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크디오 바이러스
김주욱
앤드루센터 이중 강철 문이 미끄러지듯 열렸다. 강렬한 불빛 아래 실내의 냉기가 소용돌이쳤다. 매드와 우디가 가운을 착용하고 에어커튼을 통과하자 우측에 유리 벽으로 된 실험실이 길게 이어졌다. 1번 실험실에서 연구원이 감염자들에게 약물을 주사한 다음 사슬을 풀었다. 보호철망이 이중으로 설치된 실험실이었다. 잠시 후 감염자들이 으르렁거리며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매드가 우디의 손을 잡아끌자 우디가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저리 가. 저 안에 처넣기 전에.”
매드가 웃으면서 우디 곁에서 살짝 떨어졌다.
“감염자들을 실험용으로 쓴다는 게 사실이었어.”
몸집이 큰 감염자는 맹수처럼 먹이의 목을 물고 숨이 끊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목부터 뜯어먹었다. 한쪽 눈이 없는 감염자가 내장부터 파먹는 반대편의 감염자와 눈이 마주쳤다. 감염자들은 상대방의 살점이 먹이인 줄 알고 맹렬하게 뜯어먹고 나서 송곳니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렸다. 덩어리진 검붉은 피가 입 안에 흥건했다. 싸움을 피해 철망에 매달려 있던 감염자들은 슬금슬금 내려와 남은 살점을 끌고 구석으로 흩어졌다. 매드가 우디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렸다.
“배불리 먹고 구석에 뻗은 꼴 좀 봐.”
우디가 어깨에서 매드 손을 잡아 내렸다.
“술에 취한 네 모습 같아.”
매드와 우디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 유리로 된 좁은 복도를 따라 들어갔다. 2번 실험실은 어린이집의 놀이방처럼 알록달록했다. 매드가 대형 레고 블록으로 집을 짓는 어린 감염자들을 보며 말했다.
“아이들이 너무 깜찍해.”
“불쌍한 것들. 실험용 쥐가 되다니.”
유리로 된 좁은 복도의 끝이 보였다. 미로의 끝은 대형 실험실이었다. 매드와 우디는 한동안 냉기가 가득 찬 내부를 응시하며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나 화장실 좀.”
우디는 화장실에 들어가 볼일을 보고 소변을 임신테스트기에 떨어뜨렸다. 그녀는 임신테스트기를 수평으로 놓고 기도했다. 잠시 후 판정 결과는 양성이었다. 그녀는 한숨을 쉬고 중얼거렸다.
“어쩌면 좋아, 기생충이 하나 더 늘었네.”
매드가 우디를 기다리고 있었다. 실험실의 유리문이 열리고 전체조명이 켜졌다. 실험실 내부에는 시체가 가득한 냉동 주조가 여러 개 있었다. 수조 안을 관찰하던 우디가 돌아서서 벽에 기대 숨을 골랐다.
“악취가 너무 지독해.”
“난 못 느끼겠는데….”
“속이 울렁거려. 너 때문이야.”
담당 연구원이 나타나 시체들의 보존 상태를 기록한 자료를 매드에게 건네고 냉동 수조의 문을 열었다. 시체들은 팔이 서로 얽혀 있기도 하고 머리를 맞대고 우리 벽에 짓눌려 있기도 했다. 대부분 얼룩덜룩한 피부가 찢기고 끈으로 얽었던 자국이 선명했다. 그중에는 고통에 일그러진 표정으로 유리 벽에 달라붙은 시체도 있었다. 우디는 수조 가까이 가지 못하고 멀찍이 떨어져서 시체들의 분석 자료를 검토했다. 시체 중에 주홍색 꼬리표를 발목에 매단 시체 한 구가 눈에 띄었다. 담당 연구원이 주홍색 꼬리표를 설명했다.
“수크디오 바이러스 감염자입니다. 이 바이러스가 인간의 세포 안에 침입하면 감염자가 심한 우울증을 앓았고 멀쩡한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이유도 없이 자살을 시도했으나 성공한 경우는 없습니다. 입증되지는 않았지만, 수크디오 바이러스가 숙주의 정신세계를 조절해 숙주의 자살을 막는다고 주장하는 학자가 있었습니다. 아직 수크디오 바이러스가 숙주의 우울증을 유발하고 그 증상을 적당히 유지하면서 무엇을 얻는지는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자살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는 말인가요?”
“수크디오 바이러스는 숙주가 죽지 않고 오래도록 자기를 섬기기를 바랐겠지요.”
“바이러스가 계속 진화한다면 신의 영역에도 도전하겠군요.”
“감염자들이 열병을 앓고 나면 갈라진 틈에서 나온 벌레처럼 꿈틀거리며 거리를 돌아다녔지요.”
“기생충에서나 볼 수 있는 특성을 보였군요.”
