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지계제일(持戒第一) 우바리(優婆離)
계율이란
하나의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그 구성원 간에 해서는 안 될 원칙이라거나 약속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조건이 무너질 경우 그 공동체는 와해되고 만다. 부처님 초기 교단도 이와 마찬가지로 교단의 원활한 운영을 위한 규약이 필요했다. 그것을 계율(戒律)이라 한다.
원래 계율이란 계(戒)와 율(律)이라는 두 가지 말의 합성어다. 계란 산스크리트 쉴라(slla)에서 나온 말로, 그것은 행위, 습관, 경향 등을 뜻하는데, 명상, 봉사, 실천을 의미하는 말에서 파생된 것으로 스스로 행위하는 자율적 의미가 강하다.
따라서 이것은 인간의 윤리적 행위 내지는 도덕을 강하게 내포하며 양심에 따른 행위를 강조할 뿐, 타율적인 강제 조항은 없다. 반면 율은 비나야(vinaya, 毘奈耶)에서 나온 말로 제거, 훈련, 교도 등을 의미하며 규칙, 규범, 규율 등의 뜻으로 쓰이고 있다.
여기에서는 그 규칙을 지키지 않을 경우 당사자에게 법적인 제재를 가하는 타율성이 작용한다. 규율을 범할 경우 그에 해당하는 벌이 따른다. 요즘의 법률을 보면 그러한 모습을 잘 엿볼 수 있다.
요컨대 계율이란 양심의 소리에 의한 자율적 행위와 조화로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타율적 강제 조항이 섞여 있는 말로서 보다 원만한 공동 생활의 유지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원칙이다.
그러나 소승적 의미에서 계율이라 할 경우, 그것을 범할 경우 제재를 당하는 타율적인 금계적(禁戒的) 의미가 강하며, 대승적 의미에서는 개인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할뿐더러 적극적인 이타적 선행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계율에 대해서 우리가 떠올려야 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몸과 마음이 깨끗하지 않은 상태에서 수행을 하게 되면, 그것은 청허휴정(淸虛休淨) 스님의 말씀대로 모래를 쪄서 밥을 짓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계율 준수는 수행자들이 아주 기본적인 조건인 것이다.
지계제일(持戒第一) 우바리
지금 소개할 우바리 존자는 계율을 지키는 데 있어 타의 모범이 되었을뿐더러 그 계율 조항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부처님 십대 제자 중 한 사람이다. 게다가 그는 노예 출신으로 부처님 교단에 입교한 대표적인 인물로 계급을 떠난 부처님 교단의 평등성을 몸으로 보여준 인물이다.
우바리의 산스크리트 명은 우팔리(Upali), 한역하여 우바리(優婆離)라 했다. 그는 노예 출신이라서 그런지 그에 대한 상세한 기록을 불경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는 인도 사성 계급 중 최하층인 수드라(sudra)출신으로 샤카 족의 이발사 노릇을 하고 있었다.
어느날 그가 모시고 있던 밧디야(Bhaddiya), 아니룻다(Aniruddha), 아난다(Ananda), 난다(Nanda), 브리구(Bhrgu), 킴바라(Kimbara), 데바닷타(Dvadatta) 등 7인의 석가족이 한꺼번에 출가하면서 살림살이를 모두 그에게 넘겨주었다.
우바리는 자신만이 천민 출신이라 출가하지 못한 사실에 대해서 유감으로 생각하지만 다음과 같이 마음을 굳게 다지고 출가를 감행하게 된다.
'나는 본래 이들 석가족 아이들에 의해서 살아왔는데 오늘 나를 버리고 부처님의 제자가 되고자 떠났다. 나도 차라리 그들의 뒤를 따라 출가하리라. 만일 그들이 얻는 바가 있으면 나도 얻는 바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하여 우바리는 그들 석가족의 사촌 형제들을 따라 집을 떠나게 된다. 그런데 왕자들은 출가에 따른 무소유와 평등 정신을 보다 철저하게 되새기려 했음인지 부처님께 다음과 같이 사뢰는 것이었다.
"......바라건대 우바리를 먼저 득도(得度)케 해 주십시오. 그 이유는 저희들은 교만한 생각이 많았으므로 그 교만한 마음을 제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우바리가 제일 먼저 수계를 받고 윗자리에 앉게 된다. 출가 교단에서는 사성의 차별이 없고 대신 출가한 순서에 따라 자리를 정했기 때문이다.
