 꼽혀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어려서 읽을 때는 그저 재미로만 읽었고 또 만화도 그렇게 보았고, 영화도 그저 흥미롭게 보기만 했다. 그런데 성인이 되고 아이들과 함께 비디오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영화를 보면서 불현듯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진짜 보물은 무엇일까, 또 어디서 그것을 찾을 수 있을까? 다시 말해서 오늘날 우리들의 보물섬은 어디인지를 물어본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숨겨진 보물에 대한 비유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보물을 발견하고 또 그것의 가치를 알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팔아서라도 그 보물을 얻고자 한다는 것인데, 그 이유는 보물이 더 큰 가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의 비유 속에서 보물은 분명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이다. 그렇다면 이 보물은 어디서 찾을 수 있고, 또 진정 나의 모든 것을 팔아서라도 이 보물을 발견하려고 할 것인가? 어렵지 않은 질문이었지만, 그렇다고 쉽게 대답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직도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보물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순교자란 바로 복음을 보물로 삼고 이것을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내놓은 사람을 일컫는 것이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한층 더 부끄러워지게 된다.
그런데 오래 전에 가졌던 의문들에 대해 나름대로 명쾌한 대답을 발견할 기회가 생겼다. 가족의 달을 겨냥해서 만든 영화 ‘나의 캡틴 김대출’을 본 것이다. 이 영화는 사실 불교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반추되어야 그 깊은 맛을 느낄 수 있지만, 영화적인 메시지는 결코 불교적인 것만은 아니다. 간단히 말해서 이 영화는 한편으로는 우리들의 왜곡된 보물관을 비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진정한 보물의 의미를 묻게 한다. 그리고 오늘의 현실에서 수긍할 수 있는 대답을 나름대로 제시하고 있다.
전문 도굴꾼의 관심은 오직 국보급 보물에 있다. 그런데 갑자기 도굴꾼 앞에는 꺼져가는 생명을 짊어지고 사는 어린아이가 나타나게 된다. 보물과 생명의 선택의 기로에 서서 고민하는 도굴꾼 대출(정재영)에게서 우리는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 곧 진정한 보물이 무엇인지를 묻는 감독의 모습을 엿보게 된다. 부패한 노형사나 여타의 도굴꾼들에게는 도굴된 것이 진짜 보물로 보이고, 그래서 오히려 하찮게 보일 수도 있는 병오의 꺼져가는 생명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겠지만, 대출에게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은 병오의 꺼져가는 생명이었다. 보물은 여전히 보물인 것이고, 또 보물이 갑자기 보물로 보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대출은 갈등의 순간에 병오의 생명을 우선적으로 생각한 것이다. 보물을 도굴할 때 사용하던 기술로 병오가 매몰되어 있는 굴로 진입해 들어가는 대출의 모습에서 진짜 보물은 국보가 아니라 생명임을 역설하는 감독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많은 부분에서 감동이 매설된 영화지만, 감동의 이면에는 비판적인 현실의 모습을 담고 있기도 하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확인되는 생명 경시 풍조가 그것이다. 얼마 되지 않는 돈을 위해 살인을 서슴지 않는가 하면 심지어 부모마저도 살인의 대상이 되는 상황이다. 목적은 오직 무절제한 카드 사용으로 얻은 빚을 갚거나 유흥비 마련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자살률은 점점 높아지고 있고 낙태율은 정상의 위치를 놓치지 않고 있다. 충분히 납득할 만한 여러 이유들이 없지는 않으나 젊은 세대는 출산을 꺼리고 있는 실정이다. 출산 저하를 생명 경시로 볼 수는 없겠지만 생명에 대한 경외와 기대감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경우임에는 분명하다. 이것은 일상과 생명의 관계 속에서 생명보다 일상을 더 소중히 생각하는 입장에서 비롯된 결과다.
