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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2:23~3:21 어둠 속에서 예수님을 만난 니고데모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서 돈바꾸는 자들과 비둘기 파는 가축 파는 자들을 쫓아내셨는데, 성전을 정화하는 열심 때문에 사람들이 놀랐는데, 성경은 탐심이 우상숭배라고 하여, 성막시대부터 성전시대까지 지금도 그렇고, 조심하고 경계할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성전에서 표적을 보이시니, 사람들이 그를 믿었는데, 예수님은 사람 속에 있는 것이 무엇이 있는지 아셨습니다.
23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 24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25 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
사람 속에 무엇이 있나요.
막7:21~22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사람이 겉은 멀쩡한 것 같아도 속이 썩었는데, 이 일을 두고, 선지자들이 여러 가지로 비유하였습니다.
사1:5~6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렘13:23 표범이 그의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에스겔 선지자는 죄를 음녀로 비유하였고, 대표적으로 모세를 통해서 나병 곧 한센씨 병으로 죄를 비유하였는데, 이원영 목사님이란 분은 죄를 하수구 찌꺼기로 비유하였는데, 아무리 깨끗해 보여도, 작대기로 한 번 탁 치면, 온갖 더러운 것들이 올라온다고 하였으며, 토마스 보스턴 목사님은 사람 속에 동물농장이 있다고 하여, 사자보다 더 잔인하고, 너구리보다 더 더러우며, 뱀보다 더 교활한 것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솔로몬을 볼 때, 지혜가 있어도 죄 문제 때문에 암흑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처럼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 왔는데, 그는 놀랍게도 바리새인 지도자였습니다. 대부분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욕하고, 무시하였는데, 그는 니고데모라는 사람이었는데, 니고데모란 이름은 정복자 가장 이성적인 인간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는 구도자였던 것 같습니다. 어둠 속에서 방황하다가 예수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그는 다른 바리새인들과 다르게 예수님을 찾아와 상담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런데 니고데모가 보니 예수님이 하시는 일은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단번에 고치시고, 죽은 사람을 살리시고, 성전의 고질적인 일을 정화하시고 말이 안되는 일을 하셨기 때문에, 니고데모는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찾아왔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께서 나중에 죽으시고 무덤에 계셨을 때, 예수님의 몸에 향료를 발라드렸습니다.
3:1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밤에 온 것입니다. 밤에 왔다는 것은 두려움의 표현입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께 자신의 속마음에 있는 것을 가지고 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동문서답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예수님은 니고데모의 마음을 아시고 대답하신 것입니다. 내가 하는 일은 땅의 차원이 아니다. - 이상근 물이 기름의 차원을 알 수 없습니다. 주께서 우리를 주의 선택과 인도로 우리의 눈을 열어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주를 볼 수 없습니다. 보고도 알지 못합니다. 계시가 그런 것이라고 합니다. 십자가를 매일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듭남의 신비, 도저히 알 수 없습니다. 니고데모 유대인 바리세인 신학자도 모르는 근원적 물음을 니고데모는 하고 있습니다. 니고데모는 주님에 의해서 예수님께 인도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두 번 태어나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이성적으로 알 수 없습니다. 이성적인 니고데모가 거듭나야 한다는 말을 다시 엄마 배속으로 들어가야 합니까 어른이 어떻게 엄마 배속에 다시 들어갑니까 물어보는데,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벧전3:21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성령으로 두 번 태어나는 것입니다. 10개월 정도 엄마 배속에서 살다가 응애 하고 태어나면 100년 정도를 사는데, 그 안에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면 거듭나서 영생을 얻습니다.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엄마가 아이를 낳는 것은 육신입니다. 그러나 아담 안에서 타락한 영은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은 교회 가운데 역사하셔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믿음을 주십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사람 속에 내주하십니다.
롬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구원 중생은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입니다. 구원은 주님의 것입니다. 예수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신데, 사람이 뭐가 잘나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니고데모같은 석학도 그러하였습니다. 박사든 가방끈이 짧든 누구든지 하나님께 은혜를 입어야 중생합니다.
9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도무지 이성으로 알 수 없습니다.
10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중생의 역사는 구약에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이사야와 엘리야입니다. 엘리야는 주는 마음을 돌이키시는 분이라고 하였습니다.
