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것은 단순한 것으로 환원된다. 미적분은 어렵지만 사칙연산은 쉽다. 사실은 사칙연산도 쉽지 않다. 부족민은 셈을 못한다. 하나 둘 다음은 많다로 퉁친다. 백인 모피상인이 부족민에게 모피가 몇 장이냐고 물으면 많다고 한다. 백인은 지불한 달러가 많다고 한다. 부족민은 속았다는 사실을 알지만 증명할 방법이 없다.
nice의 어원은 세지 않는다는 뜻이다. 세는 것은 일단 좋지 않다는 선입견이 있다. 인간은 원래 나눗셈을 못한다. 셈은 먹고 살아야 해서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것이며 결코 좋아서 한게 아니다. 재상의 재宰는 제사를 지낸 후에 고기를 나눠주는 사람을 의미한다. 옛날에는 고기만 잘 나눠줘도 일국의 재상이 될수 있었다.
구조론은 쉽다. 세상이 대칭과 비대칭이라는 사실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뭐든 연결하면 대칭된다. 사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듯이 수평으로 연결되는 것은 다 대칭이다. 왼손과 오른손은 대칭인데 머리와 발은 비대칭이다. 수평으로 연결할 일은 많고 수직으로 연결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경험적으로 알게 된다.
주역의 역은 변화를 의미한다. 양음론이 아니고 음양론인게 주역은 변화중심의 사고다. 역易은 해와 달을 합친 글자인데 태양의 불변과 달의 변화를 나타낸다. 공간은 대칭되고 시간은 비대칭이라는 것은 감각적으로 알게 된다. 인간은 공간에 강하고 시간에 약하다. 공간은 손으로 가리키면 되는데 시간은 가리킬 수 없다.
어제를 가리키려면 달력이 필요하다. 구조론이 달력이다. 인간은 시간을 공간화시켜 사유하는 나쁜 버릇이 있다. 양은 공간이고 음은 시간인데 음의 공간이 있다는 식이다. 달은 음기의 집합체라고 믿는다. 음력을 쓰지말고 양력을 쓰면 되잖아. 주어는 공간이고 동사는 시간인데 인간들이 주어와 동사를 헷갈리는 것이다.
음과 양, 대칭과 비대칭, 공간과 시간, 결맞음과 결어긋남, 변화와 안정, 수렴과 확산이 있다. 감각적으로 아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대칭쌍을 개별적으로 들이댈 뿐 통합적으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게 열역학 1법칙, 2법칙이라는 것을 모른다. 안정은 1법칙, 변화는 2법칙이다. 공간은 1법칙, 시간은 2법칙이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하나도 모르는게 일단 의사결정이라는 말이 없다. 국어사전에는 있는데 이 분야에 쓰이지 않는다. 사건이라는 개념도 없어서 영어로 번역이 안 된다. 컴퓨터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알면서 육체와 정신의 차이, 외부의 관측과 객체 자체에 내재한 의사결정 메커니즘의 차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공간은 방향이고 시간은 순서인데 여기까지 온 철학자 한 명을 내가 본 적이 없다. 흘러간 물은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는게 시간의 비가역성이다. 공간은 좌우가 있는데 시간은 좌우가 없다. 시간은 과거가 없으므로 미래도 없다. 과거도 미래도 없으므로 현재도 없다. 우리가 현재라고 생각하는 순간 이미 과거가 되어 있다.
시간은 변화를 나타내는 약속이며 변화는 인간이 지시하여 가리킬 수 없다. 변화를 이해하는 방법은 나란히 가는 것이다. 변화는 오직 나란한가, 어긋난가로만 판단할 수 있다. 공간의 좌우는 동시에 공존하지만 시간은 공존하지 않는다. 나란한 것만 남고 어긋난 것은 탈락하여 사라진다. 시간은 화살표로만 나타낼 수 있다.
수학은 어렵고 구조론은 쉬운데 수학은 먹고 살자고 연구한 것이고 구조는 밥먹는 데는 지장이 없으므로 일단 제껴놓은 것이다. 점쟁이들은 구조를 써야 한다. 음양론은 점쟁이가 만든 사상이다. 미래를 예측하려면 구조를 알아야 한다. 당신의 로또가 당첨될지는 모르지만 사지 않은 로또가 당첨되지 않는 것은 확실하다.
알고보면 많은 인간들이 사지 않은 로또의 당첨을 기다린다. 구조론은 사건의 범위를 알려준다. 범위 바깥은 걱정할 이유가 없다. 해답은 이 안에 있어. 범인은 이 사람들 중에 있어. 이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 인간들의 걱정은 99 퍼센트가 자기와 상관없는 남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할 일만 정확히 알면 인생은 순조롭다.
이 세상은 공유와 공유해제, 밸런스와 언밸런스, 공간의 대칭과 시간의 비대칭, 작용과 반작용, 수렴과 확산, 인력과 척력의 대칭과 비대칭으로 되어 있다. 이걸 따로따로 이해하면 피곤하고 전부 연결시켜 한큐에 해결하는게 구조론이다. 머리 속에 좌표를 그려야 한다. 공간의 방향과 시간의 순서를 헷갈리지 말아야 한다.
