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개요
1) 이를 갊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누스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마음 안에 머물러 있다.
2) 슬피 울며 이를 간다고 하는 것은 그것이 잘못된 것을 알고 그것으로부터 돌이킴이다.
3) 내가 제사장이 되어 드리고 내가 왕으로서 받게 된다는 것은 온전한 아들이 된 것이다.
4) 이를 간다는 것은 마음 밭을 해체하여 옥토 밭으로 만들어 말씀의 씨를 뿌리기 위함이다.
나. 본론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마 22:13)”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 24:51).”
1) 이를 갊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누스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마음 안에 머물러 있다.
바깥 어두움으로 쫓겨나서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아직은 누스의 세계를 경험하지 못하고 카르디아(몸과 마음) 안에 있는 것이다. 자신들은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에게 선택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다니고 있기에 자만하고 자랑스러웠을 것이다.
2) 슬피 울며 이를 간다고 하는 것은 그것이 잘못된 것을 알고 그것으로부터 돌이킴이다.
슬피 울며 이를 간다고 하는 것은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그것으로부터 돌이킨다는 것은 카르디아를 떠나 다시 누스 안으로 돌아가고자 함이다. 누스 안에 들어갔던 옛 경험을 회복하는 것이다. 회개함(메타노에오)이라 번역하고 있는데 회개가 아니라 마음 밭을 깊이 들여다보고 그 실상을 깨닫는 것이 ‘메타노에오’다. ‘메타노에오’가 일어나면 마음 밭을 해체하여 옥토 밭으로 개간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를 갈아야 이 일이 일어난다.
3) 내가 제사장이 되어서 드리고 내가 왕으로서 받게 된다는 것은 온전한 아들이 된 것이다.
그래야 옥토 밭인 누스의 마음 밭 안으로 들어가서 개간하여 말씀의 씨를 뿌리고 열매를 거둘 수 있게 된다. 여기서 나온 온전한 열매는 몸 된 성전 안에 계시는 하나님께 드리게 된다. 내가 제사장이 되어 드리고 내가 왕으로서 받게 되는 것이 온전한 아들 됨이다.
내가 드리고 내가 받는 것이 새 언약에서의 하늘의 대제사장이다. 새 언약에서의 십일조와 헌물은 내가 드리고 반드시 내가 받는다. 내가 대제사장이며 내가 하나님과 하나 된 아들로서 왕이 되는 것이다.
4) ‘이’를 간다는 것은 마음 밭을 해체하여 옥토 밭으로 만들어 말씀의 씨를 뿌리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이’를 간다는 내용은 마음 밭을 해체하여 옥토 밭으로 만들어 말씀의 씨를 뿌리기를 위한 비유의 말씀이다. 온전한 열매(아들)가 나오기 위함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아포 카타볼레스 코스무’의 일을 실천함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인 ‘에르가’다. 골방 안으로 이끌림 받기를 원한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이를 간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큰 지혜가 임하였다는 내용이다. 이를 갈게 되면 자연스럽게 종교행위를 떠나게 된다.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알기 때문이다. 종교행위로 골방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 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생명의 빛과 그 안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