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P 사인 앞에 서면 "
강 용 호 (생명공학)
도로 위에 우뚝 선 붉은 팔각형의 STOP 표지판은 내게 단순한 교통 신호가 아니다.
그것은 한 사회의 품격을 비추는 상징이자, 나아가 삶의 태도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 되었다.
한국의 도로에서 그 표지판 앞에 완전히 멈춰 서는 운전자를 보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은 속도를 충분히 줄이지도 않은 채, 관성에 몸을 맡기듯 미끄러지며 지나간다.
마치 ‘형식만 지키면 된다’는 암묵적 합의라도 있는 듯,
그 붉은 표지판은 단지 권고 사항쯤으로 여겨진다.
반면, 미국에서 그 작은 표지판 하나는 절대적인 권위를 지닌다.
주변에 차도 사람도 없는 한적한 새벽길이라 해도, 사람들은 반드시 완전히 멈춘다.
그것은 법 이전에 하나의 사회적 약속이자, 서로에 대한 신뢰의 행위였다.
나는 미국 유학 시절, 이 엄격한 규칙을 자주 어겼다.
한국에서의 경험으로 ‘조금만 속도를 줄이면 되겠지’ 하는 안이한 마음으로
STOP 사인을 보고는 멈춘 듯 지나쳤다.
그러나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뒤에서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백미러 속 붉은 경광등은 마치 내 양심을 향한 경고등 같았다.
창문을 내리자 젊은 경찰관이 정중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STOP 사인 앞에서는 반드시 3초간 완전히 정지해야 합니다.”
나는 변명하듯 말했다. “주변에 아무도 없었고, 충분히 속도를 줄였습니다.”
그러자 그는 짧지만 명확하게 답했다.
“규칙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날 나는 적지 않은 과태료를 받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조금 융통성 있게 봐줄 수도 있지 않은가? 너무 원칙주의적인 것 아닌가?’
그때의 미국 사회는 유난히 고지식하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런 일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실험실에서는 단백질 정제용 칼럼에 넣을 작은 시료를 미리 필터로 여과하지 않았다고,
잠시 방사능 시료가 든 병을 만진 비닐장갑을 별도로 분리수거하지 않았다고
미국 대학원생들에게 지적을 받았다.
대학교 도서관에서는 친구와 작은 목소리로 대화하다가 직원에게 제지를 당했다.
“이곳은 정숙을 지켜야 하는 공간입니다.”
대화는 잠깐이었는데 그런 말을 듣자 불쾌하고 억울했다.
‘이 정도는 좀 봐줄 수도 있지 않나?’ 싶은 일들이 번번이 제지를 받았다.
그러나 미국에서 오래 생활하면서 나는 서서히 깨달았다.
그들이 지키는 것은 단지 ‘규칙’이 아니라 ‘신뢰를 위한 약속’이었다.
작은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큰 약속도 잘 지킬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이 쌓여 사회 전체의 안전을 담보한다는 것을.
아무도 보지 않을 때조차 STOP 사인 앞에서 멈추는 이유는,
타인에 대한 존중이자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나는 다시 도로의 STOP 사인과 마주했다.
미국에서의 쓴 경험이 떠올라 교차로 앞에서 완전히 멈추었는데,
뒤차의 경적이 요란하게 울려 댔다.
“왜 멈추느냐”는 듯한 조급함과 불만이 섞인 소리였다.
아무도 없는 한적한 길 위에서, 규칙을 지키려는 내가 오히려 낯선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때 깨달았다.
우리 사회에서 ‘융통성’이라 부르는 것의 이면에는 ‘규칙의 무시’가 숨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작은 일탈들이 모여 종종 더 큰 무질서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우리 사회는 ‘사소한 것은 대충 무시해도 된다’는 인식에 젖어 있다.
신호등이 막 바뀌려는 순간 속도를 내고,
긴 자동차 대기줄 중간에 끼어들며,
서로 양보가 필요한 교차지점에서 먼저 차를 들이민다.
그런 생각이 쌓이면 결국 큰 일에서도 양심의 경계가 무너진다.
