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그냥 삶을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노라가 부루퉁하게 말했다.
“삶을 이해할 필요가 없다. 그냥 살면 돼.”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중에서
3주 간의 여름방학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나에게도, 우리 반 아이들에게도. 방학식날 아이들에게 올해 지원할 수시 6 지망 학교 및 학과를 충분히 고민하고 초안을 구글 클래스룸으로 제출하라고 일렀다.
2학기가 시작되자마자 번호순대로 곧장 상담을 시작했다. 뚜렷하고 굵게 4B 연필로 가고자 선택한 길을 그어온 아이도 있었지만, 대부분 HB 연필로 희미하게 선을 그어왔다. 예외로 두 아이는 새하얀 종이를 도로 내게 건넸다. 한 명은 불안한 눈이었고, 다른 한 명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맞아. 하지만 넌 네가 뭘 좋아하는지 알아야 해. 비유의 검색창에 뭐라고 쳐야 할지 알아야 한다고.
그리고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확실해지기 전까지는 몇 가지 시도를 해봐야 해.”
“그럴 힘이 없어요. 전 못할 것 같아요.”
“살아봐야만 배울 수 있어.”
우리의 상담은 노라와 엘름 부인의 대화처럼 흘렀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이야기와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했고, 그럴 때마다 나는 "그건 해봐야 아는 거야."라는 말을 반복했다.
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가 있는 한편 다음 말을 이어가는 아이도 있다. "뭘 할지 선택하는 게 어려워요. 잘못 선택하면요?"
모두의 삶은 유한하고, 시간은 어느 누구에게도 예외 없이 흘러가기에 우리는 반드시 '선택'이란 걸 해야만 한다. 때로는 별일이 아닌 양 자기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조차 모르기도 하고 때로는 그 무게가 너무 커서 며칠을 고민한 뒤 결정을 했음에도 그 후로 몇 번이나 그 선택을 뒤돌아 보기도 한다. 책을 읽으며 노라가 자신을 이번 삶에 적합하지 않은 존재로 여길 때 깊은 곳에서부터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와 코 끝이 아렸다. 내가 둔 모든 수가 실수이자 내가 내린 모든 결정이 재앙처럼 느껴지던 무수했던 밤은 유난히 길고 시렸다. 내가 나를 망치면 어떻게 하나 싶어 두 눈에선 눈물이 뚝뚝 흘렀고, 그런 나를 이불속에서 꼭 안고 토닥거리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괜찮아. 그럴 일은 없어. 잘 될 거야. 반드시."
“넌 선택할 수 있지만 결과까지 선택할 수는 없다는 걸. 하지만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건 좋은 선택이었어. 단지 결과가 바람직하지 않았을 뿐이지.”
노라가 <후회의 책>을 펼쳐 떠난 평행 우주여행을 살펴보며 처음으로 놀랐던 장면은 더 이상 사는 것을 포기한 이 삶에서 복용했던 항우울제를 다른 삶에서도 마주했을 때였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든 간에 나쁜 일은 늘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게 되다니.
“살다 보면 더 쉬운 길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십상이죠.” 처음으로 무언가를 깨닫고 노라가 말했다. “하지만 아마 쉬운 길은 없을 거예요. 그냥 여러 길이 있을 뿐이죠. (중략) 사실 대부분의 삶에는 좋은 일과 나쁜 일이 공존하는데 말이에요.”
그 어떤 아픔도, 실패도, 시행착오도 없는 순결무구한 삶이 있다는 착각에 빠진 사람은 자기가 상상한 완벽한 인생을 잣대로 현실의 옅은 그림자조차 허용하지 못해 결국 무언가를 놓아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슬픔에 면역력이 있는 삶이 없음을, 슬픔이 행복의 일부일 수 있음을, 어둠과 빛은 공존한다는 점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면 살아가며 가끔씩 황폐해지기도 할 마음의 땅을 기꺼이 돌보고 이내 울창해진 마음 숲 속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자다 슬쩍 미소를 짓게 될 것이다. 반드시.
"아, 결말 너무 클리셰 아니야?"
"야! 클리셰가 괜히 클리셰인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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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TWJ32Qda7nM?si=weYQApm75aO6SF8y
첫댓글 “삶에는 어떤 패턴이 ……리듬이 있어요. 한 삶에만 갇혀 있는 동안에는 슬픔이나 비극 혹은 실패나 두려움이 그 삶을 산 결과라고 생각하기 쉽죠. 그런 것들은 단순히 삶의 부산물일 뿐인데 우리는 그게 특정한 방식으로 살았기 때문에 생겨났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슬픔이 없는 삶은 없다는 걸 이해하면 사는 게 훨씬 쉬워질 거예요. 슬픔은 본질적으로 행복의 일부라는 사실도요. 슬픔 없이 행복을 얻을 수는 없어요. 물론 사람마다 그 정도와 양이 다르긴 하겠죠. 하지만 영원히 순수한 행복에만 머물 수 있는 삶은 없어요. 그런 삶이 있다고 생각하면, 현재의 삶이 더 불행하게 느껴질 뿐이죠.”
이 문장이 떠오르네요. 순수한 행복에만 머물 수 있는 삶은 없다는 것을 인지하면 사실 슬픔은 슬프지만은 않을 지도 모르겠어요.
"압박감이 너무 컸어요.” “ 하지만 바로 그 압박감이 우릴 만드는 거야.”
저는 선택이나 중대한 일을 앞두고 있을 때면 위 구절처럼 압박감과 두려움을 설렘으로 바꿔 생각하려고 하는데요. 그렇게 하면 선택이나 스스로가 잘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근심으로부터 벗어나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미래가 설레어 오더라고요. 어쨋든! 이 책을 읽으며 많은 위안을 받았어요
결과까지 선택할 수 없다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받아들이기가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선택을 하며 예측한 결과대로 흘러가면 얼마나 좋을까..생각하다가도 모든 게 예측대로 흘러가고, 내 마음대로 되는 세상은 좀 재미없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인간… 욕심쟁이들…
'어제의 일들은 잊어, 누구나 조금씩은 틀려, 완벽한 사람은 없어'
입시 준비하며, 문득 불안할 때, 하루를 더욱 알차게 살지 못한 스스로가 미워질 때, 지나간 시간이 후회스러울 때, 찾아 듣던 노래가 있는데요. 그 노래가 떠오르는 글이었습니다.
저도 이 노래 좋아하는데 흑흑ㅜㅜ!!!!!
클리셰는 괜히 클리셰가 아니죠...(끄덕끄덕) 슬픔과 실패에 면역력을 가지고, 받아들일 수 있는 어른이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파이팅 💪💪
클리셰를 전 참 좋아해요❣️
그냥 살면 돼 라는 말이 위로가 되어요...🥹
그냥 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