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정의를 갈망하는
세상에서
이사야 5 : 1~7
지금
여기에서
정의란 "개인 간의 올바른 도리, 또는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공정한 도리"라는 뜻을 가집니다. 세상에서는 이러한 정의를 지키고 세우기 위해, 법을 재정하였습니다. 법은 사람들이 평등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반드시 지켜야 할 것들을 규칙으로 만든 것입니다. 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때 사회의 공정성은 떨어지고, 신뢰는 추락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독교 신앙의 근간이 되는 율법을 제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통한 하나님의 정의가 실현되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 방법으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시며 하나님의 정의를 이루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의를 세우시며, 이제 우리에게 하나님의 정의를 이룰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1. 세상은 정의를 갈망합니다.
하버드 대학에서 30년간 정치철학을 가르치고 있는 마이클 센델 교수는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극단적인 상황 가운데에서 정의가 무엇인지를 질문하였습니다. 어떤 것이 진정한 정의이며 공공의 선이 무엇인지, 사회에서 정의의 자리가 어디인지를 구체적으로 질문합니다. 옳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정말로 옳은 일인지, 사람들이 가진 기존의 생각들을 뒤집으면서 정의에 관한 질문을 던집니다. 정의와 부정, 평등과 불평등, 개인의 권리와 공동선에 관한 다양한 주장과 이견에 대하여 세상은 명쾌한 해답을 원합니다.
샌델 교수의 책은 전 세계적으로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더 나은 세계를 만들기 위해 기존의 것들에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한 걸음 내딛도록 촉구하였습니다. 달려가는 차의 브레이크를 밟으며 정말 이 길은 옳은 길인지, 우리가 원하는 목적지가 그곳인지를 질문하였습니다. 이 책은 수많은 결정들에 관계되는 사화적이고 개인적인 여러 가지 문제들을 다각도에서 보아야 함을 알려 줍니다.
사회는 정의를 갖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실 이 정의를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이해관계가 얽힌 나의 입장에서 정의가 아니라 이 세상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주신 정의를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이 바로 그 정의입니다.
2 하나님의 정의가 없는 곳에는 황폐함이 있습니다.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시 5 : 7).
하나님께서 자신을 농부로, 유다를 포도원으로 비유하십니다. 농부는 충실한 포도가 열리기를 기대하며 산등성이를 깎아 밭을 일구고, 돌을 골라내고, 좋은 포도나무를 심고, 울타리를 치고, 한가운데에 망대를 쌓고, 즙을 짜는 틀까지 마련하였습니다. 그런데 추수할 때가 되니 들포도가 열렸습니다. 들포도는 먹을 수 없는 쓴 포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사랑과 애정을 쏟으며 가꾸셨습니다. 그들의 삶에 행복과 정의가 나타나기를 바라셨습니다. 하지만 유다 사회의 현실은 들포도와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극상품 포도를 심으셨지만 죄로 인해 얼룩진 세상은 먹을 수 없는 들포도만 맺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주시고, 왕을 세우시고, 제사장을 세우시고, 예언자를 보내어 평등과 정의가 실현되도록 하셨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죄악은 하나님의 기대와 달리 원래의 씨앗과 전혀 다른 죄의 열매를 맺고 말았습니다.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지를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카리를 걷어 먹힘을 당하게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내가 그것을 황폐하게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며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며 내가
도 구름에게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리라 하셨으니"(사 5 : 5-6).
유다는 이 경고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개혁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그 결과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성전은 파괴되고, 삶의 자리인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었으며,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가서 70년간 노예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극상품 포도를 심으시고 가꾸셨는데, 우리의 열매가 어떠한지 그 열매를 보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만약 들포도를 맺었다면 이러한 황폐함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3. 성경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정의를 배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말하는 정의와 다른 하나님의 정의를 구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포도원 품꾼의 비유'(마 20 : 1-16)에서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의 수고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떠나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각자에게 부어 주신 은혜임을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정의는 이해관계로 얽힌 세상과 다름을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행동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전적인 긍휼하심으로 구원하시고 선택하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바울은 아볼로파, 바울파, 게바파, 그리스도파로 나눠져 분쟁하는 고린도 교회에 편지합니다(고전 1 : 10-17). 분쟁으로 마음을 나누지 말고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그릭스도의 십자가를 헛되이 해서는 안 됨을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기억하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전적인 은헤를 기억할 때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고, 참 정의를 세우는 터가 됩니다.
뉴욕에는 '라과디아'라는 공항이 있습니다. 법학을 전공하고 변호사와 국회의원을 하다가 3번이나 뉴욕 시장을 역임한 이후 4선이 되었으나 거절한, '작은 꽃'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라과디아'라는 사람을 기리기 위해 뉴욕시민들이 지은 공항 이름입니다.
그가 뉴욕시의 즉결재판부 판사로 있을 때의 일입니다. 가게에서 빵을 훔친 한 노인을 재판하게 되었는데, "왜 남의 가게에서 빵을 훔쳤습니까?"
라고 심문을 했더니 노인은 울먹이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너무 배가 고플 때 가게 앞을 지나다가 나도 모르게 빵을 집었습니다. " 라과디아 판사는 "당신의 죄를 10달러 벌금형에 해당됩니다." 라고 판결을 하고는 지갑에서 10달러를 꺼내어 자기 모자 속에 넣으며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이토록 배고픈 사람이 뉴욕의 걸;에서 헤매는 동안, 나는 너무 좋은 음식을 배불리 먹은 것에 대한 벌금을 내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나와 같은 죄를 지었기에 벌금을 내실 분은 이 모자에 넣기 바랍니다." 그리고 모자를 돌리자 그 자리에서 걷힌 돈이 47달러였습니다. 그돈을 받은 노인은 눈물을 흘리며 법정을 나섰습니다.
성경말씀을 통해 발견하는 하나님의 정의는 '사랑'입니다. 허물을 드러내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허물을 덮어 주고, 대신 갚아 주는 것, 값없이 주는 '사랑'이 바로 하나님의 정의입니다.
새로운 삶을
소망하며
세상은 정의를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정의로 세상을 세우고 사람들을 살리는 일에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를 보내십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사랑입니다. 값없이 우리를 부르시고, 살리시고, 세우시는 사랑을 우리 가운데 심으셨습니다. 이제 정의의 열매를 맺는 성도가 되길 소망합니다. 메마른 세상에 달고 맛이는 생명을 주는 포도 열매를 맺어 참된 정의를 세우고,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삶을 살기를 기원합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내가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사 5 : 1-2).
▽ 가장 처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순간이 언제였습니까? 그때를 떠올리며 당시의 감 격을 기억해 봅시다.
▽ 하나님께서 나를 찾아오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값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면, 이제 누구에게 그 은혜를 흘려보낼 수 있겠습니까?
▽ 위에 떠올린 사람이나 그룹이 있다면 어떻게 그 은혜를 전달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봅시다. 내 삶에 극상품 포도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실천의 방법을 생각해 봅시다.
첫댓글 하나님께서 자신을 농부로, 유다를 포도원으로 비유하십니다.
아멘 주님께영광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전적인 긍휼하심과 은혜와 사랑을 값없이 받았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그 큰 십자가의 사랑을 기억하고 실천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