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새로워지고 또 새로워진다
이 말은 『상서(尙書)』의 「탕서(湯誓)」에서 유래한 말이다.
스스로 끊임없이 혁신하고 발전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3·1절이다.
1919년 3월 3일
고종의 장례일이었다.
독립을 염원 하던 33인은 고종의 장례일에 맞춰서 독립선언문을 태화관에서 발표하기로 하였다.
천도교 15명 불교 2명 기독교 16명이었는데 3월 1일 태화관에 나온 사람은 29명이었다.
그럼 왜 33절이아니고 31절인가?
그래도 임금님의 장례일인데 소란스럽게 하면 안되니 나중에 명명하기도 좋게
3월 1일 독립선언서를 발표하자고 논의가 되었다.
물론 장례일에는 경비도 삼업할 것이라 생각하고 미리 발표를 한 것이다.
그럼 33인 중 4명은 왜 안 나갔을까?
그날 그 자리에 참석한 29인은 그자리에서 다 잡혀 옥고를 치르고 그러다가 사망한 경우도 많았다.
이는 독립운동가 33인을 검색하면 다 나오는 것이니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이를 계기로 조선의 독립운동은 더욱 거세게 일어 났으며
이를 본 일본은 그 동안 무력통치에서 문화통치로 방향을 바꾼다.
일본이 문화통치로 방향을 바꾼 이유는 독립운동에 참여하는 민중의 의식을 알아차린 것이다.
무력으로 무력으로 짓누르면 죽어들줄 알았던 민족정신이 밟아도 밟아도 다시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문화통치를 히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들을 10년을 상투를 자르게 하고 개화문명이라해서 옷을 바꿔입게 하고
무궁화꽃은 눈병을 일으키는 꽃이라고 하며 못 보게 하였으며 한국문화를 배우지 못하게 강제로 일본 유학을 가게 하였다.
그렇게 우리 민족을 잡으려고 했지만 독립운동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하여 그들이 바꾼 방향이 민족말살통치로 바뀐 것이다.
1920년부터는 민족말살정치를 하게 된 것이다. 창씨개명을 통해 우리의 성씨, 그러니까 민족의 씨를 말리고자 한 것이다.
독립이 되던 1945년까지는 민족의 씨를 없애기 위해 그들은 무자비하게 민족을 없애고자 했지만
우리는 독립을 하였다.
외세에 의한 독립이었기 때문에 3년 간을 신탁통치라는 기간을 거쳐야 했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진정한 독립은 1948년 이라고 우기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어떻게든 자신의 입지를 굳히고자 하는 사람들의 의견일 뿐이다.
밟아도 밟아도 일어서던 우리 민족의 힘은 바로 풀뿌리에 있는 것이다. 이런
정신을 생각하며 쓴 글이 "춥니?" 다.
춥니?
-양인숙
3월 1일인데
아직 춥다고?
그럼 저기를 좀 봐
저 풀꽃들!
나라 잃고
따스한 햇살 한줄기도 없이
어둡기만 하던 땅에서
독립만세 외치던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처럼
두 손 번쩍 치켜든
저 풀꽃을 좀 봐.
그래도 춥니?
그럼 웅크리지 말고
-와 ~ 아!
큰 소리로 외쳐봐!
뿌리 끝에서 올라오는
힘을 느낄 수 있을 거야.
이 시는 나에게 신춘문예라는 영광을 주었으며 내 인생에 큰 전환점을 가져왔다.
문인으로서 인정을 받음과 동시에 글만이 나의 살길이라 여기며 나아갈 힘을 준것이다.
오늘을 살아야 하는 나는 오늘 또다른 나를 찾으러 노력한다.
일신우일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