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은숙 시 특집
가을 슬픈 노래 그 의문의 시학
김 송 배 (시인. 한국문인협회 시분과회장)
현대시의 위의(威儀)는 시인의 중심정서에서 추출해낸 지적 주제가 내포하는 시정신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그 시인이 표현하는 언어와 화자의 어조가 어떤 구도로 현현되느냐하는 지극히 단순한 문제에서도 시법의 핵심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백은숙 시인이 이번 특집으로 수록하는 작품들은 이와 같은 시의 위의를 탐색하는데 그의 표현기법이 특이한 점을 읽을 수가 있는데 이는 그가 관습적으로 언어와의 교감을 통해서 작품을 독자들이 이해하는데 상당한 영향을 미치도록 하는 경향을 발견하게 된다. 그가 시법에서 강조하는 의문형 어법의 시 문장은 주제를 더욱 강조하는 대전제를 미리 제시하고 스스로 명징(明澄)한 해법을 탐색하는 특징을 이해하게 되는데 이러한 시적구조는 그가 적시하는 의문형 종결어미에 함축된 진실의 영역을 확산하려는 효과를 적절하게 포용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대체로 예를 들어보면 ‘나그네 게의 바튼 숨소리를 들어 보았는가’, ‘다시 부활하는 힘겨운 현장을 목격했는가’, ‘한 생애 흠뻑 젖어 살아도 좋지 아니하겠는가’, ‘비굴하게 무릎 꿇을 이유 없지 않겠는가’, ‘묵인할 수 있겠는가’, ‘후회는 없겠는가’, ‘이젠 함구할 수 있겠는가’, ‘마지막 향기로 남겨둘 수 있겠는가’라는 어조와 같이 작품「우리 비루(悲淚)한 슬픔의 조영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어쩌면 문장 전체가 의문형으로 조율되어 있다. 이 밖에도 ‘시계추처럼 불안한 일상에서 자유 할 수 있을까 / 부랑의 기억을 털고 일어나 힘차게 비상할 수 있을까’, ‘그 옛날 절망의 나락으로 추락시킨 / 인동초 씨방 터트리며 웃음 지을 날 있을는지 / 지구 반바퀴 너머 동굴벽속에 화석이 된 / 우리 잃어버린 시간을 되돌릴 수 있을는지(이상「유목」중에서)’ 혹은 ‘아침처럼 참담한 일 아니겠는가’, ‘짐승의 몸인들 어떻겠는가’, ‘특별한 이유도 이젠 없지 않겠나’, ‘아프지 않았나’, ‘예상한 일이 아닌가(이상「목신의 오후」중에서)’라는 어조로 시적 진실의 확인과 정립을 위해서 우선 이미지의 분화에 의무을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의문형의 제시는 백은숙 시인이 탐구하고 갈망하는 해법을 표출하려는 시도이며 이렇게 투영된 시적진실은 존재나 자아와의 화해를 위한 전주곡이라고 할 수 있다.
찬비 지나간 싸늘한 흔적위로 모습을 드러낸 기인 터널은 가없고 스티브 바라캇의 슬픈 로망스는 젖은 선율을 밟고 있는데
밤새 내린 찬이슬은 한 꺼풀 녹음을 걷어내 버리고 서늘한 절기 끝 열병을 치르던 잎새는 아직, 바람의 체온을 기억하고 있다
숲과 숲 사이를 회유하며 마음을 흔들던 외줄기 바람은 온통 그리움의 물감만 덧칠하고 다가올 겨울을 앞서 걱정하며 길 떠날 채비를 서두른다
사랑은 이미 가슴에 숨어들어 깊은 심연으로 흐르고 있는데
그렇다. 백은숙 시인이 추구하는 심저(心底)에는 ‘사랑’의 선율이 시적원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가을, 그 슬픈 노래」는 제재와 같이 ‘가을’과 ‘슬픈 노래’라는 이미지의 연결은 결론적으로 그렇게 많이 등장했던 의문형의 갈등들이 어떤 조화와 융합을 위한 전제라는 점을 간과(看過)하지 못한다. 그는 이러한 해답을 ‘힘겹게 추억을 돌리고 있었던 까닭이다(「메밀꽃 필무렵」중에서)’, ‘비문도 없이 스러져간 청춘의 꽃봉오리 / 평생 그대에게 돌아갈 수 없는 몸일지라도 / 눈물 흘리지만은 않겠다(「지심도」중에서)’, ‘종내 외면하지 못하는 것은 / 해지면 밀려드는 비릿한 기억 때문이네(「해녀의 노래」중에서)’ 등과 같이 화해의 손길을 보내는 안온한 정감이 풍긴다. 일찍이 영국의 낭만파 시인 셸리(P. B. Shelley)는 시는 최상의 마음의 가장 훌륭하고 행복한 순간의 기록이라고 했다. 그리고 하나의 시란 그것이 영원한 진리로 표현된 인생의 의미라고 했다. 이와 같이 시적 진실이 포괄하는 주제는 그 시인의 인생관과 무관하지가 않다. 백은숙 시인의 시적 소재나 주제 또는 시적구도에는 이러한 영원한 진리로서의 인생의 의미를 명징하게 융합하고 있어서 ‘사랑’이라는 ‘그 슬픈 노래’로 이 가을을 장식하면서 그의 시학을 정리하고 있다. 그는 ‘사랑은 이미 / 가슴에 숨어들어 / 깊은 심연으로 흐르고 있는데’라는 어조로 그가 시적으로 갈등했던 의문의 모든 현실적 문제들을 풀어나가고 있다. 그가 진정한 가치관의 투영은 궁극적으로 현존(現存)의 문제의식을 차원 높게 적을시키면서 해법을 탐색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