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안가는 날이 많으니까 공부가 멀어지더군요. 졸업식때 못가고 공부는 그렇게 못하게 되었습니다. 친구들도 놀렸습니다. 니는 학교에 안오냐고 우리는 중학교 간다 자랑했습니다. 친구들은 중학교 교복입고 가방메고 댕기고 나는 소구루마 몰고 댕기면서 마주쳤을 때 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도 저는 기죽지 않고 '친구야 학교 갔다오나'하고 웃고 지나가곤 했습니다. 옆에 친구가 '둘레야 소구루마 몰고 댕기는게 안 무섭나'라고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응, 소가 순둥이라 괜찮아~’ 나는 방앗간에 도착해서 엄마한테 옥이하고 친구들 중학교 갔다 오더라 얘기 했지만 엄마는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하시는 말씀 언넝 집에 가서 소죽 끓이고 밥이나 해 놔라고 호통칩니다. 나는 너무 화가나서 내 발이라도 다쳤으면 일을 안할껀데 손이라도 다칠까 오만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생각 뿐이였습니다.
밤이면 잠도 편하게 잘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약주만 드시면 집안을 뒤집고 엄마랑 우리는 밖으로 쫓겨 나야 했습니다. 친구들은 공부하고 잠도 방에서 편하게 잘 자는데 우리는 허구헌날 밖으로 쫓겨 나야 했습니다. 부모님 원망 스럽지만 갈대가 없으니 참고 견디고 생활해야 했습니다. 다음날이 밝았지만 아버지께서 언제 그랬는지 모른체 하는건지 아무말씀 안하시고 들로 나가십니다.
동생들은 학교 간다고 책보따리 챙겨서 보내고 언니는 노동일 안할려고 홀치기(비단) 틀 들고 도망가고 할 수 없이 집안일은 제 차지가 되어서 콩 밭에가서 엉엉 울고 오는데 친구가 놀러가자로 했습니다. ‘어디가노?’ 하니까 가재 잡으로 간다고 해서 따라 갔더니 아주 깊은 산골짜기 앞 뒤가 산이고 하늘만 빠꼬미 보였습니다. 가재도 많고 고등(소라) 잡이가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한참 장난치고 가재, 고등 잡다가 보니 해가 서산으로 저물어 가고 친구랑 고등, 가재 많이 잡아서 집으로 왔습니다. 가재랑 고디를 솥에 넣고 푹 삶아서 ‘아버지 고디 삶았는데 잡사 보이소’ 아버지께서 ‘아따 몸에 좋다’ 하시면서 좋아하셨습니다. 항상 아버지 먼저 드시고 나면 그 다음은 엄마랑 우리 차례입니다. 가족 모두 맛있게 먹고 있는데 아버지께서 내일은 소마구간(쇠똥) 꺼내라고 하셨습니다. 언니 내일 나랑 소 마구간(쇠똥) 꺼내자 하니까 언니는 홀치기 바쁜게 있어서 못한다고 합니다. 니혼자 천천히 해봐라고 말합니다.
쇠똥이 얼마나 무거운지 끙끙하면서 꺼냈습니다. 짜증은 나지만 소가 무슨 죄가 있나 우리집에서 재산 목록 1위 소입니다. 말 못하는 짐승 집도 깨끗이 청소해주니까 소가 날 보고 꼬리치고 ‘음메~ 음메~’하면서 마구간을 빙글 빙글 돌면서 쳐다봅니다. 저도 소한테 기분 좋아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 끄덕 했습니다.
아버지한테 경운기 한 대 사달라고 말씀 드려 보았습니다. 아무 말씀이 없습니다. 아버지께서도 돈이 짧으니까 말씀을 못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가을이 되어서 사과 밭에 사과 따는 작업이 많습니다.(사과를 저장해야 됩니다.) 약 두달 넘게 작업을 해서 경운기 살 때 드릴려고 사과 따러 열심히 댕겼습니다. 하루 일당 3,000원 사과 따고, 포장하고 70일 정도 했습니다. 일했는데 수입을 21만원 받아서 아버지 경운기 살 때 보태시라고 드렸습니다. 아버지는 손에 돈을 쥐고는 아무 말씀 안하십니다.