사실 생명과 일상의 관계는 참 흥미롭다. 일상이란 결국 생명이 있음으로 인해 일어나는 보편적인 일이고 또 생명이 있어야만 가능해진다. 생명은 일상에 책임감을 부여해주고, 열정을 불러일으키며 또한 헌신의 기회로 이끌어준다. 생명이 없는 일상이란 도대체 가능하지 않다. 그런데 일상이 방해된다고 여겨지는 경우에 희생의 제물로 등장하는 것은 생명이다. 예컨대, 자살은 일상의 미래가 어둡다고 생각되거나 더 이상의 평안한 일상이 가능해지지 않을 것 같다는 염려와 두려움에 스스로 생명을 끊는 행위다. 이에 반해 살인은 자신의 일상이 방해되고 있다고 판단되거나 혹은 일상이 결코 방해되지 않고 평안하게 진행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타인의 생명을 끊어놓는 행위다. 소극적으로는 자신의 일상이 위협받고 있다고 여길 때 방어적인 차원에서 살인하게 되지만, 적극적으로는 자신의 평안한 일상을 유지하는 데에 방해된다고 생각할 경우에 타인의 생명을 앗아간다.
일상과 생명의 이런 관계는 성경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가인은 자신의 일상에서 자연스러워야 할 하나님과의 관계가 꼬이게 되자 분노하게 된다. 하나님은 그의 일상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해주셨지만, 가인은 오직 자신의 일상이 방해받았다고 생각하고 분노한다. 황당하게도 그는 원인을 동생에게 전가시키면서 동생을 살해하게 된다. 다윗은 밧새바를 범한 자신의 죄가 폭로되어 왕으로서의 일상이 방해될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왕의 신분으로서 마땅히 지켜져야 할 일상이 방해받지 않기 위해 그녀의 남편 우리아를 제거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일상과 생명의 왜곡된 관계를 보여주는 영화는 “달콤, 살벌한 연인”이다. 말 그대로 달콤하지만 살벌한 캐릭터를 갖고 등장하는 미나(최강희)는 4명의 살인자요 시체를 암매장한 범죄자다. 첫 번째 살인은 남편에 대한 살인으로 폭력에 대한 정당방위로 이뤄졌고, 두 번째 살인은 수억대의 유산을 차지하기 위해 노인과 결혼한 후 심장마비로 죽은 것처럼 가장했다. 세 번째 살인은 과거 애인으로 자신의 새로운 생활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살해하고 암매장 한다. 그리고 네 번째 살인은 함께 동거하고 있는 여자의 애인으로 폭력의 위협에 직면해서 살해하고 암매장 한다. 이 모든 살인행각에 대해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을 때 그녀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에서 등장하는 라스꼴리니코프의 논리에 근거해서 설명한다. 사회적으로 불필요한 존재는 제거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더 이상 수용될 수 없는 어설픈 논리지만, 마침내 붙잡혀 형을 살게 된 라스꼴리니코프와는 달리 그녀는 돈을 통해서 안락한 도피행각을 가능하게 해준다. 라스꼴리니코프에게는 사랑하는 여인을 통해 구원의 가능성이 주어지지만, 그녀에게는 결코 주어지지 않는다.
이 영화가 필자에게 다소 충격적으로 여겨진 이유는 죽음과 일상의 관계가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엮어져있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살인은 미나에게 아무런 충격을 주지 못한다. 그녀에게는 평온한 일상이 더 중요할 뿐이다. 살인을 저지르지만 그녀의 일상은 그것으로 인해 결코 방해받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일상을 방해하는 것들을 계속해서 제거한다. 그녀의 이런 모습으로 인해 영화관은 관람객들의 연이은 웃음으로 가득해진다. 마땅히 긴장되어야 할 순간에 전혀 긴장되지 않고 오히려 코믹하게 연출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영화로서는 긴장과 코믹이 얽혀 있는 스토리와 구성면에서 잘되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의 잘못된 현실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찝찝한 느낌을 감출 수 없다. 생명보다 일상을 더 소중히 생각하는 잘못된 영성에 소름이 돋을 정도다.
‘나의 캡틴 김대출’과 ‘달콤, 살벌한 연인’ 이 두 영화는 비록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생명과 관련해서 매우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자는 일상 속에서 진짜 보물(가족의 의미, 생명 등)을 발견한다는 내용이지만, 후자는 생명보다 일상을 더 중시하는 현실의 단면을 보여준다. 친구들과 함께 강도행각을 벌이다 엄마를 살해한 후에 시신 옆에서 13시간 동안 머무르면서 태연스럽게 라면을 끓여 먹었다는 패륜아의 이야기를 들은 터라 마치 영화 속에 들어앉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일상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까닭은 보물은 대체로 일상 속에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엇인가? ‘마이 캡틴 김대출’은 우리의 일상에서 진정한 보물은 무엇인지를 묻게 한다. 그러나 일상에 대한 우상숭배에 빠지면 일상 속에서 결코 보물을 발견하지 못한다. 그러나 송창수 감독은 생명을 보물보다 더 귀하게 생각하는 도굴꾼의 착한 심성을 매개로 해서 진짜 보물은 바로 생명(혹은 가족)임을 역설한다.
