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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을 위시한 UN군의 대반격으로 초산까지 밀린 북한군은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위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중공군 사령관인 펑더화이는 김일성이 패잔병 3~4만에 불과한 북한군만이 남았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죠.
김일성이 직접 통제할 수 있는 사단은 평양에서 안주 쪽으로 철수한 제 46, 47보병사단, 제105전차사단, 제17기계화여단 등 4개 사단 약 3만 명으로 개전 초기 20만 대군을 보유했던 것에 비교해서 아주 초라한 전력 수치였습니다.
한강 방어전 당시 한국군 상황과 비슷했죠. 가용병력이 22,000명까지 떨어졌었으니까요. 그러나 곳곳에 흩어진 북한군 전력들은 존재했고 중공군 개입 이후 UN군이 철수하자 이들을 다시 재집결시킵니다.
후퇴해오던 제 3, 4, 9, 10사단의 패잔 병력과 산골지역에 숨어 있던 제31사단, 제23, 27여단의 병력들이 존재했고 펑더화이의 명령에 의해 각 군단으로 재건됩니다.
앞서 김일성이 직접 통제하는 3만 명 규모의 잔존 사단들은 제1군단으로, 후퇴하던 제 3, 4, 9, 10사단의 패잔 병력과 산골지역에 숨어 있던 제31사단, 제23, 27여단의 병력들은 제2군단으로, 강계로 집결한 제1,2,8,12,13,15사단의 패잔 병력들은 제3군단으로 재건되었습니다.
또한 만주 지역에 북한군 재건을 위한 훈련소를 신설하여 최용건은 3개 군단 재편 및 훈련을 담당합니다. 당장 신병 10만 명을 징발해 만주로 보냈으며 이후 2개 군단을 추가 편성합니다.
이렇게 북한군은 1951년 7월 초까지 정규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7개의 정규군단과 23개 사단을 갖춘 체제로 북한군은 재편되었으며, 개전 초 20만 명의 전력에서 40만 명으로 병력 수는 2배 늘었으나 화력은 부족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북한군과 중공군 사이에서 지휘권을 두고 알력 싸움이 벌어집니다. 중공군 입장에서는 전투 능력 면에서 매우 열악한 북한군이 단지 수만 늘리려는 태도는 매우 방만적인 구조였으며 따라서 효과적인 전투 체계를 갖추기 위해 감축을 제안합니다.
하지만 북한 측이 이를 거부했고 그렇지 않아도 작전 면에서 종속된 북한군의 위상이 사단 및 군단 수를 줄일 경우 더욱 실추될 것으로 생각되어 이를 계속해서 거부하였다고 합니다.
심지어 서로 오인 교전도 잧았다고 합니다. 한 예로 1950년 11월 4일 인민지원군 제39군이 박천 부근에서 미 제24사단을 포위 공격했으나, 순천을 향해 진격하던 북한군 탱크사단이 39군을 오인하여 공격하여 미군이 포위망을 돌파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고 할 정도였다고 하니까요.
결국 조중연합사가 창설되었습니다. 그러나 북한 측이 계속해서 방해하고 이를 따르지 않으려하자, 중국 지도부는 스탈린을 통해서 협조를 요청합니다. 스탈린은 중국의 손을 들어줬고 결국 북한은 울며 겨자먹기로 중공군에게 지휘권을 양도합니다.
그러나 완전히 양도한 것은 아니고 북한군의 운용은 북한 최고사령부와 김일성의 사전 동의를 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완벽히 통일된 지휘 체계를 구성할 수가 없었고 북한군에 작전을 부여할 때마다 김일성의 허가를 받아야하는 번거로움을 거쳐야했죠.
이는 급속한 상황변화에 따른 북한군 제2, 5군단의 운용을 곤란하게 했습니다. 아직도 김일성은 북한군에 대한 독자적인 통제권을 행사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대체적으로 북한군은 중공군의 지휘 통제에 잘 따르는 편이었긴 했지만요.
결국 저우언라이가 개입했고 조중 연합사 합의가 이루어집니다. 합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더욱 효과적으로 공동의 적 타격하기 위하여 중·북 양측은 즉각 연합지휘부설치에 동의하고,한반도 국경 안의 모든 작전과 이에 관계되는 업무를 통일 지휘한다.
(2)중·북 양측은 팽덕회를 연합지휘부사령원 겸 정치위원으로,김웅을 연합지휘부부사령원으로,박일우를 연합지휘부 부정치위원으로 임명하는데 서로 동의한다.
(3)북한군 및 모든 유격부대와 중국군은 연합지휘부의 통일지휘를 받는다.연합지휘부에서 그들에게 하는 모든 명령은 북한군총사령부 및 중국군사령부를 경유한다.
(4)연합지휘부는 작전과 관련한 모든 교통수송(도로·철로·항구·비행장·유무선 전화 및 전보),식량조달,인적·물적동원 등의 업무를 지휘할 권한이 있다.
(5)북한 후방에서의 전방지원을 위한 동원,보충훈련,지방행정회복 등의 모든 업무는 연합지휘부가 실제 상황과 전쟁 수요에 따라 북한정부에 보고하고 건의한다.
(6)작전과 관계되는 모든 신문 보도는 연합지휘부가 지정한 기관이 통일하여 책임지고 편집 심사한 후 북한 신문기관으로 보내 북한군총사령부 명의로 통일하여 배포한다.
이는 김일성에게 상당히 굴욕적이었으며 사실상 북한군의 작전 지휘권이 상실되어 버리는 결과를 가지고 옵니다. 한국군이 미군에게 군말없이 작전권을 넘겨주고 통일된 지휘통제를 받으며 싸운데 비해 북한군은...ㅁㄴㅇㄹ
출처
6 ․ 25전쟁시 조선인민군과 중국군 연합사령부에 대한 연구, 정신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