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여기서 우리라고 표현하는데,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구약에서도 가끔 희미하게 보이셨는데, 땅에도 내려오셨습니다. 모세 때, 여호수아 때, 삼손 태어날 때, 다니엘 때, 에스겔 때 보이셨는데, 사람의 아들 같은 자가 내려왔던 것을 선지자들이 목격하였습니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리고 니고데모의 질문 다시 태어나는 것이 어떻게 되는 것이냐의 질문에 대해서 대답하십니다. 광야에서 모세가 원망 불평하던 백성들이 불뱀에 물려 죽어가고 있을 때, 하나님께 지시를 받아 놋뱀을 만들었는데, 세상에는 불뱀들이 날라다닙니다. 뱀은 성경에서 마귀를 상징하는데, 에덴동산에서부터 사람들을 속이고 말씀을 변개하여 죄를 짓게 하였는데, 지금도 그렇습니다. 보이지 않는 세상이 있습니다. 그 중에는 꽃뱀같은 것도 있고 지렁이 같은 것도 있고, 아나콘다같은 것도 있습니다. 죄가 또한 뱀같은 것입니다. 사람이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고, 처음에는 지렁이 같은 죄를 다스리지 않으면 지렁이가 아나콘다가 되어 수많은 사람들을 지옥으로 끌고 갈 수도 있습니다. 구리는 살균작용이 있는데, 뱀같은 병균같은 죄를 놋으로 처리하신 것입니다. 놋뱀은 누구입니까. 아버지 속에 계셨던 아들께서 창세전에 계획하시고, 사람이 되셔서, 이 죄를 다 자신이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감당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롬3:23~26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신 방식 곧 선물을 주시는 방법은, 다시 태어나게 하시는 방법은 예수의 십자가였습니다.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엄마가 고통 중에 피를 흘리며 아기를 낳는데, 하나님의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고통 중에 피흘려 우리 죄를 대속하게 하시는 방법이었습니다.
사53:5~6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목적은 구원입니다. 심판을 좋아하셔서 카운트다운 하시는 것이 아니라, 어찌하든지 한 사람이라도 구원받도록 하시는 것이 목적이십니다.
딤전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벧후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게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믿지 않는 것은 이미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원한 구원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죄로 말미암아 늙어죽던, 어떻게 죽던, 죽음 후에 심판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회가 있을 때, 살아 있을 때 믿어야 합니다.
히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무디는 지옥이 없다면 성경을 불태우라고 하였습니다. 만약 사후 심판이 없다면, 의롭게 살 필요도 없습니다. 사후 심판이 있다는 것은 부활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바울의 말대로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불쌍한 것입니다. 그러면 의롭게 살 필요도 없고, 쾌락을 위해서 살다가 죽으면 장땡이고, 또한 독재자들은 최고로 잘 산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것은 사람이 죽을 때, 모든 것이 나타난다고 하지 않는가요.
고전15:19~22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니고데모가 이 진리 곧 예수님을 붙잡기 시작했을 때, 빛이 스며들기 시작했고, 그는 비록 어둠 속에서이긴 하지만 예수님께 나아갔을 때, 예수님은 이 방문객이 빛 가운데서 살아가도록 도우실 수 있으셨습니다. 니고데모처럼 우리도 의문과 무지와 두려움이라는 어둠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절박함과 절망의 밤을 알고 있습니다. 혼란과 불순종의 어둠을 알고 있습니다. 니고데모가 나중에 바리새인들 앞에서 반쪽자리 변호를 했던 것처럼 우리 역시 믿음이 머뭇거리는 때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예수님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밤 중에 예수님을 만난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대그 함마슐드라는 UN사무총장까지 되었던 외교관인데, 그는 소리없는 내면의 고뇌와 혼란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함마슐드에게도 빛이 스며들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그는 “어떤 순간에 어떤 분이나 그 어떤 것에게 나는 ‘그렇습니다’ yes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이후로 나는 존재의 의미를 확신했으며 나의 삶과 나 자신을 그분께 내어드리는 가운데 목적을 갖게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아주 오랫동안 어둠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어둠의 겉옷을 이용하여 함마슐드를 만나주시고 그를 위해 빛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레노바레 성경
그러므로 어둠 속에서라도 니고데모처럼 함마슐드처럼 예수를 믿어 구원에 이르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하고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