생명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확증되었다. 생명경시는 반 복음적인 행위와 태도다. 사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그 가치가 지나치게 그리고 부당하게 평가절하 되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 담긴 것이어서 그 무엇보다 귀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가치는 혹은 불신으로 인해 무시되고, 혹은 세상에 현혹된 신자들로 인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관련해서 진정한 보물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면 기독교 신앙은 더 이상 존속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영화를 보면서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 진정한 보물은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보는 것은 유익할 것이다.
내용을 간단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어릴 적 도굴꾼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보물을 도굴하던 김대출(정재영)은 보물을 판돈이 엄마의 치료비로 쓰일 것이라는 말에 이끌려 아버지와 함께 도굴에 가담하지만, 결국 아버지를 고발한다. 성인이 된 대출은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전문도굴꾼으로 이름을 날린다. 형사의 신분으로 법을 어기는 노형사(이기용)에 의해 사주된 대출은 국보급 보물을 도굴한다. 일단 여론이 조용해질 때까지 보물을 숨겨놓는데, 뜻하지 않게 지민(남지현)에게 들키고 만다. 그러나 대출은 아무 것도 모르는 지민에게 자신이 ‘문화재 관리국 특수 발굴 수사대’의 요원이라고 소개하고 지민에게 보물을 지키는 일을 특수 임무를 맡긴다. 지민은 특수대의 요원으로 임명되고 임명장과 함께 활동비 만원을 받는 해프닝이 벌어진다. 그 후 2개월이 지나 보물을 찾으러 온 대출은 숨겨진 보물이 사라졌음을 알게 된다. 지민이가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서 학교 사물함에 숨겨놓은 것이다. 외할아버지와 ‘여보야’(개)와 함께 살고 있는 지민을 찾아낸 대출은 지민이의 말을 듣고 일단 안심을 하지만 사물함에 있던 보물은 이미 사라져 버렸다. 대출과 지민은 스스로를 뱀파이어로 자처하며 밤마다 학교 사물함을 뒤지는 병오(김수호)가 문제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생각한다. 병오는 공중곡예사였던 아버지가 사고로 명을 달리한 이후로 엄마와 함께 서커스단을 전전하며 살아간다. 병오를 구슬려서 보물의 소재를 알아내려는 대출의 애절한 노력이 시작된다. 필요한 정보를 알아내는 일에 있어서 대출은 아이들을 결코 협박하거나 윽박지르지 않는다. 오히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는 전략으로 그들로부터 필요한 정보를 빼내려 한다. 거짓말이 가장 큰 죄라고 말하고 또 자수하면 특별한 상이 주어진다고 해도 병오는 입을 열지 않는다. 그러는 가운데 병오가 쓰러지면서 급히 병원에 가는데, 이 사고로 대출은 병오가 혈액암에 걸린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병오 엄마로부터 자신이 찾던 보물을 건네받는다. 그동안 자신이 부정해왔던 아버지 역할을 병오와의 관계 속에서 새삼 느끼면서 대출은 보물을 넘겨주고 받는 돈을 병오의 치료비로 지불할 것을 결심한다. 그러나 자신이 의도된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고 오히려 큰 위험에 처하게 된다. 모든 어려움을 극복한 대출은 병오의 치료를 위해 병오 엄마와 함께 막 서울로 가려고 하는 데 병오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듣는다. 병오는 지민과 함께 처음에 보물을 숨겨 두었던 장소로 간 것이다. 지민이가 땔감으로 쓸 나뭇가지를 줍기 위해 밖으로 나간 사이에 폭우로 인해 흙더미가 무너지면서 굴의 입구가 막히게 된다. 대출과 병오 엄마가 도착해서 구조대의 힘을 빌어보지만 소용이 없다. 이 때 대출은 마지막 힘을 다해 도굴꾼으로서의 실력을 발휘하며 마침내 굴속으로의 진입에 성공한다. 그러나 그가 진입하자마자 입구는 또다시 매몰되면서 결국 병오는 그의 품에 안겨 숨을 거두게 된다. |
출처: 기초신학연구소 원문보기 글쓴이: 최성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