“대단한 놈입니다. 숙주의 면역계를 피해 다니면서 번식하고 숙주의 정신세계까지 조종했으니까요.”
우디는 주홍색 꼬리표를 단 시체의 개별 파일을 넘기며 특이사항을 점검했다. 보건당국에 의해 격리 수용된 감염자였다. 파일에는 여자를 납치하여 건물 옥상에서 잡혔을 때 안구가 달팽이의 더듬이처럼 돌출되어 있었고 안구 안에서 정체불명의 기생충이 발견되었다고 적혀 있었다. 매드가 우디의 표정을 살피며 시체의 개별 파일을 건네받았다.
“지금도 속이 불편해?”
“암담하고 끔찍해서 그래.”
“빨리 끝내고 여행이라도 다녀오자고.”
수크디오 바이러스 감염자의 안구가 달팽이 더듬이처럼 변형된 원인과 기생충이 두뇌에 끼치는 영향을 밝혀내는 것이 기생충학자 부부의 임무였다. 매드가 여전히 창백한 우디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은 좀 쉬지 그래?”
“자료나 이리 줘.”
우디가 자료를 분석하는 동안 매드는 다른 투명 캡슐 가까이 가서 시체들의 얼굴을 관찰했다.
“이것 봐, 이 공포에 절은 표정들.”
매드와 우디는 꽁꽁 얼어붙은 수크디오 바이러스 감염자의 시체를 하나씩 꺼내 붉은 보라색의 액체가 들어 있는 가열 탱크로 옮겼다. 칙칙한 보라색 액체가 가득 찬 탱크에 서서히 열을 가했다. 가열 탱크의 보라색 용액이 조금씩 줄어들자 시체들이 기지개를 켜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매드와 우디는 점심도 거른 채 남자 시체의 안구를 절개해 기생충 검사부터 시작했다. 우디가 전자현미경이 촬영한 기생충의 입체를 모니터에 띄웠다.
“이 기생충은 나팔처럼 생긴 흡입구가 있어.”
“몸의 표면으로 영양분을 빨아먹는 것도 모자랐던 모양이군.”
“뭘 빨아먹는 기관일까?”
“뭐든 닥치는 대로 빨아먹었겠지.”
시체의 안구에서 나온 기생충은 한 개의 머리 마디와 세 개의 편절로 이루어져 있었다. 머리 마디에는 숙주에 완벽하게 흡착되는 흡구가 있었다. 머리 마디의 경부는 분체가 왕성하게 이루어져 편절을 새로 만들 수 있었다. 몸의 표면은 큐티클로 덮여 있었고 상피세포는 없었다. 숙주의 환경에 따라 몸집을 크게 부풀릴 수 있는 조직이었다. 소화관은 따로 없었으며 영양분은 모두 체표를 통해서 흡수하는 듯했다. 배설을 하는 원신관이 있었고 원신관 끝에 불꽃세포가 있었다.
매디가 기생충의 머리 부분을 확대했다. 중앙에 특별한 감각기관이 발견되었다. 나팔처럼 생긴 흡입구와 연결된 중추신경이었다. 조직학적으로는 신경세포와 교세포로 구성된 회백질과 신경섬유로 구성된 백질로 이루어진 부위였다. 말초의 자극을 받아 흥분하여 명령을 내리는 일 외에 다른 생리기능을 담당하는 듯했다.
전자현미경을 보던 매드가 우디를 바라보며 웃었다. 우디가 자기 목덜미를 주무르며 매드 옆으로 왔다. 매드가 전자현미경을 가리키자 우디가 들여다보았다.
“뭐 좀 알아냈어?”
“이 녀석, 보면 볼수록 매력덩어리야.”
“론리드흡충의 변종인 것은 확실한 것 같아.”
“아주 까다로운 녀석이야. 똑똑한 인간만을 숙주로 삼았어.”
“너랑 똑같은 놈이군.”
“뭐라고?”
“너는 나를 숙주로 삼았어.”
“또 그 소리, 우린 서로 기생충이야. 한쪽이 숙주가 아니라고!”
매드는 모니터에 기생충의 해부 사진을 크게 띄우고 자료와 대조해가며 설명했다.
“인간의 몸속에서 기호식품도 즐겼어.”
“나팔처럼 생긴 흡입구로 뭘 빨아들인 거지?”
“저 샌드위치 안 먹을 거면 내가 먹어도 될까?”
“얼마든지. 난 아무것도 못 먹겠어.”
매드는 샌드위치의 식빵을 걷어내고 햄을 접어서 한입에 넣고 나서 치즈와 야채를 넣은 샌드위치는 식빵을 한 장만 걷어내고 접어서 입에 넣었다. 그는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말했다.
“뇌는 말이야, 음식을 씹을 때 스트레스를 줄이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옥시토신을 분비해.”
