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스케일 (Scale)
스케일이란 말의 의미는 참으로 묘해서 건축가들은 그 말을 둘러싸고 있는 모호함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건축'이란 말보다도 오히려 스케일의 의미가 더 혼란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다음에 열거하는 것은 건축가들의 회의 및 제도실, 현상설계의 심사, 세미나 또는 건축에 관한 평론 등에서 사용되는 표현 중 몇 가지 예입니다. 즉, 인간적 스케일, 비인간적 스케일, 친근한 스케일, 미적 스케일, 작은 스케일, 큰 스케일, 거대 스케일, 초 스케일, 구조적 스케일, 보행자 스케일, 자동차 스케일, 주택적 스케일, 도시적 스케일, 우아한 스케일, 아웃 오브 스케일(스케일에 맞지 않은) 등입니다. 특히 가장 마지막 스케일이 즐겨 쓰이는 말입니다. 이들 어휘들은 각기 다른 뉘앙스를 가지고 있으며, 둘 또는 세 가지의 다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이것만으로는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건축가들 사이에서 이러한 혼란이 있다고 해서 당신까지 건물의 감상에 폐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그들이 말하고 있는 것은 다만, 사물의 상대적 크기일 뿐입니다. 그들이 만약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이 건물은 본래의 크기보다 두 배가 크다"라든가 "천장 높이가 여기서는 사람 키의 두 배가 되었어야 할 텐데 세 배나 되고 있다." 또는 "이 문은 보통 문보다 4피트가 높고 1피트 넓다." "이 방은 너무 커서 나는 개미가 된 느낌이다." "방이 너무 작아서 난 꼭 거인이 된 것 같아" 등등으로 말하면 될 것을 그들은 "스케일이 비인간적이다"라든가 "이것은 스케일에 안 맞는데"라고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아마도 당신은 "그것이 너무 크다든가, 너무 작다 하는 두 가지 표현만 있으면 될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습니다. 왜 그것이 너무 크고 너무 작은지 자신에게 물어보면 여러 가지 많은 답이 나올 것입니다. 그래서 건축가들은 사물의 상대적 크기에 관련된 많은 표현을 쓰는 것입니다. 건축가나 평론가 또는 역사가들이 즐겨 쓰는 스케일에 관한 표현을 모두 기억하거나 이해하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물리적 스케일, 연상적 스케일, 그리고 실효적 스케일 등 세 가지 어휘는 알아 두어야 할 것입니다. 이 밖의 여러 종류의 스케일들은 모두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물리적 스케일 (Physical Scale)
물리적 스케일은
자로 측정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계단을 예로 들면 철판의 높이(계단 한 단의 높이)가 4인치(10.2cm)인지, 7인치(17.8cm)인지, 너무 급하지 않을지, 디딤판은 12인치(30.5cm)라면 넓이가 충분한가, 계단을 오르내리기에 어렵지 않은가? 등을 말합니다. 또 문의 경우 충분한 폭을 갖고 있는가, 피아노를 갖고 들어갈 수 있겠는가,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출입하기에 충분한 크기인가, 아니면 고양이나 겨우 출입할 수 있는 정도인가 등이 거론되기도 하며, 8자(2.4m) 사방의 벽걸이를 장식할 충분한 높이의 벽, 열두 사람이 함께 식사할 수 있는 크기의 식당, 4천 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크기의 회의장 등으로도 말합니다. 이들은 모두 물리적 스케일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그것은 아웃 오브 스케일인데(척도가 안 맞는데)"라고 말하여 너무 작은 것을 뜻할 때 우리는 그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웬만큼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러나 좀 더 구체적으로 "피아노를 넣기에는 너무 작다"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가 말하려 하는 바를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즉 물리적 스케일이 맞지 않고 너무 작다는 얘기입니다. 그것은 단지 작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실제 물리적으로 너무 작은 것입니다.
