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편지나 방송 사연은 느림과 기다림의 감성을 자극한다. 느린 만큼 심리적 거리는 가까워진다.
아침 출근길이다. 라디오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사연에 내 마음의 주파수를 맞춘다. 문득 유년 시절의 사연이 생각난다.
누렁소는 풀숲에서 풀을 뜯고 소년은 산 능선을 타고 올 사연을 기다린다. 사연은 바람 소리와 함께 신호가 일치되어야 뚜렷한 음성으로 들린다.
바람에 실려 오는 사연이 세상과의 유일한 소통 수단이다. 안테나를 길게 뽑고 라디오 방송국에서 송출하는 주파수와 일치시킨다.
손깍지에 머리를 괴고 풀밭에 누워 파란 하늘을 쳐다본다. 옆에는 내 친구 트랜지스터라디오와 함께 있다. 뭉게뭉게 피어나는 흰 구름에 간절한 사연을 적어 흩날리지 않도록 양탄자에 사서 띄워 보낸다.
휴대하기 좋은 트랜지스터라디오는 분신처럼 내 손에서 떠나지 않는다.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공책을 펼쳐 받아쓰기하듯 적으면서 따라 부르기도 한다.
라디오를 장시간 사용하기 위해 플래시 배터리로 연결하여 사용한다. 그에 대한 보답으로 ‘별이 빛나는 밤에, 추억의 팝송’을 들려준다. 흑백 티브이는 동네에 한두 대가 있을까 말까 하던 시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가요와 사연은 도시를 선망하는 요술램프와 같은 존재였다.
MBC FM 모닝쇼를 듣는다. 차량용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사연은 핸들의 흔들림과 함께 내 마음도 떨렸다.
진행자는 어떤 애청자의 편지를 울먹이면서 읽는다. 사연의 내용은 이렇다. 사연자는 부인과 함께 오랫동안 모닝쇼의 ‘모닝 가족’인데 부인은 암 투병으로 더 이상 방송을 청취할 수 없다고 한다. 이제는 혼자 모닝 가족이 되었고 부인은 천국방송국으로 듣고 있다는 사연 글이다.
서로 얼굴도 모르는 사연자와 진행자, 애청자일 것이다. 모두 한 가족이 되어 동일한 채널 공간 안에서 공감하면서 울고 웃는다.
선곡으로 푸른 하늘의 ‘겨울 바다’가 전파를 타고 바다를 향하게 만든다.
“너에게 있던 모든 괴로움들을 파도에 던져버려 잊어버리고~”
사연자의 선곡은 마음속에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눈과 귀를 열면 볼 수도 있고 들을 수도 있다. 책 보면서 음악을 듣고, 유튜브를 보고 듣는 데 익숙해 있다.
두 가지를 동시에 하다 보면 하나를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두 눈을 자그시 감고 주변의 보이는 것들을 차단한다. 두 귀를 쫑긋 세우고 미세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숲속 길을 걸어본다. 바람에 나뭇잎 부딪치는 소리, 직박구리 새의 구애하는 소리가 청아하게 들린다.
마음의 눈을 감고 있으면 보는 것보다 더 선명하게 보일 때도 있다. 보고 듣는 것들의 잡음과 편견이 사라진다.
간접으로 보고 듣는 것보다 직접 체험해 보는 아날로그 사연은 느림의 미학이 된다.
첫댓글 문득, 라디오와 함께한 시간들과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사연이 생각났군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