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화창한 가을날, 푸른 하늘이 드리운 한가운데, 조봉숙 선생님과 전남원 선생님, 김태주 선생님, 그리고 김미진 선생님과 함께 소풍을 떠났다. 차창 밖으로 펼쳐진 가을 풍경은 수채화처럼 다채롭고 화려했다. 나뭇잎이 노랗게 물들고 바람에 실려 오는 은은한 꽃향기가 우리의 마음을 더욱 설레게 했다.
우리는 우선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시화전을 관람하기로 했다. 경주문협이 주관한 이번 전시회는 시와 그림이 어우러진 작품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중에서도 전남원 선생님의 시 ‘어여쁜 능소화’는 관객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섬세한 이미지로 그려진 능소화의 아름다움은 꽃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감동을 주었다. 시를 읽으면서 그곳에 피어난 능소화 한 송이가 내 마음에도 깊이 새겨졌다. 꽃의 청아한 아름다움이 세상의 모든 슬픔을 잊게 해주었다.
김미진 선생님의 시조 ‘눈물꽃’은 더욱 깊은 여운을 남겼다. 이 작품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생명을 바친 어린 학도병들을 추모하는 내용으로, 절제된 표현 속에 그들의 희생과 슬픔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시조 속에서 피어난 눈물꽃은 그들의 영혼이 되어 시화전장을 감돌고 있는 듯했다. 우리는 감동적인 작품들 앞에서 몇 장의 사진을 찍었고, 그 중 하나를 액자로 만들어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기로 했다.
전시회장을 빠져나온 후, 김태주 선생님의 정원으로 향했다. 정원은 상사화로 만개해 넉넉한 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붉게 피어난 상사화는 가을바람에 흔들리며 춤을 추는 듯했다. 그 꽃잎이 바람에 실려 살랑이는 모습은 인생의 덧없고도 아름다운 순간들을 떠올리게 했다. 상사화는 흔히 그리움의 꽃으로 불리지만, 그날 그곳에서 본 상사화는 덧없는 시간 속에서도 피어나는 희망과 사랑을 담고 있는 듯했다. 조용히 흔들리는 붉은 꽃들이 내 마음을 채우고, 그곳에서 잠시나마 삶의 아름다움과 무상을 되새겼다.
예술과 자연의 감동이 한데 어우러져 우리는 잔치국수와 부추전으로 점심을 나누며 웃음을 주고받았다. 그 순간들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이후 우리는 양남 주상절리 바다 위의 엔젤리너스 커피숍에 앉아 커피와 팥빙수를 주문했다. 바다의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를 들으며 나눈 대화 속에 전남원 선생님이 시로 적어주신 기억이 스쳤다. 그 시를 바탕으로 만든 노래는 지금도 가슴 한 켠을 따뜻하게 해준다. 음미하듯 한 모금의 커피를 마셨다. 사장님이 감사의 마음을 담아 케이크와 간식을 내어주었을 때, 우리 모두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시간이 흘러 황용 골짜기에 있는 백년 찻집으로 향했다. 찻집의 아늑한 분위기에 감탄하며 대추차를 시켰고 향긋한 차의 맛이 입안을 감쌌다. 그러나 찻값이 한 잔에 8천원이란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 순간 조봉숙 선생님이 비용을 부담해 주셨고 나는 더욱 감사한 마음이 커졌다.
백년 찻집의 따뜻한 차 향기 속에서 김태주 선생님의 이야기는 우리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오랜 친구와의 대화처럼 선생님의 입담은 시간의 흐름을 잊게 했다. 모두가 선생님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중에서도 ‘성탄’이라는 개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인생의 유한함과 함께 그 개의 헌신과 사랑을 떠올리며, 우리 역시 얼마나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인지 깨달았다.
김태주 선생님은 ‘동강에 가고 싶다’라는 시의 사연을 들려주셨다. 차분한 목소리로 시를 낭송하시자, 내 가슴 깊숙한 곳에서 동강의 모습이 그려졌다. 맑고 푸른 강물, 그 위를 감싸는 안개, 고요한 자연 속에서 내가 그곳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김태주 선생님의 시는 마음의 풍경을 그리는 그림이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동강을 품고 있으며,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언제나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해가 저물어 덕동댐을 따라 경주시내로 향할 때, 차 안은 다시 한번 웃음과 이야기로 가득 찼다. 김태주 선생님과 김미진 선생님, 전남원 선생님을 집에 내려드린 후, 나와 조봉숙 선생님만 남았다. 경주가 내 고향이지만, 선생님은 시외버스를 타고 원점인 집으로 돌아가셔야 했다.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다시 교통편을 찾아야 하는 선생님의 뒷모습이 가슴을 아리게 했다.
하지만, 조봉숙 선생님은 나에게 수고했다고 봉투에 돈을 넣어주셨다. 그 따뜻한 마음을 받으며, 나는 집까지 모셔다 드리지 못한 아쉬움이 밀려왔다. 그날의 소풍은 사람의 정과 마음이 오가는 귀중한 시간이었음을 깨달았다. 나는 마음 속으로 결심했다. 앞으로 선생님들께 받은 사랑을 10배로 갚아드리리라. 그날의 기억은 평생 내 마음에 간직될 것이다.
첫댓글
그날의 시간들이
가을빛에 물들어
참 곱습니다
작곡도
드라이빙도
함께 나눈 대화에도
덕분에 다들 멋지게 누렸지요
감사합니다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