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악을 막을 의지는 있지만 능력이 없는가? 그렇다면 신은 전능하지 않다. 신이 악을 막을 능력은 있는데 의지가 없는가? 그렇다면 신은 선하지 않다. 신이 악을 막을 능력도 있고 의지도 있는가? 그렇다면 이 세상의 악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가? 신이 악을 막을 능력도 없고 의지도 없는가? 그렇다면 왜 우리가 그를 신으로 불러야 하는가? [에피쿠로스의 역설]
‘악의 문제’라는 타이틀로 방대한 내용이 나무위키에 기술되어 있다. 인류는 방대한 삽질을 하고 있다. 인간은 도무지 생각을 안한다는 증거다. 악은 인간의 행위다. 악이 존재하는게 아니라 악행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 악이라는 원소나 물질이 존재하는 것처럼 말한다. 인간의 행위가 악행인데 동사를 쓰지 않고 명사를 사용하여 헷갈리게 한다. 진지하지 않은 말장난이다.
원인이 아니면 결과다. 원인은 명사나 동사가 될 수 있지만 결과는 동사만 될 수 있다. 악을 명사로 쓰는 것은 편의로 가정한 관념이다. 말하기 좋도록 왜곡한 것이다. 그냥 밤이 있는데 밤을 까면 껍질이 나온다. 껍질은 인간이 밤을 깠기 때문이다. 쓰레기는 인간이 물품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사용하지 않으면 쓰레기도 없다. 밥을 먹지 않으면 똥도 없다. 그것은 인간의 행위한 결과다.
어떤 선한 사람이 김일성 주석님 사진이 비를 맞고 있다고 소리쳐서 이후 모든 북한 주민이 괴롭게 되었다. 신문에 난 김일성 사진을 오려서 보관해야 했다. 어떤 선한 사람이 훌륭한 사또님을 위해 송덕비를 세우자고 제안하는 바람에 조선왕조가 망했다. 아전들이 전관 사또의 송덕비를 세운다는 구실로 강제모금을 했다. 존댓말은 좋은 말인데 이후 모든 한국인들은 고생하게 되었다.
어떤 착한 사람이 스승의 은혜에 감사하는 바람에 이후 모든 학부모가 학교에 촌지를 바치게 되었고 그것이 교실붕괴로 이어졌다. 우리가 합리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 많은 경우 선은 비합리적이다. 비용이 효용을 넘는 선은 악이다. 악이 존재하는 이유는 많은 경우 선이 의도를 벗어나 실패하기 때문이다. 선 바깥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악은 없다. 선행이라도 결과가 나쁘면 악이다.
순수한 악은 없다. 순수한 악은 악 자신에게도 악하여 악 자신을 파멸시키기 때문이다. 악은 자기 자신에게만 선하거나, 가족들에게만 선하거나, 패거리에게만 선하거나, 자신의 일시적인 기분에만 선하거나 하는 식으로 문을 닫아거는 것이다. 선에 제한을 두는 것이 악이다. 그러므로 닫힌사회는 악이다. 고립된 작은사회는 악이다. 정의당이 악인 이유다. 개방을 반대하는 집단이 악이다.
마약을 섭취하는 자도 지금 이 순간의 자기 기분에는 선하다. 매우 기분이 좋다. 좋으니까 선이다. 내일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결과가 잘못되면 악이다. 잘못되는 이유는 공간의 밸런스를 조절하지 않고 시간의 전략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부분이 전체를 넘으면 악이다. 현재가 미래를 막으면 악이다. 비용이 효용을 넘으면 악이다. 단기적인 이득이 장기적인 권력을 넘으면 악이다.
인간이 선을 지향하므로 악이 발생한다. 흥부가 놀부를 만든다. 선은 합리적이어야 한다. 감성팔이, 진정성타령, 성찰놀이, 품성놀이, 인성놀이, 생태타령이 선을 비합리적으로 만든다. 사람을 격동시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관종 특유의 권력의지가 개입하는 순간 곽튜브 되고 강형욱 된다. 차라리 개대장의 위악이 낫다. 김기덕은 알고 있었다. 영화의 주인공들이 위악을 저지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