작은 무시가 큰 무시의 시작이 되고, 사소한 부정이 큰 부정의 씨앗이 된다.
우리 옛말에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고 했다.
누가복음 16장 10절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작은 일에 대한 태도가 결국 그 사람의 전체를 말해주며,
개인의 작은 선택들이 모여 사회의 문화를 만든다.
나는 지금도 도로 위의 STOP 사인을 볼 때마다
그날의 경찰 사이렌 소리를 떠올린다.
그것은 단속의 소리가 아니라, 내 마음을 멈추게 한 교훈의 울림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알았다.
STOP은 단순한 멈춤이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며,
나보다 먼저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고,
사회를 지탱하는 조용한 약속이라는 것을.
우리는 흔히 빠름을 미덕으로 여긴다.
‘빨리빨리’ 문화, 압축 성장, 역동성 —
이 모든 것이 한국 사회의 자랑스러운 특징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리는 ‘멈춤’의 가치를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타인의 안전을 위해 잠시 서서 주변을 살피고,
원칙을 되새기며 좌우 방향을 점검하는 여유를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도로 위 STOP 사인 앞 3초간의 정지.
그것은 불편함이 아니라 성숙의 표지이다.
나는 오늘도 그 작은 표지판 앞에 선다.
단지 차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방향을 점검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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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dtNTcSNxj34
첫댓글 교수님, 글 잘 읽었습니다. 많이 생각되네요. 저도 stop 사인에 걸린 적이 있습니다. 브리검영에서 솔트레이크로 1시간이나 떨어진 성당을 가는 길이었지요(그곳은 성당이 거의 없는 동네이거든요),....오는 차도 없고 내 차만 가는 중이었는데, '충분히' 속도를 줄여서 갔습니다. 사고도 안났구요. 그런데 뒤에서 경찰차가 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잘못이 없기 때문에 저를 따라오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지요. 꽤 갔을 겁니다. 그런데, 차에 동승했던 미국인이 경찰이 우리를 따라오는 것 같다고 세우라고 하더군요. 내가 무얼 잘못했냐고 물었을 때 경찰 이야기가 충분히가 아니라, '완전 멈추어야 한다'라고 하더라구요. 그날 얼마나 당황했는지 운전면허증을 달라는데 신용카드를 내주기도 하고.....다시 운전면허증을 내주고 기다렸는데..... 한참 노트북으로 무얼 조사하더니, 처음이니 그냥 가라고 하더라구요......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못하고 얼른 그 자리를 떴던 기억이 있습니다. 추억을 소환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처음으로 STOP 사인에 단속되어서 엄청 놀랐겠어요.
미국 경찰은 STOP 사인 위반을 종종 단속하는데 그 이유가 궁금했어요.
"평소 미국 경찰은 그런데 신경 쓸 정도로 할 일이 없나?" 🤔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요.
한국 경찰은 지금도 STOP 사인을 단속하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 배달 오토바이 운전자들이 대낮에 모두들 보고 있는데도 버젓이 교통 신호를 무시하고 다녀도 시민들은 괜찮다고 생각해요.
매일의 생활에서 그런 장면들을 자주 접하는 어린 학생들이나 시민들은 자연스럽게 준법 정신이 약해질 수 밖에 없어요.
그런 시민들로 구성된 사회는 정치, 비즈니스, 교육, 과학 분야 등 전반에 걸쳐 준법 정신이 느슨해지지요. 이것이 누적되면 결국 나중에 심각한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지금은 "미국 경찰의 STOP 사인 단속은 국가가 아주 적은 비용으로 일반시민들에게 준법 정신을 강조하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인것 같다." 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
네, 우리 사회의 '융통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몇년 전부터 학교 중앙대로변에도 이 stop 사인이 섰었지요? 지금도 서 있나 모르겠습니다.
한편, 교수님 글을 읽으면서 이렇게 에피소드 하나씩 소개해 놓고 있다가, 나중에 자기 글을 모아 엮으면 우왕좌왕 외국생활의 원고가 되겠다 싶었습니다. 다른 교수님들께서도 에피소드 올리시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