동과 정
음과 양
대칭과 비대칭
밸런스와 언밸런스
수렴과 확산
결맞음과 결어긋남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정신과 육체
유와 강
공간과 시간
주어와 동사
안정과 변화
포석과 전투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붉은여왕과 내시균형
작용과 반작용
인력과 척력
공유와 공유해제
일법칙과 이법칙
내부질서와 외부관측
연역과 귀납
여기에 수순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게 구조론이다. 언어는 맥락이 있으므로 위 21가지 예시는 쓰임새에 따라 수순이 달라질 수도 있다. 이들은 모두 대칭되지만 동시에 비대칭이다. 방향은 대칭인데 순서가 비대칭이다. 선수비 후공격이지 선공격 후수비는 불가능하다. 공격 중에 수비수가 하프라인을 넘어가 있기 때문이다.
열거된 대칭 쌍은 전부 같은 이야기다. 바둑은 선공간 후시간, 선포석 후싸움이다. 일단 공간을 선점하고 시간은 타이밍 싸움이다. 공유 사회주의가 먼저고 사유 자본주의가 나중이다. 붉은 여왕은 공유로 흥하고 내시균형은 사유해서 망한다. 경찰이 죄수의 딜레마로 갈라치기를 구사해서 공유의 효율을 방해하는 것이다.
이런 것을 개별적으로 접근하지 말고 하나의 통짜 덩어리로 연결시켜 머리 속에 그림을 그려야 한다. 수학은 사칙연산이지만 사실은 나눗셈 하나가 있을 뿐이며 나머지는 보조한다. 곱셈은 나눗셈을 뒤집어놓은 거다. 뺄셈은 덧셈을 뒤집은 것이고 덧셈은 나눗셈을 도마에 올리는 절차다. 분자냐 분모냐? 여기서 헷갈린다.
덧셈은 1+2나 2+1이나 같은 건데 나눗셈은 1/2와 2/1가 다르다. 이게 구조론이다. 나눗셈을 이해한 사람은 구조론을 이해한 것이다. 우주 안에 셈은 나눗셈 하나 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구조는 밸런스의 복원력 하나 밖에 없다. 간단히 척력이 어떠한 상황에서 인력이 되는가다. 남녀가 투닥거리면 알잖아. 쟤들 곧 사귀겠네.
대칭은 전달이며 우주는 전달, 전달, 전달되어 작동한다는 것은 감각적으로 다들 알고 있다. 전달에는 순방향과 역방향이 있어서 순방향으로는 잘 가고 역방향으로는 잘 못간다는 사실도 다들 알고 있다. 곱셈은 순방향이라서 쉽고 나눗셈은 역방향이라서 어렵다. 강물을 거슬러 노를 저으면 졸라리 빡세다. 경험으로 안다.
머리속에 지도가 들어있지 않은 사람에게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경부로 가다가 신갈에서 영동으로 빠지면 덕평휴게소가 나온다고 말하면 몇이나 알아듣겠나? 구조론은 머리 속에 지도를 그리는 것이다. 그냥 분자가 어떠고 분모가 어쩌고 하기보다 도마 위에 생선을 올려놓고 칼질한다는 그림을 그리면 나눗셈이 참 쉽다.
구조론은 간단히 3/2를 3*1/2로 바꾸어 표현하는 것이다. 나눗셈이 곱셈이 되면 쉬워진다. 세상은 기본적으로 환원되지만 요소요소에 환원되지 않는게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환원된다는 것은 나누면 0으로 떨어진다는 건데 그럼 소수는 뭐냐고? 귀납은 원래 환원되지 않는다. 귀납을 연역으로 바꾸면 쉽게 환원된다.
가역성 = 공간은 환원되고 공유된다.(화장실을 공유한다.)
비가역성 = 시간은 환원되지 않고 공유되지 않는다.(변기 하나를 동시에 두명이 사용할 수 없다.)
세상은 공유되는데 공유되지 않는다. 환원되지만 환원되지 않는다. 대칭되지만 대칭되지 않는다. 1+2나 2+1이나 같은데 1/2과 2/1은 다르다. 나눗셈은 피곤하니까 나눗셈은 하지말자고 구조론을 회피한게 이 문명의 함정이다. 구조론이 전부 1/2과 2/1이 다르다는 것을 구분하는 문제다. 순서만 헷갈리지 않으면 참 쉽다.
화살이 어디서 날아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디로 날아갈지는 안다. 그 화살은 내가 쏘는대로 날아간다. 귀납은 연역으로 바꾸면 쉬워진다. 그게 구조론이다. 땅에 떨어진 지갑을 누가 잃어버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누가 챙길지는 안다. 그 지갑은 내가 챙긴다. 중요한 것은 인류 중에 이 문제를 들여다 본 사람이 없다는 거다.
세상은 에너지의 연결 회로다. 내부 에너지 질서는 일원론 비대칭이고 외부 인간 관측은 이원론 대칭이다. 귀납하여 부분에서 전체를 바라보면 대칭이고 연역하여 전체에서 부분을 보면 비대칭이다. 엔진을 보면 비대칭이고 바퀴를 보면 대칭이다. 인간시점 귀납의 대칭성을 버리고 자체질서 연역의 비대칭으로 올라서야 한다.