우디는 눈을 늘게 뜨고 매디를 쳐다보며 말했다.
“옥시토신은 음식을 씹을 때만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쳐다볼 때도 분비되거든. 그런데 나는 분비되지 않아”
“내가 듬뿍 나오게, 만들어 줄게.”
우디는 전자현미경으로 눈을 돌렸다. 그녀가 연구에 집중하는 동안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매드가 남은 샌드위치를 다 먹고 자료를 검토하더니 무릎을 쳤다.
“이럴 수가!”
“흡입구로 뭘 빨아들였는지 알아냈어?”
“스테로이드성 호르몬을 기호식품처럼 먹었어. 인간이 슬프거나 기쁠 때 술을 마시는 것처럼, 기생충은 숙주에서 나오는 호르몬을 즐겨 먹은 거지.”
“너처럼 식성이 독특하네.”
“기생충이 의도적으로 인간을 고립시킨 것 같아. 기생충은 수크디오바이러스에 완전히 감염되기 전, 중간 단계의 몸에 기생해서 긴 띠 모양의 성충이 될 때까지 호르몬을 자양분으로 삼았어. 자신의 기호에 맞는 호르몬을 섭취하려고 인간을 외롭게 만드는 방법을 알아낸 것 같아.”
“그런데 이 녀석은 왜 안구에 들어가서 변신을 시도했을까?”
“글쎄, 숙주가 사는 세상이 궁금했나 봐.”
“모르지. 우연히 새로운 숙주에 들어가 길을 잃었는지도.”
매드는 시체의 해부 사진 파일을 클릭하면서 샐러드 접시에 남은 샌드위치 조각을 마저 집어 먹었다. 사진이 모니터에 파노라마로 펼쳐지면서 기생충의 이동 경로가 길게 이어졌다. 매드가 샌드위치를 삼키고 입맛을 다셨다.
“아마도 기생충이 새로운 숙주 안에서 길을 잃고 엉뚱한 곳을 헤매다가 뇌에 이른 것 같아. 이 기생충은 성충으로 자라지도 못하고 뇌에서 번데기 모양으로 잠복기에 들어갔을 가능성이 커.”
“방황하던 기생충이 안구로 침투했다…….”
“왜 기생충이 안구로 들어갔는지는 모르겠어. 달팽이기생충처럼 단순히 본능대로 다음 숙주로 옮겨가려고 그랬을까? 천적을 유인하기 위해서?”
매드의 물음에 우디는 어깨를 으쓱했다.
“어쩌면 인간의 눈을 넘어서 바라보고 싶은 게 있었는지도.”
매드와 우디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실험실을 나섰다. 복도의 천장 조명이 선로처럼 길게 이어져 있었다. 실험실의 감염자들은 움직임이 없었다. 매드는 실험실 유리벽 가까이에 가서 어두운 실내를 들여다보았다.
“모두 잘 자고 있군.”
“저들이 꿈틀대면서 뒤척이는 소리가 안 들려?”
매드와 우디가 출구를 빠져나가자 강철 문이 미끄러지듯 닫혔다. 매드와 우디가 가운을 벗고 에어커튼을 통과하자 또 다른 출구가 나왔다. 경비가 보안장치를 풀고 문을 열어주었다.
매드와 우디는 지하에서 엘리베이터로 지상 주차장까지 이동했다. 주차장 외각에 촘촘히 둘러친 고압선 철망 사이로 경비들이 보였다. 그때 대형 컨테이너를 실은 트럭이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경비들이 트럭을 둘러쌌다.
“감염자들이 계속 들어오는군.”
경비들이 대형 컨테이너에서 어른과 아이를 분리했다. 아이를 안은 여자가 저항하자 경비들은 전기 충격기로 여자를 기절시켜 끌어냈다. 그것을 지켜본 우디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매드가 다가와 우디를 부축했다.
“어디 가서 한잔하고 들어갈까?
“마음을 독하게 먹어야 해.”
“내일 저것들 전부 기생충에 감염됐는지 검사를 해야겠어.”
“혼자 해, 병원에 가봐야겠어.”
“어디가 안 좋은 거야?”
“임신한 것 같아.”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조심했는데, 뭔가 단단히 조종당한 기분이야.”
“이번 연구 끝나면 여기에 이력서 낼까?”
우디는 말없이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경비들이 감염자들을 실험실로 옮겼다. 새로운 감염자가 공급되자 폐기할 감염자들은 소각로로 이동했다. 연구소 건물 뒤로 첨탑처럼 우뚝 솟은 구조물에서 회갈색 연기가 피어올랐다. 매드가 연기를 바라보다 우디를 향해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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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욱 장편 소설 『표절』, 『물북소리』 단편 소설집 『미노타우로스』, 『허물』 스마트 소설집 『그림이 내게 와서 소설이 되었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