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가. 몸 밖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참 사람의 기준점이 될 뿐, 대속의 죽음이 아니다.
나. '징계'로 번역한 '파이데이아'는 징계가 아니라 아들에게 하는 훈련, 교육, 양육의 뜻이다.
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리는 비유로 자신을 말씀하셨다.
라. 그 하늘들과 그 땅의 마음 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의 씨를 뿌리기 위한 개간의 대상이다.
2. 본론
“주께서 우리로 이웃에게 욕을 당하게 하시니 둘러 있는 자가 조소(嘲笑, 흉을 보듯이 빈정거리거나 업신여기는 일)하고 조롱하나이다(시 44:13)
우리는 우리 이웃에게 비방 거리가 되며 우리를 에운 자에게 조소와 조롱거리가 되었나이다(시 79:4)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시 53:2)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마 27:30)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눅 23:39)”
가. 몸 밖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참 사람의 기준점이 될 뿐, 대속의 죽음이 아니다.
구원은 각자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몸 밖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대신 해주는 것이 아니다. 몸 밖으로 오신 역사적 예수는 단독자로서 그 길을 안내하는 인간의 표준을 제시하신 분으로서 그와 같은 모양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내면에 이미 와 계신 근본(엔 아르케)을 깨달아 그 그리스도 예수를 각자가 발견해야 한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어서 될 문제가 아니라 그 뜻을 깊이 깨닫고 실제적으로 변화된 삶을 살아야 근본 하나님과 생명관계가 발생된다. 성경은 내면에 와 있는 천국을 제시하는 설명서일 뿐이다. 각자가 내면에서 그 생명의 그 빛(근본)을 찾아야 한다. 힘든 고난의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체험된 사건이 중요한 것이지, 이론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나. '징계'로 번역한 '파이데이아'는 징계가 아니라 아들에게 하는 훈련, 교육, 양육의 뜻이다.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히 12:8)” 번역이 잘못되었다. ‘징계’로 번역한 ‘파이데이아’는 아들들에게 하는 훈련 교육 양육이다.
아들에게만 이 훈련을 하신다. 반드시 이 힘든 훈련은 평생을 통해서 변화해 가면서 받는 것이지, ‘징계’가 아니다.
하나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저희)에게는 ‘파이데이아’ 훈련을 하지 않고 이들에게서 떠나신다. 오직 너희(아들)에게만 찾아오셔서 하는 훈련이다.
‘파이데이아’는 훈련 교육 양육으로서 신약에서 6회 쓰였다.
“엡 6:4(교양), 히 12:7(징계를), 딤후 3:16(교육), 히 12:8(징계는), 히 12:5(징계하심을) 히 12:11(징계가)”
‘파이데이아’는 ‘파이듀오’에서 유래하였는데 ‘파이듀오’는 훈련시키다, 교육시키다, 는 뜻으로 신약에 13회 쓰였다.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파라볼레)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아그로스)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마 13:24)”
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리는 비유로 자신을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천국은 좋은 씨를 제(아우토스) 밭(아그로스)에 뿌린 자와 같다’ 하였다. ‘제 밭(아우토스 아그로스)’을 ‘자기 자신(아우토스)’이라 말씀하신다. 자신의 밭(아그로스)을 ‘예수 자신의 살과 뼈’로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예수는 대상이 아니다. 오늘날 문명(애굽)사회를 사는 이들에게 어려운 내용인 것은 섬기는 대상 예수가 있어야 쉽게 이해되겠지만, 섬기는 대상 예수는 반드시 장대에 높이 달아 죽여야 더는 대상 예수를 섬기지 아니하고 내면으로 돌이키게 된다.
우리는 마음을 항상 ‘나’로 생각한다. 보고 듣고 먹고 마시고 느끼고 인식하고 생각하고 반응하는 것들 모두 내가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보는 나, 생각하는 나, 느끼는 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전도몽상(顚倒夢想, 사람을 위해 돈을 만들었는데 돈에 너무 집착하다 보니 사람이 돈의 노예가 됨)이다. 이런 유는 예수 자신의 밭(아그로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라. 그 하늘들과 그 땅의 마음 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의 씨를 뿌리기 위한 개간의 대상이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 예수인 ‘아그로스(아들)’가 있다. 그러면 왜 그러한지 우리 마음 세상(코스모스)을 해체하여 분석하여야 할 것이다. 마음 안에는 가라지가 나오는 길가 밭, 돌밭, 가시덤불 밭은 겉 사람으로서 그리스도 예수 자신이 아니다. 그리스도 예수 자신은 근본 하나님과 하나 되어 있기 때문에 변질되지 않지만 전자는 항상 변질되기 때문이다. 이는 곧 마음 밭으로서 겉 사람에 속해 있다.
그런데 인생들은 변하지 않는(영원한) 그리스도 예수 자신이라는 밭(아그로스)을 발견하지 못하고 종교 행위에만 몰두하고 있으므로 이렇게 살다가 죽는다면 허무할 것이다.
아그로스는 두 종류의 밭이 나온다. 하나는 아들이요, 하나는 악한 자인 가라지다. 겉 사람과 속사람(고후4:16~18)이 함께 일하는 밭으로도 나온다. 문장의 순리를 따라 해석하여야 한다.
그 하나는 ‘코스모스’ 마음 밭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옥토 밭이다. 창세기 1:1 그 하늘들과 그 땅 안에서 아그로스의 밭이 발견된다. 그래서 아그로스 즉 옥토 밭을 얻기 위해 먼저 와서 있는 마음 밭(겉 사람)을 ‘바라(개간)’ 하신다.
아그로스 밭은 코스모스 마음 밭(겉 사람)을 개간해야 등장한다. 그 하늘들과 그 땅의 마음 밭 안으로 그리스도 예수께서 오셔서 말씀의 씨를 뿌리기 위해 개간해야 할 밭이다. 그러므로 우주 창조가 아니라 개간할 땅(마음)이다.
우주는 우주의 원리대로 그 속성대로 흘러갈 뿐이다. 내 안에서 아그로스의 마음 밭을 발견하면 그때부터는 시공간이 필요치 않다. 지금 잠깐 입고 있는 몸을 벗든지 벗지 않든지 아무 관계가 없다. 밖의 우주가 없어지는 체험을 한다면 깨닫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 생명의 그 빛(근본)!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