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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안식일 준수와 율법주의
| 비평 박영관 |
안식교는 한마디로 유대교의 율법주의를 따르고 있으며 토요일을 안식일로 고수하는 것은 성경 해석의 잘못에서 왔다.9
안식일의 역사적 기원과 성경적 근거는 앞서 밝혔거니와, 안식일 준수하는 것은 유대교의 율법주의를 따르는 것이라는 비평을 따로 떼어 변증하는 것이 좋겠다.
사람들을 위한 안식일
변 증 이상과 같은 비평은 안식일은 유대인의 안식일이고, 일요일은 그리스도 인의 성일 이라는 잘못된 전제에 기초한 것이다. 안식일은 창조와 동시에 제정되어, 아담 때부터 존속된 제도 이므로, 범죄와 상관 업고, 의식적인 율법이나 십계명과도 시대적으로 상관 없어, 안식일을 어느 시대에나 어느 민족에 국한시키려는 시도는 비 성서적이다.
“안식일에도 주인”(막2:28) 이신 예수께서도, 안식일이 유대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요,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막2:27)이라고 천명하셨다. 창조와 동시에 안식일과 함께 제정된 결혼 제도가(창2:21-24) 유대인 만을 위한 제도가 아닌 것과 같다. 결혼 제도가 안식의 공간(空間)인 가정을, 제칠 일이 안식의 시간(時間)인 안식일을 제공하므로 이 시간과 공간의 만남 속에서 인간이 피조물로서의 자신의 존재를 의식하고 하나님께 의존하며, 사람 끼리 함께 사는 행복을 경험하게 하신 창조의 기본 질서인 것이다.(출20:8-11)
이미 구약 성경에도 안식일을 유대인에게만 국한시키지 않고 만민의 안식일, 이방인의 안식일, 심지어 육신 적인 미래가 없는 불구자(鼓子)의 안식일 등으로 규정하여 안식일의 시대성이나 민족적 제한을 철폐하였다(사56:3-7).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그 손을 금하여 모든 악을 행치 아니하여야 하리니 이같이 행하는 사람 이같이 굳이 잡는 인생은 복이 있느니라”(사56:2)
그리하여 이방인이 복음을 받아들여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유대인만을 위한 의식법(儀式法)인 할례는 폐지시켜 결코 요구되지 않았지만, 안식일은 유대인과 그리스 도인들이 이의 없이 공유했음을 사도행전에서 확인할 필요가 있다.
율법주의 에 대한 오해
박영관 씨의 비평이 사실이라면, 유대인의 안식일을 지킨 사람은 모두 율법주의자가 되는 셈이다. 그 가운데는 어린 시절부터 돌아가시기까지 평생을 “자기 규례대로 안식일”을 지킨 예수님(눅4:16)을 비롯하여, 역시 유대교 모태 교인으로 “자기의 규례대로”(행17:2) 평생 안식일을 지킨 사도 바울도 율법주의자이고, 안식일을 준수하고 강조한 모든 노독들과 선지자들도 모두 율법주의 자가 된다는 빗나간 결론에 이른다. 이러한 단정은 두 개의 전제로부터 하나의 결론을 이끌어 내는 추리 논법인 삼단논법을 잘못 적용한 착각의 결과 일수 잇다. 즉,
대전제: 그리스도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행함으로 구원을 얻으려는 율법주의자였다.
소전제 : 바리새인들은 모두 철저한 안식일 준수 자였다.
결론 : 그러므로 오늘날도 안식일을 철저히 준수하는 사람들은 바리새인들과 같은 율법주의자이다.
만약 이와 같은 잘못된 논리 전개가 사실이라면 걷잡을 수 없는 엉뚱한 결론들이 속출하게 된다. 복음서에 보면 바리새인들은 안식일 이외에도 십일조, 헌금, 구제, 금식 기도 기도 등에도 철저한 사람들이었다.(눅18:11.12)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논리가 전개될 수 있을까?
대전제 : 그리스도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율법주의 자였다.
소전제 :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철저한 십일조와 헌금 구제 금식 기도를 실천했다.