물리적 스케일은 측정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연상적 스케일 (Associative Scale)
연상적 스케일을 측정하기는 힘든 일입니다. 즉 자로 측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단지 "무엇이 무엇처럼 보인다"라고 밖에 안 됩니다. 그러나 감각적으로는 그것이 현실의 것이고, 측정할 수 있는 것이며, 눈과 기억이 측정하는 것입니다.
연상적 스케일을 이해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파르테논 신전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잊히지 않는 이미지를 갖고 있고 그는 여신 미네르바를 위해 만들어진 거대한 계단에 경탄하게 됩니다. 그것은 확실히 인간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은 아름다운 프로포션이나 훌륭한 솜씨에 주목하고, 특히 고대 그리스 신전의 인상적인 크기에 마음을 두게 됩니다. 그의 마음속에 있는 것은 이 건물의 물리적인 스케일인 것입니다.
이때 이 사람이 파르테논 신전과 똑같은 프로포션에 같은 재료, 같은 솜씨, 같은 주위 환경을 갖고 있는데도 물리적인 스케일만 반으로 줄인 다른 파르테논을 보게 된다면 그의 체험은 전혀 다른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파르테논이 아니야, 이것은 모조품이고 진짜를 줄여 놓은 것일 뿐이야,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형편없는 복제품이야"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것이 그에게 형편없는 것으로 생각되는 것은 실제의 크기가 큰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실물과 관련시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고, 연상적인 스케일의 등장입니다. 이와 같이 거대한 건물을 줄여 놓은 축소형을 보는 것은 피해야 할 것입니다. 당신도 같은 경우를 당하게 되면 그런 반응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이 사람이 파르테논 신전을 실제로 본 적이 없다면 반으로 줄여 놓은 것을 좋아했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거대한 3층 집인 콜로니얼 스타일의 저택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흔히 교외에서 볼 수 있는 축소된 단층집의 비슷한 양식을 보고 그리 나쁘다는 생각은 안하게 될 것입니다. 한번 실제의 것을 보게 되면 그 축소형은 모조품으로 보이게 됩니다.
휴스턴 교외에 사는 어떤 여인은 비행기가 자신의 집으로부터 1마일 떨어진 곳에 추락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보안관 사무실에 보고해 왔습니다. 그래서 구조차량이 현장으로 급히 달려갔으나 그들이 발견한 것은 참혹한 비행기의 잔해가 아니라 그녀의 집에서 불과 70미터 떨어진 곳에 약간 망가진 모형비행기일 뿐이었습니다.
왜 이 여인은 비행기가 추락했다고 보고하였는가를 이해하는 것은 간단한 일입니다. 그 여인의 눈이 그녀를 속인 것입니다. 그것도 물리적 스케일이라는 단지 한 가지 이유에서입니다. 그 여인이 본 비행기는 실물과 똑같은 모양, 같은 프로포션, 그리고 같은 표식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공중에서 그 모형비행기는 실물 비행기처럼 움직였고, 연상적 스케일에 의해 그 여인에게는 정말 실제처럼 비쳤던 것입니다.
연상적 스케일은 전례에 따라 결정됩니다.
실효적 스케일 (Effectual Scale)
건물은 물리적 스케일을 만족시켜 그의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충분히 클 수 있고, 연상적 스케일을 만족시켜 그 크기가 역사적으로 올바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크기에 대한 심리적인 면은 어떨까? 건물이 얼마나 크고 또는 얼마나 작게 느껴지는 것일까?
여기서 보여주는 예에 대하여 생각해봅시다. 왼쪽 그림은 창이 없는 공간으로 작게 "느껴진다" 오른쪽 그림처럼 한 면에 유리를 끼우게 되면 물리적으로는 그 크기가 같지만 훨씬 커진 것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느낌은 실제로 3피트(90cm)만큼 높고 넓은 것처럼 여겨집니다. 공간은 시각적으로 확장된 것이며, 이제 외부는 내부의 일부가 되고 있습니다. 실효적 스케일은 말하자면 크기의 착각에 관계되는 것입니다. 1940년대 말에서 50년대 초에 걸쳐서 자재의 부족과 건축 지금의 부족, 그리고 건설 예산의 경직 등으로 인하여 건축가들은 주택의 바닥면적을 최소한으로 축소시켰습니다. 이때 실효적 스케일을 적절히 사용하여 훌륭한 작은 주택들을 만들었습니다. 이들의 디자인 방법 중의 하나는 거실, 식당, 부엌을 각각 방으로 처리하는 대신에 그들 사이의 칸막이벽을 없애고 기능적 영역군(functional areas)으로 했습니다. 만약 그들을 네 개의 벽으로 둘러싸인 방으로 처리했더라면 그 방들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작았을 것입니다.