동네 갑자기 가설 극장이 왔는데 친구들이 오늘 저녁 극장 구경 가자고 하는데 극장 요금 얼마하더노 물었습니다. 20원 하더라 애기합니다. 손에 쥔 것 15원 5원 모자랍니다. 극장 앞에 가서 ‘15원 있는데 드가면 안됩니까?’ ‘안된다’고 합니다. 친구들은 극장 안에 들어가고 나는 천막 사이 구멍으로 보다가 극장 주인한테 틀켜서 혼났습니다. 손 발이 닳도록 빌고 또 빌고 집에 와서 엉엉 울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쥐 잡는다고 아랫방에 쥐약을 멸치에 묻혀서 놨습니다. 2,3일 있다가 쥐 잡혔는지 확인하러 개를 몰고 들어갔는데 개가 그만 쥐약 발린 멸치를 먹었습니다. 개는 미친 듯이 뛰고 뱅글뱅글 돌더니 죽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죽은 개를 앉고 울고, 불고 하시더니 폭탄이 우리한테 날라왔습니다. 식구들 밥도 못 먹게 하고, 잠도 못자게 집 밖으로 쫓아 냈습니다. 아버지께서 항상 짐승을 좋아하고 (식구)가족은 소중한 줄 모릅니다, 엄마는 아버지 욕을 합니다. 개하고 살아라고 근데 집안에 대장이 아버지니까 듣는데는 아무 말 못합니다. 아버지 생각만 옳다고 하시는거 같습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1975년도 아버지께서 경운기를 샀습니다. 경운기가 있으니 방앗간 안에 일은 엄마랑 저랑 둘이서 나락 보리 방아를 찧었습니다. 아버지께서 가마니 실고 올 동안에 방앗간 기계를 제가 보아야 했습니다. 여름에는 보리 방아를 밤 늦게까지 찧어야 했습니다. 그때 그 시절은 먹을게 없고 하루 삼시 세끼 밥만 먹으니 한집에 보통 열가마니씩 찧었습니다. 많이 바쁘면 방앗간 일을 도와 드리고, 집에 와서 집안일 하고, 그 시절 홀치기를 많이 했습니다. 저도 홀치기 배워서 시작했는데 만만치 않더군요. 점하나에 4번을 홀쳐야 되니 그래도 해 냈습니다. 친구들이 한자리에 4~5명 정도 모여서 홀치기 경쟁이 붙어서 저는 낮에는 많이 못하고 밤에 많이 했습니다. 해보니까 돈 벌이가 좋아서 재미가 솔솔 나는데 그 일도 잠시 멈추고 가을이 되어서 나락 베서 묶고, 가을거지 고구마 캐서 보관하고, 겨울에 둘러 앉아서 홀치기 하니 즐겁고 세월은 소리없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동생들은 중학교 갔다고 좋아하고 이상한게 동생들은 중학교 보내면서 저는 공부를 왜 못하게 하는지 궁금해서 물어봤습니다. 일할 사람이 없는데 공부는 무슨 공부 엄마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언니는 농땡이 치니까 일찍 시집 보낼라고 중매쟁이한테 부탁해서 중매쟁이가 집에 왔다갔다 하니까 언니가 날 보고 숨어라고 했습니다. 언니, 동생들은 모두 키가 작더라고요~ 그래서 언니는 날보고 숨어 있거라 저는 인물은 없지만 키만 큰편인지 언니, 동생들은 키가 작은데 인물은 괜찮은 편입니다. 중매쟁이가 어느 딸이 시집 갈 딸이고 웃으면서 둘다 시집 보내도 된다고 말씀 하시니 아버지께서 작은딸(저보고)은 우리집에 없으면 안된다고 하시면서 재산을 더 불려주고 시집보낸다고 하시고는 자전차 타고 나가시더니 통닭을 한 마리 사오셨습니다. 통닭 삵아라고 하십니다. 니 언니 통닭 삵아서 먹이면 키가 커지 싶다고 말씀하시고 닭 똥집은 내가 묵고 하시고는 어디로 사라지십니다. 언니 덕분에 통닭 먹고 나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가족 분위기가 매일 이렇게 대화하고 지냈으면 좋으련만 아버지께서 약주 드시면 마음이 변해서 항상 불안 합니다.
