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봄
매화 찾아 온 사춘기 이른 벌 봄
아른거리는 꿈 노랗게 핀 산수유 봄
병아리 입에 따다 물고 가는 개나리 봄
언니 십자수 그림 같은 진빨강 명자꽃 봄
버선코 같더니 꽃구름 같더니 꿈같이 진 백목련 봄
황사 몰려오고 바람 불고 산불 소식 들려오는데
덩달아 펑펑 터뜨려 정신 하나도 없게 하는 벚꽃 봄
연초록 잎들이 쏙 나오고, 쑥 돋아나는 들 봄
생명은 어디서 오나 이렇게 고운 봄
두근두근 바라 봄
2. 나도 피었습니다
하하하
하나님, 알겠습니다
매화, 산수유, 목련, 명자,
벚꽃, 살구꽃, 복사꽃....
꽃들의 웃음소리
봄 들판에 가득 넘칩니다
하하하
하나님, 알겠습니다
꽃들의 기도소리
화사한 웨딩마치가 되어
이 길 따라 행복하라고
축복하십니다 그려
하하하
하나님, 알겠습니다
꽃들의 노래소리
나도 내 안의 좋은 말 꺼내어
따라 불러봅니다
봄꽃들 사이에
나도 피었습니다
3. 친구
바람 부는 날
너에게로 가고 싶다
시린 이야기
소리쳐 전하면
절반은 바람이 가져가고
맘 착한 너는
그래, 그랬구나 맞장구쳐 주겠지
절반의 푸념으로도
나는
바람보다 시원해져서
너의 따뜻한 손을 잡고싶다
몹시 바람 부는 날
너에게로 가고 싶다
울음소리
바람이 가져가고
너와 나의 옷자락만 펄럭일 때
맘 착한 너는
말없이 오래도록 내 곁에 있어 주겠지
나는
바람보다 강해져서
너에게 따뜻한 웃음 주고싶다
4. 경포호수 일주 이야기
경포호수를 한 바퀴 돌기는 오늘이 처음이라서 얼얼한 무릎 관절을 접고 앉아 자랑의 말을 늘어 놓을 참이다 참 먼길이라고 생각했는데 걸어보니 되더구만 별것 아니더구만 바람이 세다고 시간이 없다고 미루기만한 도전이었는데 미워하면서 정든 사람과 이런저런 이야기 핑퐁처럼 주고받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세상살이도 읽으면서 물오리들의 교성에 아, 너도 거기 있었구나 맞장구치면서....내 옆의 유식한 남자가 또 한 마디 하네 유구한 백구가 아니라 유신한 백구라고 홍장암에 새겨진 글귀의 잘못을 꼬집네 넉넉잡아 한 시간 이 여유에 감사하고 두 발로 걸을 수 있는 요만큼의 건강에 감사하고 또 옵시다 이러다 정들겠수 웃으며 왔지요
5.케냐의 양파 파는 할아버지
먼 길을 걸어 도착한 케냐의 야시장
하얀 웃음이 창공의 구름처럼 맑은 할아버지
양파를 파네
남도의 뜨거운 태양과 붉은 흙 아래에서 익은
탱글탱글한 양파
두툼한 검은 손으로 자랑스레 어루만지네
보석처럼 귀한 양파라서
절대로 한 사람에게 두 망씩 파는 일은 없지
또 너무 서둘러 얼른 팔아버리지도 않는다네
기쁘게 양파를 사가지고 가는 사람들과
하루 종일 행복한 할아버지
해는 케냐의 붉은 땅을 천천히 지나가고
할아버지 마지막 양파도 천천히 팔려나가네
6. 연애
연애하는 꿈을 꾸었네
아슬히 지키던 마음
봇물처럼 무너지는 꿈을
망측해라
이 난봉 어디서 생겼을까
아침 내
꾼 꿈 생각하네
어제 나들이 길 그 산자락
만개한 눈부신 산봄꽃이
벌렁거리는 내 가슴 훔쳐보고
그예
꿈길까지 따라 온 거야
춘몽이 허황하나
얼굴 붉혀 되뇌는 마음
꽃비로 흩날리네
7. 무말랭이
시들해져버리면
바람만 거리에 가득하고
창문을 여는 일도 없이 하루가 간다
동면이야!
누군가의 말이 짧게 빛났다
습기가 다 빠지고 나면
주름뿐이지
꼬들꼬들 씹히는 맛이야 있지
달짝지근한 뒷맛도
무 때보다 영양가가 월등 하대요
누가
날 나박나박 썰어 주세요
그리고
얼음볕에 쌔들쌔들 말려 주세요
배배 꼬여
박제된 채로
시렁시렁 한 겨울 니내나보게요
8.초콜릿
초콜릿을 먹네 달콤한 초콜릿
목구멍 저 넘어로 밀어 넣네
프로이드, 융, 아들러가 턱을 괴고 바라보네
바깥에는 비바람
창으로 들이치며 흘러내리네
번지는 빗물
어떤 빗물은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가
뚝 떨어지네
나무들이 아우성이네
살려달라는 건지 즐겁다는 건지
알아들을 수 없네
부르르 떨고 있는 창
저 너머 먹구름 속에 100밀리의 비가 더 있다고
빨간 원피스를 입은 아나운서가 말하네
친절하게도 오늘까지만 비가 오겠다고
말해주었네
9. 모나리자
작고 평범한 것에 행복을 담아놓았다기에
물 한 잔 들이켜고 숨은 행복을 찾아나선다
트인 창으로 바람 한 줄기 지나고
매미소리 끊어졌다 다시 이어진다
지구가 돈다는 말은 여전히 믿기지 않지만
해는 오늘도 동쪽에서 뜨고
서쪽으로 천천히 지나갔다
얼굴 근육을 펴고 자세를 바로하고
두 손 가지런히 모으고
조용히 미소 지으면
찾아드는 안정
슬픔이여 안녕, 나는 아무것도 비교하지 않는다
퍼낼수록 맑아지는 샘처럼
이 고요에 굄 고이면
벗이여, 오라
10. 바다는 연애중
하나 같이 바다를 향해 앉아있다
무슨 말이 오고갈까
사람마다 다른 말 속속들이 알아듣고 있을까
바다는 가파른 파도를 밀고 와
흐느끼듯 하얗게 부서진다
말 없는 말도 알아듣는 하나님처럼
바다는
말 없음으로 말하는 법을 배웠을까
수많은 눈물이 모여 바다가 되었다는 전설은
이제 점점 잊혀져가고 있다
누가 누굴 위해 운단 말인가
아니다
그래도 아직 네가 울어 나도 따라 울게 되더라
바다에 와서야 비로소
파도가 바다의 흐느낌인것을 알게 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