결론 : 그러므로 오늘날도 십일조와 헌금 구제 및 금식 기도를 하는 사람들은 바리새인들과 같은 율법주의자이다.
십일조와 헌금, 구제와 기도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의 당연한 의무가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이러한 엉뚱한 결론에 이르게 되는가? 추리의 착각이다. 안식일이나 십일조, 헌금, 구제가 사람을 율법주의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그 대답이 있다. 곧, “화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마23:23)
진상이 뚜렷해졌다. 십일조와 헌금, 안식일 등 율법을 준수함으로써 율법주의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행하는 것으로 자신의 의를 삼을 때는 결과적으로 그리스도 의를 거절하게 됨으로 결국 행함으로 구원받으려는 율법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율법을 준수하되 율법의 정신에 어긋나게 지키는 사람들은 율법주의자가 되지만, 의의 표준인 율법을 무시하고 고의로 범하는 사람들은 “무법한 자”(벧후2:7, 3:17), 혹은 “불법을 행하는 자”(마7:23, 13:41; 딤전1:8,9)가 되어 심판을 받게 된다. 편견 때문에 판단의 논리가 왜곡되어서는 안 된다.
비 평 “안식교는 토요 안식일 성수를 구원의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개신교가 주일을 안식탁명환 일로 지킨 것은 예수의 부활 사건과 관련지어 율법적인 토요 안식일 대신에 안식 후 첫 날 예수의 부활의 날을 기념하여 지키게 된 것이다.”10
탁명환 씨는 오늘날의 토요일에 해당하는 성경 상의 제칠 일 안식일을 율법주의 적인 안식일로 규정하고, 안식일 교회가 안식일 준수를 구원의 조건으로 삼는다고 비평하고 있다. 그리고 일요일은 부활을 기념하는 그리스도 인의 주일로 옹호하고 있다.
율법주의와 무법 주의
변 증 “앞에서 밝힌 대로 율법을 준수하는 것이 율법주의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다섯째 계명에 따라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 여덟째 계명대로 도적질하지 않는 사람, 둘째 계명을 범하지 않으려고 신사 참배를 거절함으로 목숨까지 빼앗긴 순교자들을 율법주의자라고 비평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넷째 계명에 따라 성경 적인 제칠 일 안식일을 준수하는 사람들만 율법주의자가 되는가?
율법주의자란 율법을 지킨 자신의 선행을 의로 삼아 스스로 구원을 이루려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인은 율법주의자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만큼이나. “무법한 자”나 “불법을 행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 역시 율법주의자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될 수 없다(마7:23 ; 벧후3:17 ; 살후2:3,7,8). 일요일을 주일로 지키는 것이나, 신사 참배를 거부하는 행위도 결국 율법을 준수하려는 일임에는 마찬가지가 아닌가?
안식일 준수와 구원
안식일 준수를 구원의 조건으로 내세운다는 비평 역시 옳지 않다. 안식일을 지켜야 구원을 얻는가? 이러한 질문을 구태여 안식일에만 국한시킬 성질의 것이 아니다. “부모를 공경해야 구원을 얻는가?” “도적질을 하지 말아야 구원을 얻는가?” 모두 같을 성질의 질문이다. 이런 질문들에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우리는 부모를 잘 공경하고 도적질을 하지 않았어도 구원받지 못할 많은 사람이 있을 것을 알기 때문에 “그렇다”고 대답하기를 망설인다. 마찬가지로 무법한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갈5:19~21 ; 딤후3:2~5)임을 명시한 성경 말씀을 기억할 때, 우리는 “아니라”고 대답하기도 꺼린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디에 있고 대답은 무엇인가?
앞에서 밝힌 대로 안식일은 창조와 구 속의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는 날로서 개천절과 광복절의 의미가 포개진 경우이다(신5:12~15). 그러므로, “안식일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가?”라는 질문은, “광복절을 지켜야 해방되는가?”라는 질문과 같아진다.
논리적으로 틀린 질문에는 바른 대답이 있을 수가 없다. 태어난 사람에게는 생일이 있고, 해방된 민족에게는 광복절이 있듯이 창조와 구속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경험한 사람에게는 안식일의 존재와 필요가 절실해진다.