하루는 앞집 아지매랑 산에 고사리 꺾으러 갔는데 후다닥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서 보니 꿩이 날아 갔습니다. 꿩이 날아 간 자리에 가서보니 꿩알이 5개 있었습니다. 꿩이 집도 이삐게 둥지를 만들어서 알을 품고 있는것 같았습니다. 저는 꿩하고 대화를 했습니다. 걱정말고 새끼(꿩알) 잘 품어서 날아 댕기라고 하고는 산위로 올라가면서 “아지매 짐승은 말을 못해도 내 말을 알아듣지?” “응, 꿩이 우리 오는 것을 아는데 꿩 가까이 오니까 나쁜짓 할까봐 날아 갔을꺼다.”라고 말씀 했습니다. “말 못하는 짐승도 자기 새끼를 얼마나 소중하게 돌보는데~ 우리 아부지는 자식 귀한걸 모르는 것 같아요.” 아지매한테 아버지 원망 많이 하니까 속이 조금 편해졌습니다. 고사리 꺾고, 쑥 캐고, 산나물 캐고(자연산) 내려오면서 또랑에 물이 졸졸 흐르고 있는데 물에 발을 담그고 있으니 시원하기도 하고 기분이 너무 좋고 집게 가고 싶지 않더군요. 물고기가 발에 와서 간질 간질 장난치는거 같기도 하고 한참 물고기랑 놀다가 집에 와서 저녁식사 준비 밥하고 나물 무치고 된장 끓여서 가족 모두 같이 식사를 하니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아버지는 경운기 운전을 배우라고 권유합니다. ‘아버지 경운기는 무섭고 위험 한데예’ ‘괜찮다 함 연습이나 해봐라’고 하셨습니다. 경운기 운전을 배우는게 쉽지 않더라고요 아버지 저는 소구루마 끌고 댕기고 싶다고 했습니다. ‘한번에 할 수 있나 세월이 가면 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시간되면 경운기를 조금씩 몰고 댕겼습니다. 하루는 면소재지 경운기 몰고 가서 정미소에 사용한 기름(경유) 두드럼 사오라고 했습니다. 기안 1단 놓고 천천히 가다보니 간이 조금 커졌습니다. 면소재지가서 기름 두드럼 실고 왔습니다. 동네 사람이 니가 여자가 남자 일을 한다고 인사를 많이 했습니다. 저는 듣기 싫었습니다. 할 수 없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저가 경운기 몰고 댕긴다고 소문이 나서 초전면에서 직원이 나를 찾아왔습니다. 경운기 교육 받으러 농촌 진흥원에 가라고 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배운 것이 없는데 경운기 교육 받으러 갈 수 없다고 하니 이름은 쓸 수 있지 않냐 경상북도 한면에 한명씩 가야 된다고 이름 적어서 갔습니다. 저는 걱정이 되어서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아버지께서 ‘농촌진흥원 함가봐라 시키는데로 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연락 오면 교육 붙고 온너라’ 아버지 말씀 교육기간은 2주 정도
1976년 8월 농촌진흥원에 갔습니다. 아름다운 아가씨들이 경운기 교육 받으러 많이 왔습니다. 그런데 내 눈에는 모두 멋쟁이들 같이 보였습니다. 집에서 일하는 아가씨들이 몇 명 안되고 마카다 호강스럽게 자란 아가씨들 입니다. 손도 예쁘고, 공부도 대략 중학교를 졸업했더라고요. 그래도 경운기 교육 받으러 왔으니 교육 기관에 아무사고 없이 선생님 말씀 잘 듣고 하는게 제 도리인 것 같아서 단체 생활에 활발하게 선생님 설명 귀 기울면서 활동했습니다. 경운기 시동도 걸어보고, 몰아보기도 하고 필기 시험, 실기 시험도 치고 했습니다. 낮에는 교육 받고, 저녁에는 숙소에서 장기자랑 하고, 노래 자랑도 하고, 숫자 맞추기, 자기소개, 장기자랑도 하는데 저는 자랑할게 없었습니다. 옆에 친구가 저보고 경운기 시동걸고, 경운기 운전은 제일 잘 한다고 칭찬해줘서 박수를 받았습니다. 그때 기분이 제일 좋았습니다. 2주 교육 기간이 끝이나고 모두 헤어졌습니다. 교육 잘 받고 왔다고 면사무소에 신고하러 가니까 면직원 선생님께서 아무사고 없이 잘했다고 칭찬했습니다. 저는 경운기 수료증을 받아서 마음 편하게 몰고 댕겼습니다. 동네 골목골목 이집저집 댕기면서 나락, 보리 가마니를 즐겁게 실어다 날랐습니다. 큰 도로에서는 자동차가 오면 한쪽으로 붙여서 정지하고 자동차가 지나가고 나면 출발하기도 했습니다. 도로가 비포장도로라서 자갈이 팅겨서 위험하더라고요.
해질 무렵에 꼴 망태메고 뒤뜰 밭에 꼴베로 갔는데 솔나무 밑에서 엄매라고 우는데 쳐다보니 새까맣게 눈이 노란것이 왜그리 무서운지 꼴은 한망태 베야 하는데 꼴을 밸 수가 없으니 할 수 없이 콩잎사귀를 따서 묘 위에 널어놨는거 한 망태 담아서 내려왔습니다. 옆에 아저씨가 나는 꼴 베로 가더니 금방 한망태 뜨든노 하시는데 말 못했습니다. 콩잎사귀를 몰래 담아와서~ 밤에 친구들 3명이 호롱불 밑에서 홀치기를 하는데 낮에 있었던 이야기들을 틀어 놓는데 나는 죄를 지어서 아무말도 못하고 홀치기만 하는데 친구가 날보고 ‘니는 아무말이 없노?’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까 뒤뜰 밭에 갔는데 염소가 ‘음메’라고 울더라 몰고 왔는지 산에 늑대가 많다 카데 했더니 한 친구가 그래 몇일 전에 늑대가 염소 잡아 먹었다 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