난다(Nanda)는 부처님의 이복 동생으로서 정반왕과 그의 이모 마하파자파티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그 역시 수계를 받고 출가하여 먼저 출가한 사문들에게 차례차례로 예를 표해 오다가 우바리 앞에 이르렀을 때 예 올리기를 머뭇거리자,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교단 안에서는 오직 수계 순서에 따른 전후가 있을 뿐, 귀천이 따로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여기에서 계급과 신분의 차별을 떠난 승가 사회의 평등성과 승가 사회만의 엄격한 규율을 살필 수 있다. 사성 계급의 차별은 거기에서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이렇게 해서 우바리 존자는 부처님 교단의 동등한 일원으로서 수행자의 길을 갔다. 게다가 그는 사회에서의 직업이었던 이발사의 기능을 살려 부처님의 머리를 깎아 주게 되었다. 그러면서 부처님이 친히 전한 계율에 관한 사항을 꼼꼼히 기억해 내 거기에 따라 빈틈없이 행위한다. 그래서 증지부(增支部) 경전에서 "나의 제자 중에서 지계 제일은 우바리이니라"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게 된 것이다.
초기 교단에서 수계 의식은 삼귀의 내지는 오계(五械)에 대한 맹세가 전부였다. 그 삼귀의란 주지하다시피 불(佛), 법(法), 승(僧) 삼보에 대한 귀의를 말하며 오계란 살생과 도둑질과 음란한 행위, 거짓된 말, 그리고 음주를 불허하는 다섯 가지 금계를 말한다.
우바리나 여덟 왕자 모두 이 삼귀의 내지는 오계를 받아들이는 수계식을 통해서 정식으로 불문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이다. 그 수계의 과정을 거쳐 출가 사문이 되는 것이다. 그 수계의 과정을 거쳐 출가 사문이 되는 것을 득도(得度)라 한다.
그러나 맨 처음에 다섯 가지에 불과했던 계율은 승려들의 비행이 있을 때마다 새로운 금지 조항을 만들어져 계속 늘어나 최종적으로 비구 250계, 비구니 338계로 확정된다. 승려들의 비행이 있을 때마다 부처님은 그에 걸맞는 계율을 선포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범죄한 행위에 따라서 계를 정하였기 때문에 이를 일러 수범수제(隨犯隨制) 또는 범계수제(犯戒隨制)라 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우바리는 부처님 곁에 늘 붙어 다니면서 부처님의 말씀하시는 계율조항을 빠짐없이 기억해 내고, 그것을 실천해 내는 데 당연 앞선던 것이다.
그 결과 우바리는 왕사성 칠엽굴에서 벌어진 첫 번째 결정 결집 과정에서 율(律)을 빠짐없이 외워내고 500나한의 공인을 받아 율장(律藏)을 만들어내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우바리는 불교 율장의 제1조로 자리잡게 된다.
오늘날 계율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우바리는 한때 인가에서 떨어진 한정처(閑靜處)인 아란야(aranya)에서 수행하고 싶어 했으나 부처님은 이를 허락하지 않고 교단 내에서 계속 수행을 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우바리여, 아란야로 들어가서 수행하기 알맞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도리어 아란야에 들어가서 수행을 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우바리여, 그대에게 아란야는 걸맞지 않다. 그대는 교단 안에서 수행을 계속 하도록 하라. 그대는 그러는 편이 좋다."
어떤 불교 학자는 진정으로 지계 제일이라고 불리는 자가 인가에서 동떨어진 한가하고 고요한 곳에서 수행한 사람이 아니라, 교단 안에 있으면서 수행한 우바리였다는 사실을 중요한 요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현재 불교는 도심 속으로 계속 내려오고 있는 중이며 도심 속에서 둥지를 틀어가고 있다. 이에 따라 이제는 산중 사원의 스님들에게 알맞게 짜여진 계율은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국 선원이며 우리 나라의 청규(淸規)도 따지고 보면 당시 중국 선찰의 자급자족적 승단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
논을 갈고 밭을 일구는 것은 인도불교의 계율관에서 보면 분명히 계율 위반이다. 그러나 청규는 오늘날도 그 빛을 발하면서 선승들의 생활에 깊게 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그 계율의 제정이 한날 한시에 동시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제정된 것이라면 오늘날의 계율도 현대의 실정에 적합한 계율로 다시 정립되어야 하며 재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옛날에 인도 사회에서 제정된 계율을 오늘날 첨단 문화를 걷는 한국의 승가사회와 재가 신도들에게 고스란히 적용시킨다는 것은 마치 성경의 한 자 한 획도 바꿀 수 없다는 보수주의 신학자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교조주의자들이다.
"산업 사회적 기초 위에 농경 사회적 윤리 체계를 세우려는 시도는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하기는 어려우나,.....현실적으로 불가능하거나 부자연스럽다"는 어느 철학 교수의 말을 곰곰 새겨 볼 일이다.
율장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우바리 존자는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리고 그러한 계율을 제정한 부처님이 오늘날 우리 곁에 오신다면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떤 응답을 내리실까?
이 자리에서 원효 대사가 말한 지범개차(持犯開遮)의 의미를 떠올려 본다. 계율의 조항에 얽매어 생기 발랄한 삶을 구속하기보다는 그 계를 지키고 범하며 열고 닫는 데 자재로워야 할 것이다.
지범의 행위보다는 행위의 주체로서 본성의 더러움과 깨끗함에 역점을 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