창조 때부터 존재한 안식일이 실제로 도덕의 법칙일 십계명 함께 성문화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구원받은 이후인 시내 산에서였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포함한 십계명이 구원의 근거가 아닌 것은 틀림없다. 구원의 근거는 유월절 어린양으로 상징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곧 십자가이다(고전5:7). 하나님께서도 “나는 너를 애굽땅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로라”(출20:2)고 전제하신 후 안식일을 포함한 십계명을 지키도록 명하셨다. 안식일의 경우는 이 사실이 더욱 강조되었다(신5:15).
구원의 결과인 안식일
분명해 졌듯이, 십계명이나 안식일 준수는 구약에서나 신약에서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의 결과로 명시되었다. 그것은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사람이 받은 구원을 보존하고 경험하는 방편이다. 한국에 살면서 미국의 헌법을 준수하고 독립 기념일을 철저히 지켰다고 미국의 영주 이민을 허락 받는 것은 아니다. 비록 그런 것들을 알지도 못하고 지키지 않았어도 미국이 호의로 발급한 사증(査證.비자)을 이민 자격을 얻는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율법을 지킴으로서가 아니라, 시민(市民)의 자격과 특권을 누리기 위해서이다. 영주권 자나 시민권 자가 되고도 고의로 법을 범하거나 무시하면 추방되거나 시민의 권리를 법에 따라 제한 당한다. 천국 시민의 특성과 자격을 선포한 산상설교에서 예수께서도 십계명의 중요성과 의의를 확대하였음을 주목할 것이다.(마5:7-40, 7:12-27).
현재도 그렇지만, 과거에도 성실한 그리스도인 이였으면서도 안식일을 준수하지 않은 사람들이 허다하지 않은가? 그들의 경우는 어떠한가? 우리는 구약성서에서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비롯한 노독들이 일부다처(一夫多妻)의 관습을 따랐음을 본다. 그랬기 때문에 오늘날의 그리스도인 들에게도 축첩(蓄妾)이 죄가 되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 이혼 등 이러한 도덕적 표준들에 의하여, 예수께서는 그 세대의 완악함과 어두움을 지적하신 후에 성경의 원칙을 제시하시고,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마19:3-10) 고 단언하셨다.
성경은 각시 대의 각사람이 처한 환경이나 받은 빛이나 특권에 대하여 책임이 있음을 강조하였다.(마11:20-24, 25:24-28; 요9:39-41; 룸2:12-23). 사도 바울도 “알지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 치 아니하셨”음을 상기시키고 “이제는 어디든지”라는 표현을 통하여 심판의 시의성(時宜性)을 강조했다(행17:30.31). 그것은 또한 계시록에 나타난 심판의 시대적 배경이기도 하며 (계14:6-12), 로마서에 제시된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을 강조한 심판의 문화적 배경이기도 하다.(롬2:1-12)
심판의 표준인 십계명
여하튼 안식일을 포함한 십계명은 구원의 근거가 아니라, 은혜로 거저 베푸신 구원에 대한 인간의 반응인 믿음의 진실한 여부를 드러내는 열매, 곧 행실(마7:16-21)을 심판하는 표준임에는 틀림없다.(약2:8-13) 십계명의 기능은 죄인을 의롭게 하는 일이 아니라(롬3:20), 십자가의 은혜로 의롭게 된 사람을 죄로부터 보존하여 거룩하게 하는 성화(聖化) 의 방편이요, 표준이 된다.(롬7:7,13). 특별히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즐 알게하려하여 내가 내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겔20:12)음을 주목해야 한다.
마지막 심판에서 (계14;6-11), 의롭게 석게될 참다운 그리스도 인의 특성이,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계14:12)라고 명시된 것도 그 까닭이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지만, 심판은 믿음의 결과인 행실(行實)을 판별하는 일임을 기억해야 한다.(마16:27; 계22:12)
그러므로 안식일을 비롯한 십계명을 비평하려 할 때는, “자유의 율법(십계명) 대로 심판받을자 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약2:12)는 권면을 명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약2:9)는 기능과 불변의 권위를 여전히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믿음은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롬3:31)운다는 사실을 복음의 구조에서 이해해야 한다.
