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알고리즘이 또 나를 붙잡았다.
'독한아재 드론러너'라는 채널이었다. 영상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느리게 달리면 빨라진다." 처음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빠르게 달려야 빨라지는 거 아닌가. 그런데 영상을 보면 볼수록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리고 나는 또 한 번 달리기를 처음부터 다시 배우기로 했다.
3년을 달렸는데, 왜 제자리였을까
돌아보면 이상했다.
3년을 달렸다. 꾸준히 달렸다. 그런데 실력이 늘지 않았다. 페이스는 제자리였고, 조금만 거리를 늘리면 몸이 무너졌다. 무릎이 아프고, 허리가 말썽이고, 달리고 쉬고를 반복했다.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건 알았다. 그런데 뭐가 잘못된 건지 몰랐다.
그 답이 MAF 트레이닝이었다.
MAF 트레이닝이란
MAF는 Maximum Aerobic Function의 약자다.
심박수를 철저하게 통제하면서 달리는 훈련법이다. 공식은 간단하다. 180에서 자신의 나이를 빼면 최대 유산소 심박수가 나온다. 나는 52살이니까 180 - 52 = 128. 거기서 부상 이력이 있으니 조금 더 낮춰 124~126bpm이 내 MAF 심박수다.
이 심박수를 절대 넘기지 않으면서 달린다.
처음엔 그게 얼마나 느린 건지 몰랐다. 직접 해보고 나서야 알았다. 심박수를 124~126으로 유지하면서 달리려면 킬로미터당 9분, 10분, 심지어 11분대까지 페이스를 낮춰야 했다. 거의 빠른 걸음 수준이었다.
이게 달리기가 맞나 싶었다.
느리게 달린다는 것의 의미
MAF 트레이닝의 핵심은 유산소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우리 몸에는 두 가지 에너지 시스템이 있다. 산소를 사용하는 유산소 시스템과, 산소 없이 작동하는 무산소 시스템. 빠르게 달리면 무산소 시스템에 의존하게 되고, 몸은 쉽게 지친다. 반면 심박수를 낮게 유지하면 유산소 시스템이 주로 작동하면서 지방을 태우고, 더 오래 달릴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진다.
즉, 지금 느리게 달리는 건 나중에 더 빠르게, 더 오래 달리기 위한 준비다.
머리로는 이해했다. 몸이 따라가는 건 다른 문제였다.
4월 17일, 다시 시작
2026년 4월 17일.
훈련 로드맵을 짜고, 새로운 마음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슈퍼블라스트3를 처음 신고 나간 날이었다. 35분, 킬로미터당 8분 52초, 심박수 124bpm. 기록을 보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그날의 나에게는 새로운 출발이었다.
다음 날 롱런에서 무릎 통증이 와서 30분 만에 멈췄다. 첫날부터 삐걱댔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억지로 밀어붙이지 않았다. 멈추고, 쉬고, 다음 날 다시 나갔다.
4월 20일, 무릎 통증 없이 40분을 마쳤다. 작은 것 같지만 그게 전진이었다.
에리카 캠퍼스로 돌아왔다
훈련 장소는 다시 한양대 에리카 캠퍼스 운동장이다.
이른 아침, 사람들이 별로 없는 에리카 캠퍼스 운동장의 아스팔트 위를 빙글빙글 돈다. 예전과 같은 장소인데 달리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다. 예전엔 페이스를 높이려 했고, 더 빠른 기록을 쫓았다. 지금은 손목의 심박수 숫자만 본다. 126을 넘기면 속도를 줄인다. 걸을 것 같은 속도로 달린다.
처음엔 이게 맞나 싶어서 답답했다.
옆에서 어르신들이 걸어가는데, 어떤 분은 나를 추월하기도 했다.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그런데 계속 하다 보니 조금씩 달라지는 게 느껴졌다. 같은 심박수에서 페이스가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했다. 8분 52초이던 페이스가 8분 20초대로 내려왔다.
몸이 적응하고 있다는 신호였다.
토요일 롱런, 조금씩 멀리
매주 토요일은 롱런이다.
4월에는 55~70분이었던 롱런이, 5월에는 80~90분으로 늘었다. 6월에 들어서면서 95분, 100분으로 확장됐다. 거리가 아니라 시간으로 측정하는 것도 MAF 트레이닝의 방식이다. 페이스가 일정하지 않으니 시간을 기준으로 달린다.
5월 16일, 처음으로 10킬로미터를 넘겼다. 85분 동안 달렸다. 킬로미터당 8분 33초, 심박수 124bpm. 숫자들이 안정적이었다. 이전처럼 심박수가 치솟거나, 다리가 무너지거나 하지 않았다.
달리기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아직 갈 길이 멀다
6월 현재, 나의 MAF 페이스는 킬로미터당 10~11분대다.
경주마라톤 목표 완주 시간은 5시간에서 5시간 20분 사이. 킬로미터당 7분 6초에서 7분 35초 페이스다. 지금 내 훈련 페이스와는 아직 차이가 크다. 하지만 MAF 트레이닝은 그 차이를 조급해하지 말라고 한다. 유산소 베이스가 쌓이면 페이스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믿어보기로 했다.
9월 5일 철원 DMZ 하프마라톤이 첫 번째 관문이다. 목표는 2시간 30분에서 45분 사이 완주. 그리고 10월 17일, 경주국제마라톤 풀코스.
로드맵이 있다. 계획이 있다. 그리고 매일 아침 운동장으로 나가는 나의 발이 있다.
느리게 달리면 빨라진다고 했다. 아직은 그 말을 100% 믿지 못한다. 하지만 매일 조금씩, 숫자가 말해주고 있다. 유산소 베이스가 쌓이고 있다고.
출발선까지 남은 시간, 나는 오늘도 천천히 달린다.
다음 이야기는 "크루는 없어도, 감독님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