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할머니 이야기
그날은 재수 좋은 날이었다. 미뤄져 왔던 제법 큰 거래를 성사시켜 계약서를 쓰고 나니 조금 긴장이 풀려 왔다. 함께 일하던 실장도 들뜬 마음으로 다른 날보다 일찍 퇴근했다. 나도 오랜만에 집에 들어가 저녁 식사를 하고 싶어졌다. 내일 교차로 신문에 낼 광고물건을 골라 서둘러 pax로 전송하고는 컴퓨터를 끄고 책상을 정리할 그때였다. 출입문이 조심스레 열리며 할머니 한 분이 들어섰다.
차림새가 예사롭지 않았다. 때 이른 모피코트에 귀걸이, 브로치, 가락지까지 온통 황금색 장신구가 번쩍였다. 마치 화려한 파티에 참석하러 나온 귀부인 같은 바로 그런 차림새였다.
들어와서 잠깐 주위를 살피더니 이내 내게 다가와서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작은 평수의 전세 물건이 있는지 물어 왔다. 그리고는 목이 탔던지 스스로 음료수대에 다가가 컵에 물을 따라 급하게 마시었다. 나는 곧바로 일어나 안내 탁자에 자리를 권하고는 냉장고 문을 열어 비타민 음료수 한 병을 꺼내 드렸다. 이럴 때 중개사는 손님의 마음을 느긋하게 안정시켜 대화의 문을 열게 하는 것이 최선이다.
당시 작은 평수의 전세 물건은 매우 귀했다. 내놓는 사람도 없을뿐더러 나오면 바로 계약되기 때문에 항상 대기자가 순서를 기다린다. 대학교가 가까이 있어 학기가 끝날 즈음에야 겨우 한두 건 계약이 성사되는 상태였다. 그런 상황을 말씀드렸더니 매물이 있다면 살 수도 있다고 했다. 말투는 은근히 자신의 경제력을 과시하는 모양새다. 차림새는 화려했지만 가까이 보니 짙은 화장 밑의 주름살은 숨길 수 없었다.
중개사는 어쩌다 인생 상담사가 되기도 한다. 부동산은 작은 거래라도 본인의 경제적 여건이나 살아온 처지가 어느 정도 노출될 수밖에 없다. 어떤 경우에는 거래와는 상관없는 잡다한 사생활문제까지 대화가 이어지기도 한다. 할머니는 마음에 안정이 되었는지 내가 묻지도 않은 말들을 먼저 늘어놓는다. 이럴 땐 그 사실 여부를 떠나 그저 들어주기만 해도 된다.
남편은 시중은행의 지점장이었다 한다. 정년퇴직을 앞두고 안타깝게도 먼저 세상을 떠났지만, 가족들은 넉넉한 생활을 했다. 다가구 주택 한 동 이외도 상당한 유산을 남겨주었다. 문제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었다. 부족함이 없이 자란 탓인지 도대체 직업도 없이 놀기만 했다. 정신을 차릴까 해서 결혼을 시켰지만 나아지질 않았다. 오히려 새 식구가 된 며느리와 마음이 맞지 않아 갈등만 더 키웠다. 그렇다 보니 귀엽던 손자도 귀찮아졌단다.
생각 끝에 자신 명의였던 다가구 주택을 매도하고는 함께 살았던 아들 가족을 쫓아냈단다. 이제 혼자서 새로 살 집을 구해야 하는데 무릎 관절이 좋지 않아 계단 오르기가 어렵다. 그래서 꼭 엘리베이터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대화 중엔 은연중 외로움이 묻어 있었다.
다가구 주택은 한때 봉급생활자의 로망이었다. 평생 돈을 모아 3, 4층 높이의 다가구 주택을 짓는다. 상층 전체 면적을 살림집으로 꾸며 가족이 쓰고, 아래층은 원 투룸으로 세대를 구분하여 세를 놓으면 평생 수입원이 된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여러 가구를 세 놓고 관리하는 일은 생각처럼 녹녹하지가 않다. 나이 칠십이 된 노인이 높은 층의 계단을 매일 이용하기에도 무리가 올 수밖에 없었겠다.
아들 가족을 쫓아냈다는 말에 선뜻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대개 혼자된 엄마는 자식에 대한 애착이 많은 편이다. 쫓아냈다는 표현 뒤에는 그동안 아들 가족과 심한 불화를 말해준다. 혹시 화려한 몸치장은 심적 갈등과 공허함을 채우려는 자존감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중개사로서 한 건 해보겠다는 생각은 아예 달아나 버렸다.
“할머니, 이제 연세도 있으신데 주거 문제는 신중히 생각하세요. 손주가 보고 싶지 않으세요?”
나름 안색을 살피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손자가 귀찮다고는 했지만, 골이 깊어진 자식보다는 손자 이야기부터 풀어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한동안 긴 이야기가 오고 갔다. 아들과 좀 더 화해해 보는 쪽으로 말을 건넸다. 할머니는 앞으로 누군가의 돌봄을 받아야 할 처지이다. 아프고 외로울 때 누구와 함께해야 할까. 노년기의 생활이 재력으로만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배우자가 없다면 더욱 그렇다. 그래도 우선은 몸으로 낳아 키운 자식에 의지 하는 것이 낮지 않을까?
함께 살지는 않더라도 먼저 자식 가족의 거처를 마련해주고 가까운 곳에 이웃하며 사는 방법으로 권해드렸다. 물론 중개사의 의견이 최선일 수는 없다. 형편에 따라 다를 수 있고, 판단은 할머니 몫이다. 적지 않은 연세에 재산에만 집착하며 자식에까지 인색한 것이 아닌지 연민이 스쳐 지났다.
속마음을 토로하기만 해도 속이 시원해질 때가 있다. 할머니는 처음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보다는 얼굴이 많이 밝아졌다. 중개사의 말에 공감했는지는 모르겠다. 창문 너머엔 어느덧 해가 저물고 어둑어둑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할머니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팔목 사이로 굵은 황금 팔찌가 조명등에 번쩍였다.
“할머니, 날이 어두워지는데 간직한 물건들 잘 챙기세요.”
언뜻 내 말의 뜻을 이해했는지 성급히 귀걸이 브로치 반지들을 모두 빼내어 안주머니에 간수해 넣고는 출입문을 나섰다.
오래전 이야기지만, 짙은 갈색 모피 코트에 축 처진 어깨로 계단을 힘겹게 내려가시던 그 뒷모습이 지금도 어쩌다 생각날 때가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