부활의 기념과 안식일
비평에 나타난 대로, 오늘날 일반 교회들이 제칠 일 안식일 대신 첫째닐인 일요일을 준수하는 이유로 부활의 기념일임을 강조하고 잇다. 일요일을 부활의 기념으로 지키는데 대한 성경 적인 근거는 있는가?
가. 실제의 날짜는 아니지만, 성탄절은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여 지키고, 부활절은 부활을 기념하여 지킨다. 일년에 한 번씩 부활절로 부활을 지킨다면 왜 또 일요일을 지켜 부활을 이중으로 기념하는가? 창조는 였새동안에 이루어 졌음으로 제칠 일마다 안식일을 지켜 창조를 기념하는 것은 기념일로서의 논리가 서지만, 부활이 일요일에 있었다고 매 일요일을 부활의 기념일로 삼는 것은 논리가 부당하다. 만약 예수 님의 탄생하신 날이 월요일이라 해서, 성탄절과 함께 매 월요일을 틴생기념일로 지킨다면 얼마나 이상한 기념 방법이 되겠는가? 생각해 볼 문제이다.
나.첫째날인 일요일에 예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 날을 기념하여 거룩히 지킨다면, 우리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 돌아가신 여섯째 날인 금요일도 기념할 만한 날이 아닌가? 실제로 십자가와 부활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초가 되는 역사적 사실(史實)이므로 기념해야 할 가치가 있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이 두 사건을 기념하는 특별한 방법을 친히 제정하시고 준수하도록 명령하셨다.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재림 때까지 기념하라고 제정하신 의식이 성만찬 예식이다(고전11:23.24; 마26:26-29) 돌아가신 여섯째 날인 금요일이나, 성력 1월 14일 유월절을 날짜로 기념하라고 아니하시고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고 하셨다(고전11:25.26) 십작가에 죽으심을 언제나 어디서나 성만찬 예식을 행함으로 기념하게 된다.
다부할은 어떻게 기념할 것인가?
“물은ㅡ예수그리스도의 부할 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침 레)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찿 아가는 것이라”(벧전3:21)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침례)를ㄹ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 니...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 한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 한 자가 되리라” (롬6:4.5)
예수께서 친히 받으심으로 모본을 보이신 침례가(마3:13-17)곧 부활을 기념하는 예식이 된 것이다.
라 .그런데 중생과 부활의 기념인 침례를 성만찬처럼 자주 기념할 수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닌가? 예수께서 성만찬을 집전 하시기전 이미 침례를 받으므로 “중생의 씻음”(딛3:5; 행22:16; 히10:22)을 경험한 제자들에게,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몸이 깨끗하니라”(요13:10)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침례를 반복하지 않으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세족(洗足)예식으로 대신하신 후, “내가 주와 성령으로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려 하여 본을 보였느니라”(요13:14.15)고 하셨다. 이처럼 세족 예식의 의미와 목적이 분명할 뿐더러 행하도록 모본까지 보이시며 명하셨는데 왜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이 예식을 등한히 하면서, 명하시지도 않은 일요일 준수로 중생과 부활을 기념하려고 하는가?
이처럼 십자가에 죽으심을 성만찬으로, 부활의 중생과 침례를 세족 예식으로 기념하도록 에수께서친히 제정하시고 또 준수하도록 명하셨다. 이리하여 세족 예식을 겸한 성만찬과 침례는 그리스도교 기초가 되는 십자가와 부활을 기념하는 두 성례전(聖禮典)으로 그때부터 지금까지 존속되고 있는 것이다. 부활의 기념으로 일요일을 성수(聖洙) 하는 것은 성경에 아무 근거가 없을쁜더러 논리에도 맞지 않는 일이다. 시간 곧 날짜와 연관시켜 기념하도록 명하신 것은 창조와 구 속의 기념일인 제칠 일 안식일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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