이 시기에는 별로 작게 느껴지지 않게 집들이 세워졌습니다. 때로는 폭이 6피트(1.8미터) 밖에 안 되는 부엌의 한쪽에 조리대가 배치되고 또 한쪽에 냉장고, 가스대, 개수대 등이 배치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겨우 통과할 수 있을 정도의 통로밖에 안 되었으나 그 부엌은 넓은 느낌을 주었습니다. 한쪽의 조리대 위에는 천장까지 통 판유리를 끼워서 답답해 보일 수도 있었던 공간을 쾌적하고 커 보이는 부엌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내부를 크게 보이게 하기 위하여 외부를 빌려온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너무 크다고 생각되는 공간이나 형태에 관련된 경우에는 실효적 스케일을 이해하기가 약간 어렵습니다.
옆의 위 그림에 대하여 생각해 보면, 한 남자가 서 있으나 그 방의 물리적 스케일에 압도되어 있습니다. 그에게 이 공간은 무엇인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그에게는 그 방이 너무 크게 느껴지고, 공간은 위압적이며, 천장은 너무 높다고 생각되고, 방의 넓이는 쾌적하다고 느끼기에는 너무 큽니다. 말하자면 이 남자는 인간의 존재성을 빼앗기고 있다고 느끼며 "이 방은 인간적 스케일이 아니다"라고 말할 것이며 결코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는 텅 빈 빵 상자 속의 개미처럼 자신의 존재를 잃고 무의미함을 느끼게 됩니다.
"인간적 스케일'을 보면, 그것은 8피트(2.4미터) 천장이 거나 80피트(24m) 천장을 뜻하는지? 또 계단에 서 4인치(10센티미터)의 단 높이나 2피트(6.1미터)의 단 높이를 뜻하는지, 과연 그것은 자로 재거나 심리학적 실험으로 측정이 되는 것일까? 여기에서 관심은 다만, 공간의 실효적 스케일입니다. 이 남자에게 그 방은 너무 크게 보입니다. 그러면 이 공간의 어디가 잘못된 것일까? 그에게 는 심리적으로 너무 크다고 하더라도 만약 바로 아래 그림처럼 그와 많은 사람들이 함께 있다면 그는 어떻게 느낄까? 아마도 훨씬 마음을 편하게 느낄 것입니다. 실내 자체는 물리적으로 아무런 변화가 없었지만 전혀 다른 공간이 됩니다. 단지 변화한 것이 있다면 실효적인 스케일일 것입니다. 즉 이제 공간은 위협을 주지도 않고 그는 여러 사람이 모인 그룹의 일원으로서 천장 높이도 적당하게 느껴지며,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실제 효과는 정황에 따라 변합니다.
여기의 예에서 이 공간은 한 사람에게는 너무 크지만 147명의 사람에게는 적당한 크기일 것입니다. 인간적 스케일은 그곳에 인간이 얼마나 있는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여기서 사람이 혼자라 하더라도 반드시 큰 공간에 압도되는 느낌이 드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컨대 1194년대 건설이 시작된 샤르트르 대성당(Chartres Cathedral)은 사람에 따라 해방감을 맛보게 하고 어떤 사람은 비인간적으로 느낄지도 모릅니다. 결국 실효적 스케일은 사람에 따라, 그리고 어떤 때에 공간을 체험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건축은 한 개인의 개인적 체험이므로 실효적 스케일은 물리적 스케일과 마찬가지로 그 개인에 따라서 리얼 (real)한 것이 됩니다. 실효적 스케일은 심리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